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날조 캐붕 주의
전편 : https://hygall.com/596216351
“하치가 다들 회의실로 모이래!”
JJ가 불펜의 동료들에게 급하게 말을 전한 건 매일 10시에 하던 브리핑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그들의 협조가 한 시라도 급한 상황이었기에 요원들은 별 다른 불평도 없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조금 더 먼 가르시아까지 부랴부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JJ가 수사요청을 한 경찰서로부터 전달받은 사진들을 모니터에 띄웠다.
“LA에서 5일 간 3명이 살해됐어요.”
“경찰 측에서 연쇄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신들의 상태가 동일해서요.”
JJ가 하치너의 질문에 대답하며 리모컨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각자 다른 곳에서 발견된 3구의 시신들은 모두 가슴팍에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다만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자상이야. 복부를 노렸고, 팔과 어깨는 방어흔일 거야. 모두 열 번 이상 찔렸군. 원한에 의한 건가? 가르시아, 피해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모든 시신들의 상태가 동일하지는 않아요. 첫 번째 피해자는 오히려 저항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아요.”
“연쇄살인의 경우 살인을 거듭하면서 더 능숙하게 성장하는 게 일반적이지. 하지만 이 언썹은 그렇지 않아. 여전히 공격에서 초조함과 서투름이 느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은 남아있고. 그는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 시신의 옷매무새와 자세를 가다듬는 건 보편적인 반응이야.”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확인해보자고. 30분 뒤에 출발하지.”
LA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는 그 사이 재빠르게 피해자들의 정보를 찾아낸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피해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점이 없어요. 3명 다 성별도, 인종도, 직업도 다르죠. 다들 범죄 기록도 없고, 가족 구성도 달라요. 사는 곳이 그 근처라는 점만 제외하면요.”
“무차별적인 살인으로는 보이지 않아. 충동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언썹이었다면 시신에게 그런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을 거야.”
“우리가 모르는 공통점이 있겠지.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어때?”
“어— 알아볼게요.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그동안 우리는 첫 번째 피해자에게 좀 더 집중하지. 어떤 트리거 때문에 첫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파악하면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거야.”
“좋아요. 첫 번째 피해자, 리타 레빙턴은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했네요.”
“그녀는 의료자격증이 있는 직원이었어요.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요. 이게 특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접수 혹은 수납. 환자가 치료를 받기 전 상담을 하는 코디네이터 업무를 주로 맡았던 것 같아요.”
동료들의 의견을 들으며 빠르게 파일철을 넘기던 하치너의 시선이 문득 허니에게 향했다. 첫 번째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이력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물론 살인사건을 대하면서 밝은 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하치너는 그녀의 침잠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비. 알아낸 게 있나?”
“…꼭 이 피해자에게 맞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저같이 펜들턴 기지에서 복무했던 군인이라면 다들 UCLA 메디컬 센터에 대해 들어봤을 거예요. 거긴 일반환자만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에요. 정부와의 협력으로 군인들의 심리치료를 돕는 곳이기도 하죠.”
“워리어 케어 네트워크?”
“맞아. 레빙턴씨가 환자를 등록하기 전 상담업무를 주로 했던 코디네이터라면 아마 군인들을 많이 만났을 거예요. 그리고 그곳은 늘 예약전쟁에 시달리는 곳이니까…”
“심리치료를 원하는 군인을 되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겠군.”
“그녀의 잘못은 아니죠.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거절당한 사람은 그런 논리적인 생각은 하지 못할 거예요. 실제로도 이곳은 치료를 거절당한 사람들로 인한 악평에 시달리는 걸로 유명하고요.”
“가르시아. 리타 레빙턴이 병원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봐. 지난 한 달 간 그녀에게 상담을 신청했던 환자들의 목록도.”
“문제 없어요!”
프로파일링은 여러 방면의 전문지식과 통계로 이루어진, 지극히 객관적인 정보를 활용하면서도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의 영역의 영향을 받고는 했다. 피해자의 직장이 큰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허니가 군인들의 심리치료를 떠올렸던 것이나, 본능적으로 그녀의 가설이 이 사건과 부합할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하치너의 육감같은 것들이 그랬다.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이 사건에 맞아 떨어지는 것은 우연에 가까울 극저의 확률이었지만— 다행히 허니의 의견은 피해자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빠르게 만들어주었다.
두 번째 피해자 벤 헤즐리는 은행원이었고, 세 번째 피해자 제이슨 로드리게즈는 대학의 재무상담원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루에도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허니의 가설이 맞다면 군인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르시아가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다주면 줄 수록 허니 비의 미간은 더더욱 찌푸려졌다. 머리가 아픈 건지, 기분이 좋지 않은 건지 묵묵히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던 허니의 입이 다시 열린 건 가르시아가 지난 한 달 간 피해자들에게 상담을 했던 환자들 중에 세 명을 모두 만난 사람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을 때였다.
