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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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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쥐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더라 보름달이 뜨면 괴상한 악을 지르면서 바닥을 기어다닌다더라 하는 소문들은 다 틀렸어. 맥카이 가문의 장남이 비 가문의 하나 있는 여식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사교계를 조용히 휩쓸면서 소문은 더 장황해지고 해괴해져 갔지만.

 

그래서 결국 그렇게 파혼을 당했지. 허니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문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과 어떻게 평생을 함께 하겠냐는 거지. 부모님들끼리는 이미 다 말이 된 거였는데 딱히 어느 집안이 크게 기울거나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장남이 싫다 하니 별 수 있나. 그저 집안 어른들끼리 서로를 너무 좋게 봤고 오랜 친구사이기도 해서 애들 날 때부터 했던 약속이었던 거지 당시 애들 의사는 묻지도 않았고.

 

어쩌면 맥카이 백작 부부는 아들의 거절에 안심했을지도 모르지. 내심 싫지 않았을까. 자기들이 어디 하나 부족한 가문이 아니고, 비 백작가는 벙어리 딸을 감안할 정도로 아주 대단한 집안이냐 하면 백작이긴 하지만 영향력은 별 것 없었거든. 하지만 맥카이 백작 가에는 장성한 장남이 있고 그 장남은 평판도 나쁘지 않고 정치판에서도 데뷔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런 부족한 며느리를 받기에는 아들이 너무 아까웠겠지.

 

하지만 비 가문은 어떨까. 단지 말을 못 한다는 이유로 무성한 소문을 달고 다녀야 했던 딸아이가 파혼까지 당했으니 어떻겠어. 소문은 더 괴상해지고 기괴해지기까지 했어. 약혼을 먼저 파한 쪽의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었어. 당연히 모든 화살은 비 가문에게 갔을 테니까. 애초에 성사 될 수 없었던 약혼이었다는 거지.

 

그럼 이제 비 가문의 딸은 어찌하나. 정말 모든 게 다 준비된 상태에서 식만 올리면 끝이었던, 정말 거의 다 왔던 그런 사이였다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누가 이 허니 비라는 불쌍한 처자를 신부 삼겠어. 파혼을 당했다면 몸이 성한 여자라도 무조건 여자에게 손가락질이 가는 시대였어. 거기다 허니는 몸이 불편하기까지 하니 이대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딸이라는 이유로 재산은 허니의 사촌에게 넘어가게 되겠지. 편지 주고받은 지도 까마득한 사람들한테 말이야. 도박으로 재산의 절반을 날렸다나. 이 소식을 들으면 아주 기뻐하겠지.

 

위기에 빠진 숙녀를 구해주는 백마 탄 기사는 없는 걸까. 허니는 울며불며 싫다고 빌었지만 비 백작부부는 딸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사교장 한가운데에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어. 맥카이 가문의 장남은 솔직히 어불성설이었지. 언감생심 어찌 그런 완벽한 가문을 바라겠어. 그저 사람 구실 하고 딱히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그런 적당한 사람이면 아무나 상관없을 판이야.

 

몇몇은 허니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몇몇은 여성을 향한 모욕적인 저의를 담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허니를 흘끗거렸어. 간혹 춤을 권하는 신사 몇이 있었지만 그들의 의도라고 좋은 건 또 아니야. 이야깃거리 삼고 싶었을 뿐이겠지. 허니 역시 거절했고.

 

“숙녀분.”

 

기어코 코끝이 시큰거리며 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을 때에 또 다른 사내가 나타나 사뭇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걸었어. 또 춤을 권하겠지. 허니는 춤이라면 아주 젬병이야. 그런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 했다는 얘기 또한 허니의 평판에 영향을 끼쳤겠지.

 

“같이 바람이라도 쐴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조용히 나타나 함께 여길 벗어나겠느냐고 묻는 거야. 나 말고 또 누가 이 답답하고도 매정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걸까? 저를 흘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 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던 허니는 그 말에 조심스레 눈을 떠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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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기사님이야. 허니는 그렇게 생각 했어.

 

사내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차분하게 허니를 기다렸어. 허니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어. 테라스문을 열고 나가려고만 하면 부모님이 붙여둔 하녀들이 허니를 슬쩍 말리곤 했으니 허니는 꼼짝없이 여기 갇혀있는 꼴이었거든.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었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흔한 누군가가 아니야.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야. 참으로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를 홀린 듯이 보면서 허니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어.

 

그제서야 조지 맥카이의 시선이 허니를 쫓았겠지. 저 둘이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왜 함께 인 건지. 비 가문의 딸, 전 약혼녀가 이곳으로 들어오고부터 내내 움츠러 들어있던 모습에 관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동정심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아주 약간의 관심도 두 사람의 약혼 이야기를 다시 수면 위에 올릴 테니 한 번이나 겨우 시선을 줬을까. 그랬었는데. 이젠 두 사람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의 눈길 또한 따라가고 있었어.


 

조지는 허니가 로우든 백작 가의 장남과 함께 사교장을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왠지 눈살이 찌푸려졌어. 타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들었는데. 최근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아. 뭐가 됐든 기분은 좋지 않았어. 조금 심기가 불편했다고 볼 수도 있을까. 저런 사람은, 그러니까 허니 같은 여자는, 곁에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런 사람이나 둬야 하는 거야. 그런데 잭 로우든이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거잖아.












 
로우든너붕붕
맥카이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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