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벙어리인 건 맞아. 다른 건 다 괜찮아. 정신이 이상하다거나
금발의 기사님은 자신을 잭 로우든이라고 소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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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해드리고는 하는데 한 번도 허니 앞으로 온 적은 없었거든.

 

“허니 아가씨 앞으로 편지가 왔어요!”

 

그렇다 보니 목소리를 다 높일 정도로 놀랄 수 밖에 없지. 아마 야단법석을 피운 일로 집사님께 또 혼이 날 거야. 어쨌든 도라는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떴고, 자기도 모르게 백작 가족이 모여있는 다과실 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버렸지 뭐야.
 

 

편지가 반가운 건 도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백작부인께서 매우 들뜨셨지. 백작은 조금 경계심을 갖고 도라에게 편지를 건네받았음.

 

“잭 로우든.”

 

“세상에, 로우든 가의 장남 말이죠? 유학에서 돌아왔다는. 그렇지, 허니? 그 때 만났던 신사분이 맞지?”

 

허니는 조금 붉어진 뺨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흠..”

 

반면에 아버지는, 그러니까 백작은 아직 좋아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시나봐. 사랑하는 딸이긴 해도 사내놈들이 말을 잃은 여자에게 선뜻 호감만을 가지고 접근하다고는 생각지 않으셨어. 못 믿을 놈 천지지 뭐.

 

{ 저 주세요. 제 편지잖아요. }

 

백작은 허니 대신 편지를 열어보려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편지를 다시 허니에게 건네주었어.

 

“뭐라고 써있니?”

 

허니는 편지 안에 비밀스런 이야기라도 있는 것처럼 부모님을 등지고 서서 편지를 읽어보았어. 첫 줄에는 예의를 갖춘 짤막한 인사말이 써있었어. 허니는 편지를 몇 줄 더 읽어내려갔어.

 

그 때 보여주셨던 그림이 아직까지도 깊은 인상을 주네요.

괜찮으시면 허니 양께 그림을 더 부탁 드려도 될까요.

제가 곤란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건 절대 아니니 편하게 생각해보시고 결정해주세요.

다만 책을 집필하는 기간을 너무 오래 미룰 수는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열흘까지는   …

 

그 날 두 사람은 허니의 수첩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었거든. 그 때도 감탄을 듣긴 했는데 인사치레인 줄 알았더니 정말 맘에 들었나봐.

 

“허니?”

 

어머니는 한껏 설레어 하시며 허니에게 편지 내용을 물으셨어.

 

“여보, 재촉하지 말아요.”

 

아버지는 혹시라도 모욕적인 내용이 적혀있을까 아직도 염려하고 계셨고.

 

{ 제 그림이 필요하시대요! }

 

“그림이?”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누구든 허니의 그림을 보면 칭찬하곤 했잖아요.”

 

아직 캔버스에 크게 칠을 해본 적은 없지만 허니의 침실 서랍에도 그리고 지금 드레스 주머니에도 허니가 끄적인 그림이 담긴 수첩이나 종이뭉치들이 있었어. 하나같이 검은 잉크와 만년필로 그린 것들이었는데 아직 채색해 볼 생각은 하지 못 했어.

 

“네 그림이 왜 필요하다고 하든?”

 

{ 공부하신 것들에 대해 책을 내고 싶으시대요. }

 

“음..그거라면 나쁘지 않구나.”

 

아버지는 그제서야 조금 안심하신 듯 했어. 딸이라서가 아니라 허니는 충분히 실력이 있었거든. 본인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게 탓이지만.

 

“어떡할거니?”

 

어머니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앞섰는지 허니가 당장에 결정을 내리길 바라셨어. 어쩌면 내심 아버지보다도 걱정이 크실 수도 있지만, 딸이 사촌에게 재산을 뺏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 소식이 얼마나 좋으셨겠어.

 

“천천히 생각해보게 둬요.”

 

“더 생각해 볼 게 있나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 생각 좀 해볼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

 

“편지 읽고 화색이 돌길래 선뜻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뭐가 그렇게 망설여져서 그러니?”