“가르시아. 아마 언썹 본인이 직접 상담을 받기 위해 피해자를 찾아간 경우는 드물 거야. 세 명의 피해자를 방문했던 환자들 중에 같은 패밀리 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 찾아봐줄래? 혹은 성이 다르더라도 가족, 친지 관계인 사람일 수도 있어.”
“언썹이 치료를 거부당한 환자의 가까운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
“군인들 중에는 가정환경이 안 좋은 사람이 많아요. 감옥에 가는 대신 군 복무를 선택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라실 걸요. 그러다 보니 사실 가족보다는 친구와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케이스가 많지만… 그건 자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보니까요.”
“…주변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나?”
하치너의 질문에 허니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 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스쳐.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완곡한 표현을 이해한 하치너는 답을 채근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과 관련이 있었으면 허니 비 쪽에서 먼저 이야길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믿어주는 게 지금은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
LA 땅을 밟기도 전에 언썹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던 덕분에, 그들은 이튿날 담당 수사관들의 앞에서 프로파일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행동분석팀은 언썹을 3년 안에 전역한 군인 혹은 그의 가족과도 같은 사이의 남성으로 추정했다. 생활 수준은 정부의 지원금이 필요할 정도로 각박할 것이고,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더욱 큰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다. 여유가 없는 생활은 그의 PTSD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고, 이를 완화해줄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한 것이 트리거가 되어 범죄를 저질렀다.
하치너의 설명이 끝난 후 수사관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비슷한 용의자를 찾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바로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머뭇거리던 형사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세 번째 피해자 제이슨 로드리게즈의 사건의 담당자였다.
“말씀하신 설명에 부합하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요. 로드리게즈 사건의 참고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참고인이 같은 대학에서 근무 중입니까?”
“예. 로드리게즈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예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군요. 비, 프렌티스. 같이 가지.”
“네, 팀장님.”
요원들이 홀스터에 권총을 끼우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이슨 로드리게즈 살인사건의 주요 참고인, 미아 밴딩월은 갑자기 들이닥친 FBI 요원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지만 그녀의 동료가 겪은 일을 까먹을 만큼 아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담당자에게 전했던 진술을 천천히 다시 복기했다.
“2주 전쯤이었어요. 아홉시가 되어 창구 문을 열자마자 그 남자가 찾아왔어요. 자기는 해당 대학교 학생의 가족이라고 하면서, 왜 여전히 그에게 학자금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따졌어요.”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아뇨. 하지만 이 대학 학생이었다던 그 사람의 이름은 기억해요. 제이슨이 제게 검색을 부탁했었거든요. 정확히는 12일 전이었네요. 그 학생은… 저스틴, 저스틴 레이건이에요.”
“가르시아. 저스틴 레이건의 가족을 찾아줄 수 있어?”
“기다려! 지금 당장— 오, 세상에….”
“무슨 일이지?”
“언썹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저스틴의 형, 콜슨 레이건이에요. 그런데… 왜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겠어요. 저번주 목요일에 저스틴의 장례식이 있었고, 그의 사인은… 자살이에요.”
“…거절이 아니라 동생의 죽음이 트리거가 됐군. 저스틴의 자살은 사회가, 피해자들이 그를 도와주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라고 생각한 거지.”
“살인을 정당화할 이유가 될 순 없겠지만… 각자의 휴대폰에 콜슨 레이건의 면허증 이미지를 보내드릴게요.”
“고마워, 가르시아.”
에밀리가 그녀의 휴대폰에 전송된 사진을 확인했다. 콜슨 레이건의 증명사진이 포함된 운전면허증이었다. 미아 밴딩월은 대학교에 찾아온 사람이 그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시아가 그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에 하치너는 바로 지역 수사관들에게 수배를 요청할 수 있었고, 마침 근처에 있었던 경찰들이 바로 집을 수색했지만 그곳에 콜슨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신에 그들은 콜슨이 불과 몇 분 전까지 머무른 것으로 추정되는 카우치에서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트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세 명의 이름이 더 적혀 있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순간 요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빠르게 차에 올랐다.
그들이 마침내 콜슨과 마주한 곳은 클라트데일 소재의 멘탈 테라피 센터였다. 그는 동생의 심리상담사였던 의사의 목에 칼을 겨눈 채 행동분석팀과 대치했다.
