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 애니
- 커플링이나 탑텀구분을 의도하고 있진 않고 나붕이 남훈동준파서 ㅌㅈ적 해석이 기초적으로 깔려 있을 수 있음
- 펄럭패치 주의, 작중 배경 푸산(오사카 아님), 어색한 남동방언 주의
- 90년대 초반의 펄럭의 문화 및 시대상을 기초로 쪽본의 시대상이 일부 섞여있음
- 타싸에 올린 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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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한 번도 영중과 제대로 된 훈련은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노 선생님의 방식으로 목표를 이루겠다고 굳게 새긴 다짐이 있었다. 그 허황된 목표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낸 멍청한 녀석도 있었다. 노 선생님이 굴욕적으로 학교를 떠나던 그때 고민 끝에 꺼낸 그 말에 진심으로 찬동한 자신 역시 멍청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보 멍청이들의 모임이었다. 너도, 나도. 그리고 가린 눈을 하고 무한히 달려나가는 두 바보의 옆에서 함께 달려주던 녀석들도.
때문에 일말의 고민 없이 런 앤 건은 낡았다고 말 하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동준에게는 그것이 마치 너희들의 추억도 다짐도 존재도 틀렸다고 매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훈에게는, 글쎄. 자신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감정적인 그에게는, 오로지 자신과 함께 노선생님의 농구를 따르기 위해 남들이 모두 마다하는 학교까지 들어온 그 녀석에게는 영중의 그 무심한 말은 아마 존재를 부정하는 것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먼저 분노한 것은 훈이었기에 동준은 그 옆에서 그로부터 부여받은 찬동자의 지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치기 어린 억울함과 분노를 쉽게 달랠 수 있었다. 동준이 적극적으로 영중을 깎아 내렸다면 훈은 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영중을 무시할수록 학교와 이사장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록 우리들이 옳고, 노 선생님이 옳았다고 증명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 일탈의 끝에 받아든 것은 너무나도 초라했던 성적표 뿐이었다. 동준 개인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절로부터 불명예스럽게 쫓겨난 것만 같은 박탈감이 덤으로 따라왔다. 농구도, 훈과의 다짐도, 어린시절 이래로 지켜왔던 꿈에 대한 순수한 몰입도 모두 한 순간에 빼앗긴 것만 같은데 훈은 자신을 두고 나아가버렸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와 시야에 거꾸로 매달린 영중을 보며 쓸모없는 질문을 되새길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우리가 당신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까? 습관처럼 달라붙은 반항심이 다시 불뚝 고개를 드는데, 한편으로는 그 낯이 꼴사납기도 했다.
*
우려, 그리고 이유 모를 긴장감과 달리 영중은 체육관 한복판에 대 자로 자빠져 있는 동준을 지나쳐 자연스럽게 체육관 옆 사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마치 지나가는 개새끼 보는 듯한 익숙한 무시는 일찍이 동준과 훈이 영중에게 질리도록 퍼붓던 것이었다. 괜히 심통이 나 동준이 누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영중이 들어가버린 사무실 문을 열어젖힌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영중은 꽤나 바빠보인다.
"지금 뭐합니까?"
"보면 모르냐."
영중은 큰 가방을 들고 왔다. 학생들이나 들고다닐 법한 큰 스포츠 가방에 조용히 제 물건을 채워넣는 영중의 모습에 동준은 기시감을 느낀다. 그 홀가분한 모습을 이미 이 년 전에 보았다.
"진작에 얘기하지 않았냐. 이번 대회가 끝나면 나도 모가지라고."
말문이 막힌 동준을 대신해서 영중이 입을 열었다. 그런 점마저 그가 썩어도 선생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는것만 같아 동준은 되려 속이 답답해졌다. 어째 주변에 천불나게 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만 같다. 답답한 마음에 대답은 못하는데 몸이 먼저 영중의 쪽으로 움직였는데, 영중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천천히 짐을 정리했다. 가방의 내용물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흰색 티셔츠 몇 개. 플라스틱 물병 하나와 수건. 잡다한 서적과 농구 잡지 몇 권.
"바로 가버리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선생님이 곧 올거라고 하시더구나. 물러날 사람이 빨리 물러나주는 것도 예의야. 새 학기에는 새 코치진과 새롭게 훈련하게 될 거다, 그러고보니 너희들이랑은 또 상관없는 말이겠지만."
