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ㅅㅌㅁㅇ] 탕비실에서 혐성상사 차 타준 것도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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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허니가 션의 밑에서 일한지 두 달 차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발생했다. 캐롤에게는 맡기면 당연히 해냈던 일들을 션은 허니에게 요구를 했고, 당연하게도 허니는 그것들을 해내지 못 했기 때문에 둘의 스트레스는 서로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었다.
"요즘 야근이 잦은 것 같던데."
"네."
"야근 수당 받으려고 그럽니까?"
"... 네?"
허니가 내온 서류 자료들을 책상 위에 툭, 하고 던지듯 내려 놓은 션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일한다고 티라도 내려는 건지, 다크서클이 내려와서 피곤해 죽겠다는 눈을 열심히 떠보려고 노력하면서 저를 보고 있는 꼴이 제법이었다. 션은 꽤나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을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을 일에 섞지 않았는데, 자신의 새 비서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이주 전, 급하게 잡힌 일정 때문에 나가던 와중 허니의 자리를 스쳐 지나가며 보인 모니터 안의 글이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허니는 함께 따라서 나갈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눈치를 채지 못 했지만, 션은 허니가 켜놓은 메모장에 적어 놓은 글을 그의 유별나게 좋은 시력으로 똑똑히 읽어냈다.
션 오프라이
성격이... 개판...
"허."
누가 봐도 자신의 욕이었다. 일정이 급했기 때문에 션은 별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고, 허니는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 했지만 그 다음주부터 그녀에게는 일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을 잘 못 해도 느리지만 일을 배워가고 있는 허니였기 때문에 션은 나름 그녀를 봐주고 있었는데, 그 글이 그의 인내심을 끊어먹고 만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난 일주일 간 집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겨우 씻고 옷만 갈아 입으며 거의 회사에서 상주하다싶이 자신이 하라고 시킨 업무를 겨우 해낸 허니의 모습이 션은 달갑지 않았다. 남들은 삼 일이면 해낼 양을,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해서 겨우 끝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일주일 야근을 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 앞으로 더 노력해서 일처리 속도를 빨리 하면...."
"아, 그럼 지금은 노력을 안 한거다?"
"그건 아닌데...."
허니는 허니 나름대로 억울했다. 전혀 전공이 아닌 일을 떠맡았지만! 물론 일하면서 션 오프라이를 육포보다도 더 잘근잘근 씹으며 욕을 해대고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악에 받쳐서 열심히 일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션이 제시한 일주일의 기한 내에 맞추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아직 오빠를 위해 기밀 정보도 제대로 빼내지 못 한 것만으로도 서러워 죽겠는데, 자꾸만 갈궈대는 션 때문에 허니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문제는 설령 이 일을 때려치고 나간다고 해도 후임이 없었다. 캐롤이 자신을 추천 해줬는데 이대로 일을 때려치면 그녀에게 악영향이 갈 것이 분명했고, 이제서야 조금씩 슬금슬금 자신이 얼마나 생각 없이 입사를 한 건지 깨닫고 있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회사에 남자 꼬시러 옵니까?"
"... 네?"
"틈만 나면 탕비실을 가고, 자리에만 없으면 남자랑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다양한 남자 직원들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층은 원래 조용했었다. 허니 비가 입사를 하면서, 어떻게 소문이 돌았는지 그녀를 한 번 보겠다고 괜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책 나오듯 오가는 남자 직원들이 늘었고, 그 때문에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던 이 층의 탕비실 역시 복작거리고 있었다.
허니 비가 불러온 변화가 당연하게도 반갑지 않았고, 무엇보다 다른 남자와 있을 때는 사근사근 눈을 접어가며 웃어가는 허니의 모습이 굉장히 거슬렸던 션은 결국 선을 넘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내뱉은 뒤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션은 허니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로 어깨만 들썩이며 씨근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미스 비. 방금 그건-"
"제가 바란 거 아니거든요!"
