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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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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했던건 이런게 아닌데.”

“작업 시켜달라면서요. 이게 작업 아니예요?“

 

인두기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복잡한 전선은 그의 머릿속처럼 얽혀있었다.

 

수십, 수백번 만들었던 장치였다. 휴가 만든 교란 장치는 현장에서 실패한적이 거의 없어 작업할때마다 누구든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정작 기술자는 훌륭하게 완성된 장치를 내팽개치고 싶었다.

 

”이건 그냥 뒷방 노인 취급하는거잖아.“

 

라이언은 휴가 만들어둔 다른 장치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굳이 그가 있어야할 필요는 없었지만, 라이언은 휴 주변은 정신 사납게 맴돌았다.

 

“당신이 잘하는거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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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안경을 벗고 한숨을 쉬었다. 오랜 시간 정교한 작업에 집중한 나머지 눈썹 위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이 침침해져서 예전같지가 않아.“

 

이러다 혹시 라이언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휴가 떨리는 손을 인두기를 조절하며 감췄다.

 

그는 자신의 손기술이 예전만큼 정교하지 않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불안은 머릿속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예전의 모습에 비해 현재의 기술자는 한없이 초라했다.

 

“노안 온거예요? 섹시해라..“

 

라이언이 휴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두툼한 가슴을 쥐었다. 휴는 질색하며 라이언의 손을 치웠다.

 

”이것만 하는건 지루해한다는걸 잘 알잖아.“

 

어느새 라이언이 휴의 몸을 원할때마다 아무렇게나 취하는게 익숙해졌다.

 

“나랑 하는게 지루해요? 매일 밤마다 얼마나 애절하게 울어대는데.”

“하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 라이언,”

 

라이언이 다시 목덜미에 고개를 박으며 가슴을 움켜쥐자 휴가 몸을 거칠게 떼내고 뒤돌아섰다.

 

“현장에는 언제 데려가줄건데?“

“위험해요. 당신 나온지도 얼마 안됐는데.“

“내가 언제까지나 네 말에만 휘둘릴것같아? 내가 정말 네 장난감이라도 되는줄 알아? 이건 아니잖아!”

 

답답한 나머지 휴가 소리를 지르자 순간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라이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휴는 그 형형한 눈빛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 끝을 바라봤다.

 

격해진 감정을 추스리며 휴는 마른 세수를 했다.

 

”은행 작업만 안하면 되는거 아냐? 어차피 선두에 설 일도 없을텐데.“

”그래요?”

“이 작업 말고.. 다시 한번 제대로 하고 싶단 말이야.”

 

라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휴가 하는 말을 어린아이의 투정쯤으로 받아들이는것같았다.

 

“현장에 데려가주면 뭘 해줄건데요?“

 

그 말을 하며 라이언이 눈을 번득였다. 먹잇감을 가둬놓고 가지고 노는 고양이 같았다.

 

“그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싶은지 보여줘야죠, 당신은 창부 일도 잘 하잖아요.”

 

휴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라이언의 고간에 얼굴을 묻은 그는 이로 슬라이더를 물고 지퍼를 열었다. 그의 입술이 차가운 금속에 닿는 순간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날카로운 반감이 일었다. 라이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어느새 원하는걸 대가로 몸을 바치는게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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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곧 돌아올테니.“

 

라이언이 휴의 뺨에 입을 맞추고 문을 잠궜다. 휴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차 운전대 위에 얹었다. 그는 집 지키는 개처럼 차 안에서 나머지 작업 팀을 기다렸다.

 

현장에 돌아오기는 했으니 라이언은 약속을 지킨 셈이다.

 

휴에게 돌아가는 일을 현저히 줄였으니 일손이 부족해졌다. 라이언은 스스럼없이 다른 동업자들을 부르고 자연스레 작업 분야를 바꿨다. 기술자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아니라 보통 힘을 쓰게 되거나 특정 타겟들을 위협하는 작업들이었다.

 

이러면 경찰이나 연방수사국에서 관심을 가질법도 한데, 라이언은 몸을 사리지 않고 작업을 끊임없이 해냈다.

 

매끄럽게 일처리를 하던 라이언은 약속을 지키려는듯 휴를 데리고 나와 저 멀리 안전한 차 안에 처박아뒀다. 휴가 나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망을 봐주거나 원격으로 경비 시스템을 교란시켜주는 시시한, 중요하지 않은 일들뿐이었다.

 

휴는 조그마한 모니터 앞에 웅크려 앉아 여러 카메라를 돌려가며 작업 동선을 살폈다. 그의 눈이 바쁘게 돌아가며 현장을 주시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냈다.

 

라이언이 많이 성장했다는건 빈말이 아니었다. 무섭게 세력을, 실력을 키운 그는 다소 무모한 계획이더라도 굉장한 추진력과 즉흥적인 유연성으로 자유자재로 작업을 마무리하는게 익숙해보였다. 기술자가 어설프게 돕는게 아니라 거의 기술자 없이 작업을 하기 시작하자 그의 냉정함과 무자비함이 더 돋보이기 시작했다.