 

{ 제 그림이 필요하시다는 건 정말 반가운 말이었지만.. 제 실력이 책에 실릴 만큼 대단한지는 모르겠어요. }

 

그 때 도라가 다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거야. 뭐가 또 그리 급했는지. 아차 싶어 다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백작께 또 다른 편지를 건네드렸어.

 

“아가씨 앞으로 온 편지에요, 백작님!”

 

“또?”

 

“어머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허니, 너 정말 그 때 그 신사분 한 분하고만 이야기를 나눈 게 맞니?”

 

아버지는 이번에도 허니보다 먼저 편지의 발신자를 확인해보셨어.

 

“…이건 갖다버리거라.”

 

“네..?”

 

허니는 수첩에 뭐라 적을 새도 없이 한 발로 바닥을 마구 구르면서 아버지에게 항의했어.

 

“혹시 그 쪽에서 묻거든 받은 게 없다고 하고. 중간에 분실 됐다고 생각하게 두거라.”

 

백작의 뜻을 따르기 위해 도라가 편지를 다시 건네받으려는데, 허니가 먼저 그 편지를 낚아채버렸어.

 

“허니!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버릇이야!”

 

어머니가 화를 내셨지만 허니는 아랑곳 하지 않았어. 이건 읽어도 되고 저건 읽으면 안 되고. 그런 건 허니가 정해야 하는 거잖아. 아버지가 이렇게 뭐든 과보호 하시는 게 정말 싫었어.

 

“그래서, 누구한테 온 거니?”

 

허니는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몸이 얼어버리고 말았어. 이 사람이 왜 내게 편지를 보내? 내가 또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맥카이 저택에서 온 거야.”

 

아버지가 조금 날 선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대신 말씀해주셨어.

 

“맥카이요..? 세상에, 어쩜 염치도 없지. 할 말이 있으면 여보 당신께 먼저 보낼 일이죠.”

 

나랑 약혼했던 문제로 어떤 곤란한 일에 빠지게 된 걸까? 허니는 벌써부터 자신을 탓했어.

 

“허니..열어보지 말 거라.”

 

아버지가 날이 섰던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걱정을 담아 허니를 달래며 말씀하셨어. 그러고보니 아무도 도라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네. 도라는 다들 편지에 집중하고 있는 이 상황을 기회 삼아 편지 내용을 들어볼 참이었어. 맥카이 가에서 왔다니. 이렇게 궁금한 일도 또 없을거야. 어쨌든 도라가 자릴 지키는 바람에 비 가문의 온 저택에도 순식간에 이야기가 돌게 생겼지.

 

편지 내용은 별로 길지 않았어. 예의를 차린 인사말은 그저 글자의 나열 뿐인에도 묘하게 로우든 가에서 온 편지와는 느낌이 달랐어. 구색을 위한 겉치레라는 게 이런 걸까. 편지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랬어. 편지를 쓴 당사자도 이 편지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그런 느낌 말이야.

 

“이 아버지도 읽어봐도 되겠니?”

 

허니는 부모님께 편지를 드리는 대신 테이블에 수첩을 대고 앉아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해드렸어.

 

{ 이전 일에 대해 제대로 사과드린 적이 없다면서 저택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

 

아버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역정을 내실 것 같았지. 큰소리를 내진 않으셨지만 충분히 화가 나 보이셨어. 화가 난 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셨고. 손으로 이마를 짚으시며 숨을 고르셨거든.

 

“좋지도 않았던 지난 일을 들추는 게 어떻게 사과가 되죠? 그렇잖아요, 여보.”

 

{ 날짜가 겹치는 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

 

“무슨 날짜?”

 

아버지가 물으셨어.

 

{ 양쪽 말이에요. }

 

한 쪽은 함께 일해볼 생각이 있다면 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도 해볼 겸 열흘 뒤에 저택에 방문해주십사 초대했고, 다른 한 쪽은 지난 일을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다면서 똑같이 열흘 뒤의 날짜로 허니를 초대했거든. 둘 다 허니에게 충분히 생각해 볼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이야.

 

“결정은 네가 하거라.”








 

로우든너붕붕
맥카이너붕붕

 

>> 조지는 답장으로 받은 편지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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