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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2:14

- 노잼& ㅅㅅㅊ 주의
- 커플링이나 탑텀구분을 의도하고 있진 않고 나붕이 남훈동준파서 ㅌㅈ적 해석이 기초적으로 깔려 있을 수 있음
- 펄럭패치 주의, 작중 배경 푸산(오사카 아님), 어색한 남동방언 주의
- 90년대 초반의 펄럭의 문화 및 시대상을 기초로 쪽본의 시대상이 일부 섞여있음
- 타싸에 올린 적 있음
※ 학교폭력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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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 밤에 뭐 하니?"

"아, 어머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훈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가 된 듯한 심경을 느낀다. 사실을 밝히자면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자신이 아니건만. 늦은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여름부터 다닌 보습학원의 통학 봉고차를 타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돌아온 훈은 간식 따위를 묻는 어머니의 걱정어린 목소리를 뒤로하고는 부리나케 방 위로 올라가버렸다. 2학기가 시작한 후로 새로 다니는 학원이 유독 고된건지, 입시 스트레스가 제법 쌓인건지, 훈의 어머니는 요즘들어 부쩍 늦은 밤 귀가가 일상이 된 아들의 얼굴이 어두워보인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예."

"요즘 깊은 잠이 잘 안들어서 뒤척이다가 화장실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서 나왔지. 그거, 교복 와이셔츠 아니니? 손빨래 하는거야?"

"아, 예. 그, 그게. 떡볶이를 흘려가지고예."

"떡볶이? 별일이다. 그런건 잘 먹지도 않던 애가. 그래도 세탁하게 내놓지. 그걸 그냥 손이랑 비누로 빤다고 지워지니."
 

아니면 초등학교 때부터 해 온 운동을 그만둔게 나름대로는 큰 충격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든든하고 착한 아들. 남자애라면 운동 하나는 해야한다는 주변 소리에 태권도를 시킬지 검도를 시킬지 고민하던 차에 느닷없이 동네 친구 동준이랑 농구에 홀딱 빠져 와서는 당연히 영산이나 경남, 대영에 진학하리라는 부모 기대와는 달리 평판 사나운 고등학교를 다니겠다고 고집을 피우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외아들인 탓인지 또래애들보다 너무 얌전한게 혹시 문제 될까 싶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심경으로 하라는 대로 둔 게 잘못이었을까? 아닌게 아니라 제 아들은 요즘 뭔가 이상했다. 훈의 어머니는 지난 여름,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올해는 꼭 우승하고 싶다며 나지막히 말 하던 모습을 불현듯 떠올린다. 
 

"엄마 줘 봐. 엄마가 해줄게. 네가 뭐 빨래를 해본적이 있니."

"아닙니다. 거의 다 해가, 행구기만 하면 됩니다. 들어가 얼른 주무이소."
 

동준엄마는 애가 농구한다고 설치더니 갑자기 졸업할 때 다 되가 선생 멱살을 잡았다고 연락이 온다고 한탄했는데. 남편 말에 고분고분, 서울까지 다녀 온 아들은 갑자기 한밤 중에 생전 안하던 손빨래를 하고 있다.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훈의 어머니는 공부한답시고 부쩍 상한 아들의 얼굴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대충 헹구고 빨래통에 넣어놓고. 내일도 학교 가야지. 아들의 고집에 결국 먼저 두 손 든 훈의 어머니가 화장실을 떠나자, 훈은 그제서야 세면대 가득 채운 비눗물에 푹 담군 셔츠를 꺼내 들었다. 넥 카라 밑에 물든 붉은 자국은 일반 비눗물로는 도통 지워지질 않았다.

 

 

*

 

 

여전히 철 지난 가을농구를 붙들고 있다보니 동준은 부쩍 대룡과 붙어있는 시간이 늘었다. 계절이 익어가고, 윈터컵 예선전이 거듭될수록 대룡의  능청도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전에는 3학년 교실 복도 오는것도 힘들어 하던 자식이. 오늘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기 무섭게 농구잡지와 비디오 테이프 몇개를 들고 교실 뒷문에 붙어 알짱거리는 대룡을 발견한 동준이 몸을 일으킨다. 점심시간에도 공부는 끝이 없는 건지. 점심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오늘도 텅 빈 제 옆옆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동준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와, 역시 NBA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네예."