 

라이언의 수법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이건 저렇게 하는게 아닌데..”

 

그럼에도 차이나는 연륜과 경험에 휴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는 조언, 이미 뒷전이 되어버린 기술자는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뒀다. 자기 자신은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걸까.

 

가만히 차 안에 기다리고 있자 라이언이 부른 동업자들이 문을 열고 탑승했다. 그들은 휴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작업을 하나 둘 끝내고 점차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갔다. 그들은 휴의 몸을 눈으로 끈적하게 훑었다.

 

“아저씨, 이건 뭐야?”

 

장난기가 돈 동업자가 휴의 뒷목을 쓸자 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고쳐 매며, 차마 가려지지 않는 목의 얼룩덜룩한 자국을 숨기려 했다.

 

“왜, 이걸로는 돈이 안되서 몸도 팔아? 기술자로는 시원찮으니 다른 재능도 발휘하나봐?”

 

동업자는 가만히 입맛을 다셨다. 휴는 그들의 비웃음과 희롱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저 비웃음을 싹 지워버릴까,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들을 노려봤다. 이미 자신이 예전같이 않다는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사고치면 안된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이 역할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른 동업자가 그를 저지했다.

 

“레이놀즈가 끼고 살던데, 더 긁지 마.”

“그럼 그냥 첩 아니야?”

 

동업자들은 그들끼리 낄낄거렸다. 휴가 들어도 상관없다듯 더 큰 소리로 희롱했다.

 

“그렇게 안봤는데, 늙은이 취향인가봐.”

 

그를 희롱하는 발언에 휴는 그저 눈을 굴리고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창 밖을 응시했다. 그는 자신을 타이르며 손을 꼭 쥐었지만, 손 끝에 남아있는 미세한 떨림이 그가 느끼는 수치심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일만 잘 한다면 상관없을 발언들이었다. 저번에 쓸데없는 행동에 시간을 끌어대던 저질 동업자들이 아니라 이번 인물들은 각자 할일만큼은 책 잡을 일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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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그 은행 작업은 한번 쓰고 버리는게 맞았다. 라이언은 그때부터 휴를 가두려고 작정했던게 분명했다.

 

 

 

 

그가 다시 가게에 찾아온건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밤, 휴는 다시 꽃집을 찾았다. 다시 가게로 돌아오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차마 치우지 못했던 가게는 어느새 깨끗하게 치워져있었지만, 주인이 돌보지 않아 꽃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다. 한때는 싱그럽게 생기 넘쳤던 공간에 죽은 공기가 흘렀다.

 

시키지 않았던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비에 젖은 귀퉁이를 살짝 뜯어보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섞여있었다. 그의 물건 하나 하나에 오래 전 묻어뒀던 기억들이 다시 파헤쳐졌다.

 

하나같이 가족들과 있었을때 마지막으로 봤던 물건들이었다. 오래 전 애들에게 사줬던 장난감이나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가 아끼던 남방. 그 남방을 쥐는 순간 가족들과 함께 했던 장면들이 눈 앞에 스쳐지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물건들이었지만 이런 추억은 전혀 반갑게 다가오지가 않았다. 해외로 떠난 발송인에, 교도소에 들어간 수취인에, 엉망인 우편 관리에 시간을 잃어버렸을뿐이었다. 늦게 도착한 이 소포는 애써 덮고 있었던 상처를 다시 고통스럽게 후벼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질러진 잡동사니 상자였지만 그 상자는 휴를 다시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지금 그에게 남은건 더 이상 돌아갈수없는 기억들뿐이었다.

 

빗물에 젖어 흐려진 편지 하나가 나왔다. 낯익은 글씨체는 여러 차례 번져 거의 읽기 힘들었지만, 익숙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누군가가 자기를 찾아왔었고, 구질구질한 자초지종을 알려줬다, 외국에 나가서 다 잊고 살테니 두번 다시 찾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건 가족들이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 보내는거겠지.

 

‘다시 찾지 말라’는 말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를 무너뜨렸다.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던 애써 부인하는 사실을 그가 제일 약해져 있을때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간단한 설명이 담긴 편지는 그의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짓밟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였다. 어쩜 이렇게 미련하고 바보같을수가 있을까. 하지만 더 이상 망가질 곳이 없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전달된 택배 하나는 정말 기댈곳 하나 없는 그의 처지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끝없는 수렁에 떨어지는 느낌에 그는 휘청거렸다. 그는 정처없이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방울들이 섞여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와 함께 터져 나오는 그의 목놓아 우는 소리는 굵은 빗줄기에 삼켜져 아무에게도 들리지도 않았다.


모든게 끝났다. 더 이상 붙잡을 것도, 되돌릴 수도 없는 절망 속에 그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는 처음으로 완전한 절망 속에 자신을 잃어버렸다.

 



놀즈맨중맨

빡대가리라 늦음 미안 대가리 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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