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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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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은 저녁이 다가올 수록 긴장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고양이 밥 줘야 해서. 우리 집으로 갈래요? 하고 물었다. 긴장한 탓에 말이 빨라져 알아듣는 시간이 조금 걸린 건지, 아니면 망설인 건지 모르겠지만 허니도 잠시 망설였다가 끄덕거렸다.


반면 허니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낯선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만난지 이제 겨우 24시간 남짓 된 스완을 믿은 이유는 간단했다. 신원이 증명된 사람이고, 어제부터 줄곧 본 스완은 나쁜 사람 같진 않았고, 무엇보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확률은 적었다.



"... 친구나, 가족이나...  뭐 다른 사람한테 나랑 같이 있다고 말 안해도 돼요?"



"왜요? 나한테 나쁜 짓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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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나는 허니한테 만난 지 얼마 안된 낯선 남자니까요."



"계속 낯선 남자였으려면 스완도 나한테 명함도 주지 말았어야 하고, 애초에 나랑 경찰서도 가면 안됐죠. 그리고 스완도 내가 연쇄살인범이면 어쩌려고 집에 막 오라고 해요? 독신남성만 타겟으로 하는 무서운- 그런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리고 나 운동선수에요, 팔 힘 장난 아니라고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저에게 대꾸하는데, 무섭지도 않고 귀여워서 스완은 웃음을 터뜨렸다. 허니에게 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다. 어제 경찰서에서부터 신원 증명이 됐고, 저가 속한 발레단에서 준, 잘 쓸 일이 없는 명함도 줬고... 무엇보다 이렇게나 칠렐레 팔렐레 내가 너한테 호감이 있다는 얼굴 자체가 미스였다.



"우리 최소 친구 아니에요? 나이는 내가 쪼끔 더 어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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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쪼끔이 아닐걸요."



 "뭐야, 사람 보고 얘기해야지. 왜 고기만 보고 이야기해요."



나이 이야기를 하자니 양심이 찔려서 눈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스완은 옆에서 허니가 종알거려도 한참 고기만 들여다봤다. 그런 게 서운했는지 팔을 잡더니 제 쪽으로 당기는 허니였다. 



"아잇, 진짜. 이봐요, 무슈. 사람 눈을 보고 말해야죠."



"... 깜짝아. 팔힘은 진짜, 쎄네요."



"그러니까 왜 사람 눈을 피하면서 중얼거려요, 신경 쓰이게. 무슨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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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나이차가 조금이 아닐 거라고요. 나는 완전 아저씨인데, 허니는 거의 어제 태어났잖아요. 양심에 지금 바늘 백개 꽂은 거 같아요."



괜스레 툴툴거리는 모습에 허니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제 그렇게 여우짓을 할 때는 언제고, 어쩐지 묘하게 거리가 생긴 것 같더라니. 어제 기절한 저와 달리 스완은 나이를 찾아봤나 보다. 얼굴은 크게 차이 안 나보이는데.



"어제 나 검색해봤어요?"



"... 금메달리스트인데 내가 너무 모르면 실례잖아요. 난 올림픽 시즌에 공연 준비하느라 경기 하나도 안 봤단 말이에요. 양궁은 더더욱 프랑스가 기껏해야 은메달일 거니까 더 안봤죠."



"나도 발레 잘 모르는데 뭐 어때요. 세상에, 그래서 계속 눈 피한 거예요? 내가 지금 애기 데리고 하루종일 뭐하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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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아니고..."



세상에, 이 아저씨 너무 귀엽네. 양심도 있고, 수줍음도 타고. 허니는 딱 그정도만 생각했다. 어제 스완이 여우짓하던 순간부터 저랑 나이차는 좀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성으로는 생각이 잘 안됐고, 그냥 친구 정도는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비행기로 꼬박 열네시간이 걸리는 나라에 사는데, 우리가 뭘할 수 있겠나. 그 모든 걸 계산하는 순간부터 저가 이미 스완을 이성의 범주에 넣어버렸다는 건 전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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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먉."



그래서 허니는 또 저가 와인에 약하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래서 스완이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와인을 꽤나 빠르게 해치웠다. 뿐만 아니라 알리제가 너무 귀여운 탓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낯선 사람일텐데도 알리제는 허니의 무릎에 앉아 허벅지에 꾹꾹이를 하기도 하고, 제 냄새를 묻히기까지 했다. 둘이 하도 영혼의 단짝처럼 굴자 스완은 어이없어 했다. 알리제가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 그리고 저렇게 알리제처럼 냅다 거실에서 잠들어버리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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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는 제 얼굴을 토독,톡, 치는 뭔가에 눈을 떠보니 알리제가 앞발로 제 얼굴을 톡톡 건들이고 있었다. 은은한 달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알리제의 눈에 허니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제 몸 위에는 도톰한 담요가 덮인 것도 모자라 베개도 베고 있었다. 이 아저씨 유죄인간이네. 여전히 저를 관찰하는 고양이에게 알리제, 하고 부르자 대답하듯 알리제가 먉, 하고 울었다. 귀여워. 허니가 제 팔을 툭툭, 치자 알리제가 팔을 베고 누웠다.



이봐 아가씨. 이모가 와인을 신나게 마시면 네가 말려야지, 꾹꾹이하면서 더 부추기면 어떡해.
- 먀옹.
이모는 비싼 돈 내고 빌린 집이 따로 있어. 그리고 이렇게 어, 외간 남자 집에서 자면 안된다고. 이모랑 아빠는 친구 1일차란 말이야.
- 먀아아오.
알았어. 솔직히 너네 아빠 좀 귀엽긴 해. 근데 이모도 이제 아무나랑 연애하기 싫어. 좀 진득하게 오래 만나고 싶다고. 낯선 이방인과 불타는 그런 거 좀 힘들다고. 대신 낯선 이방인과 오래 정착하기, 이런 건 할 수 있어.
- 먉.
너네 아빠 괜찮은 아저씨야? 너 밥은 안 굶기지? 건강하고? 너는 건강해보이는데 본인이 너무 말라서 좀 걱정돼. 뭐, 잔근육은 좀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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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저렇게 둘이 쫑알거리는 거야..."



한편 자다 목이 말라 잠이 깬 스완은 제 방에서 본인 나라 말로 떠드는 한국 사람과 제 말로 떠드는 프랑스 고양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둘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빼꼼 문을 열어보니 제 아빠에게도 가끔 까칠한 저희집 고양이가 허니 팔을 베고 누워 뭐라고 대꾸하고 있었다. 둘이 뭔데. 오늘 처음 본 거 아닌가. 



알리제 아를로, 너 이렇게 말대꾸하라고 너네 아빠가 가르쳤지. 나 못 나가게 하라고.
- 먕.
어허, 이제 보니까 아주 작당을 했네. 웃겨, 아주. 귀여우면 다야?



물은 아무래도 대충 자기 전에 받아둔 미지근한 물로 마셔야겠다. 뭔지는 몰라도 물 좀 뜨러 나가자고 방해하기에는 알리제가 허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괜스레 발레단 단원 테오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물 키우는 사람은 함부로 만나는 거 아니라고. 헤어지면 그 집 동물이 너무 보고싶은데 볼 수가 없다고.





... 뭐 허니가 알리제한테 정들어서라도 저에게 더 호감이 생기면 좋은 것 아닌가. 난 이제 양심 같은 거 없다. 스완은 누워서 어느새 거실에서 잦아든 대화에 다시 눈을 감았다.


 





스완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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