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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 21:09
전편: 태웅명헌 명헌은 눈을 감았다




 * 

 내려다 보이는 뒷목이 붉었다.

 

 태웅은 아이스크림 박스 앞에서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명헌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에는 농구공을, 한 손에는 하늘색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든 채였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바깥의 더위가 무색하게 시원했다. 밝은 형광등 불빛이 찬바람을 뿜는 에어컨과 시원히 드러난 명헌의 뒷목을 비췄다.

 

 명헌은 이번 봄 플레이오프 4강에 오르며 머리를 밀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 플레이오프 우승에 대한 투지의 표시인가요, 서태웅 선수와의 첫 플레이오프에 대한 각오를 보여주는 건가요. 하지만 명헌은 한 마디로 대답을 일축했다. 더워서용. 올해는 봄부터 유독 덥긴 했다.
 

 짧게 민 머리 덕분인지 명헌과 태웅의 팀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짧게 민 머리 덕분인지 붕어 아이스크림과 빨간 사과맛 하드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움직이는 명헌의 뒷목이 더 잘 보였다.

 

 붉게 달궈진 뒷목이 뜨끈해 보였다. 목 선을 타고 올라가면 보이는 귀 뒷부분도 그랬다.

 

 태웅은 명헌의 목 어드메에 손을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 뒤 척추뼈 위에 손바닥을 얹고 다섯 손가락으로 목을 감고 싶다고. 방금 전까지 태양 아래서 공을 쫒아 움직였던 목을.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여 옆으로 목을 타고 올라가면 귓바퀴와 귓볼과 하악 그리고 뺨..

 

 왜 이러지. 이건 이상했다.

 

 동시에 태웅은 명헌의 목 어드메에 얼음을 대주고 싶었다. 명헌은 쉬는시간에 벤치에 앉자마자 시원한 음료병을 몸에 대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태웅은 가끔은 먼저 명헌의 뺨이며 목에 자신의 물병을 대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나무그늘 아래 드러누운 명헌의 뺨에 얼음병을 갖다대었다. 명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건 이상하지 않았다.

 

 태웅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명헌의 뒷목에 올려놓았다. 툭. 섬세하지 못한 손길이었다.


 명헌이 뒤를 돌아봤다. 더워보여서요. 명헌이 붕어 아이스크림을 다시 아이스크림 박스에 넣으며 말했다. 고마워용.

 

 

 

 *

 하늘색 소다맛 아이스크림은 600원, 빨간색 사과맛 하드도 600원.
 

 태웅과 명헌은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나란히 걸었다.막 꺼낸 아이스크림을 핥는 소리와 농구화가 바닥에 마찰하는 규칙적인 소음이 둘 사이를 메웠다. 해가 긴 여름날은 여전히 밝았다. 직사광선이 차가워진 몸 위로 쏟아졌다.

 

 태웅은 명헌의 뒷목이 여전히 신경쓰였다.

 

 "목이 빨개요."

 "목?"

 

 명헌이 아이스크림을 물고 웅얼거리며 반문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살짝 만졌다. 따끈하긴 하네용. 잘 빨개지고 화상입는 피부긴 해용. 화상이요? 근데 오래 밖에 있었던게 아니라서 괜찮을거에용. 그래도 쿨링팩이라도 목에 붙여놔야겠어용.

 

 "붙여드릴까요."

 "그럼 고맙고용."

 

 명헌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깨물어 먹었다. 태웅도 뒤따라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여름엔 나가지고 하지 말아야겠다. 태웅은 괜히 아이스크림 막대의 끝을 물었다. 명헌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웅."

 "네."

 "내일 인터뷰가 끝나면 완전 휴가 시작이잖아용."

 "네."

 "휴가 계획 있나용."

 

 아, 휴가 계획.