실수를 사과하려던 순간, 갑자기 허니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작은 몸에서 큰 소리가 나온 게 신기해서, 그리고 허니가 그런 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걸 처음 봤기 때문에 션은 당황하며 눈만 깜빡였다. 그러는 와중에 허니는 화를 내는 건지, 울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또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남자들이 말 거는 게 좋아서 그러고 있는 줄 알아요? 일터니까, 혹시 나중에 일적으로 부탁 해야 할 수도 있고! 그쪽 무서워서 말 못 하는 거 나한테 말 하니까 그런 거 처리하는 것도 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 미스 비."
"그리고! 일에서 실수한 것만 혼내요. 지금 저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거든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특히 남자들이 와서 추근덕대는 것에 관해서는 더더욱 억울하고 서러웠기 때문에 허니는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고 제 자리로 가서 제 짐을 냅다 챙겼다. 그런 허니의 뒤에서 자리에서 일어난 션이 그녀를 불렀지만, 허니는 끝까지 기특하게도 울음을 잘 참아내며 마지막으로 빽 소리를 질렀다.
"저 퇴근합니다!"
션을 두고 먼저 퇴근하는 건 처음이었다. 션의 일정이 곧 제 일정이었기 때문에 외부에 나가면 따라나가고, 퇴근 할 때 같이 퇴근을 하고는 했지만 허니는 오늘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일주일 간의 야근은 허니의 이성을 뒤흔들었고, 션이 들쑤신 감정은 요동 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쌩하니 퇴근을 해버린 허니는 그 길로 제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에게는 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 대학교도 졸업했고 이제 성인이니 일 년만 봐달라, 그런 갖은 애원과 부탁으로 겨우 자취를 하게 된 허니의 집은 어두운 동네에 있었다. 모은 용돈을 다 쓰지 않기 위해 가격을 따지면서 혼자 살 집을 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꽤나 어둡고, 허름한 동네에 머물게 된 허니였지만 그래도 집이라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니 눈물이 삐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윽, 흐어어어엉!"
망할 놈의 션 오프라이! 지가 얼마나 뭐가 잘났다고! 우리 오빠가 더 잘났거든?
엉엉엉 울어대며 허니는 높은 굽의 구두를 벗어 던지고, 욱신대는 발을 감싸고 있는 스타킹도 벗어 던졌다. 지나가는 흔적에 허물 남기듯 옷을 하나씩 벗으며 화장실로 들어간 허니는 작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콸콸 받으면서도 엉엉 울어댔다. 지난 두 달 간의 설움과 억울함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한 허니는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꿀꺽대며 마셨다.
"션 오프라이. 개자식...."
익숙하지도 않은 욕을 읊조리며 침대에 누운 허니는 겨우겨우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는 자신이 션 오프라이에게 무언가 화를 내고, 그가 굽신대며 제 화를 풀어주려는 꿈을 꿨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서 꿈에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깨어난 허니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는 그 난리를 쳤지만, 냉정한 사회인의 아침을 맞이하고 나니 후환이 두려워졌다. 나 출근 어떻게 하지?
"오늘 혐성질 더 심하겠지...?"
세수를 마치고, 거울 속에 아직도 부어 있는 제 눈을 보며 허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어쩌면 조금 더 잘해줄... 그건 내 망상이지, 망상!"
가방을 챙기고, 구두를 신으며 허니는 하늘이 뒤짚어져서 션이 출근을 안 했기를 빌었다. 출근을 안 했기를.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필요 없는 외근이라도 나갔기를. 그것도 아니라면 급한 일이 생겨서 해외 출장을 혼자서 갔기를.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띵-, 하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아직 대부분 비어 있어서 조용한 층의 복도를 걸어가고 사무실의 문을 여니 먼저 출근한 션이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돈 션이 소매를 정돈하며 허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좋은 아침이예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 어제 일은...."
"미스 비. 일단 가방부터 내려 놓으시죠."
