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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21:27

ㅇㅅㅈㅇ 
ㅇㅅㅍ
여공남수 먹음
여남박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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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폭우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몸도 아프고 뭣보다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밤잠을 길게 못자는 녕원주가 갑자기 또 새벽에 눈을 뜬 날이었음. 어두운 것을 질색하게 되어서 방안에는 늘 은은하게 초를 켜두는데, 언제부턴가 등롱으로 바뀌었음. 등롱의 주변은 얇고 따듯한 색의 색지로 감싸져 있어서 그럭저럭 잠들 정도로 어두웠고 녕원주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밝지는 않았겠지 

가만히 방을 좌우로 살피니, 원래 혼례 후에 여의가 준비해준 그 방이 맞았지만 얼마간 적지 않은 정성이 들어와 방안의 모양새가 크게 나아졌음. 예를 들면 전엔 녕가 고택에서 가져온 골동품이나 좀 놓여있었는데, 이젠 바닥엔 얇고 가벼운 직물이 덮여 있어서 혹 맨발로 딛더라도 크게 차갑지 않게 되었음. 
침상 주변에는 침병이 길게 늘어져 있음. 이 물건이 웃긴 이유는 녕원주 키에 맞춘 물건이라 엄청나게 높다는 거. 그래서 방안에 방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됨. 침병 위로는 아주 얇고 부드러운 연연라 같은 천이 걸쳐져 있겠지. 이런 것은 여인의 옷을 만드는 옷감이라 오히려 우십삼이나 종류를 알 물건임. 녕원주는 예쁘다고 한번 생각했을 뿐 그게 뭔지 잘 몰랐음. 다만 가끔 바람이 조금 들어오면 그 얇은 천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게 꼭 구름 같아서 좋다고 여겼지 
침상을 좀 벗어나면 오른쪽에 녕원주가 주로 읽는 병법서나 오국의 서적들이 정갈하게 쌓여있었고 문방사우도 언제든 손댈 수 있게 가지런히 놓여있었음. 거기에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물건이 모두 황실에 진상되는 물건들이라서 그 매무새가 담담하게 보일지언정 내력을 짐작케할 정도의 가치는 있어보임. 
특히 방안이 늘 따듯해야 해서, 한쪽에는 청동 화로가 끝없이 타는데 이 안에 들어있는 탄이 또 황후가 보내주신거라 연기가 나지 않고 향이 좋았음. 그리고 반대쪽엔 비슷한 크기의 화로가 하나 더 있고, 이 위에는 찻물을 덥힐 수 있게 물을 담고 옮길 공간이 따로 있었음. 화로가 두개나 있어도 방이 건조하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겠지. 다기들은 그 주변에 녕원주가 좋아할만한 모양새로 놓여있었음. 찻잔의 색은 균일하고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유약을 바르기 전에 각각 사군자를 흐린 먹으로 그려놓아 풍취가 있겠지. 
근래 몸이 너무 안좋아서 잠깐 깨어있는 동안 육도당 일 돌보고 겨우 적응하고 있는 양영, 오국의 사신들 챙기고 보면 기절하듯 잠드느라 오히려 여길 돌아볼 시간이 없었겠지. 그지경으로 몸이 안 좋지 않았다면 황후를 더 뵈러갔을텐데 몸이 너무 안 좋다보니 함부로 입궁도 못시키고 하루에도 세네번 궁인을 보내 상태나 살피게 하고 말이나 전달하게 하는게 고작이었을거임 

멍하게 주변 둘러보던 녕원주는, 본인이 지금 어지간한 황자, 공주보다 더 대접받고 있다는 걸 알고 약간 불편해지는 거임 
이건 황후의 호의도 있고 대저택을 정말 대수롭지 않게 치장한 이 여의군주가 이 방안에 대단히 심혈을 기울였다는 거니까 

그나마 대수롭다고 할 수 있는 건 매번 떨어지지 않고 작은 주머니에 담겨있는 사탕이었음
자기가 그때 제일 좋아했던 거, 그 사탕은 매번 빠지지 않고 들어있었고 때로는 새로운 게 추가될 때도 있음. 안국의 시장은 꽤나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사탕도 제작 방식이 다르고 가게마다 틀도 다르게 써서 티가남 
적자색 주머니에 청회색 권운무늬가 아주 얕게 있는 주머니인데, 사탕이 떨어지면 어느날 사라지고 또 새로운 것들이 가득 차있어서 분명 시종들이 챙기는걸 알면서도 녕원주는 혼자 그게 무슨 마법 주머니인양 굴기도 함 

어쨌든 이래저래 깨니까 더 잠이 오질 않음 
아이는 이제 조금 익숙해진 것 같지만 품에 안으면 불편해하고, 그러면 마음이 무너져서 녕원주가 울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같이 힘들고 해서 마음을 좀 넉넉하게 가지려고 하는 중임. 물론 그건 각오일 뿐 녕원주 지금 우울증 심각함. 거기다 마차에서 잠에서 깬 이후부터는 제대로 기억이 안남. 충격이 너무 심해서 그러는건데 녕원주는 언제 머리를 맞았나 생각할뿐임

