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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06:26


bgsd 어나더 3나더 





그날 이후 마치다는 더 이상 잘해주지 말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고, 가끔 둘만 있을 때는 '스즈키'라고 속삭이곤 했다. 그리고 노부는 그럴 때마다 온몸의 솜털이 일어서는 간질간질함과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게다가 어느 날은 마치다가 '스즈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어깨를 움찔 떠는 노부를 눈치챈 바람에 그 후로는 일부러 더 귓가에 대고 작게 이름을 소곤거려서 곤란해지곤 했다. 노부가 곤란해하며 귀를 문지르면 마치다는 키득키득 장난꾸러기처럼 웃곤 해서 클럽의 서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사장님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패션브랜드 CEO와 패션지 에디터는 이미 털어낼 만큼 털어내서 조직에 넘기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지만 재벌가의 망나니 3남이 문제였다. 행동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마치다가 정보를 캐려고 할 때마다 마치다나 서버를 치근거리기만 할 뿐 대화를 하려고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도 마치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노부에게 업혀서 돌아온 날이었다. 

"괜찮습니까?"

마치다를 소파까지 데려다주고 냉수를 한 잔 갖다주며 물어봤을 때. 소파 위에 눈을 감고 누워서 이마에 손등을 얹고 있던 마치다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앉더니 냉수를 받아마시고 노부를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노부의 품에 기대서 차가운 손으로 노부의 손가락을 쥐고 만지작거렸다. 

"자기야, 요즘 왜 그렇게 팍 쪼그라들었어?"
"... 제가 쪼그라들었습니까?"
"전에는 열정이 가득 들어찬 풍선 같았는데. 너무 가득차 있어서 빵빵해 보였기 때문에 그것도 좀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
"요즘은 터져서 쭈글거리는 풍선 같아."

마치다는 키득거렸지만 노부를 안쓰러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분명히 보였다. 마치다는 노부의 애인 역할에 항상 충실했기 때문에 스킨십이 잦은 편이었는데 버릇인지 늘 노부의 손을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초조하거나 심란할 때는 괜히 노부의 손가락을 꾹꾹 눌렀고 심심하거나 생각할 게 있을 때는 가만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부를 옆에 앉혀놓고 노부의 한손을 양손으로 쥐고 손가락을 하나씩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간질간질거려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마치다는 키득키득 웃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기가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해?"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좀처럼 제 몫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속상한 건 따로 있었다. 오늘 클럽 던전에 왔던 망나니는 정말로 마치다를 쉽게 여겼다. 옆에 애인이라고 소개한 노부가 있는데도 클럽 오너면 어차피 물장사 아니냐고 여기는 게 행동에서 훤히 드러났다. 아닌 척 천박한 플러팅을 하고 실수인 척 마치다의 몸을 건드리거나 질 낮은 농담을 하곤 했다. 마치다는 그 무례한 행동에 분명히 선을 긋기는 했지만 정보를 긁어내야 하는 만큼 그 선이 타이트하지 않아서 천박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상당히 참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게 마치다의 상처를 헤집는 게 아닐까해서 고개를 저은 뒤로 입만 꾹 다물고 있을 때였다. 

눈치가 빠른 마치다는 노부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노부를 끌어안으며 노부의 품으로 푹 쓰러졌다. 노부가 반사적으로 받아안자 노부의 어깨 위로 따뜻한 한숨이 닿았다가 흩어졌다. 

"놈들을 꼭 잡아넣자. 감옥에 처넣어가지구 방탕하게 살아왔던 삶을 후회하게 해 주자고."

그 용의자들이 전부 사이비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사이비종교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윗선에서는 사이비종교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보를 확보하는 대신 형량 거래를 해 줄 것이었다. 윗선의 목적은 교단의 핵심 멤버들이니까. 그걸 알고 있지만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잡아넣겠습니다. 반드시. 잡아넣겠습니다."

놈들이 윗선과 무슨 거래를 하든 노부는 놈들을 쳐넣을 것이다. 노부는 공안 쪽으로 다른 라인을 이용해서 이 용의자들, 특히 마치다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놈들의 뒤를 캐고 있었다. 중간보고만 받았는데 하나같이 뒤가 구린 놈이다 보니 전부 잡아처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든든하네, 믿고 있을게."
"네. 이제 좀 쉬십시오."
"알았어."

그러자 귀찮아 죽겠지만 정말 씻고 싶다고 욕실로 향했던 마치다는 금방 칫솔을 입에 물고 욕실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자기야, 그래도 어깨에 힘은 좀 빼도 돼."
"네."
"난 자기를 부려먹는 사람이 아니야.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지."
"... 네."
"그럼 조심해서 가. 스즈키."

오늘 재벌가의 그 망나니 때문에 내내 기분이 저조했었는데 조심해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다시 욕실로 쏙 들어가는 마치다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환했다. 정보를 캐 내야 하는 면에선 여전히 제몫을 다 못하고 있었는데 내내 우울하던 얼굴이 환해진 걸 본 것만으로도 노부가 해야 할 몫 이상을 해 낸 것 같아서. 내내 무력하던 기분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정말로 뿌듯해졌다. 