또 도망치지 못 하게 하겠다는건가? 우이씽. 울상을 지으며 허니는 가방을 내려놓았고, 션은 몇 걸음만에 허니의 자리까지 왔다. 덕분에 바로 앞에서 션을 마주하게 된 허니는 가깝게 다가온 션의 시원하면서도 묵직한 향에 몸을 살짝 떨었다. 원래도 덩치가 큰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렴풋한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라는 건 오늘에서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 네?"
"어제 일은 전적으로 내 잘못입니다. 미스 비의 말대로 업무적인 부분에서만 질책을 해야 했는데, 어제의 발언은 온당치 못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사과의 말에 허니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션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약한 붓기가 있는 눈 안에 든 짙은 색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한가득 들어찬 게 보여서, 어쩜 저렇게 속이 보이는 투명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션은 옅게 제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꾹 참았다. 눈이 부어 있다는 것은 어제 자신 때문에 울었다는 것일테니까.
"오늘 오후에 외근이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사드리죠."
"네?"
필요 없는데요. 상사랑의 저녁이 일이지, 뭐....
달가워하지 않는 티가 팍팍 나는 허니의 모습에 션은 차분하게 말을 덧붙였다.
"초밥으로."
"... 초밥이요?"
헐. 나 초밥 좋아하는데.
갑자기 생기가 돌며 반짝이는 눈동자에 션은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꽤나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네, 초밥,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성공했고, 허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션의 앞에서는 긴장을 하고 주눅이 들었던 탓에 잘 웃지 않던 허니의 웃음을 보게 된 션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초밥 좋아해요."
"... 다행이군요."
그것 참. 다행이었다.
전에 당일치기로 출장을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함께 하게 된 식사 자리에서 식당 주인과 허니가 나누던 잡담이 우연히 들렸는데, 그 내용을 기억해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는 션이었다.
션의 기분이 조금 겨울의 끝자락에 접어 들었고, 허니의 눈이 조금 부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하루가 지나갔고, 둘의 외근도 별 탈 없이 잘 끝이 났다. 초반에 허니에게 운전을 시켜봤다가 할 일 많은 제 생을 종 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 션은 익숙하게 핸들을 쥐었고, 조수석에 앉은 허니는 조여오는 머리에 머리끈을 풀었다.
"이제 퇴근이니까 괜찮죠?"
"... 머리 푸는 것까지 나한테 허락 안 받아도 됩니다."
"그렇긴 해도요."
머리를 풀면서 풍기는 허니의 샴푸 냄새에 핸들을 쥔 션의 손등에 힘줄이 조금 솟아났다. 당연하게도 눈치를 챌 리 없는 허니는 그저 초밥 생각이 신이 났고, 둘은 션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에 금방 도착을 했다. 꽤나 고급 식당인 그 곳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안쪽에 있는 개인 룸을 안내 받은 두 사람이었고, 비록 션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여도 초밥 생각에 허니는 자꾸만 헤실헤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 했다.
"저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도 돼요?"
"내가 사죄하는 자리니까 아무거나 시켜도 됩니다."
"아싸. 나중에 비싼 거 시켰다고 일 더 주는 거 아니죠?"
메뉴판을 신나게 보다가도, 메뉴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눈치를 보며 묻는 허니의 모습에 션이 피식 웃었다. 사무적인 미소가 아닌 션의 미소는 처음 보기 때문에 허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션은 그럴 일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공과 사는 구분한다는 션의 말에 하긴, 그건 그렇지, 하며 납득한 허니는 눈을 반짝이며 먹고 싶은 메뉴를 열심히 시켜댔다.
"흐와아아.... 맛있겠다...."
허니는 워낙 귀하게 자랐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건 대부분 다 먹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가리는 것도 많았고, 불량 식품이나 패스트 푸드 같은 것들은 금지 되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완전히 평균에 속하는 건강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허니는 마음껏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었는데, 집을 나와 혼자 허름한 집에서 자취를 하며 사는 최근에는 그러지를 못 했다.
용돈은 아껴야 했고, 너무 급격한 지출은 집안에서 의심을 살 게 뻔했으니까. 그러다가 자신이 로이프 그룹에서, 그것도 션 오프라이의 개인 비서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집으로 끌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별다른 수확도 없이 그런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허니로써는 오늘 션이 사주는 식사가 당연히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으우으응, 맛있다."
