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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22:05

허니비의 편지

ㅅㅈㅈㅇ / ㅅㅈㅁㅇ

 

-허니 비의 일기-

 

○월 ○일

너의 탓이 아니다.

두고 온 편지에 너의 잘못 같은 건 없으니

혹시나 괜한 미안함은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쓰지 못한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사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 편지 읽었을까.. 어떤 표정일까.

자꾸만 손이 떨린다.

너의 표정을 상상할 수 없어서 무섭다.

 

엄마에게는 아무런 말도 남기고 나올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겠어.

난 엄마가 나를 괴물 취급하는 걸 견디지 못할거야.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 하나 없이 이제 나는 혼자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월 ○일

도망친 이 곳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아는 사람은 없는 곳이다.

두어달 전 미리 구해 둔 원룸에 들어왔다.

모아둔 돈이 얼마 없어 보증금은 없지만 대신 월세가 조금 비싼 곳에 올 수밖에 없었는데

승강기가 없는 6층 건물 꼭대기 구석이라 그나마 조금 싼 값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바람을 쐬고 싶어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다.



 

○월 ○일

그래도 꽤 빨리 일할 곳을 찾았다.

그의 말대로 뭐든 열심히 배워둔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어쩌면 혼자서도 생각보다 잘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월 ○일

그 곳을 떠나온 지 6개월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쿡쿡 마음이 쑤신다.


 

○월 ○일

..어제와 오늘 무척 아팠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엔 왜 꼭 이렇게 앓게 되는걸까.

아프다는 핑계로 침대에 누워 마음에 담아둔 너와의 기억을 실컷 떠올렸다.

약처럼 그와의 기억을 들이킨다.

 

그 날도 아파서 약 먹고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데

외출하고 돌아온 그가 내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잡아줬었다.

앓느라 정신없는 척 눈을 감고선 그의 서늘한 손을 느꼈다.

내 손에 머무르던 그의 손이 좋았다.

“허니, 많이 아파? 약은 챙겨먹었어? 필요한 건?”

하고 묻던 그 목소리가 좋았다.

계속 이렇게 아픈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마 그 말을 들었다면 그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냈을 것이다.



 

○월 ○일

그럴 리 없다 하면서도 돌아보게 만드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있다.

오늘 우연히 그와 비슷한 뒷모습의 누군가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쥰이 아는 사람이냐며 물었다.

그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나니 순간 눈물이 났다.

이상하고 또 웃기다. 너를 떠나온 이 곳에서 너의 흔적을 찾고 있다니.

 

돌아오는 길에 발목을 조금 삐었다.

너를 들춰내는 날이면 나는 사소하지만 끈질기게 벌을 받게 된다.



 

○월 ○일

힘들고 지친 날이 이어지니 마음이 약해진다.

약해졌다 싶으면 스스로에게 괜한 생채기를 낸다.

이 정도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직 멀었다고.



 

○월 ○일

요 몇일 맑은 날이 이어진다. 곧 여름이구나.

볕이 좋은 날은 그가 떠오른다.

태양을 삼킨 듯 눈부셨던 너...

여전히 넌 그렇게 예쁘게 웃고 있을까?



 

○월 ○일

그 와의 기억을 꼭꼭 잠궈두겠다고 편지에 호언장담하고 오고선

일기장엔 그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라도 조금씩 꺼내지 않으면

그를 떠올릴 때마다 울기 밖에 할 줄 모른다.



 

○월 ○일

오늘은 술을 좀 마셨어.

그러고 보니 너랑은 술을 마신 적이 없네.

내가 모르는 너의 모습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니 어쩐지 또 슬퍼진다..


 

..너를 떠나면서 나는 널 잊고 싶었어.

널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그 날, 그 마음을 부정하려 노력하던 그 때처럼

이 곳에서 이번엔 너를 잊으려고 또 나는 노력했어.


 

하지만 있잖아..

미치도록 잊고 싶다는 말은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는 걸..

이제 난 알아.

기억이란 것도 결국 바래지기 마련이라는데

막상 네 얼굴을 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워.



 

오늘 살짝 칼에 베었는데 쥰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다치냐며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줬다.

깊게 벤 거 같지는 않았는데 잘못하면 흉터가 남겠다며 걱정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는 내게 상처 같은 건 준 적 없다.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분명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를 마음에 담은 형벌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낸 상처기에 아무는 것마저 더디다.



 

○월 ○일

한 장이라도 그의 사진을 가져올 걸 그랬다.

그와 관련된 건 그 어떠한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함께 가진 건

평생을 원망하게 될 뿐인 빌어먹을 핏줄뿐이다.



 

오늘 그의 꿈을 꿨다.

아니, 정확히는 그인 것 같은 사람이 꿈에 나왔다.

꿈 속에서 그는 내 연인이었다..

