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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0:19

- 노잼& ㅅㅅㅊ 주의
- 커플링이나 탑텀구분을 의도하고 있진 않고 나붕이 남훈동준파서 ㅌㅈ적 해석이 기초적으로 깔려 있을 수 있음
- 펄럭패치 주의, 작중 배경 푸산(오사카 아님), 어색한 남동방언 주의
- 90년대 초반의 펄럭의 문화 및 시대상을 기초로 쪽본의 시대상이 일부 섞여있음
- 타싸에 올린 적 있음

※ 학교폭력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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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야구를 보려는 어머니의 리모콘을 훔쳐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다는 미국의 리그 경기를 훔쳐보기도 했고, 용돈을 쪼개 산 농구잡지를 주말 해가 다 지도록  남훈의 방에서 하루종일 읽기도 했다. 노 선생님이 이끄는 빠르고 거친 풍전의 농구 역시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목표로 했던 그 풍전고등학교에 마침내 입학했을때는 기뻐서 하늘을 난다는 표현을 처음으로 절실히 느꼈다.
 

"네가 농구로 하고 싶은게 뭐냐?"
 

그런데  농구를 하고싶냐고 묻는 게 아니라 농구로 무엇을 이루고 싶냐는 질문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 
 

 

*


 

"그기 뭔,"

"솔직히 말해 봐, 선수가 되고 싶은 게냐?"
 

여름방학이 끝날 때 까지 동준이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김영중이었다. 동준과 영중이 만난 날. 단정한 서울말씨를 쓰는 젊은 체육감독 김영중은 학교의 모든 짐을 정리하고 경질로 인한 소정의 위로금과 함께 풍전고등학교를 떠날 예정이었다. 길지 않았던 풍전에서의 지도자 생활이 영중에게 어떤 소회를 남겼을 지는 영중만이 알 것이나, 답답함에 무작정 뛰쳐나와 갈 데를 잃은 동준의 방황이 영중의 모든 계획을 어그러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NBA에 가고 싶었다."

"예?"

"뭘 그렇게 놀라? 국민학교 시절에나 생각하던 거야. 대통령 되겠다는 놈도 있고 우주비행사 되겠다는 놈도 있는데 NBA 선수 정도는 애교지."
 

 그 날, 영중은 동준에게 농구공을 던지며 말했다. 공격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수비와 리바운드만으로 1:1을 겨뤄보자고. 동준보다 왜소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신장 만으로도 10cm는 더 작은 영중의 말에 동준은 사실 코웃음을 쳤다. 남훈과 질리도록 하던게 1:1이었고 아무리 1회전에서 북산이라는 무명 학교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하더라도 지역대회에 득점왕 차석까지 했던 몸이었다. 그런데 농구선수는 커녕 왠 폴로셔츠를 입은 아저씨 따위가 자신과 1:1을 하겠단다. 이런 아저씨 따위에 당할 쏘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기 싫다고 하면 거짓말 아입니까."
 

충격적이게도 영중이 공격하고 동준이 방어한 그날의 1:1의 결과는 아슬아슬한 동준의 패배였다. 한 시간 가까이 끈질기게 영중을 공격하던 동준은 거친 숨을 쉬며 처음 그랬던 것처럼 코트 바닥 위로 발라당 드러눕고 만다. 영중 역시 시뻘건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오랜만에 흘린 땀으로 푹 젖은 얼굴은 제법 후련해보였다. 내일이 되면 축축하게 젖은 흰색 폴로셔츠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을 할 것이었지만 영중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가볍게 땀을 훔치더니 드러누운 동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준은 호흡을 회복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 손을 맞잡진 않았다.
 

