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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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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길다. 허니는 하품이 나오는 출근길을 나서다가 제 플랫 건물 앞에 서있는 마이크를 보고 감상평을 내렸다. 아침에 팅팅 부어있어서 혈자리도 누르고, 붓기에 좋은 차도 마시고, 괄사도 굴려야하는 자기와 다르게 한평생 붓기라고는 알지도 못할 것 같은 턱선이 부러웠다.



"굿모닝. 이거 선물... 뭐야, 눈이 왜 이렇게 빨개요?"



"어제 잠을 못 자서... 커피 고마워. 지금 진짜 필요했거든."



투명한 텀블러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건네받고서 마이크는 힘없이 웃었다. 날씨가 더워지긴 했는지 한층 얇아진 허니의 옷차림에 시선이 가다가도, 하품이 앞장섰다. 배우 연습은 오후 두시 반부터니까 늦게 일어나도 상관이 없는데도 허니와 함께하는 출근길을 놓치기는 싫었다. 겨우 아침형인간인 허니의 패턴에 맞춰가고 있는 참이기도 했고.


소파에 앉아 한참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대본을 보고 있을 무렵, 허니가 들어와서 마이크를 힐끔 보더니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하나 꺼냈다. 그러더니 마이크에게 다가와 바짝 붙었다. 미안해요, 잠깐만요.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허니가 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오늘따라 생각이 느린 탓에 대응이 어려워서 허니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자, 싶어서 마이크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열 나요. 일단 약부터 먹고."



그 작은 파우치가 비상약이 담겨있는 파우치였는지, 허니는 약을 꺼내 마이크에게 건넸다. 물은 또 언제 떠온 건지. 알약으로 된 비타민도 먹어야만 했다. 마이크가 약을 먹는동안 허니는 어딜 가더니, 매일 사무실에서 입고 있던 자기의 니트 가디건을 꺼내왔다. 곱게 개서 내려놓곤 마이크더러 베고 누우라는 듯 가디건으로 만든 베개를 팡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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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진짜 괜찮은데."



"씁-. 빨리."



제법 단호한 표정이 귀여워서 웃다가도, 기운이 없어 허니가 말하는대로 누웠다. 가디건에서는 허니 향이 났다. 달달하고 포근한, 좋은 향. 까무룩 눈이 감기려는데 허니가 제 위로 담요를 덮어줬다. 담요도 허니 개인용이었다. 죄다 허니의 향이 나서, 꼭 허니한테 안겨있는 착각조차 들었다.



"이따 연습시간 맞춰서 깨워줄게요. 푹 자요."



허니는 누워있는 마이크 옆에 쪼그려 앉아 배를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말도 안되지만 그 손길에 마이크는 정말 잠이 들었다. 깊게 잠든 내내 옆에서 타이핑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도 같았는데. 한참을 잤을까,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자 두시였다. 꼬박 다섯시간을 한번도 깨지 않고 잔 셈이었다.



"일어났어요? 더 자도 되는데. 오늘 무슨 날인지 J랑 M도 아파서 못나온다고 연락 왔어요. 연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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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타이핑 소리를 들은 게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허니가 일어나려는 저를 보고 간이 책상에서 끙차, 하고 일어나 다가왔으니까. 일어나지 말고... 잠시만요. 다시 이마를 짚어보더니 허니가 살짝 웃었다. 



"열은 좀 내렸네. 입맛 없을 건 아는데, 이거 좀만 먹고. 좀 더 자요."



극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포장해온 스프였다. 꾸역꾸역 한 다섯 스푼이나 겨우 먹었을까, 떨떠름한 제 표정을 보고 알았다는 듯 허니는 다시 덮었다. 겨우 앉아있는 저를 다시 눕혀놓고는 토닥토닥, 두드려오는 손길이 잠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마를 다시 짚는 손길을 잡아다가 제 뺨에 가져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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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왜 자꾸 재워... 나 출근한 건데. 나 열 좀 내렸어, 봐.."



"얼씨구, 아파서 어리광까지 부리면서. 네에, 열 내렸으니까 더 주무세요. 이거 작가 권한으로 배우에게 명령하는 거예요."



허니는 마이크가 뺨을 부비던 손을 올려 마이크의 눈을 가렸다. 투덜거리다가도 막상 시야가 가려지니 다시 잠이 몰려왔다. 약기운인지, 어제 잠을 못 자서인지 버틸 수가 없었다. 간간이 잠결에도 이마를 짚는다던지, 담요를 고쳐 덮어준다던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마이크는 해가 지기 직전에 겨우 일어났다. 허니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 나 일어났어."



"아.. 퇴근할래요? 오늘은 다들 집 가서 푹 쉬라는 단장님 명령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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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거 집에 가져가도 돼? 이거 있으면 잘 잘 거 같은데... 내일 안 까먹고 가져올게, 진짜로."



마이크가 가디건과 담요를 꼭 끌어안고 말하자 허니는 푸스스 웃었다. 끄덕거리자 마이크는 허니가 취소라도 할까 가방에 가디건과 담요를 넣었다. 가방을 매고 가만히 앉아서 허니를 기다리자, 허니는 그걸 보더니 그제야 마이크가 저를 기다리는 걸 눈치챘는지 가방을 챙겼다. 



"네가 준 커피도 못 마셨어..."



"그거 내가 마셨는데. 선배 자는동안 얼음 다 녹았길래. 내일 또 줄게요."



"... 집 안 들어가?"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게요. 선배 아프니까. 그리고 오늘 퇴근 일찍 해서 아직 해도 안 졌으니까, 선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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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라.. 웃겨, 진짜."



허니를 데려다주고 제 플랫까지는 제 걸음으로 딱 오분 거리다. 허니랑 오는 동안 했던 대화를 곱씹기 딱 좋은 거리였다. 오히려 그러고 나면 집에 들어가서는 삽질에 가까운 생각을 좀 멈출 수 있었다. 오늘은 글렀다. 허니가 정말 제 플랫 앞까지 와서는, 아까의 그 파우치를 또 꺼내 제 손에다가 알약을 쥐어줬다. 색깔이 다른 걸 보니 저녁용 약인 거 같은데.



"들어가서 약먹고 푹 쉬어요. 또 뭐한다고 사부작대지 말고."



끄덕거리고는 허니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허니가 멀리 점이 되어서 안 보일 때까지 서있었다. 플랫에 겨우 들어가 허니가 아까 챙겨준 스프를 데워먹고, 약을 먹었다. 잠이 들기 전에 가방에서 허니의 물건들을 꺼내 침대로 가져왔다. 베개에는 허니의 가디건을 펴서 두르고, 담요는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다정한데, 내가 너를 어떻게 안 좋아하고 배겨. 약기운이 몰려와 이내 잠이 들었다. 꿈에는 허니가 나왔던 것 같다.



한편, 허니는 집에 가는 길에 아까 마이크가 잠결에 제 뺨을 부비던 오른손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파서 찌푸린 이마를 살살 검지로 펴주면 잠결에도 웃는 얼굴이라던지, 퇴근하자는 말에 가방을 챙겨 저를 한참 기다리던 모습이나, 가디건과 담요를 야무지게 챙겨서 가방에 넣던 모습 같은 걸 곱씹다보니 제 플랫 앞이었다. 





선배도 나를 좋아하는 거 같긴 한데... 아닌가. 제 플랫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허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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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스트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