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늘 그렇듯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침 식사 풍경이었으나 탁익신은 영 불편한 안색으로 밥알이나 헤집고 있었다. 젓가락은 밥알을 헤집고 눈으로는 대요괴가 잠시 앉았던 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잘만 먹던 어머니의 신경이 나뭇가지 부러지듯 툭 끊어졌다. 뭘 그리 생각하길래 밥을 그다지 못 먹는 것이냐. 곁에 앉아있던 숙부가 꾸지람을 듣던 상대보다 더 한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대요괴 탓을 했다. 집안에 대요괴가 있으니 당연 신경 쓰이지 않겠느냐며 천도 사람들이 탁부를 손가락질할까 걱정이 된다는 말까지 얹었다. 어머니 또한 같은 생각인지 대요괴가 남편과 아들을 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가문까지 지르밟을 생각인 것 같다 한탄했다. 탁익신은 그들의 말을 저지하거나 지적하여 바로 잡지는 않았다. 그들 입에서 흘러 나온 모든 말들은 사실과 같으며 익히 걱정할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가시나무를 삼킨 듯 아프고 불편했다. 밥을 잘 못 먹은 듯 체한 듯한 느낌에 명치 부근을 손으로 가볍게 문지른 탁익신은 이만 먹겠다 자리서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집요사에 있겠다 통보하고는 안채를 나와 잠시 부뚜막으로 향하려다 멈칫하더니 그대로 뒤채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아무에게 도시락을 부탁하고는 뒤채 갔다가 그네에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하는 대요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타는 법을 모르는지 대요괴는 전혀 흔들림 없이 그네에 앉아 간혹 하늘과 그 앞 가로막힌 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네 타는 법을 알려줘야 하나. 그의 손이 검집 위에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적에 머루눈과 마주쳤다. 그러더니 곧 새카만 두 눈이 휘어져라 미소 짓는 대요괴에 탁익신은 헛기침을 해댔다. 

 

 "좋은 아침이오."

 

 그렇다기엔 대요괴의 안색이 피곤해 보인다. 뜬눈으로 밤이라도 지샜는지 영 죽은 표정에 탁익신은 속으로 또 그를 꾸짖었다. 정말 피곤하고 걱정할 사람은 나 아닌가. 대요괴는 무릎 위에서 아직도 고롱고롱 자는 하얀 강아지를 고쳐 안고 자리서 일어났다. 탁익신이 말했다. 

 

 "집요사에 갈 것이다. 가기 전에···."

 "혼례 준비를 서둘러야겠구려."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왜 그리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하느냐고.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죽을 목숨이 왜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조원주는 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혼례는 바라지도 않았었다. 내쫓기지 않는 것만도 제 평생 있을 운을 다 끌어모아 쓴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니 죽기 전 호사란 호사는 다 누리겠구나 싶어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조원주는 옷차림을 바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탁부를 나섰다. '가엾구나.' 뒤를 따르는 동안 계속해서 맴도는 주염의 말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 울적했으나 겉으로 티 내고 싶지 않아 했다. 어차피 저는 죽어야 하는 몸이었다. 그의 손에 맡겨도 아깝지 않을 만큼 하찮은 목숨인 바, 조원주는 그 어떤 요괴로부터든지 탁익신을 지키고자 마음 먹었다. 그는 긴 머리를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꼿꼿한 자세로 앞서 걷는 이를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매 순간이 매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을 담지 않으면 언제 또 볼지 모르니 최대한 눈에 담아두고 싶었으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또 다른 존재에 다시금 울컥 그리움이 치밀었다.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옛 친구가 가슴을 후벼파자 조원주가 부러 딴 소리를 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저잣거리에 사람이 많구려. 전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소."

 

 이른 시각, 저잣거리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아 활기가 넘쳐 보였다. 거리를 보아하니 탁대인의 성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겠소. 다른 마을들은 속세로 들어온 요괴들 때문에 해를 당할까 일 중에도 한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매우 붐비고 있었다. 이것은 다 든든한 집요사의 덕분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탁익신은 부끄러워 괜히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수고스러움을 알아주는 이는 반가우나 대요괴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기분이 꽤 말랑말랑해진다. 그러나 조금 들뜬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사람이 많아 그 틈을 비집고 출발했던 것과 다르게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거리가 한산해졌다. 이상함에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세사 자잘한 입담을 주고받듯 사람들이 양옆으로 흩어져 저들끼리 숙덕거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마주 걸어 오다가 대요괴를 보고선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도망치듯 달아났고 어린 아이는 어른들의 말에 빼 앵 울어버리기까지 했다. 탁익신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그에 반해 조원주는 한 객잔 앞에서 저를 보고 줄기차게 울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품에 있던 하얀 강아지를 보여주었다. 만져볼래? 울 거 없어. 괜찮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더 달아나거나 뒤로 물러선다. 어린 아이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도 하얀 강아지가 예뻐 보이는지 팔을 뻗으려 했으나 객잔에서 아비가 튀어나와 아이를 들춰 매고 물러서며 큰소리쳤다. 저리 가, 이 요괴야! 그러자 주변에서 더욱 더 숙덕거렸다. 아이를 헤칠 생각이었나 봐. 당연하지! 저 자는 요괴잖아! 그런데 왜 집요사에서 가만히 두는 거지?! 당장 죽이지 않고 뭘 하느냐고! 조원주는 저 대신 낑낑대는 강아지를 품에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다시 일어섰다.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 늘 받던 멸시와 비난 그리고 박해였다. 그러나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여전했으며 익숙지 않았다. 조원주는 스스로 괜찮다 다독이며 걸음을 돌렸을 때 탁익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자신을 바라보는 탁익신의 눈빛을 조원주는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 짐작이 맞으리라 여기니 자신이 한없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조원주가 예의 미소 짓고는 먼저 걸음을 뗐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탁익신은 그에게 소리 친 사내와 그 주변 이들을 잠깐 둘러보고는 걸음을 돌렸다. 