"뭔 손바닥에 공을 붙인 것 같다. 잘 달리네."

"골도 잘 넣는다 아입니까. 지랑 키도 같은데예."

"그래도 3점슛은 잘 못넣는다더만. 니랑 같다 아이가."

"김평일이. 한성호. 느그 한가하나."

"뭐 어떻노. 체육관 혼자 쓰는 것도 아인데."
 

반 강제로 체육관 사무실을 빌려주던 영중과 달리 영중보다도 젊은 신임감독은 선생과 학생의 상하관계에 꽤 엄격했다. 그래서 농구부가 사실상 부실처럼 쓰던 사무실은 바뀌어버린 풍전 고등학교 농구부의 생태계를 반영하듯, 한동안 굳게 닫혀있었다. 주장이 된 대룡이 어떻게 알랑방구를 뀌었는지, 한때 교실보다 친숙했던 체육관 사무실의 문을, 동준은 신임감독 부임 후 두 달이 지나서야 다시 열 수 있었다. 그 후로 동준은 점심시간이 되면 남훈 대신 대룡과 함께 대룡이 녹화해 온 NBA 나 다른 학교의 경기영상을 돌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명헌은 역시 무시무시하네예. 아쉽습니다, 햄. 한 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어차피 이명헌이는 윈터컵은 안 나온다. 안그렇노? 그리고 대료이 니도, 이명헌이랑 비교하면 머리가 좀 마이 딸리지만서도 키로는 안진다. 주눅들지 말래이"

"니는 골도 잘 넣는다 아이가."

"동주이 말이 맞다."

"그래도예, 지는 솔직히 개뿔 관심도 없던 상대팀이 이렇게 치고 올라오면 쫄릴 것 같아예. 안그렇습니꺼."

"1초 남아도 우리가 한 골 더 넣으면 그만이다. 산왕은 그걸 못한기고."
"우리는 안 그랬냐."

"강동주이 안 죽었노. 요즘 좀이 쑤셔한다는 말이 있던데. 성질 마이 죽은 줄 알았는데, 아이네."

"시끄럽다. 북산 포인트가드 점마나 봐라. 올라오지 않겠나. 설욕전 해야지." 
 

고개 한 번 돌린 적 없이 맹목적으로 쫓던 목표가 사라진 후, 동준은 비로소 눈 앞에 보이는게 많아진 기분이었다. 농구선수로서 대룡의 재능도 그 중 하나였다. 화려한 공격과 득점 위주의 경기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머리에 쉽게 열이 오르는 자신이나 감정적 동요로 한번 무너지면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던 훈과 비교해보면 새삼 대룡은 풍전의 멍청이 들 중 가장 침착한 녀석이 아니었을까. 득점력도 괜찮지만 자신이나 훈에게 주는 패스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3학년들로 드글거리던 전국의 포인트 가드들 사이에서도 꿀리진 않지 않았나. 키도 더 클 수도 있고.... 몰래 한 동준의 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즘 좀 친하게 지냈다고 꼴에 팔이 안으로 굽는건지.  대룡이 재생하던 북산과 산왕의 경기 녹화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린 동준이 갑작스레 스프레이와 무스로 멋을 낸 대룡의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니 오늘부터 200미터 전력 달리기도 연습해라."
 

쟈는 뭔 날다람쥐 같노. 저 뽀글머리랑 비교하면 우리 대료이 덩치값 하느라 존나 느리다 아이가. 동준의 장난어린 말에 대룡의 투정이 뒤를 이었다.


 

*

 

 

오랜만에 성호와 평일, 대룡과 있다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막 친 직후, 부리나케 뒷문을 열고 들어와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다음교시 영어가. 영어는 원래 밥 다 묵고, 담배 한 대 피고 온다. 늦어도 괜찮데이. 평일의 뺀질거리는 말이 맞은게 조금은 열이 받았다.
 

"강동준."

"어, 어어. 왜."

"니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하노."

"...연습하지. 당연한 걸 묻고 있노."

"연습은 몇 시에 끝나는데."

"느그는 선생님 들어오는데 인사도 안 하나. 반장!"
 