전부 잡아처넣어야지.





사이비종교를 믿는 정신빠진 놈답게 재벌가의 3남은 정말로 글러먹은 놈이어서 마치다는 그 후로도 몇 주 동안 여러 모로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그걸 옆에서 봐야만 하는 노부도 계속 속을 끓였다. 물론 마치다도 그럴 때마다 화를 참는 게 보였지만 노부가 마치다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더 애면글면하며 마치다의 기분을 살펴주면 늘 피식 웃으며 기분을 풀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누가 굉장히 큰 개를 키웠어."
"큰 개 말입니까?"

마치다는 애인 노릇을 하는 동안에도 개인사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고 과거에 대해서 직접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신 마치다를 집에 데려다주고 급히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서 꿀을 타 갖다준 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집에 꿀이 있었어?'라고 묻는 마치다에게 요즘 마치다 상이 술 마시는 일이 많아서 노부가 사다 놨다고 대답하고 난 다음이었다. 마치다는 뜬금없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어릴 때 동네에서 누가 굉장히 큰 개를 키웠어.'하고. 

"응. 그때는 그냥 큰 데도 엄청 귀엽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커서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사모예드였더라고."

그러고보니까 마치다의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작은 강아지 인형을 볼 때마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뭔가 했더니 사모예드 인형이었던 모양이었다. 워낙 큰 사모예드만 봐서 작은 인형을 보고 떠올리지 못햇을 뿐. 

"나는 그때 개를 기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너무 부러웠거든. 나도 그렇게 크고 든든하고 귀여운 반려견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개는 나를 지켜주고, 나는 개를 지켜주고."
"네."
"지금도 인생이 이모양이라 반려견 들일 생각은 못했는데."
"...네."
"내 사모예드 생긴 기분이다."

내가 개 같다는 건가?

기분이 좀 묘했지만 마치다가 취해서 들어온 밤마다 품 안에 작은 인형을 폭 껴안고 인형에 얼굴을 비벼대면서 한숨을 폭폭 쉬는 걸 봤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마치다가 너무 기분좋은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노부는 마치다의 사모예드가 돼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한 건 아니지만. 마치다는 노부가 옆에서 돌봐주기만 해도 마치다는 늘 '내 사모예드' 그러면서 좋아했다. 





결국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전부 붙잡았고 긴밀하게 연관돼 있던 용의자들도 다 붙잡았다. 상부에서는 노부의 예상대로 거래를 했다. 사이비종교의 교주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지만 교단 관계자들 및 각 용의자들에게서 긁어낼 수 있는 여러 정보를 모두 받아내는 조건으로 형량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처벌을 면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마치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다도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다. 노부가 소속돼 있는 그 비밀정보조직을 도우면서 이런 결과를 한두 번 본 게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xxxx는 마약거래, 마약복용, 성폭행으로, oooo는 횡령 및 불법주식거래, 투자사기로, ㅁㅁㅁㅁ는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aaa는-"
"잠깐. 잠깐만."

집안의 힘과 돈으로 더럽고 추악한 범죄를 많이도 묻어왔던 재벌가의 망나니 및 많은 놈들이 기소되게 됐다는 말을 멍하게 듣고 있던 마치다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이번 용의자들 중 다수가 이번 조사로 중범죄 혐의가 드러나서 각각 별도의 건으로 기소될 겁니다."
"... 언제?"
"곧 기소될 겁니다. 이번 주 안에 다 기소할 거라고 했어요."
"그걸 그 사람들은 알아?"
"알려준 적 없습니다."
"그럼 형량 거래가 잘 됐다고 생각하고 정보를 다 불었는데 뒤통수를 치는 거야?"
"사이비종교 건과는 별 건이니까 뒤통수는 아닙니다."
"... 자기 상부에서는 알아?"
"과장과 부장님한테는 통보했습니다."
"통보를 했다는 건 자기가 했다는 거네?"
"네. 우리 다 잡아넣자고 했잖아요."
"아니... 그냥 말이나 해 본 건데..."

마치다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는 얼굴로 멍하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노부를 끌어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깔깔 웃던 마치다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노부와 눈을 마주쳤다. 

"넌 이전에 왔던 다른 요원들과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다를 줄은 몰랐네."

항상 '자기야'라고 부르던 사람이 너라고 부른 것뿐인데, 가슴이 쿵 뛰었다. 

"유능한 사모예드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튀어나갔다. 그 말을 들은 마치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다시 웃으며 노부를 꼭 끌어안은 채로 노부의 뺨을 살짝 감싸쥐었다.

"그러게, 내 사모예드 잘생기고 귀여운데 유능하기까지 하네."

과장과 부장의 결제를 받자마자 정보를 싹 긁어서 검찰에 넘겼고 검찰에서는 검찰쪽 사람에게 이번 주 내로 기소할 것을 확답받았다. 그런데도 차오르지 않던 자신감이 마치다의 그 말에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이 사람의 상처투성이인 삶을 다독여주는 것도. 그리고. 

마치다는 노부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눈을 한 번 깜박거리곤 웃었다. 

"넌 참 신기해."

가슴이 고장난 것 같았다...







놉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