 

 멸시가 담긴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조원주의 걸음이 다시 한번 멈추어 섰다. 화려한 매듭으로 만들어진 결을 파는 상인 앞이었다. 상인은 그가 두려운지 주춤주춤 거리더니 뒤로 물러나 그 뒤에 서 있는 탁익신의 눈치를 살폈다. 도와달란 재촉이었으나 탁익신은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조원주는 벌매듭으로 화려하게 엮어진 결 하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감청색의 결 하나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냥 앞서 걸었다. 탁익신은 조원주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상인을 돌아봤다. 

 

 "도련님, 안주인께서 그러시는데··· 요괴와의 혼례는 도저히 집에서 치르실 수 없다고···."

 

 아무가 급히 뛰어와 이를 알렸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아들 된 도리로서 그 뜻을 따라줘야 했다. 탁익신이 알겠노라 하고는 간단히 하얀 천을 사 조원주를 데리고 집요사로 향했다. 가는 동안 조원주는 눈에 띄게 침묵을 유지했다. 능글거리던 요괴가 조용하니 오히려 이상한지 탁익신이 괜스레 헛기침을 하고 쓸데없이 아무에게 이런저런 사항들을 일러주며 명했다. 그러자 집요사 코 앞에서 조원주가 웃음을 흘렸다. 탁익신이 이를 보고 물었다.

 

 "왜 그리 웃는 것이냐."

 "독백하지 않아 좋아서."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독백하지 않아 좋다. 느끼고 싶지 않았던 대요괴의 외로움이 물씬 풍겨왔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꾸짖었다. 그러자 조원주가 미소를 띈 채 말했다. 음? 요괴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부정적인지 모르겠구려. 얼굴은 고우면서 성격이 그리 고약하면 못 쓴다오. 안타까움을 느낄 새가 없이 다시 치근덕거리는 대요괴에 탁익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희롱하지 말거라!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아느냐. 결국 한 소리 하자 조원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명했다. 열려라. 손끝이 붉어지더니 그의 명대로 커다란 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런데 붉어진 것은 조원주의 손가락 끝만이 아니었다. 탁익신의 목덜미와 귀 끝이 붉어져 있었지만 조원주는 짐짓 모른체했다. 여기서 웃었다간 아마 집요사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앞장 서라는 듯 손을 펼쳐 보이자 눈을 모로 뜬 탁익신이 조원주를 흘겨보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정예들이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올리고 공손히 인사를 함과 동시에 조원주를 야물 차게 노려본다. 아픈 시선이었으나 조원주는 이번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형님!"

 

 저 멀리서 누군가 이리로 뛰어왔다. 그리고 조원주는 처음으로 환히 웃는 탁익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우야. 정말 하나뿐인 막냇동생 탁익성이 훌쩍 뛰어와 그에게 안겨들었다. 키와 몸집 전부 탁익신보다 반척 정도는 조금 더 작았다. 동생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관찰성이 떨어졌었던 건지 처음 보는 존재에 조원주는 호기심이 들었다. 형제가 맞는지 외모가 상당히 비슷했으나 확실히 탁익신의 미모에 비하면 조금 덜한 듯했다. 이 말을 했다간 한 대 얻어 맞겠지? 그래도 귀여움이 한껏 베인 조막만 한 얼굴이라 저급한 평가는 뒤로하고 제 소개를 기다렸다. 탁익성은 아무에게서 받은 도시락을 들고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탁대인께서 도련님 드리려고 준비하신 겁니다. 아무가 말하자 탁익성이 형님 밖에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내뱉었다. 탁익신은 그런 동생을 어여삐 여기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탁익성은 그 손길을 고스란히 받다가 조원주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같은 피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찡그린 얼굴이 놀랍도록 똑 닮아 있었다. 그 대요괴입니까, 형님? 익히 들었는지 탁익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탁익성이 팔짱을 끼고 대요괴 조원주를 면밀히 훑어본다. 가만히 있던 조원주가 지루함에 핏 웃어버리고는, 미모의 대요괴는 하고 말문을 열었다가 무참히 짓밟혔다. 

 

 "대요괴라 하여 미모가 출중할 줄 알았더니 형님보다 못한 듯싶습니다."

 "허."

 "아우야."

 

 정말이지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다. 탁대인의 아우 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보오. 아우의 흉에 탁익신은 뭔 소리냐는 쳐다봤고 탁익성은 삿대질을 하며 나무랐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 못생긴 대요괴야! 조원주가 더 크게 충격 받은 얼굴로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떠받쳤다. 사뭇 괴로워 보이는 얼굴에 탁익신이 다가가 괜찮느냐 물어보자 조원주가 말했다. 진실을 왜곡 당하니 상당히 괴롭구려. 하지만 괜찮소. 어쩌면 탁대인의 아우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저리 말하는 것 같으니. 상처받지 마오. 탁대인. 어쩌겠소. 내 미모가 훨씬 더 출중한 걸. 탁대인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들고 있던 하얀 천을 그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헛소리 좀 작작 하거라. 탁익성이 마찬가지로 소리쳤다. 저런 파렴치한 자와 결혼할 형님이 안쓰럽다 외쳐도 조원주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모기가 다니는 것 같다며 손을 휘저었다가 탁익성과 몸싸움까지 벌일 뻔한 것을 아무가 달려와 뜯어 말렸다. 탁대인! 아우를 넘어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이번엔 대황을 수호하는 신서들 중 한 명인 영초의 손자 영뢰와 탁익성보다 한참 작은 소년 하나가 튀어나와 탁익신을 맞이했다. 늘 보던 얼굴일 텐데도 그들은 마치 백 년 만에 만난 사이처럼 더 없이 반가워하고 있었다. 조원주는 그 풍경이 신기하면서도 사뭇 부러웠다. 누군가를 저리 기쁘게 반가워할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나 누군가에는 진귀한 일임이 다소 씁쓸했다. 둘이 탁익신을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자 탁익신이 푸스스 웃음을 흘리며 그만하라 다그쳤다. 그러자 자그마한 소년이 탁익신의 팔에 매달려 머리에 달린 장신구 줄을 손에 쥐고 조원주를 노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고 있자 조원주가 의미 없이 눈을 굴렸다. 