“이 이상 가까이 다가오면 이 남자는 죽을 줄 알아! 내가 못할 것 같아?!”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쉽지 않겠죠. 우리는, 아니 나는 당신과 저스틴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해요.”
“너는 몰라! 내가, 저스틴이 얼마나…!”
“알아요. 나도 군인이었거든요. 해병이었죠. 2년 전에 전역했어요. 저스틴은요?”
“당신이 군인이었다고? 여군이라서 사지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나보군. 운이 좋았네.”
콜슨의 비아냥에 모건이 대번에 인상을 구기며 총을 고쳐쥐었지만, 허니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맞아요. 운이 좋았죠. 내 소대장은 장교 중에서 유일하게 미치지 않은 사람이었고, 선발대였던 우리 부대는 허무할 정도로 금방 바그다드를 정복했으니까요.”
“당신도 이라크에 있었어?”
“저스틴도 파병을 갔었나보군요.”
“걔는… 19개월 전에 전역했어. 야간 순찰 중에 국경수비대의 기습을 받아서 총상을 입었고… 스페인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지. 저스틴은 치료를 받느라 반년 간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유감이에요. 전역은 본인의 뜻이었나요? 아니면…”
“저스틴은 훌륭한 군인이었어. 자기가 전력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군대에서 버틸 이유가 없다고 했지. 육군은 걔한테 고작 훈장 하나 쥐어주고 걔를 내보냈어. 젊은 시절을 전부 다 바쳤던 애한테!”
콜슨이 감정적으로 동요하면서 손을 떨기 시작했다. 의사의 목에 닿아있는 칼날이 함께 흔들리며 작게 상처를 냈고, 피가 흘러내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에 하치너는 이만 콜슨을 제압하고 싶었지만, 허니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콜슨에게서 완전한 진술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허니는 하치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콜슨을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며 그에게 말을 붙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결코 군인들을 등지지 않아요. 다양한 방면에서 군인들을 지원해주고 있죠. 저도 전역한 후로 한동안은 군인들의 진로상담을 해주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잘 알아요.”
“정부가 군인들을 등지지 않는다고? 군인들을 지원해준다고? 네가 그러고도 진짜 군인이라고 할 수 있어?!”
“콜슨, 나는—“
“그 애가 바란 건 당연히 나라가 해줘야하는 것들이었어!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 PTSD를 치료하고, 약속했던 학자금 지원을 받는 거! 저스틴이 그걸 받았어도 그딴, 그딴 식으로 비참하게 죽었을 것 같아?!”
“그래서 리타를, 벤을, 제이슨을 살해했어요? 그들이 당신과 저스틴을 거절했기 때문에?”
“저스틴은 미국을 지키고 당신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걔가 왜 그 먼 땅에서 다리를 잃었겠느냐고! 하지만 그들은 늘 같은 대답만을 돌려줬어. 예약자가 많습니다. 기준에 충족하지 않습니다. 해당자가 아닙니다… 군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경심은 보이지도 않고서!”
“……마치 문제거리라도 되는 듯이 쳐다봤겠죠. 당신이, 저스틴이 언제라도 총기를 난사하는 위험분자라도 되는 듯이 겁 먹은 눈으로.”
“저스틴은…!”
“더 이상 도움을 구할 거라는 희망도, 필요도 잃어버렸을 거고요.”
“걔는 자살한 게 아니야. 걔는 이 나라에게,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 살해당한 거야. 내 동생은—“
콜슨이 무너져내리며 오열했다. 그의 손아귀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낀 의사는 네 발로 기듯이 달려 도망쳤고, 총을 겨눈 요원들에 의해 콜슨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그러나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그 순간에도 콜슨은 설움을 토해내느라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동생이 괴로워하는 걸 알면서도 돕지 못했다는 지옥 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고 있었을 것이다.
허니 비가 흐느끼는 콜슨에게 다가가려 할 때, 하치너는 무심코 그녀를 막아섰다. 그는 그녀가 범인에게 지나치게 동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주친 시선은 지독할 정도로 차분했고,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건조한 표정은 도리어 하치너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허니가 콜슨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옆으로 비켜섰다.
“콜슨.”
허니가 콜슨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붉게 충혈된 눈이 그녀를 향했다.
“나는 거짓말을 했어요. 당신에게서 자백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요. 사실 나도 정부가 군인들을 진정으로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복무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군수물자로 취급돼요. 전술의 도구에 불과하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은 군대에 있을 때보다 전역 후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더 여실히 느껴요. 나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줄 거라고 믿었던 민간인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요.”
“…저스틴도… 비슷한 말을 했었어.”