 

 한국 리그는 시즌 종료 후 2달간 팀 훈련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팀은 이 때 휴가를 주었다. 태웅과 명헌의 팀은 오월 말까지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시상과 인터뷰 및 방송 출연을 연달아 하고 나니 어느새 유월이었다. 명헌이 말했듯 이번 인터뷰가 끝나면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된다. 모두가 열심히 달린 봄이고 여름이었다. 이제 7월이 말이 되어야 팀 훈련이 재개될 것이다.
 

 태웅은 비시즌 휴가철에도 개인 훈련을 놓지 않는 편이었다. 개인 훈련 위주의 NBA에서 쌓아온 습관이기도 했다. 그래도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달린 몸에 휴식을 줄 시간은 필요했다. 태웅은 개인 코치와 7월 초부터 훈련을 시작하기로 계약을 완료했다. 그 사이 6월은 휴식에만 집중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6월에는 어떤 계획이 있느냐.

 

 "딱히 없어요."

 "그래용."

 

 계획은 없었다. 태웅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그래용. 올 해는 좀 쉬어야겠어용."

 

 명헌이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술에서 떼며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건 아니고용,

 

 "어항을 다시 꾸밀까 해용."

 "어항이요."

 "오랜 취미인데 최근에 쉬었어서"

 

 다시 수초도 좀 사고, 물고기도 데려오고, 레이아웃은 고민중이에용.

 

 태웅은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한 입. 두 입. 구피. 오토싱. 새우. 자갈. 돌멩이. 여과기. 조명. 펄그라스. 자포니카. 태웅은 어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명헌의 입가를 쳐다본다.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는다. 명헌이 막대를 가져간다. 물고기를 고르는 이명헌. 새우는 넣을지 고민이라는 이명헌. 물 속에 손을 넣고 수초를 심는 이명헌. 이명헌. 태웅은 막대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는 명헌의 뒷통수를 쳐다본다. 빨간 목. 동그란 뒷머리.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눈 앞의 이명헌.

 

 "같이 해요."

 

 명헌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용."

 

 

 

 *

 태웅 미안해용 먼저 들어가있어용. 쿨링팩은 거실 서랍 두 번째 칸에 있어용. 의약품 상자에. 냉장고에 좀 넣어놔 주세용.
 

 전화 좀 받고 들어갈게용. 명헌은 아파트 입구에서 자기의 열쇠를 건네주고는 잠시 사라졌다.

 

 태웅은 아무 장식도 달리지 않은 열쇠를 구멍에 꽂고, 돌렸다. 거실은 아침에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밝고 따뜻하고 깨끗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 특유의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신발이 적은 현관에 농구화를 벗고 들어갔다. 태웅은 곧바로 거실 서랍장으로 향했다. 책장을 겸하는 거실장에는 장식이 적었고 농구와 물고기에 대한 책이 가득했다. 물고기. 명헌에 대해 아는 게 하나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웅은 잠시 책들의 제목을 훑다 서랍으로 눈을 돌렸다.

 

 두 번째 칸. 음. 2층을 말하는 거겠지. 2층에는 세 칸이 있었다. 이런.

 

 태웅은 2층의 가장 왼쪽 칸을 먼저 열어보았다. 지류가 가득했다. 편지와 엽서인 듯 했다.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잡했다. 웃쓰. 여기가 아니군. 태웅은 칸을 닫으려했다. 그 순간.

 

 종이 더미 속에 반쯤 가려진 명헌의 폴라로이드가 눈에 띄었다. 사진 속 명헌은 제법 환하게 웃고 있었다. 태웅은 잠시 고민하다 사진을 집어들었다. 사진의 나머지 반쪽이 드러났다.

 

 아. 태웅은 이 얼굴을 알았다. 알았지만 안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정우성 선수가 명헌의 목을 감싸고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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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크블 플옵은 5월초에 끝나지만 여기서는 5월말에 끝난걸로
- 준비되지 않은 쿨냥이에게 성큼 다가온 우명! 쿨냥이 화이팅!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