"......."
"식사 안 하세요? 같이 먹어요. 어차피 사주시는 거잖아요."
앞에 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식사에 집중을 하던 허니는 문득 저를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고, 식사를 하고는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션이 묘한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음에 민망함이 몰려 왔다. 제 앞에 있는 접시들을 슬쩍 션의 쪽으로 밀어주자 션은 별다른 답 없이 초밥 하나를 집어갔다.
배가 조금 채워진 허니는 그제서야 션이 식사를 하고 있구나, 하며 멍하니 그걸 구경했다. 개인 비서고, 이래저래 일정을 많이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션은 식사를 참 깔끔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하고, 소리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하는 움직임은 느긋한 듯 하면서도 정확했다.
"... 더 시키고 싶은 거 있습니까?"
눈을 깔고 초밥을 바라보면서도 허니의 시선을 예민하게 눈치 챈 션의 물음에 허니는 괜히 제 옆에 있는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딱히 무언가를 더 시키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션이 식사하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시선은 초밥 쪽에 머물지를 못 했다. 괜히 뒷장을 뒤적이고 있으니 술 메뉴판이 튀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사케라고 적힌 이름과 그 옆에 있는 병 사진에 허니의 눈이 반짝였다. 몸이 약했던 과거 때문에 당연하게도 술도 금지 되었던 허니였다. 겨우 허락을 받고 먹었던 맥주는 쓰다고 퉤퉤, 뱉어 버리던 허니의 옆에서 칼럼은 귀엽다고 웃어댔었다. 그러면서도 네게 맞는 술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칼럼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허니는 사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메뉴판을 션에게 보여줬다.
"저 이거 시켜도 돼요?"
"... 사케?"
느슨하게 제 넥타이를 풀어내린 션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비서와 술자리는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술에 취하면 일이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아서 안 된다는 말을 하려던 션은 잔뜩 기대에 차서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보는 허니의 모습에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비서의 눈은 쓸데없이 솔직하고, 말이 많았다. 그래서....
"... 시켜."
"앗싸!"
자꾸 눈이 갔다. 결국은 허니에게 져버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션이 한숨을 다시 쉬었고,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허니는 신나게 사케를 주문했다. 그리고 등장한 사케에 오오오, 하며 눈을 반짝이고, 사진도 찍은 허니는 예쁜 잔에 사케를 따르고는 혼자 홀짝였다.
"으음?"
나쁘지 않은걸? 초밥은 맛있었고, 술 맛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싼 술이었고 상사한테 얻어 먹는 거였으니까. 얄미운 션 오프라이에게는 이 정도도 푼돈이겠지만, 뭐라도 뜯어 먹어 보자는 생각으로 허니는 오기로 사케 한 병을 다 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 허니가 성인이기 때문에 알아서 주량 조절을 하면서 마실 줄 알았던 션은 그런 허니의 속내를 모른 채 그녀를 말리지 않았고, 식사 자리가 끝날 때 즈음에 허니는 비워진 사케 두 병과 함께 이마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션이 계산서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고, 거기에는 풀어진 머리를 늘어트리며 제게 절을 하고 있는 허니가 있었다.
"미스 비."
"......."
"지금 취한 겁니까?"
"......."
"... 미치겠군."
답이 없다. 션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건 사죄의 자리였으니, 이 정도는 봐줘야겠지. 먼저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식탁과의 진한 박치기 흔적을 이마에 남기고는 똑바로 앉아서 입을 삐죽이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허니가 있었다.
"갑시다. 미스 비."
"... 션 오프라이?"
"... '션 오프라이?'"
"너어, 내 상사세요오?"
"네. 네 상사입니다."
역시 취했다. 똑바로 앉아 있길래 혹시나 술이 깼나, 싶었지만 헛된 희망임을 깨달은 션이 손을 뻗어 허니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아 이끌었다. 작은 몸은 휘청대면서 일으켜 세워졌고,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 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허니의 발목이 아작나거나, 다른 곳 뼈가 부러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션은 어쩔 수 없이 제 등을 내어줬다.