 

 "아아, 들었어. 들었어. 당신 대요괴 주염이지?"

 

 허리 춤에 두 손을 얹은 영뢰가 먼저 물었다. 그 무지막지한 대요괴 말이지. 소년이 말곁을 달자 탁익신이 잠시 저지했다. 백구.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는 듯 백구라 불린 소년의 눈초리가 더 따가워졌다. 조원주는 주염이라 알고 있는 이들에게 해명이라도 하듯 제 소개를 하려 하자 탁익신이 대신 말을 이었다. 이전에 조원주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해 말을 잇자 조원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제 말을 허투루 듣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탁익신의 설명이 끝나자 영뢰와 백구는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지금 저게 무슨 소리야? 백구가 영뢰에게 속삭였다. 영뢰는 긴 꼬랑지 같은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고심하다 말했다. 조원주와 주염은 서로 다른 요괴인가 봐. 그리고 탁대인의 가족을 헤친 주염이 바로 저 조원주의 몸 안에 봉인되어 있대. 그제야 이해한 백구가 작은 머리통을 주억거리더니 슬금슬금 탁익신의 등 뒤로 숨었다. 어쨌든 둘 다 강한 대요괴다. 뒤늦게 밀려오는 공포심에 백구가 눈알을 열심히 굴렸다. 겁 많은 강아지처럼 구는 백구가 귀여워 조원주가 순간 새카만 손톱을 드러내고 왁하고 놀라게 하자 작은 체구가 펄쩍 뛰더니 다른 곳으로 줄행랑을 쳤다. 어린 애 놀리지 마. 탁익신에게 한 마디 얻어 듣긴 했어도 이 곳 생활이 재밌을 것 같아 흘려들었다. 백구가 도망친 뒤 영뢰가 뒤늦은 제 소개를 이었다. 방금 꼬맹이는 의술에 뛰어난 천재 백구고 나는 영뢰야. 산신이지! 조원주가 빙그레 웃었다. 영뢰의 할아버지인 영초와 아는 사이였기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네 할아버지 영초와 잘 아는 사이야."

 "우리 할아버지랑?!"

 "그리고 꼬맹이는 너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꼬맹이라니! 이래 봬도 삼··· 삼백년은 족히 살았어!"

 

 탁익신은 속으로 조원주의 나이와 영뢰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다. 턱 없이 부족하다. 세월이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니. 확실히 조원주 앞에선 영뢰도 꼬맹이와 다를 바 없었다. 영뢰가 으르렁 거리자 조원주가 그 품에 하얀 강아지를 안겨줬다. 꼬마 산신, 이 강아지한테 먹을 것 좀 줘. 아침에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거든. 한 마디 더 하려던 영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먹을 것에 예민한 편인지 그에 대한 적대심은 어디로 가고 강아지에게 먹일 음식을 가지러 집요사 내 부뚜막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서야 조원주는 집요사의 풍경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매우 깔끔한 상태였다. 내부는 다소 어둑하니 밝은 색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졌다면 한 시도 이 곳에 붙어있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런 분위기는 자신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조원주였다. 조원주는 아무의 안내로 집요사 정원 한쪽을 차지할 수 있었다. 방을 하나 내주려 했으나 잠들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부러 정원을 달라 한 것이다. 눈을 감으면 주염이 다시 저를 찾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볼 일이었다. 주염의 말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륜의 고통까지 모두 돌려주겠다는 말이 영 거슬렸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주염.

 

 아무와 집요사 내 하인들이 머리와 손을 모아 준비한 혼례는 무척이나 간소한 축에 들었는데 붉은 천 대신 하얀 천으로 꾸미다 보니 흡사 장례식 같아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탁익성 마저 장례식 같다며 머리를 내둘렀고 영뢰와 백구도 이를 이해하지 못해 자꾸만 쓰읍 소리를 냈다. 왜 하얀 천으로 꾸민 거야? 백구가 묻자 영뢰가 턱짓으로 조원주를 가리켰다. 대요괴가 하얀색을 좋아한대. 이를 들은 탁익성이 매우 불쾌해했다. 대요괴 취향에 맞추는 형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얀 천으로 치장된 장례식 같은 혼례에 심지어 제대로 된 혼례복도 갖춰 입지 않았다. 조원주는 그저 입던 대로 입었고 탁익신만 다만 짙은 감청색의 외출복을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초대된 손님으로는 탁익성과 영뢰 그리고 백구와 탁익신의 수족 아무와 정예 몇 명이 다였다. 조원주는 새하얗게 치장된 곳을 고개 들어 살펴봤다. 붉은 색에 비해 시린 감이 있었지만 나름 겨울을 닮은 것 같아 괜찮았다. 

 

 '여름이 왜 싫은데.'

 '눈이 내릴 수 없잖아.'

 '···단지 그 뿐이야?'

 '넌 나보다 눈치가 더 없어.'

 

 혼인을 하기에는 퍽 좋지 못한 계절이었다. 곧 있으면 공기를 얼려버릴 차디 찬 겨울이 오리라. 조원주는 옛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단정히 차려입은 탁익신이 그를 보고 있었다. 나는 붉은 색을 싫어하오. 이미 들었던 말이었다. 탁익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자 조원주가 푸스스 웃어버린다. 

 

 "피와 닮은 것은 뭐든 싫소."

 "······."

 "멀어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속상하구려."

 "···내가 그리되게 할 것이다."