“내가 전역 후 군인들의 진로상담을 맡았다는 건 사실이에요. 거기서 나는 저스틴과 같은 고통을 겪는 전우들을 많이 봤어요. 그와 같은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는 있어요. 당신이 느꼈을 억울함과 죄책감을요.”
“그들을, 그런 식으로 해쳐선 안 됐는데…”
“당신의 분노는 길을 잃었죠.”
“멈출 수가 없었어. 매일 밤 꿈속에 우는 저스틴이 나왔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걔의 슬픔을 달래주고 싶었어. 나는,”
“당신은 죗값을 치를 거예요. 평생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속죄하세요. 그것만이 저스틴을 더 이상 욕 보이지 않는 방법일 테니까.”
콜슨을 제압했던 모건이 경찰들에게 그를 인계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허니는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콜슨의 눈 또한 그랬다. 그는 상담실을 나서기 직전까지 허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경찰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허니 비예요.”
“허니 비…”
장난스러운 이름에 콜슨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이송되는 콜슨을 바라보는 허니도 그랬다. 멀어지는 경찰차를 바라보는 허니의 얼굴에서는 이름 모를 희미한 감정들만이 남아있었다.
“이름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어. 알지?”
“맞아. 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어. 그런 직감이 들 때가 있잖아. 내 존재가… 저 사람에게는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허니가 그녀를 걱정하는 에밀리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하치너는 그녀의 웃음이 콜슨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
사건을 마치고 콴티코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은 고요했다. 짧은 시간 내에 길게 근무해야했던 요원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포즈로 쪽잠을 자고 있었고, 깨어있는 것은 하치너와 허니 뿐이었다.
콴티코로 돌아가면 작성해야할 보고서의 대략적인 구상을 마친 하치너가 파일을 닫으며 허니에게 물었다.
“잠이 안 오나?”
그가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 허니가 놀란 기색으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심란하네요. 아무래도 사건에 이입을 많이 해서 그런가봐요.”
“비슷한 일을 겪었느냐고 물었었지.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가 겪은 일은 아니었어요. 건너서 듣게 된 거였죠.”
허니는 난감한 듯 이마를 만지작거리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훌륭한 분이었어요. 우리 중에서 아마 가장 바르고 정직할 걸요. 그 사람은 전역 후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는데… 대학원 면접 중에 모욕을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전쟁 중에, 우리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한 말 때문에요.”
깍듯한 존대는 비단 그녀가 군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대상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녀가 로시나 하치를 존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결이었다. 착잡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입가를 떠나지 않는 미소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 말에 분개했어요. 그러니까, 소대원들이요. 그 전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랬을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까…”
“결국 대학원에는 불합격했나?”
“아뇨. 그 면접을 본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합격했고, 현재도 공부 중이라고 들었어요. 잘됐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이 겪은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사병들이 이렇게까지 존경을 표하는 장교라니, 좋은 사람이겠군.”
하치너의 말에 허니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가 그녀의 말에서 정보를 읽어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힘없이 웃었다.
“맞아요. 좋은 사람이죠. 그 일이 그렇게까지 기억에 남은 건… 그때 당시 그 분도 PTSD를 앓고 있다는 걸 알아서였어요. 저희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어서 같이 있을 땐 전혀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됐어요. 그런 소식들을 연달아 겹쳐 들으니까 마치 내가 부당한 일을 겪은 것처럼 눈에 열이 오르더라고요. 우리가 어떤 희생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민간인들이 멋대로 우리를 판단한다는 게 억울했어요. 콜슨처럼요.”
“…그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은 주의하는 게 좋겠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하치너는 딱히 그녀를 혼내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그녀의 사과에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의 훈계는 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하치너는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허니 비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숨같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는 더 이상 군인이 아니야. 그때 당시의 전우들과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좋지만, 죄책감마저 품고 살 의무는 없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못지 않게 위험한 일을 하며 서로의 등을 지켜야하는 사람들이지. 만약 자네가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는 걸 추천하네.”
그건 팀장으로서 그녀를 염려하는 말이기도 했고, 그들 또한 그녀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따뜻한 말에 허니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한 마디가 더 덧붙여졌다.
“필요하다면 나도 얼마든지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고.”
“…팀장님이요?”
“너무 길지 않다면.”
첨언은 너그러웠지만, 뒤따라오는 제한은 짓궂었다. 결국 그 말장난에 허니가 소리내어 웃음을 흘렸다. 긴장이 풀린 듯 그녀의 어깨가 이완되는 걸 알아차린 하치너의 입가에도 느슨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발 아래로 LA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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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갈수록 길어지냐 습습
하치 전혀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는 은근히 이 소유권 주장 분쟁에서 캐리할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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