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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2 22:08
약 ㅇㅇㅆ
ㅇㅅㅈㅇ
다각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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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이제는 페이다오 쓸일도 없는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듯 
뢰미는 자기 정인도 아니고, 둘 사이에 정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일종의 정표를 나눠가진 거 같겠지. 가장 자기 몸처럼 쓰던 물건이고 그때 뭐라도 주고 싶어서 내준 물건인데 당장 그걸 줄 만큼 당연한 물건이었음
늘 자기 손에 있던걸 뢰미한테 내줬고 그걸 가지고 있어줬으면 해서 

백수비가 갈수록 우울해지고 색사를 해도 영혼이 거기 없는 거 같으니까 그냥 놔두겠지. 과거의 일로 보복을 하는 것도 충분했고 사실 세우루 사람들 중에 이제 백수비한테 딱히 감정 남은 사람도 없음. 소석이나 온유는 오히려 기분 풀어주겠다고 같이 놀아주려고 하지 그런 거 탓하지 않음 

두달 정도 지나고나서야 백수비는 자기 감정을 좀 명확하게 정리하는데, 그냥.. 뢰미가 보고 싶은 거였음. 뢰미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백수비를 대하고 한때 진심을 줬었으니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뢰미가 보고 싶었음 
그냥 뢰미가 그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곁에 앉아서 배타고 나니며 여러 나라를 다니고 사람들을 만났던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한참 밤하늘 올려다 보다가, 문득 아마 그 삶이 백수비가 원했던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아무리 애를 써도 이름을 날릴 수 없었고 누구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정말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을텐데 
삶의 어느 시점에 나타났던 뢰미와 그렇게 한 배에 올라 종횡으로 바다를 누비고 온 세상을 이방인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백수비의 이름에 걸맞는 삶이었을지도 모름 

자기가 원했던 것도 모르는 삶을 사는 여인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다가 남은 재주는 그림 뿐이라 어느 순간부터 뢰미 얼굴을 그리게 됨
이게 좀 괴이쩍긴함. 
손바닥만한 책첩에 보라색으로 그린거라 이상한데 그저 본인이 그리워서 그 마음이 넘쳐 흘러서 그린 거라 어쩔 수 없었음. 그나마 세우루에서는 함부로 자기 물건 뒤지지 않으니 그 부끄러운 그리움도 들킬 일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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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느날 뢰미가 찾아옴 
새벽에 혼자 뢰미 처소에 있던 백수비가 제일 먼저 봤겠지. 세우루가 그렇게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뢰미가 거의 날아오면서도 명패는 보여줘서 급히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지붕타고 여기로 왔음.
뢰미도 웃긴게 이상하게 얘가 여기 있을 거 같아서 사람을 안 부르고 여기로 달려 온 거 
살아본 적도 없지만 이제 자기 처소가 된 이 곳에 백수비가 있을 거 같았음. 물론 자길 기다렸다고 하긴 그렇지 기다려 달라고도 기다린다고도 하지않고 작별해서 

백수비가 반색하며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둘다 마주보고 말은 못함 
뢰미 행색이 아주 좋지가 않아서, 흙먼지에 군데군데 피가 말라붙어 있고 입술은 터지고 갈라져있는거지. 

..오래는, 못 있는거지. 

뢰미는 백수비도 참 머리가 좋다고 생각함. 밤하늘 보며 시간 가늠하다가 말해주겠지. 

이다경 정도.. 

적어도 밤은 보내고 가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백수비가 자기도 모르게 다가서서 팔뚝 꽉 잡는데, 뢰미가 아무렇지 않게 손 돌려서 손목을 감아 쥠. 

배가 조금 망가졌어. 선발대는 이미 떠났고 고치는데 반나절 정도 걸리니, 정신없이 달려왔지. 네가 만약 지금 여기 없었다면 헛걸음이었겠지만. 

뢰미가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상단이 타는 큰 배는 도성에 들어올 길목이 없음. 적어도 너댓시간 달려야 나오는 부두가 하나 있는데, 그런거면 뢰미는 딱 그 고쳐지는 시간 동안 왕복할 생각을 하고 온거임. 
그러니까 밤새 달려서 딱 그 찰나를 보내려고. 
백수비랑.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하면서도 마음이 간지러워짐. 아니 조금 간지러운 게 아니라 뢰미도 지금 자기가 보고 싶었다는 거 아님. 몸을 끓이는 것처럼 기약도 없는 이별하고 마음을 확인할 길도 없어서 매일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지쳤는데.. 보고싶었다는 거잖아
여인을 상대로는 감정을 잘 내보인적도 그게 잘 된 적도 없는 백수비지만 이 시점에서는 거의 미치겠어서 자기도 모르게 뢰미 꽉 껴안아버림. 

고마워. 네 물건 덕을 좀 봤어. 