 

 그의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약속했음에도 조원주의 마음은 우습게도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탁익신은 정말이지 그리할 것이다. 저를 악기로부터 구할 영웅. 그는 모든 이들의 우상이 되어도 마땅한 인물이었다. 너무 장례식 같아. 탁익성이 가까이 다가와 형님의 옷깃을 정리하며 말했다. 조원주가 조용히 읊조렸다. 어쩌면. 상단 앞에 선 탁익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드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저 대요괴가 방금 지껄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신패 앞에 서서 하늘에 맹세했다. 천지신명께 두 사람의 화합을 허락받고 술잔을 기울였으나 그 누구도 진심 어린 축하는 해주지 않았다. 웃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혼례식은 대요괴에 대한 적대심으로 가득 차 있기만 했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조원주는 씁쓸하게 웃기만 할 뿐 장난을 치지 못했다. 조원주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내 꿈을 짓밟는다 해도 미워하지 않소. 당신은 사랑만 받았음 하거든."

 

 자신의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해도 결단코 그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걸, 앗아간 걸 다시 되돌려 줄 수는 없어도 그 원을 풀어주고 싶다. 당신이 누굴 닮았건 간에. 조원주는 씁쓸히 웃었고 그에 탁익신은 그 어떤 말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초라했던 혼례식이 끝나고 난 밤, 어슴푸레하나마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조원주가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맑고 청명한 밤이다. 바람은 서늘하고 어디선가 올빼미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저벅저벅. 언제나 그렇듯 늘 혼자이겠거니 했던 밤중에 누군가가 저를 찾아왔다. 예상대로 탁익신이었다. 조원주가 돌아보자 탁익신은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던져줬다. 용케도 잡아챈 조원주는 손에 쥔 것을 펴보고 보름달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저잣거리에서 잠시 눈길을 주었던 감청색의 결이었다. 이것을 살펴본 걸 어찌 알았지.

 

 "그."

 

 부끄러운 듯 탁익신이 뜸을 들였다. 받은 결을 만져보던 조원주가 옷에 잘 매달자 이젠 귀 끝까지 붉게 밝히고선 사주지 않으면 나중에 또 무슨 말을 들을까 염려 되어 산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고맙소. 조원주가 응답하자 그는 서 있는 자리서 갈팡질팡 하다가 휙 돌아서 연무장으로 가버렸다. 그가 가고 난 뒤 조원주는 머리에 달린 긴 장식 줄과 탁익신이 선물한 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생에 두 번째 받은 선물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 작은 선물 덕분에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은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은 따뜻하겠어. 달아놓은 결을 몇 번이고 만진 조원주가 그의 이름이 있을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연무장으로 향한 탁익신을 보러 갔다. 이 야밤에 연무장에서 그는 무얼 할까 궁금해서였다. 운광검은 물과 만나야 능력치를 훨씬 더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천천한 걸음으로 도착해보니 탁익신이 열심히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조원주의 눈에 누군가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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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에서 획을 긋는 운광검이 푸르게 빛이 날수록 점점 옛 친구가 보인다. 철없이 울던 저를 달래주던 그다. 그가 검술을 멈추고 조원주를 바라보고 서 있다. 미치도록 그리웠던 이의 모습에 조원주의 눈에 물기가 가득 어렸다. 빙이···. 넘실거리는 눈물 너머의 비친 이의 고개가 조원주에게로 돌아왔다. 중력에 이끌린 눈물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힘 없이 낙화해버린다. 그리고서야 너울진 형체의 주인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뭐? 조원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을 미처 듣지 못한 탁익신이 방금 무어라 했느냐 물었다. 방금 뭐라 했는지, 무슨 까닭에서 저를 보고 왜 우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조원주는 입에 풀칠이라도 한 듯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 쓰디쓴 미소를 짓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돌아서 가버렸다. 탁익신은 그가 떠나고 난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 푸르게 빛나고 있는 운광검을 검집에 넣었다. 보기만 했을 뿐인 그의 눈물이 어째서인지 손끝에 감도는 것 같아 머리를 내저었다. 

 

 "형님!"

 "탁대인!"

 "탁대인!"

 

 다음 날 아침, 탁익성과 영뢰 그리고 백구 셋이서 한꺼번에 탁익신을 불러제꼈다. 집요사가 떠나가라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자 정예들의 눈이 토끼 눈이 되었다. 높은 고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백구를 보아 사건이 생긴 것으로 추측을 끝낸 정예들이 발 빠르게 출동 준비를 마쳤다.

 

 아무에게 부탁해 얻은 복숭아 하나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탁익신은 셋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자 놀라 손에서 떨구고 말았다. 그것을 잡겠다고 몸부림치던 그는 의아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셋에 멋쩍게 허리를 펴고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탁익성보다 백구가 먼저 말했다. "요괴가 나타났어요!" 

 

 말로 내뱉는 것만도 무서운지 스르륵 기절해 버리는 백구를 영뢰가 떠받치며 말곁을 달았다. 

 

 "밤새 아이들이 네명이나 사라졌어.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가는 놈의 뒷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도 있고." 

 

 밤새 아이들이 사라졌다. 탁익신의 눈빛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아우는 그런 형님의 눈빛을 보고 정원이 있을 곳으로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혹시 조원주의 짓이 아니냐 짐작하자 그가 저지했다. 밤 한숨 자지 않고 있던 대요괴를 따라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던 지라 그의 짓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세에 들어선 요괴들은 모두 조원주의 악기로부터 태어난 것들이었다. 한통속이 아니라고는 단언할 수 없기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도기로 빚은 오래된 호리병을 들고 등장한 조원주에 넷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 그리고 운광검이 푸르게 빛을 내자 탁익성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사납게 노려보았고 영뢰는 기절한 백구를 등에 업고서 탁부의 형제와 조원주를 번갈아 보았다. 탁익신은 신뢰성 없는 얼굴로 말했다. 네 짓이 아님을 밝혀야 할 거다. 호리병 속 든 무언가를 쭉 들이키던 조원주가 소매로 축축해진 입가를 닦아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무엇이든 하라면 해야 했다. 탁익신은 조원주와 영뢰 그리고 탁익성을 데리고 집요사를 나섰다. 우선 주변 조사부터 들어가야 했다. 누구의 짓인지, 왜 아이들을 데려간 것인지 추측해 내 놈을 잡아야 했다. 저잣거리에 나오자마자 전보다 더 잔인하고 날카로운 서슬 퍼런 눈빛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부 조원주의 몫이었다. 대요괴가 떡하니 거리 한복판에 등장했으니 당연 맞이해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었다. 