"...."
"그보다 왜 온거냐? 대회도 끝났고, 며칠 전에 니들끼리 은퇴식인지 뭔지도 했다면서."
"...예?"
"대룡이가 말하더구나. 다음 주장이라며?"
어쨌든 가기 전에 너 까지 보고 가니 참 묘하다 묘해. 훈이는 잘 지내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자신을 대신하여 홀로 말을 잇던 영중은 어느새 짐을 얼추 추렸는지 의레적인 격려 몇 마디를 남기고 남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마주하는 얼굴에는 후회외 후련함이 딱 절반씩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 없이 어깨를 토닥이려다 멋적게 휘적이던 영중의 손은 더듬더듬 바지주머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간 고생했다. 잘 지내고. 얇고 힘 없는 짧은 곱슬머리가 동준의 눈 앞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잠깐. 그,"
"응?"
"그, 계속 할 긴데."
"뭐라고?"
동준의 장점이자 단점은 늘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그보다 몸이 먼저 나서는 것이 늘 문제였다. 문을 지나 쓸쓸하게도 코트 위를 가로지르던 영중의 어깨를 거세게 붙잡아 돌리고 나니 할 말도 없었고, 계획이나 생각은 아직 엉성한 와중에 멋대가리라고는 갖다 팔아 먹으려 해도 없었다.
"지는 농구 계속 할 거라고예..."
사실은 사과를 하고 싶던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우리가 너무했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하는게 빨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설익은 자존심이 여전히 동준의 안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도저히 똥고집을 죽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목소리가 자연스레 쥐구멍을 찾듯 기어들어간다.
혼란스러운 영중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멋쩍음에 뒷목만 벅벅 긁던 동준은 아무도 눈치 채기 어려울만큼 작게 고개를 까닥였다가, 재빨리 등을 돌려 입구 쪽으로 달음질 쳤다.
"강동준!"
"...!"
하잘것없는 부끄러움에 도망치던 동준은 제 쪽으로 날아온 묵직한 구체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의식이라기 보다는 본능이었다. 마름모 모양으로 뻗은 큰 손바닥 가득 책가방보다도 더 익숙한 주황색 공이 들어찬다. 오돌토돌한 표면의 감각이 열 손가락 끝 마디마디에 달라 붙는다.
동준은 고개를 들어 공을 던진 장본인을 바라봤다. 어른의 인내와 고단함을 쌓아올리다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한 손을 뻗은 채 자신을 바라보다 이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다리는 어깨보다 넓게 벌리고, 무릎을 접어 무게중심을 아래로 한 후 팔을 넓게 벌린다.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냐?"
바쁜거 없지? 농구하러 온 거 아니냐. 영중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제서야 동준은 영중의 뜻을 겨우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동준의 신발이 관중도 동료도 없는 조용한 체육관 바닥을 긁는다. 삐걱대는 마찰음으로 채우기엔 단 둘 뿐인 체육관은 너무 넓었다.
*
여름방학이 물살처럼 흘러가는 자리에는 의무, 응어리, 그리고 미련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적인 감정들의 부스러기가 태풍을 맞은 강둑에 쌓인 폐기물 처럼 남았다. 그 잔재에서 가장 무거운 것의 이름은 의무고, 잔재의 이름을 붙여준 것은 남훈 자신이었다. 8월의 남은 숫자가 하나하나 사라질 때 마다 몸집을 불려나가는 기묘한 바윗덩어리가 훈의 안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입시학원이 맞춰 준 진도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코트 위를 달리던 훈은 이제 책상 위에서 교과서 위를 달린다. 깨끗하게 세척한 농구화는 더 이상 코트 위로 끼익거리는 소리를 낼 일이 없었고 그 대신 뾰족하게 깎은 연필이 뭉툭해질때 까지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입시학원의 창 밖으로 보이는 여름 하늘은 습기를 가득 먹어 수영 앞바다 만큼 파랗게 빛났는데, 훈은 끝여름의 하늘을 바라보며 종종 등에 4번이 크게 쓰인 유니폼을 떠올리곤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 까지 동준과는 만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렇게 말을 한다면 할 말이야 없었다. 특별반 수업이 끝나고 도시철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훈은 일부러 동준의 집을 피해 반대방향으로 빙 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여름 해가 사그라들고 잔열만 뜨뜻하고 습한 공기로 남은 골목에서 훈은 몰래 뛰기도 했다. 동준의 눈을 피해 주택 단지의 좁은 골목을 전력으로 달렸다. 어둑한 골목가에 개 짖는 소리와 아스팔트 도로위를 때리는 운동화 소리가 동네를 한참 채웠다.