"그래, 그럼 냉정하게 말하면 네 실력으로 국외는 무리다. NBA는 고사하고 CBA도 어려운 게 현실일거야."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레 무시하던 영중에 무참히 패배한 경험은 식사 자리건 훈련중이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문득문득 되살아나 동준을 괴롭혔다. 덕분에 죄 없는 홑이불만 뻥뻥 찼는데, 남훈과 질리도록 하던게 1:1임에도 그물 걸린 고기마냥 영중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간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산왕공고의 정우성 선수가 다음학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던데, 물론 산왕에게도 이번 대회 결과가 충격적이긴 하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산왕 중에서도 역대 최고라고 불리는 정우성 선수 정도는 되어야 해외 리그에 도전이라도 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

"국내에서 받을  검증은 이미 다 끝났다고 봐야겠지. 풍전의 선수는, 글쎄... 잘 모르겠구나. 1학년 유망주도 아니고 전국체전 조차 끝난 지금 시점에서 자신을 어필할 기회는 없다고 보는게 맞겠지. 그러면 남은 길은..., 국내를 노려야 할 게다."

"뭔 말을 하나 했다... 내도 잘 압니다."

"현실적으로 대학농구리그부터 생각해야겠지. 그러려면 지금까지 했던 농구로는 안 된다."

"예?"

"진정하고 들어라. 네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니. 득점력?"

"...못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 아쉽지만 그건 당장 남훈과 비교해봐도 그렇게 두드러지진 않는다."

"그건, 금마가 주장이니까."

"득점 순위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그럼 지역 리그 마지막 경기 애기를 해보자. 기억나겠지. 너희끼리 복기한다고 하더니, 어떻더냐."

"제가 말씀드려도 됩니꺼."
 

어쨌든 그 날 영중은 동준 때문에 서울행을 단념했고, 남훈이 떠난 동준의 옆자리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오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영중과 한 1:1 경기가 갑자기 1:1 지도가 되어버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지만 하여간 영중과 자신이 태생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건 이미 이 년 간 질리게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붙잡아 온 게 대룡이 녀석이었다. 어차피 주장 역할을 해야 하니 예행연습을 하라는 핑계였는데, 이제 겨우 쉬나 싶다가 억울하게 끌려온 황소개구리같은 눈망울을 동준은 가볍게 무시했다. 1:1 방학특강이 어느 새 1:2 수업이 되어버린다.
 

동준이 몰랐던 것은 영중이 생각보다 냉정한 면이 있다는 것과, 꽤 분석적이며 또 직설적이었다는 점이다. 지도자로서 안목을 인정하기에는 잔재만 남은 반항심이 끝까지 방 빼기를 거부하는 세입자처럼 동준의 안에서 엉덩이를 비벼 눌러앉고 있었다. 다만 우승의 압박도 지도의 의욕도 빠진 영중은 마치 그동안 쌓아온 한을 풀기라도 하는듯이 여름방학 내내 동준과 대룡을 평가하고 분석했으며, 동준의 소소한 반항따위는 다스릴 기운도 없다는 듯한 태도로 쉽게 무시했다. 그래서 이 기묘하고 불편한 동거는 여름의 끝을 넘어 가을의 초입까지 끈질기게 이어질 수 있었다.
 

"네 가장 큰 장점은 피지컬이다. 프로 레벨에서 보면 키가 큰 편이라고 할 수는 없어. 다만 지구력도 좋고 스피드는 우수한데 파워에서 밀리지도 않아. 밸런스가 좋은 건 우수한 재능이다. 우리 팀에서 대영 고등학교 이현수 선수와 육탄전에서 밀리지 않는 건 너와 성호 정도 뿐이겠지."

"햄 몸빵 잘 된다는 말 아입니까."

"이거는 말을 해도 꼭."

"스포츠에서 몸싸움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야. 농구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체능력이 좋다고 다 선수가 될 수 있다면 리그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커야 할 거다.  동준과 대룡에게 대학리그의 팀과 선수 목록을 보여주던 영중은 어떤 일이든 취미를 넘어 업이 되는 순간 변명 따위는 통하지도 않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가 열린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네가 재능있는게 단순히 몸 쓰는 것 뿐인지, 아니면 정말로 농구에 재능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거다."
 

 어쩌면 영중이 홀가분하게 동준과 대룡을 지도하던 것은 더이상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남은 계약기간은 고작 반 년. 더 이상 학교도 학생들도 기대하지 않은 명목만 남은 농구부 감독. 대룡은 동준에게 몰래 2학기가 되면 영중의 후임선생이 올 예정이라고 말을 흘렸다. 
 