"으우으음, 이게 뭐지요오?"
"등입니다. 타라고요."
"업부바아? 졸업했거등요?"
잔말 말고 타라고 하려고 뒤를 돈 션은 눈앞에 들어오는 허니의 다리와 함께 치마에 잠시 몸을 굳혔다. 이대로 등에 업었다가는 안 그래도 달라붙는 치마를 입은 허니의 허벅지가 세상에 다 노출 될테고, 지금 이 순간에도 힐끔대는 시선들은 그걸 보고 침을 흘려대겠지. 혀를 한 번 찬 션은 제 자켓을 벗어서 허니의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 매주고, 그대로 안아 올렸다.
"으웨에?"
"집 주소는 말할 수 있습니까?"
"집, 집.... 나는 개똥벌레에에에!"
뜬금없이 개똥벌레를 외치는 허니 때문에 급하게 차문을 열고 허니를 조수석에 태운 션은 마찬가지로 운전석에 탔다. 겨우 식당을 벗어난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니, 안전 벨트를 하지 않은 허니가 보였다.
"미스 비. 집 주소 좀 말해 보시죠."
"이야아아아, 션 오프라이네에에?"
"미스, 비. 얼굴 좀 놔주-."
"내가요오, 지이이이이인짜 억울하거등요?"
안전 벨트를 해주려고 허리를 숙였더니, 그대로 얼굴이 붙잡힌 션은 불편한 자세로 허니의 투정을 들어줘야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겨우겨우 손으로 더듬어서 벨트를 채워준 션은 제 뺨을 쥐고 있는 허니의 손을 잡아 내렸다.
"내가요오, 사실은 원래 이 전공이 아닌데요오...."
겨우 운전석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던 션은 술에 취한 허니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에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술을 마신데다가 혹시나 밤 기운에 추울까 봐 시동을 키면서도, 차 안의 온도를 맞추면서도 출발하지 않은 션은 가만히 허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력서에서는 이쪽 전공이라고 적었던데?
"헙!"
션의 말에 허니가 제 입을 양손으로 꼭 막았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워서 션이 피식, 웃자 눈치를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허니가 조금 안심을 했는지 다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가 꼬오옥, 지이이인짜 이 회사에 입사를 해야해서...."
손을 꼬물거리며 말을 하던 허니가 이내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 잘려요?"
"......."
"저 진짜 잘려요오오?"
기겁하며 허니가 울먹이자 션이 손을 들어 젖어든 눈가를 쓸어줬다. 대체 자신의 새로운 비서는 어디까지 자신을 놀라게 하려는 걸까.
일의 속도가 느려서 놀라웠고, 피리 부는 사나이마냥 회사의 온갖 남자들의 시선을 이끌어대고는 본인은 모르는 척 해서 놀라웠고, 그 모든 게 억울하다고 해서 놀라웠고, 이제는 사실 회사에 입사하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불고 있었다.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느린 일의 속도도, 어리버리함도. 비전공자임을 감안하면 자신이 여태까지 맡겼던 일과 업무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빠른 것이었다. 일주일의 밤샘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임을 알게 된 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 잘려."
"진짜요오?"
"그래."
"다행이다아.... 션 오프라이가 성격이 나쁘기는 해도오, 쓰레기는 아니거든요오...."
"...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앞에 두고도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듯이, 비밀인 양 속닥거리는 허니가 헤헤 하고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또 어이가 없어서 션이 웃어 버리자 허니가 또 웃었다.
"그래서 집 주소는?"
"나는 개똥벌레에에에!"
아무래도 집 주소를 알기에는 그른 것 같아서, 션은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움직였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제 옆자리에 앉은 비서는 그간의 설움을 쏟아내고 있었다. 신경 써줘서 차를 타줘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안 한다, 맨날 나만 인사 먼저 한다, 어쩌고 저쩌고.