부랴부랴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놓는데, 갑자기 옆옆자리에서 기대도 안 한 목소리가 동준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친구라는 새끼가 참 오랜만에 동준을 부르고 있었다. 중간에 낀, 이름이 뭐랬더라. 윤식이랬나. 어쨌든 녀석은 투명인간 취급하며 말을 걸길래 대답이 참 얼빠지고 멍청하게도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먼저 말을 건 걸 잡아떼기라도 하려는 듯, 선생이 들어오자 시침을 뚝 떼고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둥글둥글한 뒷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강동준!"

"응?"

"이거, 훈이가 주랜다."

"거기! 잡담하는거 누고?"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훈은 교과서에 코를 박았고 동준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중간에서 제법 안절부절하던 반 친구가 결국 참다못해 동준의 팔을 연필로 쿡, 하고 찔렀다. 뭐고. 물을 새도 없이 윤식인지 윤석인지가 내민 손에 들린 건 반듯하게 적은 쪽지 한 장이었다. 동준은 얼떨떨하게 내민 쪽지를 받아 들었다가, 훈을 쳐다 보다가 다시 쪽지를 바라본다. 니 뭐 가시내가. 이런 간질간질한 짓을 하고, 뭔데. 목소리 대신 표정으로 물어보다가 결국 곱게 접은 종이를 펴 내용을 확인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기분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

 

 

농구가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 말을 하지. 별 가오는 다 잡으면서 뭐? 내는 이제 농구는 그만할란다? 미련이 남을까봐 깔끔하게 그만둔다? 갖은 지랄을 하며 공부 한다 난리를 치더니 좀이 쑤셔 가 참을 수가 없던 거 아이가. 입은 실실거리며 제법 거친 말을 뱉고 있었지만, 동준은 비로소 제 안에 응어리지고 꼬여 눌러앉은 무언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가끔 최 여사가 말하던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이걸까. 덕분에 오늘은 훈련도, 신임 감독의 잔소리도 들어주는게 영 고되지만은 않았다. 텅 빈 코트에서 혼자 몸을 푸는 동준의 바지 주머니에는 여전히 낮에 훈이 준 쪽지가 곱게 접혀 있었다.
 

​"벌싸 와 있었나."

"어, 늦었다. 이제 끝났나."

"오늘은 좀 일찍 온 거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배경으로 동네 근린공원 코트에서 혼자 공을 튀기길 한참, 먼발치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날벌레 달려들어서인지 아니면 수명이 다한건지, 깜빡이는 가로등 밑으로 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칫 지나치게 반가운 티나 기다린 티를 내진 않을까. 공원 가로등이 어둡길 다행이라 생각하며 동준은 일부러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나 한답시고 남후이 다 죽은 건 아니겠지. 오늘은 안 봐준다."

"시끄럽다. 맨날 발린게 누고. 누가 누굴 봐준다고."

"근데, 뭔 바람이 들었노? 농구는 딱 끊는다며."

"... 스트레스가 쌓여 가."
 

스트레스 관리도 다 공부에 도움된다. 파리한 얼굴의 훈이 마이와 가방을 벗어 내려놓더니, 소매를 두어 번 접어 올럈다. 좀 더 썩 올리질 않고. 그래가 거슬려 움직이겠나. 농구화는 커녕 납작한 캔버스화를 신은 훈이 준비하던 꼴을 보던 동준은 손 안에 굴리던 주황빛 공을 기습적으로 던졌다. 받아드는 폼이 여전히 죽진 않은 것 같았다.


 

남훈과의 원 온 원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이래로 밥 먹고, 농구하고, 화장실가고, 자고. 마치 숨을 쉬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반복 속에 늘 남훈과의 농구가 있었다. 그게 일대일이든, 아니면 팀 경기든.

그러나 오늘은 이상했다. 어둑한 가로등 밑에서 밤의 정적을 가르며 공을 튀기고, 빼앗고 달리던 동준은 본능적으로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숨쉬는 것 보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눈치채는 것도 빨랐다. 훈이 잡은 공을 빼앗으려던 동준이 불현듯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섰다.
 

"뭔데?"
 