패퇴한 주제에 무리하게 농구를 계속하겠다는 3학년 부주장과 능력부족으로 경질되는 감독. 멀리서 보면 무능한데 고집센 바보인 점이 똑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

 

"훈이 햄은 요즘 잘 안보이시네요."

"그 새끼 일 나한테 묻지 마라."
 

어영부영 지나가버린 개학날. 소문의 새 감독은 아직 털끝도 안뵈이고 영중까지 잠시 서울 본가에 다녀온다고 했건만 갈 곳 없는 동준은 마치  종 소리 만으로 침 질질 흘렸다는 개새끼마냥 체육관으로 향한다. 가는길 옆에 남훈 대신 나대룡이 달라 붙는건 적응할래야 적응 할 수가 없었는데, 고작해야 한 달 같이 있었다고 까부는 폼이 제법 편해진 모양이었다. 


"야, 꼴통. 오랜만."
 

가볍게 머리 한대 쥐어박고 체육관 문을 여니 한쪽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인사를 건넨다. 대회 준비로 한 달, 영중과 함께 한 훈련이 한 달. 전국체전에서 돌아온 뒤로 고작해야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 평일은 제법 살을 태워왔고 성호는 그대로였다. 시커먼 얼굴에 어디 해외라도 다녀왔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학력고사로 대가리 깨지기 전에 기념여행으로 여친이랑 강원도 갔다왔단다. 날라리인 줄은 알았는데 완전 양아치 다 돼뿟네. 얼빠진 대답이 제법 멍청했다.
 

말은 거칠었지만 간만에 보는 편한 얼굴들에 동준의 표정이 좋은 것은 한 눈에 뵈도 알 수 있었다. 감독도 선수도 없는 빈 코트 위로 의무로부터 해방된 옛 친구들이 모인다. 동준이 가볍게 공을 튀기며 대룡과 몇 가지 기본기를 연습하자 성호와 평일이 자연스레 코트 위에 자세를 잡더니 어느덧 자연스레 동준은 평일과, 대룡은 성호와 팀이 짜였다. 한 자리가 비어도 시간은 자연스레 성호가 센터고, 평일이 슈팅가드이며 대룡이 포인트 가드이던 두 달여 전으로 돌아간다. 코트 바닥을 긁는 운동화 밑창 소리가 오늘따라 경쾌했다.
 

"나대룡이. 강동준이 니 말 잘 듣나."

"실 없는 소리 할거면 꺼져라 좀."

"왜. 점마 이제 주장인데. 니가 기어야지."
 

그래도 2:2 경기의 승리를 차지한 것은 동준 팀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소한 승리감에 도취된 동준이 앞장 서 분식집으로 향하자 성호와 평일이 뒤를 따른다. 성호가 대룡에게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건네자 쑥쓰럽다는 웃음소리가 낯간지러웠지만 그도 잠깐이었다. 니 계속한다매. 평일이 자연스럽게 동준의 옆으로 오면서 말을 건네자 동준이 대답을 흐렸다. 
 

"그래, 니는 계속하는게 좋다. 니랑 훈이는."

"그기 뭔 소리고."

"느그는 내랑 자가 왜 니네가 하자는대로 다 따라했는지는 모르제?"
 

공부는 안 하나. 겨울체전이라는게 그게 가능 한기가. 그거 우승하면 대학은 갈 수 있나. 우려의 말은 이미 차고 넘칠만큼 들었기에 평일과 성호로 부터는 타박을 피하고 싶어 말꼬리를 먹었을지도 몰랐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 이었다. 동준이 평일 쪽을 돌아보았으나 평일은 동준 쪽으로는 눈길을 주지 않은채 말을 잇는다. 동준은 처음보는, 낯선 얼굴이다.
 