"어."
"아."
일요일 더운 열기와 수학공식의 잔재에 머리가 꽉꽉 차다 못해 핑글핑글 돌다보니 어느덧 지나가버린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 아버지의 신문 더미를 들고 나온 훈과 꽉꽉 채워 알뜰하게 묶은 일반쓰레기 봉지 두 개를 든 동준은 집 앞 쓰레기장에서 만났다. 동준의 짙은 눈썹이 굽이친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미간의 주름과 눈썹이 휘어진 모양이 곡괭이나 갈매기를 닮았다. 불편한 심기가 제 전유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와."
"여전히 하고 있나..., 농구."
신문지 더미를 들고 멍청하게 서 있는 제 앞으로 동준이 스쳐지나간다. 수거함에 쓰레기 봉지를 던져넣은 후, 동준은 마치 처음부터 낯선 타인을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다. 넓은 등짝 위, 어깨부터 날갯죽지를 따라 완만한 아치형으로 쓰인 글씨가 익숙했다. 풍전 고등학교. 바스킷 볼 팀까지 영어로 적자던 대룡과 한자로 써야 멋이 난다던 평일이 큰 목소리로 다투던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별 것 아닌 추억이 반기를 거슬러 올라 굳게 다물린 훈의 입을 잡아 열었다. 물 한 잔 마시고 나올 걸. 갈라진 목소리를 등진 동준이 잠깐 멈춰 섰다가 몸을 돌린다.
"그럼."
"...그래?"
"어."
여전히 풍전 농구부 반팔티를 입고 있는 동준은 당당해보인다. 인사도 없이 떠난 자리에는 또다시 쓸려나가지 못한 자신이 잔여물처럼 남았다. 얇은 흰 티, 회색 반바지에 쓰레빠 차림은 패배자의 변명이라기엔 추레했다.
*
성큼 다가온 가을. 그 말은 긴 더위에 시달린 사람들이 이상해진 감각으로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낯설어 하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지긋지긋한 시간에 대한 낯선 전별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을과 함께 다가온 마지막이라는 말은 사람을 감상에 젖게 했다. 마지막 학기, 청소년기의 마지막, 마지막 고등학교 생활.... 왁자지껄한 교실 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던 훈은 고개를 돌려 교실 맨 끝자리 동준의 자리를 보았다. 내용물을 비운 운동가방이 동준 대신 훈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지러운 동준의 책상 옆 분단 가장 끝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지난 학기까지 훈의 자리였던 곳이다.
훈과 동준의 담임선생이라는 자는 남고 고3 담임자리에 걸맞게 완고했고, 고지식한 불통인 동시에 적절한 고집과 담백한 애정의 균형을 맞춘 사람이었다. 그는 나쁘지 않은 성적의 훈이 약대를 지망한다는 얘기에 화색을 보였고, 학원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고 싶다는 얘기에는 반색을 했다. 학교가 잡아준 생활습관을 괜히 학원을 다닌다, 집중을 한다 함부로 바꾸면 오히려 리듬이 깨진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완고함은 의외로 쉽게 깨진다. 입시 상담지와 어머니의 친필 편지, 그리고 약간의 찬조를 건네드리자 부루퉁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율학습 면제를 허가하는 갱지에 담임의 서명이 멋드러지게 쓰였다. 고개를 꾸벅 숙이자 열심히 하자, 하는 의례적인 말이 뒤를 따랐다.
"강동준이, 갸는 계속 운동 한다대. 니는 안하나."
"안 합니다."