 

 그 틈 속에서 영뢰와 백구, 탁부 형제가 짝을 지어 주변을 조사하기로 했고 조원주는 주변에 악기가 남아있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조원주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인간들보다 등 뒤에 꽂히는 서늘한 탁익신의 시선에 더 상처 받고 있었다. 아마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의 믿음을 얻을 수 없으리라. 본래 요괴와 인간 사이에는 신뢰를 가질 수 없는 금 가버린 그릇과도 같았다. 절대 이어 붙일 수 없는 사이. 그것이 탁익신과 자신의 사이를 정의하는 것이다. 조원주는 가볍고도 짙은 숨을 길게 내쉬고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역겨우면서도 익숙한 악기가 미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확실히 사람의 짓이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느낌이 영 이상했다. 아이들을 납치해 간 놈이 자신의 악기로부터 탄생한 요괴여서 그런 것일까. 기분 나쁜 안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골목 옆 대나무가 우거진 곳 쪽으로 걸음했다. 이 곳에서 악기의 흐름이 끊어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로 도망쳐 흘러 들어갔는가. 대요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위를 살피다 흙바닥에 떨어진 깃털 하나를 발견했다. 보통 새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도 큰 새까만 깃털이었다. 조원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로구나. 범인을 알아냈다. 이제 탁익신에게로 돌아가 범인을 알려줄 차례였다. 다만 왜 아이들을 데려갔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니 완벽한 수사라고는 할 수 없어도 범인만 알아내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손에 든 깃털을 품속에 넣고 돌아섰을 때 조원주는 당황했다. 낫과 부엌칼 그리고 창을 든 성난 인간들이 일사불란하게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들 중 가장 험악한 인상을 쓰고 있는 사내가 말했다.

 

 "탁대인이 무슨 연유로 널 살려두고 있는지는 몰라도 네 짓인 걸 다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내놔!"

 "내놓으라고 이 요괴야!"

 

 한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내놓으라 외치기 시작했다. 조원주는 앞뒤 양옆으로 조여오는 이들 때문에 겁은 먹지 않았다. 충분히 제 명 한마디에 길을 뚫고 이 골목을 나갈 수 있었으나 그리 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인간은 우리가 지켜줘야 할 존재들이야.' 가슴 깊이 새겨 둔 친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슴 쯤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자신이 한 짓이 아님을 밝혔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주염을 막지 못했던 업보를 이렇게 되돌려 받는 것이다. 조원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나 토해지는 것은 말이 아닌 붉디 붉은 피였다. 바닥으로 쏟아낸 각혈에 조원주의 시선이 창으로 뚫린 자신의 가슴으로 내려갔다. 뒤에서 긴 창으로 가슴을 꿰뚫은 사내가 제 아들을 내놓으라 소리치자 다른 이들이 그 짧은 거리를 좁혀와서는 낫을 휘두르고 칼로 대요괴를 그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맥이 풀려 한쪽 무릎이 꺾였다. 그가 무너지자 사람들이 벌떼같이 더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이 부실 만큼 강인한 푸른 빛이 옆에서 광범위한 공간으로 넓게 퍼지는 듯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조원주에게서 나가떨어졌다. 조원주! 탁익신이었다. 그는 바닥으로 무너져내린 대요괴를 부축하다 가슴을 통과한 창을 보고 안색이 파리해졌다. 입이고 가슴이고 피로 축축이 물들어가자 조원주보다 더 고통스러운 얼굴로 내려다 본다.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대요괴가 자기 아이들을 잡아 먹었다며 외마디 비명처럼 외쳐댔다. 회복력이 빠르긴 하나 고통은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같아서 조원주가 눈을 질끈 감고 신음하다 가슴에 박힌 것을 뒤로 빼내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품에서 깃털을 꺼내 탁익신에게 보여주었다.

 

 "고··· 획조요. 아이들을 잡아간 요괴." 

 

 깃털을 받아서 든 탁익신이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지 말라 경고하고는 말했다. 

 

 "네 상처는."

 "알잖소. 나는 대요괴요. 이런 상처 쯤은···."

 

 혼자 힘으로 일어나려던 조원주가 크게 비틀거리자 탁익신이 서둘러 안아 받쳤다. 팔 하나를 자신의 목에 두르고 어느새 곁에 서 있었던 탁익성에게 흥분한 사람들을 부탁했다. 이번 일의 범인이 누구인지 들었던 탁익성은 아무 말 없이 백구와 둘을 보내주고 영뢰와 함께 사람들에게 해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아이들 없이는 가라앉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요사에 도착하자마자 탁익신은 자신의 방으로 조원주를 데려갔다. 대문서부터 방까지 쭉 이어진 혈흔 자국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가까스로 침상에 눕히자 대요괴가 숨을 헐떡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탁익신은 백구에게 그를 치료할 방도를 마련해 달라 부탁했다. 백구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다 그가 서둘러 달라 목청을 높이자 정신없이 달아나 약제실로 사라졌다. 탁익신이 그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이 조원주는 한쪽 눈을 뜨고 그를 힐끔 훔쳐봤다. 파리해진 그의 안색이 퍽 마음에 들었다. 저를 쏘아보던 눈빛에 감도는 불안감이 대요괴에는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감정들 중 얼마 안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음에도 그는 법술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려다가 너무 푹푹 나오는 피들에 탁익신 몰래 가슴의 구멍을 조금 메웠다. 그래도 죽어가는 척 연기하며 그의 옷자락을 힘겹게 잡았다. 