"솔직히 내 그렇게 잘난 선수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재능이 있고 자시고, 산왕 6번이나 8번은 고사하고 북산? 그 쪽 슈팅가드랑 비교 했을때도 계속 느꼈다. 내 그렇게 잘난 선수 아니라는 거. 잘난 건 고사하고 내가 느그 발목잡는거 아닌가 좀 쫄린 적도 없진 않았다아이가. 내 뿐만 아니다. 성호 점마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게 아니라카데. 신현철은 뭐 말할 필요도 없고. 북산 센터한테도 밀리고 키는 이현수만한데 이현수 반의 반도 못한다고. 그게 참, 내랑은 안 맞는 길인거 아는데도 사람 맘이란게 희한터라.
 

"그런데 느그는 달랐다 아이가. 선수 해야 하는건 느그 정도는 해야 선수 꿈이라도 꿔보는거 아인가 싶데. 딴 놈은 모르겠고 내 눈엔 느그가 그래 대단하게 보였다."
 

어린애가 제멋대로 직직 그어놓은 선보다 마구잡이로 웃기게 빠진게 부산 시내 도로였다. 성인군자를 갖다놔도 부산에서 한 달만 운전 시키면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 할아버지가 와도 입에 쌍욕을 달 거라던 최 여사 말씀 만큼이나 골목길 사이사이 마저도 빵빵대는 경적소리가 가득했는데, 평일의 담담한 말은 꼭 턱 밑에 마이크를 바짝 가져다 댄 듯 온 소란을 뚫고 선명하게도 들렸다. 마른침을 삼키는 고요한 소리마저 지금은 들킬 것만 같았다.
 

"난 잘 모르겠어, 노 감독님이 안좋게 물러나신 건 알았지만서도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애닳지 않았거든. 좋은 분이지만 그게 끝 이었제. 그런데 느그 둘이 그렇게 분통에 차니까 나도 모르게 따르게 되더라."

"...."

"니들 둘이랑 노 감독님이랑은 특별하니까... 어쨌든, 니네가 말하니까 맞는 말 같았다. 그 새 감독한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짝이 먼저 말을 기분나쁘게 했다 아이가. 다 끝나고 나니 그래도 그렇게 무시한게 미안하기도 했지만서도,"

"...."

 "또 막말로 니네가 하는 농구가 더 재밌긴 했다. 느그랑 있으면 그냥 그런 내도 제법 점수도 내고, 괜찮은 선수가 된 것 같더라. 그래서 진짜 재밌었다. 후회도 없고. " 
 

말을 마친 평일이 그제야 동준을 바라보았다. 평일의 느릿한 보폭에 맞추다 보니 성호와 대룡이 저들을 앞선 것도 몰랐다. 골목은 끝난 지 오래였고, 형광등을 잔뜩 박아넣은 간판 위로 날벌레 몇 마리가 부딪히며 일순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문뜩 동준은 대룡에게 먼저 들어가라며 손짓하는 평일을 바라보다, 그가 언제 이렇게 커 보였는지를 생각한다. 내보다 반 뼘은 작은데. 실실거리며 놀기 좋은 가벼운 친구로만 여겼던 평일이 유난히 달리보이는 것만 같았다. 물론 평일은 동준의 속을 알 길이 없다.
 

"한다면 네가 계속 하는게 맞다고 난 생각한다. 뭐, 남훈이 금마는 지 사정이 있겠지."

"맞나."

 "계속 하고 싶으면 밀고 나가라. 어차피 남의 말 안듣는다 아이가."

"새끼 입만 살아서... 닌 뭐 생각있나."

"나야 학력고사 봐야지. 농담 아니라 대학 못 가게 생겼는데."
 

대학 가 술도 눈치 안 보고 마시고 연애도 계속 하고 장밋빛 미래가 창창하다 아이가? 니 꼬추새끼들이랑 홀아비 내 나는 운동 열심히 하는 동안 형님은 인생을 즐길 테니까. 어느덧 동준이 아는 얼굴로 돌아온 평일이 다시 개구지게 웃더니 동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폼 잡기에는 개폼도 못되는 자식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돌아오는 엄살맞은 소리가 새삼 유달리 반가웠다. 

 

 

*

 

 

훈에게는 낯선 경험이 계속된다.
 

