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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21:00

전편: 태웅명헌 우성명헌 이명헌은 농구만으론 살 수 없는 사람이다




 *
 태웅은 눈을 떴다.

 방은 어둡고 미지근하고 간밤의 빗소리가 거짓인 양 조용했으며.

 "깼나용"
 명헌이 창가 옆에 서 태웅을 바라보고있었다.

 태웅은 눈을 두어번 끔뻑이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한쪽 눈을 뜨고 시계를 보았다. 11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명헌은 태웅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눈을 돌려 조금 열려있던 두꺼운 커튼을 끝까지 걷었다. 

 여름의 초록이 간밤의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시고 세수하고 나와용.
 명헌이 눈을 반쯤 뜬 태웅에게 물 한 잔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하얗고 무늬가 없는 컵이었다. 오래 쥐고 있었는지 손잡이가 제법 미지근했다. 태웅은 물을 한 입 마셨다. 그리고 미지근한 옆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배게도 자리도 이불도 깔끔했다. 아무도 없었다던 양.

 어제 밤 태웅이 막 들어왔을 때 명헌의 방은 건조하고 추웠다. 실내온도 22도에 맞춰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방 안은 포근한 오렌지빛으로 가득했으나 온도만으로는 여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명헌이 베개를 가지러 간 사이 태웅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1초. 2초. 3초.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태웅은 추운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웅은 명헌이 옆 자리로 들어왔을 때 좋았다. 명헌은 체온이 높았다. 훈련 중간이나 작전 타임때 닿았던 어깨를 떠올렸다. 가끔 잘했어용, 하며 태웅의 어깨며 팔뚝을 두드려주던 온도 높은 손을 생각했다. 태웅은 자세를 바르게 고치면서 슬쩍 몸을 붙였다. 태웅의 옆팔과 종아리 어드메에 뜨끈한 명헌의 맨 살이 닿았다. 이리저리 자세를 고치는 동안 온도가 다른 살갗이 간간이 부딪혔다.  

 명헌은 피하지 않았다. 
 명헌은 협탁에 손을 뻗어 리모콘을 잡았다. 에어컨을 껐다. 명헌이 몸을 좀 더 붙여왔다. 이불 속은 금새 따뜻해졌다. 불규칙한 천둥 소리 사이로 규칙적인 숨소리와 온기가 퍼졌다.

 눈을 떴을 때 옆에 있었음 좋겠네.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
 거실에 새로 지은 밥과 고등어 냄새가 가득했다. 명헌은 촉촉한 얼굴로 나온 태웅을 보고 턱짓으로 식탁을 가르켰다. 앉아용.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오던 참이었다.  

 현미밥, 고등어, 계란, 김치와 나물, 콩나물국. 수저까지 세팅되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용. 명헌이 자신의 유리잔에 보리차를 따랐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태웅의 잔에도 차를 따랐다. 짠 해용. 짠. 갈색 음료가 담긴 두 잔이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명헌은 보리차를 한 입 들이키고 젓가락을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태웅도 숫가락을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태웅은 식사때 말이 없는 타입이었다. 눈앞의 명헌도 마찬가지였다. 식탁 위엔 두 쌍의 젓가락이 그릇을 오가며 나는 작은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태웅은 평소 조용한 식사에 아무 유감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런데. 

 태웅은 답지 않게 조바심이 들었다. 조바심이라는 단어가 맞을까. 어째 알 수 없는 감정이 든다. 태웅은 말 없이 편하게 밥을 먹고 있는 명헌을 쳐다봤다. 태웅의 젓가락질이 실없이 느려졌다. 명헌이 무언가 말을 했음 했다. 눈도 마주쳤음 했다. 또 그냥 홱, 가버릴거같이 굴지 말고. 

 매미소리마저 없는 여름은 얄궂게도 정적을 환히 비췄다.

 그래서 태웅은 먼저 말을 꺼냈다.  

 "맛있어요."
 "입에 맞나용 다행이네용."
 "네."
 "...."
 "...."

 또다시 정적. 태웅은 괜히 콩나물국에 떠 있는 파나 뒤적거렸다. 

 "국도 맛있어요."
 "푸흡"

 아 웃었다. 태웅은 나름 자신감을 얻었다. 웃는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태웅은 명헌을 따라 콩나물국을 한 입 떠먹었다. 떠오르는대로 말을 했다. 

 "저번에 주셨던 복숭아도 맛있었어요."

 아 정말, 명헌이 밥그릇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명헌이 눈을 작게 휘며 웃고 있었다. 웃었다. 웃었다는 말이 맞을까? 어째 알 수 없는 표정까지. 태웅이 뭐라도 말하려는 찰나 명헌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용. 복숭아는 다 떨어졌고, 키위 샀는데 하나 먹을래용? 태웅은 여름 과일 좋아하나용. 요 앞 마트에서 산딸기 팔더라고용. ….



 *
 "태웅 이제 가용."

 계속 잠옷 입고 있을 순 없잖아용. 명헌이 개수대에 마지막 그릇을 넣고 돌아서며 말했다. 태웅은 보리차가 한 입 남은 컵을 만지작거렸다. 가지 않을 이유는 물론 없었다. 없었지만.

 태웅은 거실 통창을 바라보았다. 침실도 그러더니 거실에서도 반짝이는 여름의 나무들이 보였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눈 앞의 사람과 같이. 

 "선배."

 명헌이 태웅을 본다. 태웅은 괜히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머리속이 하얬다.
 같이 할 수 있는거. 같이 하고 싶은 거. 머리속에 하나만이 자꾸 떠오른다. 태웅은 입을 열고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다시 한다. 

 "원온원 해요."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