작은 몸에 쌓인 억울함과 설움이 어찌나 많은지, 집에 도착해서 허니를 손수 안아 들어서 션이 집 안에 들어갈 때도 쫑알대는 입은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도 간간히 칭찬의 말도 들려오기는 했다.
진심으로 일을 꼼꼼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존경을 하기는 한다, 근데 그래도 성격이 그러면 안 멋있지, 그치만 의외로 섬세한 부분까지 공과 사를 구분해서 멋있는 것도 같다, 잘나도 잘난 척 안 하는 점도 괜찮은 것 같다, 어쩌고 저쩌고.
"허니 비."
"네엥."
"내일이 되면 후회할 말은 안 하는 게 좋을텐데."
"무슨 말이요오?"
글쎄.
손님방 침대에 눕혀 놓은 허니가 꼬물대며 눈을 맞춰 왔고, 션은 흐트러진 허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줬다. 얌전히 그 손길을 받던 허니는 금세 잠이 들었고, 그 모습을 보던 션도 자신의 방으로 가서 씻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아침이 찾아와도 쿨쿨 자고 있는 허니의 침대 옆 탁상에 션은 쪽지를 하나 남겼다.
- 앞으로 사케는 금지.
"......."
그 날 아침, 얼굴을 간질이는 아침 햇살과 상쾌한 새 소리. 그와 함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와 함께 낯선 곳에서 깨어난 허니는 빙빙 돌아가는 눈으로 협탁 옆의 쪽지를 읽고, 집 안에서 나는 향과 누군가를 연상 시키는 인테리어. 끝으로 옷장에 걸려 있는 낯익은 정장들을 보고 기겁을 하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리 빠르게 씻어도 이미 늦었다. 갈아 입을 옷도 없었고, 그렇다고 션의 정장을 훔쳐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대충 구겨진 부분만 수습을 하고 집을 달려나왔다.
"지금이 대체 몇 시입니까."
사무실에 도착을 하자마자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서늘한 시선과 날카로운 말에 허니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부터 해야했다. 어차피 같은 집이었으면 깨워주면 덧나냐,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그런 주제 넘는 '부탁'을 하기에 상사는 너무... 친절하지 않은 편임을 알았기 때문에 허니는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출근을 해서 정신 없이 급한 업무들부터 마친 다음 익명 사이트에 울고 싶은 제 마음을 적어 내렸다.
[ㅅㅌㅁㅇ] 혐성상사 집에서 출근했는데 나 어캄??
https:.//hygall.com/123456789 2024.11.04 20:17 view 29
나 진짜 ㅈㄴ 망한 것 같음....
우리 상사가 성질 개판이거든...? 물론 내가 실수를 많이 한 것도 있긴
한데 신입이니까 당연히 실수 할 수도 있는 거고!!! 사과도 했고
열심히 내 실수 내가 커버치려고 하고 있는 와중이었거든...
아니 어쨌든 상사가 웬일로 저녁 사준다고 하는데 초밥 얘기를
하더라고? 초밥은 못 참잖아. 이 참에 비싼 거 시켜서 뽕이나
뽑아버리자, 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사케도 있길래 나 사케 한 번도
안 마셔봐서 궁금해하니까 시켜주길래 먹었는데 그 뒤로 필름 끊김.
근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내 집은 아니고... 누가 봐도
그 상사놈 집인데다가 쪽지도 있더라고...? 쪽지 내용은 일단
중요한 게 아니고 헐레벌떡 출근했는데도 지각이라서 또 깨짐 ㅠㅠㅠ
근데 문제는 내가 어제 필름 끊겨서 무슨 말을 했는지,
왜 상사 집에서 잤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나 어캄...????
🟩 북맠 ⭐ 추천0 🟥 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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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ㅇㅇ📱
일단 나중에 죄송하다고 비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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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다시 상사 집에 가면 기억이 떠오를지 모르니까 상사 집에 가자
[ Code bngbng ]
너붕션오 션오너붕 션오프라이 허니 션오프라이너붕 너붕션오프라이
#혐성상사션오너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