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 일본연예
https://hygall.com/591305463
view 18247
2024.04.18 06:22
bgsd 어나더
노부는 가끔 마치다의 눈빛이 서늘해지는 걸 느낄 때가 있었다. 마치다는 프로이기 때문인지 언제나 노부를 웃으며 대했지만 가끔 과장의 지시를 전달할 때 과장의 이름을 꺼내면 마치다의 눈빛에 진한 혐오가 스쳐가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노부는 위축됐다. 첫 작전이었던 파티에서 제 몫을 못했기도 했고 이 사람이 노부와 노부의 조직을 경멸한다고 생각하니 뭘 하든 조심스러웠다. 눈치 빠른 마치다는 노부가 위축돼 있다는 걸 알아챈 것 같지만 노부가 움찔거릴 때마다 더 사르륵 웃으며 사근사근 대하기만 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는 동안 파티에서 만났던 재벌가의 3남과 잡지사 에디터, 패션 브랜드의 CEO들이 차례로 클럽에 초대받아 왔다. 공무원인 부시장과 경찰국장은 클럽으로 불렀을 때 양쪽 모두에 부담이 컸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잡지사의 에디터와 패션 브랜드의 CEO는 확실히 사이비종교에 깊이 발을 들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행동거지 자체는 비교적 젠틀했다. 서버들한테는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정말 던전의 회원권을 손에 넣고 싶은지 마치다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샴페인을 좋아한다는 CEO는 던전에서 제일 비싼 샴페인을 몇 병 시켜서 노부와 마치다, 그날 클럽에서 공연하던 가수와 밴드에게까지 샴페인을 돌리기도 했다. 에디터는 그렇게 돈자랑을 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클럽에 올 때 결혼예정이라는 애인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직원들을 괴롭히지 않고 애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몇몇 손님들을 소개받아서 대화나 나누다 돌아갔다.
문제는 재벌가의 3남이었다. 초대한 명목은 회원 자격 심사를 위한 자리였으나 심사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그도 물론 이 자리가 심사를 위한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행동을 조심할 법도 한데 한평생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하고 살아온 재벌가의 망나니는 클럽을 뒤집어놓았다. 아주 엉망진창으로. 클럽 던전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었는데 서버가 술이나 안주를 가지고 올 때마다 엉덩이를 만지거나 허리를 끌어안았고 망나니를 상대해 주고 있던 마치다에게도 희롱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다는 애초에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지만 술이 아주 강한 편이라 잘 취하지 않았다. 접대를 위해 가끔 손님과 술을 마시긴 했지만 한두 잔 주고받는 정도였는데 이 망나니는 막무가내로 마치다에게 술을 먹여댔다. 그 탓에 마치다는 그 망나니가 클럽에 초대받아 왔다 간 날이면 늘 지쳐서 꼼짝도 못했기에 노부가 거의 업다시피해서 데려다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다는 종종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자기는 너무 좋은 사람이야.
자기가 선배들처럼 글러먹은 놈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나한테 잘해주지 마.
어차피 스쳐지나가야 되는 인연이야. 아무것도 남기고 가지 마.
마치다가 씻지도 못하고 침대로 쓰러졌을 때 클럽에서 망나니를 상대하느라고 꽁꽁 싸매고 있던 마치다의 타이를 풀어줄 때도 그랬고
따뜻한 물을 조금 섞어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시고 자라고 물을 가져다줄 때도 그랬고
마치다가 맛있다고 했던 케이터링 업체에 문의해 마치다가 좋아했던 치즈케이크를 구해서 사다 줬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날은 마치다가 정말로 많이 취해서 노부가 마치다의 집 침대까지 옮겨다줬을 때였다. 침대 위에 눕혀놓고 물을 가지고 오자 마치다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자그마한 하얀색 개 인형을 끌어안고 누워 있었다.
"물 드십시오."
잠든 건지 대답이 없어서 물잔을 내려놓고 마치다가 넥타이 대신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주고 있을 때였다. 마치다가 개 인형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눈도 안 뜨고 노부의 손을 밀어내더니 스스로 스카프를 풀어서 침대 옆 서랍장 위로 휙 던졌다.
"나한테 잘해주지 마."
"... 네?"
"나한테 잘해줄 필요 없어."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뭘했다고 자꾸 밀어내기만 하는지 속상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집스럽게 눈을 감고 있는 마치다를 내려다보고 있자 마치다는 여전히 개 인형을 끌어아은 채로 돌아누워서 드디어 눈을 뜨고 노부를 올려다봤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주는 것보다 더 나쁜 게 뭐지 알아?"
줬다 뺐는 거... 겠지.
그러나 노부가 아무런 대답없이 그냥 내려다보고 있자 마치다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귀여운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말투로 작게 중얼거렸다.