공원과 카페를 보통의 연인들처럼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걸었고,

당연한 듯한 키스도 오래오래 나누었다.

(그의 도톰한 아랫입술이 어렴풋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꿈에서 나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의 팔에 안겨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 멍하니 누워있다 모두 꿈인 것을 깨달았다.


꿈에서나마 함께이길 바랬던 마음이기는 하였으나,

꿈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마음이구나, 싶어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영원히 너와 나를 가리켜

우리”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슬퍼졌다.



 

○월 ○일

오늘은 그의 생일이다.

친구들이랑 파티라도 했을까?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니 오늘도 분명 넘치도록 축하받았겠지?

 

참 이상해.

그의 생일은 곧 나의 생일이기도 한데,

내가 태어난 기쁨보다 그가 태어난 기쁨이 훨씬 더 크다니.

생일 축하해. 어차피 네게 닿진 못하겠지만..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케잌을 샀다.

초는 고민하다 그냥 하나만 샀다.

집에 와서 불을 붙이려고 보니 초 색깔이 그가 좋아하던 색이었다.

그와 함께였다면 특유의 웃음으로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생일 축하해, 혼자 내뱉은 말에 난 결국 또 울고 말았다.


내가 떠나온 건 어쩌면 단순히 너라는 존재가 아니라

사소하게 웃고 떠드는 일상이 있을 미래로부터 도망친 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 날의 나를 후회한다.



 

○월 ○일

그가.. 나를 찾아냈다.

 

몇일 전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무슨 마음이었는지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만 듣고 끊었는데, 그것 때문이었을까.

 

3년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나만큼이나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당장 만나자며 달래듯 말했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당장이라도 오려는 그를 말렸다.


 

사실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제발 이런 나를 이해하고 알아달라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래선 안된다.

이틀 뒤 주말로 약속을 잡고 나는 다시 너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칠 준비를 한다.



 

 

*****



 

허니는 노트를 덮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브래드..




 

*****




재생다운로드KakaoTalk_20240609_112204987.gif




 

-혹시.. 브래드씨인가요?

 

브래드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마를 살짝 짚었다.

브래드가 기다리던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다.

 

-네. 제가 브래드.. 입니다만.. 누구..

-안녕하세요. 전 쥰이라고 해요.

 

가볍게 악수를 나눈 둘은 자리에 앉았다.

 

-… 허니가 이걸 전해달라고 그랬어요.

 

시끌벅적한 카페 안에서 브래드는 크라프트지로 포장된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그 안엔 초록색 커버의 노트 서너권이 들어있었다.

브래드는 입술을 꽉 깨물고 노트를 바라보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허니는.. 어딨어요..?

 

한참을 미동 없이 앉아 있던 브래드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엊그제 갑자기 저한테 이사가게 됐다면서 와서는 이 노트를 주더니 오늘 여기로 가달라고 그러더라구요.

-…..

-… 근데, 그 쪽은 누구에요? 허니도 그냥 중요한 사람이라고만 했지, 그 이상 아무 말이 없었거든요. ..친구에요?

-……

-워낙 자기 얘기는 안하는 데다가 평소에 뭐 부탁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오늘 이 부탁받고 되게 의외였거든요.

-……

-그.. 혹시.. 당신이 브래드에요..?

 

브래드가 순간 고개를 들었다.

 

-아. 예전에 길에서 누굴 뚫어져라 보면서 브래드, 하고 중얼거리길래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허니는 입 다물었지만.

 

브래드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쥰이 조금 당황하며 그만 일어서려했다.

 

-뭐, 아무튼.. 전 전달했어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 저기..

 

브래드가 젖은 얼굴로 쥰을 붙잡으며 말했다.

 

-허니..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오늘 아침에 다시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 그러던데..

 

잡힌 소매깃을 보며 쥰이 머뭇거리듯 말했다

 

-..글쎄요 저도 몰랐어요. 연락처 바뀐 거.. 그새 바꾼 거 같더라구요..

 

브래드가 애가 타는 듯 말했다.

 

-허니에게 좀 전해주세요..

…… 나 역시도 같다고요. 나도 다르지 않다고..

이 대답을 해주려고 3년을 찾았다고..

제발.. 제발 들어달라구요..

 

쥰은 푸른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곤란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빵발너붕붕

 

 

 

 

 

1: https://hygall.com/596646721

 

2024.06.09 22:15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아 브래드도 같은 마음이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d01]
2024.06.10 06:43
ㅇㅇ
모바일
아악 센세가 어나더를!!!!!도파민폭발🤯💥
역시 브래드 쌍방이었잖아ㅠㅠㅠㅠㅠ쥰 제발 뭐라도 도와주라ㅠㅠㅠㅠㅠ
[Code: 86e2]
2024.06.12 23:56
ㅇㅇ
모바일
༼;´༎ຶ۝༎ຶ༽ 쌍방이잖아!!!
[Code: db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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