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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은 집에 돌아와서 진한 현타를 느꼈다. 맘에 든다고, 내가 이렇게 마구 들이대던 사람인가? 아까 코를 몇번 찡끗거렸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첫인상이 맘에 든 건 사실이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가감에 있어 오래 두고 지켜보거나 그럴 상황이 아니면 떠나가도록 내버려두던 타입인 저가, 아까는 누가 채가기라도 할 듯이 들이댔다. 내가 했나 보죠? 지랄이다, 진짜.
금메달리스트인 것도 못 알아봐서 실망한 건 아닐까. 황급히 인터넷에 검색해본 이름 밑에는, 지난 올림픽 우승 이력이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저와의 나이차였다. 루이와 있는 내내 말이 안 통하는데도 차분하게 유지하고 있고, 저녁을 먹을 때도 잘 들어주고 해서 저보다 열살 가까이 어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또래만 만나왔던 터라, 더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외국인. 허니도 저를 검색해보면 어떡하지. 나이 많은 아저씨라고 싫어하는 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서도 떨쳐지지 않는 고민에 스완은 면도를 깔끔하게 했다. 머리도 깔끔하게 빗어넘기고, 단정하게 입었다.
"Bon jour, Monsieur. 잘 잤어요?"
"Bon jour, madam. 잘 잤어요. 허니도요?"
허니는 끄덕거렸다. 저녁에 먹은 와인 탓에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기절했다. 설렐 틈도 없이 잠들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제보다 묘하게 더 깔끔하고 차분한 스완을 보며 갸웃하다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스완을 따라다녔다. 크로와상이 맛있어서 눈이 휘둥그레진 허니를 보고 스완은 그제야 긴장이 좀 풀려 웃음을 터뜨렸다.
"와, 진짜 맛있다."
"아침부터 블랙커피 괜찮아요?"
"넵. 스완은 안 더워요?"
어린 친구는 다른가... 스완은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담아다가 쪽쪽 빨고 있는 허니를 보고 속으로 나이차를 다시 생각했다. 양심이 콕콕 찔려오는 기분이었다. 아침이라 살짝 부었는지 더 어려보여서. 어제 본 출생연도가 허니 이마에 써진 기분이었다.
"아직 아침엔 좀 추운 것 같아요. 허니도 오전까지는 겉옷 입고 있어요."
"네에. 아, 맞다. 스완은 언제까지 쉴 수 있어요?"
"다음 공연 준비 전까지? 이번달 말까지는 쉴 수 있어요. 허니는 왜 더울 때 왔어요? 친구들이랑 날씨 좋을 때 안 오고."
"아, 아무래도 날씨 좋을 때는 대회가 많아서. 올림픽 때는 메달 땄더니 끝나고 바로 가서 방송촬영이 많았고요.. 그냥, 꼭 혼자 와보고 싶어서요."
허니가 빙그레 웃었다. 아, 생각해보니 친구들이랑 있었으면 저도 허니를 못 만났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오늘은 로우번으로 묶은 머리에 제법 단정하고 또 제 나이처럼 보였다. 미술관까지 가는 내내 허니는 조잘조잘 떠들다가, 갑자기 또 어색하면 입을 다물다가를 반복했다. 말을 이어나가다가도 어색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표정에 모두 드러나는 게 귀엽긴 한데, 귀여운 게 다인가? 왜 제 마음이 이렇게나 쏠리는지 스완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한편 허니는 어제 잠들어버린 제 자신을 탓했다. 발레 조금이라도 찾아봤어야지, 수석 무용수였다면 스완에 대한 기사도 있었을 텐데. 스완은 게다가 제 이야기도 잘 들어줬다. 조잘거리는 제가 머쓱해질 정도로.
"스완은, 어... 혼자 살아요?"
"네. 부모님은 은퇴하고 다른 곳에 계시고, 혼자 파리에 남았어요."
"헉, 외롭지 않아요? 저는 선수 숙소에서 살아서... 방만 혼자 쓰는 거여도 가끔 좀 외롭던데."
"같이 살 사람이 없거든요.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하거나, 파트너가 있거나... 그래도 집에 고양이는 있어요. 알리제라고."
고양이...! 외마디 비명처럼 내뱉더니, 엄청 기대되는 표정으로 사진을 보여달라고 조르는 게 귀여웠다. 미술관 코앞에 도착한지라, 이따 나와서 보여주겠다 하니 입술을 비죽 내밀다가도 알겠다며 끄덕거렸다. 관람하는 내내 허니는 말 잘듣는 학생처럼 차분하게 스완의 설명을 들었다. 끄덕끄덕, 어제와 달리 묘하게 더 순해보이는 얼굴이 온통 저만 쳐다봐서 황급히 눈을 피할 때도 있었다.
"왜 오르세 미술관이에요? 루브르도 있는데."
"아, 어렸을 때 삼촌이 사준 동화책이 있는데. 오르세 미술관에 관한 거였거든요. 그래서 꼭 언젠가 오려고 했어요."
"이렇게 왔네요."
"그러게요. 스완이랑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둘이 오니까 좋네요."
"... 그러네요."
말을 듣는 스완의 귀가 화르르 타듯 붉어졌다. 게다가 작품을 관람하는 허니의 사진을 몇 개 찍어준 걸 보여주던 참이라, 허니는 스완에게 꽤나 가까이 붙어있었다. 아직 솜털이 가시지도 않은 얼굴이 보일 정도, 딱 그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던 터라 갑자기 확 고개를 든 허니 덕분에 스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허니는 제 사진을 찍어주는 스완을 볼 때마다 머쓱하게 웃었지만, 뒤로 갈 수록 자연스럽게 웃었다.
"나 이제 고양이 사진도 보여줘요."
"데려온 지 얼마 안돼서 몇장 없긴 한데... 여기요."
검은 아기고양이를 보고, 허니는 앓는 소리를 내며 화면에 들어갈 듯이 굴었다. 귀여워, 를 대체 몇번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귀여운 건 본인 같은데. 알리제? 엘리제를 위하여, 할 때 똑같은 이름이에요? 하고 물어오기도 하고.
"... 나중에 고양이 보러 한번 와요."
"나중에, 언제요? 진짜 가도 돼요? 빈말 아니죠?"
"... 그럼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오늘이라도 오겠네."
"그래도 돼요?"
"..."
"불편해요? 이제 겨우 두번째 보는 건데 아무래도 집 초대는 좀 그렇죠? 그럼, 어, 내 숙소부터 올래요? 나 가정집 빌린 거라서 요리도 할 수 있거든요. 엄청 잘하진 않는데, 그래도 간단한 건 해줄 수 있는데. 들어갈 때 장봐서 들어가요."
"집이요?"
"점심도 식당에서 먹고 저녁도 식당에서 먹으면 좀 과하지 않아요? 집이 더 과한가? 우리 이제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 그래요, 좋아요."
허니가 잡고 있는 제 팔에 온통 신경이 쏠려서, 스완은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스완너붕붕
스완아를로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