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ㅈㅈㅇ / ㅈㅇㅁㅇ
* * * * *
안녕, 브래드.
처음이기도, 또 마지막이 되기도 할 편지를 쓰려고 해.
네 얼굴을 보고 모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럼 아마 난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하지 못할테고
그렇게 하지도 못할 걸 아니까..
머릿속과 하고 싶은 말들을 조금 더 정돈하고 쓰고 싶은데 사실 이제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다시 쓸 종이가 없기도 하고..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달라고 써야 할지도 사실 난 잘 모르겠어.
도중에라도 좋아. 찢던지 태워버리던지 네 마음대로 해.
있잖아 브래드, 이 세상엔 자연스러운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잖아.
하나의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오거나,
힘껏 달리기를 하고 나면 숨이 가쁜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웃어야 할 기쁜 일에 울어버린다던가, 솔직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아마 자연스럽지 않은 그 반대가 아닐까?
나에게 브래드 넌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였는데,
내가 열 손가락에 좀 더 숫자를 더한 나이가 된 이후부터 내 안에 자연스럽지 않은.. 마음이 생겼어.
..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생긴 뾰루지처럼 말이야.
뾰루지라니.. 미안해 브래드.
조금 더 괜찮은 표현을 찾고 싶지만, 이것만큼 적당한 말은 또 없는 것 같아.
생각해봐.
흉해서 보이기 싫고, 그래서 없애려고 무던히 노력해보지만 그럴수록 더 커지기만 하는..
어떤 마음처럼 말이야..
어느 날 농구 코트에서 뛰던 너를 보며 사라가 그러더라.
“브래드 말이야, 태양을 삼킨 사람 같아. 눈부시지 않니?”
그 땐 그냥 대강 웃으며 지나갔는데 말이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눈물이 났어..
어쩐지 숨겨왔던 어떤 이유를 들킨 것 같았거든.
맞아. 너는 누구에게나 빛나고 또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갑자기 편지라는 게 생각보다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드네.
네가 이 편지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그 전에 계속 읽고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지..
어찌 되었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두서없이 늘어놓고 있잖아.
있지 브래드..
있잖아..
이 비겁한 편지의 요점은..
브래드..
.... 너를..
좋아했어..
정말.. 좋아했어.
좋아한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을만큼..
너를, 아주 많이 좋아했어.
브래드 네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그렇게 너를 바라봤어.
네가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흉한 마음을 품었어..
하지만 브래드 있잖아, 이건 알아줘.
나, 정말 노력했어.
흉한 이 마음을 뒤에 숨겨 두고 지금까지 죽어라 모른 척하며 달렸어.
혼자만 아는 이 마음을 죽어라 부정하면서.
.. 근데 내가 달려온 방향이 아마 틀렸던 것 같아.
이 마음이 작아지기는 커녕 이젠 걷잡을 수 없어졌어..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거겠지..
브래드,
나는 나만 볼 수 있는 내 일기장에도 너에 대한 마음을 고스란히 적지 못했어.
너를 좋아한다고.. 남길 수 없었어.
좋아한다는 말, 그 이상의 단어가 분명히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말을 직접 문자로 남기거나 입에 담는 순간
소중히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말거란 걸 잘 알아.
세상 사람들 누구나 아는 가장 흔한 말이지만,
세상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마음이기도 하니까.
..특히나
브래드 너에게는.
브래드, 난 있잖아.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지는 못하더라도, 더 멀어지지도 않고
내 손이 닿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네가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했어.
정말이야..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언제부턴가.. 욕심이 자랐어.
하.. 세상에, 브래드..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 브래드..
장난스럽게 두르던 네 어깨동무가 생각나.
아팠던 어느 날 스쿨버스 창문에 기대있던 내 이마에 얹혀지던 서늘한 너의 손의 감각도,
땀에 젖어 빛나던 너의 머리카락과
환하게 웃을 때마다 깊게 패이던 너의 보조개까지도..
그 찰나를 스치던 사소한 모든 것이 생각날만큼
너무나 생생히 마음에 남아있어.
어떤 날은 너를 담은 내 마음이 버거워서 너의 그 다정함에 기대버리고도 싶었어.
너에게 털어버리고 나면 버거운 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까?
너에게 이런 나를 보이고 나서도, 너는 지금처럼 그 자리에 있어줄까?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이 네 생각에 짓물러 뭉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너를 잃고 싶지 않았어.
그건.. 정말 죽기보다 싫었어..
아.. 브래드..
너의 웃는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내가 기억하는 너는 늘 웃고 있는데..
그런데 왜 자꾸 나는 울게만 되는 걸까..
그래서 말이야 브래드,
내 마음에 자란 흉한 이 욕심이 더 흉하게 일그러져서 너를 해치기 전에
나는 이 곳과 너에게서 떠나려고 해.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 아마 떠난 이후가 될 거야.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너에게 행선지를 알리지 않을거고.
내 오랜 고민의 결과를
부디 브래드,
너도 존중해주길 바래.
사람은 행복했던 기억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대.
그래서 나도 내 멋대로 담은 너와의 추억으로 살거야.
그 기억이 조금도 바래지 않게 꼭꼭 걸어잠그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거야.
나조차도 쉽게 들여다볼 수 없게 꼭꼭 잠궈둘거야..
아.. 브래드,
브래드..
네 이름을 되뇌일 때마다 밀물처럼 네가 나를 삼키는 것 같아..
브래드..
윌리엄 브래들리 피트..
영원한 나의 반쪽.
나의, 쌍둥이 오빠..
브래드,
넌 지금 어떤 표정일까..
이런 게 어딨냐고 화를 내고 있을까?
역겹다고 구역질을 하고 있을까..
브래드..
네가 너무 보고싶어..
미안해 브래드..
정말.. 정말 미안해..
내 모든 진심을 다해 너의 행복을 빌게.
안녕.
- 허니 비 피트 -
* * * * *
“..... 허니..!”
얼룩덜룩한 편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브래드의 눈빛이 헝클어졌다.
꽉 깨문 입술에선 하나의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고
떨리던 손을 희게 움켜쥐자 편지가 힘없이 구겨졌다.
편지를 손에 움켜쥔 채 브래드는 반사적으로 뛰어 나가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욕설을 내뱉으며 악셀을 밟는 브래드는 분명
울고있었다.
빵발너붕붕
허니 비의 일기: https://hygall.com/5965443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