"그래, 느그 농구부 아들 이제 대회 끝났다 아이가. 동아리가 대학 보내주는거 아이다. 다른 아들도 이제 슬슬 대학 생각 해야지. 운동으로 성공하는 거 어렵데이. 그기 쉬운 줄 아나. 아무튼 남들 하는데로 하는게 제일이다."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남들 하는대로. 그건 동준만을 향한 말은 아니었다. 고작 종이 한 장 서명을 받기 위해 견뎌야만 하는 잔소리 치고는 과했으나,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부조리라 이름 붙이기도 나약했다. 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생은 훈 다음 출석번호 학생을 불러달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인다. 느그 친구 아이가. 니가 강동주이한테 말 쫌 해라. 선생 말 무시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는기라.
*
한 달 간 코트 대신 연습장과 문제지를 죽어라 달린 덕에 훈은 드디어 그 잘난 전문가의 '마스터 플랜'대로 사직동 제일의 입시학원이라는 곳의 의약대 입시특수반 막차를 탈 수 있었다. 흰 색 페인트를 몇 번이고 덧바른 미닫이 문을 열자 고등학교부터, 어쩌면 중학교부터 책상을 떠나지 않은 남자애들과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애 몇명이 일제히 드르륵 거리는 소음이 거슬린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참고서와 문제집 속으로 고개를 묻었다. 오랜 시간 책상에만 앉아있던 소년들은 외소하고, 잔뜩 날이 섰으며 또 신경질적이다.
"자, 수업시작한다."
교단 앞으로 중년의 강사가 들어오더니 여전히 서 있는 뒤편의 훈에게 말 없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앉으라는 지시였다. 그제서야 훈은 거북처럼 고개를 뺀 아이들 사이에 곧은 자세로 우두커니 선 자신이 사뭇 이질적인 존재임을 깨닫는다. 무한한 경쟁만 가득한 이곳은 새로 온 학생을 의례적이나마 환영하는 교실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부딪힌 후 뜨거운 눈물로 서로의 승리와 패배를 인정하는 코트도 아니었다. 조각배처럼 부유하던 훈은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갑갑한 공기가 저수지처럼 고인 교실에 남은 것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철저한 집념과 냉혹한 경쟁, 그리고 끝없는 압박 뿐이었다.
입시학원의 첫날은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야 끝났다. 무거운 문제집과 정석, 사전 따위를 가방에 쓸어넣는 사이 경쟁자들은 빠른 솜씨로 가방을 정리하더니 모든 것이 어색한 훈을 남겨두고 하나 둘 교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 해도 좀처럼 혼자 남는 것엔 익숙해지질 못할 것만 같았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고, 거칠고 또 어리석은 한 무리의 소년들이 빠져나간 옆구리는 여름 내내 허전했다.
"야."
"..."
"저 새끼 사람 말 씹는게 억수 자연스럽네. 야. 안 들리나."
날카로운 적개심이 순간 훈의 고요를 깨부순다. 교실 맨 뒷쪽 훈의 자리를 삼삼오오 싸고 도는 몇 무리의 소년들의 적의가 깜빡이는 형광등의 창백한 푸른 빛아래 스산히 빛났다.
"내 부른 기가?"
"그럼 여기 부를 사람이 니 말고 또 있노?"
"뭐고."
"맘에 안 드는 새끼는 패 가며 운동하다가 공부하려니 어렵제?"
"애 쓴다. 애 써"
"...실 없는 소리 하려고 사람 불러 세웠나. 적당히 하고,"
훈은 알지 못했으나 녀석들은 훈을 아는 듯 했다. 갑자기 저 교복들을 어디서 봤었나, 곤색 또는 쥐색, 더러는 체크 무늬도 섞인 칙칙한 색깔의 마이 자켓들이 훈의 머릿속에 복잡하게 섞이는 사이 훈의 앞으로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녀석이 쑥 고개를 들이민다. 역시 낯선 얼굴일 뿐이었다.
"왜, 운동하던 새끼가 뭔 바람이 불어서 공부는 한다고 지랄인데.
"무슨,"
"니 유명했다 아이가. 왜, 농구하다가 잘하는 아들 쪼인트 까는거로는 우승은 못했는갑지."
등 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척척한 땀방울의 감각조차 낯선 가운데 만개한 적의가 망울진 봉오리 터지듯 피어난다.
"니 그 풍전 에이스킬러 아이가. "
그 씨앗을 뿌린 건 제 원죄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