"줬다 뺐는 거야."
"드린 것도 없는데 어떻게 뺏습니까."
"그래서 뺏는다고?"
아니, 애초에 준 게 없는데 뺏기는 뭘 뺏어. 주는 것도 없이 노하우만 쏙쏙 빼먹으며 마치다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어서 면목이 없기만 한데. 마치다가 애교가 많긴 하지만 속엣말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술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속이 상해서 그런지 술이 올라와서 그런지 촉촉해지고 빨개진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마치다를 내려다보던 노부는 한숨을 삼키며 마치다와 마치다의 품 안에서 찌그러지고 있는 강아지 인형 위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스즈키 노부유키예요."
"...뭐?"
"내 진짜 이름, 스즈키 노부유키라고요."
눈을 깜빡깜빡거리고 있던 마치다는 곧 눈알이 떨어져 버리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눈을 크게 뜨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미쳤어????"
노부의 조직은 국가기관이지만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 있는 극비기관이고, 심지어 요원들의 신원조차 전부 감춰져 있었다. 요원을 스카웃한 인사팀의 담당자와 기관장 외에는 아무도 요원들 개개인의 신원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노부의 직속상사인 과장이나 부장 등도 노부가 군이나 검경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수집이나 범죄수사에 대한 심층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만 알 뿐 노부의 본명과 신원정보에 대해선 알 수 없었고, 누구라도 다른 요원의 신원정보를 알 수 없었다. 같은 조직원이라도 다른 요원의 신원정보를 조회하는 것만으로도 중징계감이었기 때문에 마치다에게도 아리시마 코키라는 가명만 알려줬는데.
"내 이름을 알려준 건 다시 뺏고 싶어도 뺏을 수도 없잖아요. 줬다 뺏을 수 없죠. 이미 알고 있는 걸 모르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으니까."
"... 아니 대체 어쩌려고 나한테 본명을 알려 줘? 나한테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라고 안 들었어?"
정말로 과장은 마치다에게 본명을 비롯해서 개인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 요원들은 정보 누설 등의 행위를 할 때 중징계가 내려지지만 민간인인 마치다에게는 징계를 내릴 수도 없으니 아무 정보도 주지 말라고. 민간인을 위험한 작전에 시도때도없이 이용하고 있는 주제에 뻔뻔하게. 노부가 망나니가 계속 마치다를 괴롭히는 걸 속상해하자 마치다는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했다. 너도 나중에 다 하게 되겠지만 정말 쇠파이프 휘두르고 각목 휘두르는 놈들도 있는데 뭐. 라고 하기도 했고. 정말로 마치다는 이용당하고 있기만 한 모양이라 안 그래도 속이 쓰렸던 노부는 눈치도 없는 척 뻔뻔하게 대답했다.
"뭘 어쩝니까. 이름을 알려줬으면 부르면 되지. 대신 다른 사람들은 없는 데서."
"... 네가 이름 가르쳐줬다고 내가 이르면 어떡하려고?"
노부가 본명을 마치다에게 알려줬다는 게 과장에게 보고되면 중징계를 받거나 파면당하게 될 것이었다.그렇지만 마치다와 과장이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노부를 버리고 과장을 선택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과장과의 인연이 대체 몇 년째 이어져 온 관계인지는 몰라도 고작 몇 달밖에 안 된 노부와의 관계를 선택해 주기를 그저 바라면서. 노부는 마치다를 다시 눕히고 찌그러졌던 강아지 인형도 톡톡 털어서 다시 마치다의 품 안에 안겨준 후에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이를 겁니까?"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이나 노부를 빤히 올려다보던 마치다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
"씻고 옷 갈아입고 잘래."
노부의 평탄한 직장 생활이 걸린 상황인데 마치다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내 계산된 듯한 완벽한 표정만 빈틈없이 보여주던 마치다의 입꼬리가 움찔움찔거리고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리는 게 예뻐서 은퇴 후 부모님 일만 돕다가 우연한 사고로 잡게 된 직장을 스스로 위태롭게 만든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욕실에 물 받아드릴까요?"
"아니. 샤워만 할 거야, 괜찮아."
짧은 대답이었지만 노래하는 것처럼 한껏 들뜬 목소리라 마치다를 돌아보자 마치다는 콧노래를 부르며 강아지 인형에 이불을 덮어주고 가슴을 톡톡 두드려줬다.
"먼저 자고 있어."
그리고는 계속 콧노래를 부르며 휙휙 재킷을 벗어서 걸어둔 마치다는 사뿐사뿐 몹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욕실로 향하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쉬어, 조심해서 가. 스즈키."
기왕이면 노부유키가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자꾸 올라가는 입술을 끌어내리기가 힘들었다.
놉맟
https://hygall.com/591305463
[Code: 0e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