 

 "인간이 쓰는 약재는 내게··· 소용 없소."

 "···뭐?" 

 

 다시금 탁익신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쳤다. 약재가 통하지 않는다면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그가 자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피 묻은 대요괴의 손목을 잡고 잠시 한쪽 무릎을 굽혔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묻자 조원주가 시커먼 속내를 은밀하게 풀어냈다. 당신 조상 빙이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소? 그의 타액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어떤 상처든지 아물 수 있다오. 그 말을 들은 탁익신이 깜짝 놀라 질색팔색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터무니 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있어도 그런 힘은 나한테 없어. 조원주가 한숨을 쉬었다. 

 

 "해보지도 않고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해볼 필요가 없지! 그런 힘은 나한테 없다니까!"

 "다 죽어가고 있는 대요괴가 설마 거짓말이라도 하겠소. 당장 실험해보면 알 텐데."

 

 대요괴의 씰룩거림을 너무 당황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하고 정말 그래야 하나 싶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확인해보면 알 것 아니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원주가 적극 재촉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작은 단도를 꺼내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팔뚝에 작은 상처를 냈다. 주르륵 흐르는 핏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핥으시오. 자꾸 재촉하자 탁익신이 할 것이라며 역정을 냈다. 그리고 상처에 혀를 가져다 댄 순간 조원주가 몰래 속삭였다. 아물어라. 피부를 핥자마자 상처가 아물자 그가 놀란 얼굴로 대요괴를 돌아봤다.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것보라는 듯 눈썹을 들썩이던 조원주가 다시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망설이던 탁익신이 굳은 결심을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침상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난도질로 아무렇게나 찢긴 옷을 양옆으로 벌려냈다. 생각보다 상처가 훨씬 많고 깊었다. 조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에 젖은 천을 쥐고서 피를 대충 닦아낸 탁익신에 조원주는 너무 놀리는 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 그의 상처를 후벼팠나 싶어 이만 멈출까 했지만 피부에 닿은 말랑한 감촉에 그만 입이 꾹 다물어지고 말았다. 가슴 바로 아래쪽 상처를 그가 정성스럽게 핥기 시작한 것이다. 입 안으로 피비린내가 진하게 퍼질 텐데도 탁익신은 정성을 들였다. 그 사이 조원주는 축축한 소리와 함께 피부를 핥는 탁익신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고 무언 법술을 외웠다. 탁익신의 몸에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름은 생과 사를 함께 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가진 다른 이 마저 목숨을 다하게 된다. 생기지 않을 수도 아니면 먼 훗날에 생길지도 모르는 이름을 조원주는 억누르고 있었다. 저만 죽으면 되는 일이다. 이름 때문에 탁익신 마저 곤경에 빠트려서는 안 됐다. 

 

 "탁대인···?"

 

 그때 백구가 치료제를 들고 방을 찾아왔다. 상처를 핥던 탁익신이 당황함에 물든 얼굴로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뒤로 물러섰다. 왜 상처를 핥고 계신 거예요?! 그리고 저 자는 대요괴에요! 이런 치료제 따위 필요 없을 거라고요! 탁익신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누워있는 조원주를 쏘아봤다. 들켰구나 싶어 조원주가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 헛기침을 해댔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가슴에 손을 얹고 법술을 하자 상체에 잔뜩 나 있는 상처들이 점차 아물어갔다. 너···! 어쩐지 피를 그렇게나 흘렸음에도 너무 멀쩡해 보인다 했다. 말할 기운이 있는 걸 눈앞에서 봤음에도 넘어가다니. 조원주가 어색하게 웃자 탁익신이 멱살을 잡았다. 아까 다 거짓말이지! 부정하지 않는 건 참이란 것이다. 탁익신이 길길이 날뛰자 백구가 대요괴가 사람을 속였다며 같이 주먹질을 해댔다가 뜬금없이 대인에게 혼이 나고 말았다. 내가 한다고 너까지 그러면 안 돼. 갑작스럽게 혼이 난 백구가 눈을 굴리자 조원주가 옷을 추슬러 입고선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백구가 저저 보라고 그냥 요괴도 아니고 아마 여우 요괴일 것이라 소리쳤다. 파리한 얼굴에서 홍당무가 되어버린 탁익신은 분한 마음에 한 대 때리려다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 급히 다녀온 탁익성과 영뢰와 함께 고획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상의했다. 

 

 "먹이로 유인하는 거야!"

 

 한참 이어진 상의 끝에 영뢰가 검지를 치켜들고 외쳤다. 그러자 백구가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었고 탁익성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다고 올 놈 같았으면 진작 잡았지! 영뢰는 이게 아닌가? 하고 읊조리다 설렁설렁 나오고 있는 대요괴를 향해 물었다. 

 

 "방법이 있어?"

 "영뢰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소."

 

 영뢰는 환하게 웃었고 탁익신과 탁익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먼저 탁익성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먹이로 유인하라니."

 "말 그대로 인간 아이로 고획조를 유인하는 거요. 지금 그놈의 목표는 인간 아이라는 점에 있으니까."

 

 자칫 실패하면 또 다른 희생자만 늘어날 테지만 지금 여기엔 탁익신과 대요괴 조원주가 있었다. 심지어 어린 산신 영뢰까지 있으니 해볼 만 한 유인책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을 도와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가 문제였다. 조원주가 골똘히 생각해 보고 있는 백구를 빤히 바라봤다. 탁익신의 시선도 절로 그리로 향했다. 한 동안 말 없이 가만히만 서 있자 탁익성과 영뢰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모두의 시선이 백구에 닿으니 답은 나온 것이다. 