위화감은 작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지난 여름으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하더라도, 이 녀석 움직이는 게 원래 이렇게 어설펐나. 아니, 그건 단순히 어설프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을 들고 달리고 점프하는 훈의 움직임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굼이 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숨이 찬 것도 아닌데 부드럽고 빠른게 장점이던 훈의 동작이 어느순간, 중간 중간 프레임이 끊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끊기는 순간이 있었다.점프를 하려던 직전 혹은 공을 던지려 손목에 스냅을 주기 직전. 찰나의 순간이었고, 동준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잠시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동준만이 눈치챌 수 있는 잠깐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작고 미세한 위화감이 소독차에서 흘러나온 흰 가스가 골목 골목에 퍼지듯이 응어리가 풀린 동준의 안에 새로이 쌓인다.
 

그럼에도 훈의 경기는 더욱 거칠어진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수비 위주의 습관을 들인 제 플레이에 비해 여전히 둘 만의 시절부터 쌓아 온 훈의 농구 습관이 변하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그러나 훈은 동준이 수비를 푼 순간에도 마치 일부러 몸을 굴리거나,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위해 노력하려는 것처럼 굴며 코트 위를 뛰었다. 꼭 그렇게 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낯선 모습에 질린 동준이 움직이자 농구하는 사람 어디갔냐며 맥아리 없는 도발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동준은 멈춰 선 발을 꾸역꾸역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잠깐, 그래 툴툴거리던 몇 안되는 날 동안, 혹시 뭐 쟈도 화가 나기라도 한 기가. 이상하기 짝이 없는 훈의 모습을 보며 동준은 참 엉뚱하게도 부산으로 돌아온 그날의 이사장실을 떠올렸다. 훈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예민한 긴장감. 위태로운 압력. 그리고 짓눌려 터져버릴 것만 같던 훈... 
 

"아!"
 

과하게 밝은 빛의 백열등 밑, 파리한 옆모습을 떠올리던 동준의 회상은 엉거주춤 서 있던 자신을 제치고 달리던 훈의 발목이 갑자기 꺾이며 넘어지는 순간, 스위치가 꺼지듯 끝나고 만다.
 

​"마, 괜찮나!"

"아윽, 으. 괜찮다. 호들갑 떨지 마라."

"니 아무래도 오늘은 이상타. 무리하는거 아이가. 자, 일어나, 어."
 

그리고 동준은 보고 만다. 
 

"니, 그기 뭐꼬."
 

​넘어진 친구를 일으키기 위해 어색하게 움직이며 몸을 숙여 손을 내민 순간 시야로 들어온, 멀건 뱃가죽 위를 가득 덮은 벌겋고 시퍼런 낯선 자국을.
 

"...아무것도 아이다."
 

말려 올려간 교복 셔츠 밑으로 가득 한, 이제껏 한 번도 본적 없는 생경한 폭력의 흔적을.
 

"그게 뭐가 아무것도 아인데!"
 

훈은 거짓말에 참 서툴렀다. 동준 만큼이나, 어쩌면 동준보다도 더 서툴렀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주제에 낯빛이며 눈가며,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가 나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노라, 온 몸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같았다. 혹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동준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뻔한 거짓말을 하는, 황급히 가리면서도 시침을 뚝 떼는 남훈 때문에 참다 못해 폭발하는 것은 늘 그렇듯 동준이 먼저였다. 
 

"...늦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아주머니 기다리시겠다."

"남훈!"

"덕분에 오랜만에 몸 좀 풀었네."

"니 내 말 씹나. 왜 대답을 않는데, 씨발. 야!"

"...들어가라."
 

내민 손을 맞잡지 않고도 훈은 잘만 일어난다. 그리곤 농구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를 흙먼지를 가득 털어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매무새를 정리했다. 물 흐르듯이 저를 지나 코트 가장자리에 벗어 둔 교복 마이와 가방을 들쳐매고는, 뻔뻔하게도 내일 보자며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더니 그렇게 그대로 코트를 떠나버렸다. 얼굴에는 거짓을 덕지덕지 묻혀 놓고도 그랬다. 덕분에 동준은 잠시 구름 위를 걷던 기분이 한 순간에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곤두박질 치는 좆같은 기분에 한참이고 한참이고 빠져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심경이 불쾌함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분노인지는 알래야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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