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9895526
view 1384
2023.06.24 14:03
전편: 태웅명헌 태웅은 눈을 떴다




 *
 명헌은 눈을 감았다.

 햇빛이 직선으로 눈을 찌르는 여름이었다.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야가 붉었다. 눈가가 따뜻했다. 명헌은 한 손으로 농구공을 들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부셔용. 명헌이 숨을 들이쉬었다. 덥다. 뜨끈하고 습한 여름의 공기가 폐를 채웠다.

 명헌은 눈을 떴다. 맞은편에서 자리를 잡은 태웅이 명헌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해요."
 "광합성이용."
 "…."
 "빛도 받고 숨도 쉬고..."
 "...."
 "시작해용."

 내가 선공. 30점 내기에용.



 * 
 태웅의 덩크. 29대 27로 태웅이 리드를 가져간다. 골밑에서의 태웅은 막기 힘들었다. 신장부터 197대 180. 한참은 미스매치였다.

 명헌은 태웅과 원온원을 할때 자주 둘이 대치한 첫 경기를 떠올렸다. 고교 마지막 인터하이.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친듯이 비가 오더니 나올 때는 거짓인 양 해가 내리쬐던 그 여름날. 농구의 신 마저도 북산의 승리를 축하하는지 싶었던 그 날. 그 날도 명헌은 태웅의 덩크를 막기위해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187대 180이었다. 농구신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는 그로부터 10cm가 컸고, 명헌은 그대로였다.

 그 때도 명헌은 태웅에 맞춰 뛰어오르는 순간부터 느꼈다. 빠듯하다고. 하지만 명헌의 블락이 의미없지는 않았다. 명헌이 태웅을 막는 사이 현철이 달려와 공을 쳐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려올 현철이 없다. 그렇다면.

 그래도 막아야지. 그리고 골대 바깥쪽에서 승부를 낸다. 명헌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명헌은 농구장 너머로 굴러간 공을 천천히 잡아들었다. 태웅은 이미 수비 자세를 갖춘 뒤였다. 29대 27이면 명헌은 3점을 얻어야 한다. 파울도 내면 안된다. 이를 알고있을 태웅이 3점라인 한참 바깥까지 나와있었다. 태웅은 자유투를 얻으면 종료니까 몸싸움도 걸 수 있다. 당연하지만 얄밉네용. 태웅의 하얀 얼굴이 여름볕과 농구에 살짝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자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아용.

 명헌이 땀을 훔치며 공을 두어번 튕겼다. 하얀 티셔츠가 축축했고 뺨이 터질듯 뜨끈했다. 아, 어지러웠다. 명헌은 더위에 취약했다. 사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여름날 17cm 큰 상대와 야외 농구라니. 역시 쉽지않다.

 하지만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얼굴도 평온했다.

 명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슛을 쐈다. 하프라인 한참 바깥에서 던지는 슛이었다. 들어갔다. 3점이었다.



 *
 "너무해요."
 "뭐가 너무해용."
 "경기 1초 남았을 때나 쏘는 슛을...."
 "들어갔으면 됐죵. 같은 3점이에용."
 "그건 그래요."
 "17cm 작은 나에게 포스트업 남발하는 태웅이 더 너무해용."
 "들어갔으면 됐잖아요."
 "그건 그래용."

 잘했어용. 코트 옆 그늘에 누운 명헌이 힘이들어가지 않는 팔을 들어 태웅을 툭툭 쳤다. 태웅은 얼음물이 든 병을 명헌의 뺨에 대주고 있었다. 표면에 맺힌 물이 명헌의 뺨을 타고 흘렀다. 시원하다.

 명헌은 어젯밤 침대 옆자리에 누웠던 태웅을 떠올렸다. 팬들이 태웅을 요즘잘자쿨냥이 라고 했던가. 태웅은 정말 잘 잤고 고양이 같았고 살이 시원했다. 그러면서 낯뜨거운 말을 했다. "장난 매일 쳐요."

 화가 나는건 지금 몸에 열이 올라서겠죵. 태웅은 태웅같은 얼굴을 달고 있으면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돼용. 게이도 아닐거면서. 

 명헌의 속도 모르는 태웅은 어제처럼 옆자리에 눕기나 했다. 살짝 닿는 살갗이 어제처럼 명헌보다 온도가 낮았다. 살 붙이지 마용. 괜히 밥 맛있다고 하지도 마용. 헤어지기 아쉽다는 양 큰 눈 한 번 굴리고 원온원 하자고 하지도 마용. 천둥친다고 오지도 마용. 부른다고 오는거 아니에용. 맨날 부르라고 하지도 마용. 이건 진짜 못됐어용. 게이도 아닐거면서.

 내가 게이란걸 알면 싫어할 거면서.

 명헌은 체육계 남자들의 남다른 우정에 대해 떠올렸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뜨끈한 몸을 붙여오고 어린날의 대부분의 시간과 정신을 공유한다. 그렇게 숱한 고통과 환희의 순간을 함께하고, 함께하고 싶어한다. 누구는 번짝이는 승리의 순간 정수리에 열이 오른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 명헌이 존나게 사랑해- 기숙사의 2층침대 프레임을 사이에 두고도 작게 말했다 명헌아 너가 없었으면 너무 힘들었을거같아.

 그리고 명헌은 체육계 남자들이 얼마나 호모에 대해 ...생각이 없는지도 생각했다. 호모새끼. 게이냐 너? 내 엉덩이를 노리는 거야?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후배님 비누 한 번 주워주세요~ 네 베시. 뿅. 삐뇻. 뇽. 용. 대부분 악의라곤 없는 장난이었다.

 뭐, 저런 류의 농을 일체 치지 않는 친구들도 있기야 있었다만....

 하지만 집단에서 실제로 게이가 발견되었을 때 그 모두는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태웅이 게이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태웅이 호모포비아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명헌은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니까 나도 그냥 평범하게 우정을 나누면 되겠지용. 괜히 열내지 말고. 얘가 같이 놀고 싶어하면 같이 놀고. 나도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태웅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용."
 "네."
 "태웅이 사용. 졌으니까. 승부의 세계는 냉정."
 "...네."

 그럼 된다. 평소처럼. 여름이 한창이다.
 






——-
(사랑에) 눈뜨는 태웅이와 (사랑에) 눈감는 명헌이..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