 

 "잠시만! 잡혀 간 애들 나이가 전부 8살에서 9살이라며! 난 14살이라고!"

 

 백구는 어느새 탁익성의 어깨에 들춰 매진 채 밤길을 억지로 헤쳐가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조원주가 악기의 흐름을 읽었던 대나무 숲 바로 앞이었다. 14살이었지만 어른들 눈에는 백구가 한참 어려 보였다. 고획조 눈도 다름없이 분명 그리 보이리라. 급한 대로 숨을 죽이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더 어려 보이게 옷을 갈아입히고 난 뒤 길을 잃어버린 듯 헤매는 척 하기로 했다. 정말 홀로 남겨진 백구는 이 일이 무사히 끝나기만 하면 조원주를 흠씬 두들겨 패주리라 마음 먹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펄럭이는 소리가 숲 안에 울렸다. 새에게서 날법한 소리였으나 그 크기가 상당했다. 백구가 겁을 먹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섰다. 정말 무언가 등장이라도 했는지 숲에 있던 모든 새들이 저 멀리 달아나기까지 한다. 겁을 먹은 백구가 결국 참지 못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이 자리를 피해 보자 싶어 달리는데 순간 뒤에서 누군가 작은 몸을 낚아챘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자마자 눈앞에 커다란 날개가 보였다. 대요괴가 말한 고획조였다. 몸이 붕 떠지는 찰라 영뢰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결계로 막아섰고 탁익성은 올가미로 고획조의 발목을 묶어 끌어 당겼다. 그 품에서 겨우 도망친 백구는 운광검을 꺼내든 탁익신의 등 뒤로 숨었다. 영뢰가 그 모습을 보고는 잠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고획조는 새와 같은 높은 음을 내며 괴로워하다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어두운 숲속에서 조원주가 걸어들어오자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냈다. 

 

 고획조는 평범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괴하게 생겼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으나 눈에는 살기가 가득해 거부감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딨지? 탁익신이 운광검을 고획조에게 겨눈 채 물었다. 그러자 조원주가 이를 대신 대답했다. 고획조의 둥지를 찾아냈으니 걱정 마시오. 아이들은 안전하오. 다행히도 잘 찾아낸 모양이지만 이 요괴는 살려 둘 수 없었다. 조원주. 발이 묶인 고획조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그를 불렀다. 같은 요괴면서 어째서 그들을 돕는 것이냐. 어째서 우리를 죽이려는 거지? 난 내 새끼들을 되돌려 받고 싶을 뿐이야. 조원주는 고획조에게서 풍기는 악기 속에 느껴지는 이 기시감이 불쾌했다. 

 

 "인간을 헤치는 요괴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탁익성이 말했다. 그러나 곧 고획조가 소리쳤다. 내 새끼들을 데려가 죽인 건 인간이 먼저였다. 심장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내 새끼들을 데려가 탕처럼 고아 지 새끼들에게 먹였지. 이래도 요괴가 더 나쁘다 할 수 있느냐. 탁익신의 칼끝이 밑으로 조금 툭 떨어졌다. 인간과 요괴 그 누가 더 잔인하고 더 나쁜가. 

 

 "인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다고 네 새끼가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원수는 원수로 갚아서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너만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조원주가 말했다. 그러자 고획조가 눈물을 쏟으며 웃고는 탁익신에게 물었다. 원수의 말에 동의하시오. 탁대인? 탁익신보다 조원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탁대인의 대원수였다. 서늘한 밤 대신 봄이 되고픈 대요괴다. 봄이 되어 꽃을 피우고 환한 햇살로 냉기 어린 저 얼굴을 녹여주고 싶으나 자신에게는 오로지 악기와 업보뿐이 없었다. 그것이 못내 서러웠으나 서러워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가슴 뜨겁게 차오른 눈물을 쓰게 삼켜낸다. 

 

 "동의하지 않아."

 

 한참 뒤에야 탁익신이 말했다. 조원주가 그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계속 고획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넌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지. 조원주보다 더 악랄한 놈이다. 넌 네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인간 아기들을 납치해 먹이로 주었었지. 지은 업대로 받은 것이라 생각해라. 고획조는 이 마을로 오기 전 이미 수없이 악행을 저지른 바 있었다. 주변을 수사할 적에 들었던 바 있기에 망설임 없이 운광검을 휘둘렀으나 고획조의 눈에 이채가 도는 듯싶더니 발목에 묶인 줄을 끊고 공중으로 한 바퀴 날아 올라 그 칼날을 피했다. 탁익성이 한 번 더 묶어두려 했지만 실패했고 영뢰 또한 쉽사리 덤비지를 못했다. 날갯짓이 워낙 강해 온갖 낙엽들이 일어나 시야를 방해했다. 고획조가 단숨에 그들 사이를 파고들어 탁익신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으나 조원주의 우산에 가로 막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방어하기 위해 팔을 올렸던 탁익신이 제 앞을 가로 막고 선 조원주에 눈이 잠시 흔들렸다. 고획조가 악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탁익신이 운광검을 들었고 조원주는 주문했다. 굳어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아래로 떨어지는 사이 조원주가 몸을 비키자 탁익신이 운광검으로 고획조의 가슴 한가운데를 찔러 넣었다. 깊이 찔러 넣자 고획조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 서서히 가루가 되어 공중 위로 흩어졌다. 조원주는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요괴의 흔적을 지켜보다 순간 저에게로 흘러 들어온 악기에 몸을 움찔거렸다. 뭐지? 고획조의 악기가 조원주의 몸으로 마저 흡수된 것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집요사에서 그 수 많은 요괴들을 상대했을 때에도 자신에게 흘러 들어와 흡수된 악기는 여태 없었다. 누구도 보지 못했는지 이에 대해 말하는 이는 없었다. 조원주는 흡수된 악기에 대해 고심하다 이내 입을 다물기로 했다. 