누구처럼 늘 무리의 중심에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낯간지러웠으나, 무리에서 밀려나 본 경험이 있냐고 묻거든 아니라 답할 것이다. 괄괄한 소꿉친구의 영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훈 역시 거친 체육계 녀석들의 재갈을 잡고 휘두른 자였다. 무리의 기준에 맞지 않는 어른을 직접 내몰기도 하였다. 그러니 훈 자신이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을 한시라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뒤늦게 들어온 자신에 대한 시기나 견제에서 시작된 부정적 감정의 편린에 불과할 뿐이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입시반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던 수십개의 눈동자의 감각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기 때문에 납득할 수도 있었다. 새롭게 늘어 난 경쟁자를 훝어보며 하나하나 뜯어 평가하는 시선.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고 오직 목표 하나만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모는 것은 자신이 제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환경을 둘러 싼 훈의 동료들에게는 일상이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은은한 질투와 배제가 명시적인 괴롭힘으로 굴러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날 훈을 둘러 싼 소년 중 주동자로 보이던 녀석. 맹세컨데 훈은 그를 알지 못했다. 교복 역시 낯설었다. 자켓 위 학교 뱃지를 보고 이름을 기억해 대룡에게 물어보니 지역예선 2차전에서 손쉽게 이겼던 학교의 이름을 간신히 말했다. 떳떳이 말하기에는 부끄러움과 수치뿐이었으나, 훈 스스로 상대 팀의 에이스를 평가할 만큼의 전력조차 되지 못한 학교. 기억에 없는 것도 당연했다. 
 

훈은 소년들의 분노를, 유치한 악의와 저열한 가학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강사의 사정으로 갑자기 수업교실이 변경되었음에도 훈을 쏙 빼놓고 알려줬을 때도, 늦은 밤  귀가 봉고차 좌석 위 쌓인 가방을 치워달라는 말을 못 들은 것 처럼 무시할때도 그저 스트레스를 좆 같이도 푼다고 생각하며 무시로 일관했다. 자신이 뒤늦게 편입된 학생 치고도 눈에 띄게 겉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다시는 이루지 못할 꿈이 여름과 함께 사라진 자리에 남은 무거운 의무는 관계의 압박같은 사소한 것에 나눌 신경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시한폭탄의 초침이 빠르게 사라지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일상이 된다. 
 

또 하나 훈이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그 태도가 주동자들의 심기를 더욱 거슬렀다는 것이다. 감히, 날라리 같은똥통 고등학교 따위에서 편하게 놀다 온 양아치가 자신들과 나란히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잔불의 연기처럼 고요히 피어오른다. 국민학교부터 명문고와 명문대만을 목표로 치열하게 노력해 온 나의, 우리의 노력을 폄하한다. 내 정당한 능력을 빛 바래게 한다.... 훈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그릇된 적개심은 어느덧 들을 가로지르는 산불처럼 겉잡을 수 없이 어느 입시학원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늘 그렇듯, 광기에는 이유가 없고 감정에는 논거가 없었다.
 

조용한 따돌림이 적극적인 괴롭힘으로 발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풍전과 경기를 했던 학교 뿐 아니라 농구팀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까지 가담하자 은은한 멸시는 어느덧 실수를 가장한 신체 접촉으로 발전했다. 무심한 팔꿈치에 의한 타박이 이어지더니 적극적인 폭력이 저열한 본성 밑바닥에서 기어나와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손 쉽게 먹이로 전락한 훈은 눈을 가린 짐승처럼 제 앞에 일어날 일을 몰랐다. 
 

복도에서 단어를 외우며 지나가던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 발길질을 한 어느 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복도 한 가운데 꼴 사납게 넘어지며 얼굴조차 낯선 소년들의 낄낄대는 비웃음을 마주하고나서야 훈은 자신이 새로운 괴롭힘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에이스 킬러! 등 뒤에서 너무나 익숙한, 지워낼래야 지워낼 수 없는 주홍빛의 악명이 조소에 섞여 아득히 들려왔다.





너네 풍전 평일이 좋아하니... 나붕 사실 평일이 되게 좋아함

슬램덩크 슬덩 남훈동준남훈 풍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