그러면서 페이다오 보여줌. 습격 당해서 위험했는데 이걸 쥐고 있어서 살았다고. 이 조그만 물건으로 목을 넷이나 땃으니 나도 제법 강호를 누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웃는데 백수비가 그 얘기 듣더니 얼굴이 창백해짐. 그러면서 털썩 주저 앉는데 완전히 실의해서 사람이 기절이라도 할 거 같은 표정이었음. 뢰미가 생각한 반응이 아니라서 당황스러운데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주르륵 떨어짐 

그래서 고맙다는 얘기하러 온거구나... 하고 중얼거리는데 뢰미는 실수했다 싶겠지. 뢰미는 당장 어떻게든 하고 싶은데, 정말 시간이 없었음. 갑갑한 마음에 멱살 잡아서 억지로 일으키는데 눈앞에서 우는 얼굴 보니까 머릿속에 폭탄 터지는 거 같은 지경이었음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사은하겠다고 새벽을 달려서 와. 사람은 단지 정 때문에 그리 어리석게 굴지. 

뢰미한테 백수비는 불이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확 타버릴거임. 근데 그럴 시간이 없음. 세우루가 지금 건재하지만 지금이 문제임. 승기를 잡았을 때 기반을 다져야 앞으로가 편하고 뢰미가 다져주고 싶은 기반은 백수비껀데, 그러니까 백수비를 위해서 이러고 있는건데 얼굴을 볼 찰나도 없음. 오늘 이렇게 온 것도 먹고 쉬고 자는 거 포기해서 달려온건데 애가 이상한 소리를 함. 그런데 또 백수비 인생 어땠는지 아니까.. 그간 고생도 많았다고 들었고 싶어서 금방 안타까워짐 
아직도 못 믿겠는지 눈물 그렁그렁해서 자기 쳐다보는데 하여간.. 
짧은 밤이 너무 아쉬운데 하고 싶은 말을 할 틈이 없었음. 풀어야할 회포라면 산더미만큼 있지만, 왠지 지금 백수비 하는 걸 보니까 뢰미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뭔가가 생길것도 같은데 그걸 확인하면 도저히 떠날 수 없을 걸 알겠지 

딱 하나만 대답해줘. 나..
보고 싶어서 왔어. 

연정이라거나 은애라거나 그리웠다거나 흔한 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 
뢰미는 이상하게 이 문을 열기 전에 백수비가 여기 있는 걸 알았던 것처럼 뭘 물어볼지도 이미 알고 있었고 
함부로 안지도 못하고 닿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뢰미손에 있던 페이다오 날 쪽으로 손 뻗어서 콱 쥐어버림. 피나는 거 보고 뢰미가 기겁해서 뭐하냐고 말리는데 백수비는 또 이제 웃고 있음. 

꿈일까봐. 

혹은, 이렇게 보내고 난 후에 꿈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별말 안한 뢰미가 품에서 흰천 꺼내서 상처를 싸매줌. 요즘은 뢰미가 더 강호무인이니까 상처 싸맬 건 늘 가지고 다녀서 다행임. 백수비 무사무탈하라고 내가 잠도 못자고 이 고생을 하는데 무슨 짓이냐고 한마디 했겠지. 어차피 뢰미는 백수비한테 그리 독하게 말하지도 못함. 여기서 한마디를 더 하면, 여기서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지면 정말 못 떠날 거 같아서 아무것도 못함. 
뢰미가 인사도 없이 나가려고 하다가 몸 돌려서 백수비 머리 묶어둔 끈을 확 풀어버림. 장사꾼이 물건 들고 나간것도 모를리가 있냐면서. 비녀 가져간거 알았겠지. 아니면 계속 알았으면서도 그러라고 둔 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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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풀렸고 손은 다쳤고 옷에 피는 묻었고 누가 보면 나쁜 일 당한 몰골인데 백수비 표정 묘하게 좋아보이겠지 
이렇게 헤어지는 게 너무 아프고 힘든데 사실 둘이 묻지 않고도 들어야 할 말은 다 들은 거임.
뢰미가 한숨쉬고 나가려는데 백수비가 손목 당겨서 예전에 뢰미가 그랬던 것처럼 뢰미 손가락에 입술 꾹 누름. 살짝 숨 뱉어낼때까지 기다리던 뢰미가, 결국 백수비 얼굴 안 보고 그대로 나가겠지. 돌아보는 순간 못 떠날 거 같아서 그러는거지 
지금 흔들려서 주저 앉으면 세우루 건사 못하게 되고 그러면 둘의 미래가 아니라 백수비 미래부터 고단해지는데 그럴 수는 없어서. 

뢰미는 안 그래도 터질 거 같은 심장 때문에 심란해서 달리고, 백수비는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조그맣게 웃었음
기다리는 사람도 기다려줄 사람도 없는 거 같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음
이제 아무것도 없는 빈손은 아닌 거 같은데..

산발 된 머리 아무렇게나 틀어 올려서 뢰미한테서 가져온 비녀 꽂아 올림 
손 다친거 보면서 조용히 웃을 거임 
보고 싶었다고 했어. 내가. 보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