 

 고획조의 둥지에서 발견된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각자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조원주였지만 사람들은 집요사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역시나 대요괴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다. 그들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과 대요괴는 다르지 않다고, 언제고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며 탁대인에게 부디 하루 속히 처단할 것을 촉구했다. 홀로 집요사의 정원에서 쉬고 있던 조원주는 집요사 밖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곧 눈을 감고 호리병에 든 옥고를 마셨다. 오늘 갑자기 흡수 된 악기 때문에 제 안의 기운이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옥고로 잠시 기운을 가라앉힌 그는 밤이 될 때까지 홀로 외곽 주위를 맴돌다 정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는 한 곳에 심어져 있던 커다란 복숭아나무에 못 보던 그네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탁부에서 보던 바로 그 그네였다. 조원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묻지 않아도 누가 가져다 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네에 앉아 본 조원주는 여전히 활용법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멈춰 있는 상태로 정원 한 가운데 자리한 연못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이미 상처가 아물고도 남았던 가슴에 손을 얹고서 좀 전의 일들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어째서 우리를 죽이려는 거지?' 옛 친구와 탁익신을 생각하느라 이 부분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살고자 하는 건 모두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편하여지려면, 탁익신이 평안을 찾으려면 악기로부터 태어난 요괴들은 모두 없어져야 했다. 악기로부터 태어난 요괴들로 세상의 저울이 조금 기울어졌다. 다시 평행선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마음은 괴로웠다. 헌데 고획조의 일이 너무도 쉽게 풀렸다. 쉽게 풀린 것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었지만 못내 이상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제 몸으로 악기가 흡수된 것도 이상하거니와 그렇게 쉽게 사건이 해결됐다는 것이 영 찝찝하다. 허술해도 너무 허술했다. 그때 그네가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란 조원주가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탁익신이 다른 곳을 본 체 무심한 얼굴로 그네 줄을 잡고서 밀어주고 있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앞뒤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구나. 가만히 있는 것보다 앞뒤로 움직이니 더 재미가 있었다. 조원주가 고맙다 전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탁익신이 멀찍이 서버린다. 저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듯, 이 그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단 어색한 얼굴로 비스듬히 서서 팔짱을 끼었다. 조원주가 뒤를 돌아 그 모습을 보고는 살며시 미소 짓곤 정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나와 그 요괴의 차이가 무엇이오."

 

 탁익신이 말이 없자 다시 질문했다.

 

 "내가 다쳤을 때, 왜 나를 구하려고 한 것이오." 이번에도 탁익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 답을 찾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조원주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를 돌아 볼 용기조차 없어서 잠잠한 수면만 내려다 보았다. 

 

 "내 눈에는 그저 다 같은 요괴일 뿐이다. 다만··· 칠정을 아느냐 모르냐에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넌 아직··· 아직 죽어선 안 돼."

 

 드디어 조원주가 돌아봤다.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돌아보자마자 탁익신과 눈이 마주쳤다. 빚을 갚으면, 내게 진 빚을 다 갚으면 그때 죽일 것이다. 그 빚을 갚으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형을 잃은 자에게 지은 빚이란 무게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조원주가 다시 쓰게 웃었다. 탁대인이 만족할 때까지 갚겠소. 절대 도망치지 않을 거요. 탁익신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며 미간을 좁혔다가 갑자기 그에게 복숭아 하나를 던져줬다. 아침에 아무에게 부탁했었던 복숭아였다. 지난번 잘 먹는 것을 보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가져온 것이었지만 탁익신은 그저 대요괴가 굶주림에 못 이겨 사람이라도 잡아 먹을까 걱정되어 주는 것이라 자신 스스로를 대변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에 조원주에게 말했다. 

 

 "네 몸은 네 스스로 지키거라. 대요괴면서 무슨···."

 "음? 나더러 인간을 헤치란 거요?"

 "그게 아니라 적당히···!"

 

 고운 얼굴에 화가 잔뜩 끼었다. 이제 그만 놀려줘야 될 것 같아 그 뜻 잘 알겠다 미소 짓자 탁익신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정원을 빠져나갔다. 피에 흠뻑 물들었던 조원주와 혀 끝에 닿았던 살결 때문에 탁익신은 그날 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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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주. 그래···. 그렇게 천천히 악기를 모으거라.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모르는 새 네 발목을 붙들 것이다."

 

대황 괴강곡에 봉인되어 있는 이륜이 각혈을 토하면서도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대몽귀리
익신원주
 

[Code: 58d7]
2024.12.24 2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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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미친 내센세오셔따 아니 잠깐 센세 미안해 숨좀 고르고 정독한다
[Code: c4f5]
2024.12.24 22: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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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센세 벅차올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고왔어 너무 좋다ㅠㅠㅠㅠㅠ 원주 익신 그리고 이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건지 기대되고 설레 그리고 원주가 네임 누르고 있는거 찌통이야 엉엉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나 여기서 그냥 죽을께
[Code: c4f5]
2024.12.24 22: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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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 선설리 후정독 센세오셨다ㅠㅠㅠ엉엉 내 크리스마스 선물ㅠㅠㅠㅠ
[Code: 8230]
2024.12.24 22: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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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흣 첫날밤을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아직은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은 탓...! 조원주 너무 처연하고 가여워ㅠㅠㅠ 그와중에 익신한테 네임 발현하면 죽을까봐 막고 있었던 것도ㅠㅠㅠㅠㅠ 부디 행복해지기를... 글고 와씨 이륜 강렬! 무슨 계획일까ㄷㄱㄷㄱ +센세 고마워!!!! 행복하다!!!!!
[Code: 8230]
2024.12.24 23: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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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리고 있었어.....
[Code: a345]
2024.12.25 09: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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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의축복과센세의개쩌는글빨이날행복라게해센세사랑해움쪽
[Code: 1f8e]
2024.12.25 13: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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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어!!!!!!!!!!!
[Code: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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