가끔 화로가 타는 소리, 바람에 창이 흔들리는 소리 같은게 들렸던 거. 창문 하나에서 기분 나쁜 끽, 끼긱,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서 거슬림.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쩌나.. 하고 고민하는데 갑자기 그 소리가 딱 멎는 거 
돌아보니 여인의 형태가 그림자로만 창가에 기대 있음 

한때 여의는 방안에서 자길 기다려줬고, 한때 다정하지 못하더라도 침상을 나눠쓰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방밖에서 밤을 지새움
가깝다고 여긴적 없으나 더 멀어질 수는 있는 관계였음  
창가가 소란한 것도 그냥 두지 않고 자기 손으로 막는 사람이 끝내 문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밤을 새는 게 기이해서, 반쯤은 침상 머리에 기대 새까만 밤공기에 그리 검지도 않은 그림자만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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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가 대추를 좋아해서 황후가 대추 나무를 군주부에 선물해줬단 말임
그래서 여의는 종종 내실 뜰을 걸으면서 대추가 익었으면 대수롭지 않게 하나둘 따먹고 걸어다니면서 생각하고 그러는 버릇이 있었을거임 
그날도 그랬음. 
근데 이게 나무가 이제 키가 커서, 높은 곳에 있는 걸 따라면 기어 올라가거나 혹 무공까지 써야하는데 여의 입장에선 정말 그럴 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함 ㅇㅇ 약간 손 뻗는 곳에 닿아서 대강 야금야금 먹는 재미지 이제 노력까지 기울이기 시작하면 귀찮아 지는 거지 

그때도 그러고 있었음. 손에 닿는 것 몇개 아삭아삭 먹다가 한숨 쉼
생각해 봤는데, 출정이 마음에 걸림. 목숨 거는건 주의위 때부터 늘 하던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에 먹구름이 낀것처럼 새카맣고 갑갑한가 싶어 한참 고민해보니 결국 녕원주 때문인거. 미안한 마음은 당연히 있지만 미안한게 주가 아니라, 그냥.. 말에 올라 궁문을 나서 변경으로 향하는 순간 못보니까. 허약해져서 창백한 얼굴로, 붓대처럼 가느다란 몸을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 허망한 걸음을 좇을 수도 없고 밤이 험한 날에 몰래 찾아가 잠든 방문을 바라볼 수도 없음 
곁에 없고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원하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가 그리움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가는거니까 
여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아까워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려서 미칠 거 같겠지 

황후께서 그렇게 잘하라고 잘해주라고 하더니. 잘해주고 싶은데 이젠 손이 있어도 쓸수가 없음 
키도 크고 머리도 길어서 가만히 서있으면 나른한 그 머리카락이 버드나무 잎새처럼 좋을대로 흔들리는데 여의는 그 머리칼도 한번 만져볼 수가 없는 사람이라 

여의 팔이 안 닿는 곳에 생대추가 많이 열려있는데, 그걸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냥 돌아섰음
지금 취하지 못하는 것이 대추 몇알 뿐이 아니니까 새삼스레 아쉬울 것도 없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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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의가 그러는 거 녕원주가 가만히 보고 있었을 거임. 이상하게도 원망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크게 안 들 거. 그때 마차에서 눈뜨고 휘갈겨쓴 서신을 읽었을 때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는데, 결국 그 품에 안겨서 다시 돌아왔고 돌아왔을 땐 아기가 있었으니까. 그냥 그런 생각한거임 여의가 그렇게 했더라도 여의가 아니었다면 이 아기는 안아볼 수 없었을 거 
여의가 배려해서 이름도 녕원주가 지을 수 있었고. 여의는 그냥 애기가 너무너무 작다며 찹쌀이라고 부를 거임. 녕원주는 그렇게나 큰데, 어떻게 고작 찹쌀보다 더 큰 아이를 낳았냐고 본인 나름 진심을 말한 건데 그때 주위에서 듣던 사람들이 한참 웃었음 
그래서 지금 가까운 사람들은 아직도 애기를 찹쌀이라고 부름. 녕원주도 그 아명이 귀여워서 좋아하겠지 애가 워낙 하얗고 작긴함 

여의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대추나무 올려다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손 뻗어서 몇개 툭툭 땄음. 
가만히 손에 몇개 쥐고 있다가, 홀린 것처럼 여의 처소로 걸어가는 거. 위치는 아는데 가본 적이 없겠지 

방안에 들어가니까 지독하게 적막이라 놀랐음. 누가봐도 이건 황후가 대신 꾸며준 거다 싶을 정도로 황후 궁과 너무 닮은 방에, 여의가 좋아하고 아낀다고 생각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음 모든 물건이 다 새것처럼 놓여있었고 세월의 흔적이 있을 지언정 손안에 넣고 귀애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는, 기이하게 정감없이 냉랭한 방이라고 여겼겠지 
대추 몇개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두루마리 옆에 내려놓고 나감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왜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여의같은 살수가, 주의위의 수장이 약간 원망스럽다는 듯이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재밌었음. 적당한 근거도 없이 혼자 조용히 웃으며 다시 밖으로 나오겠지 

한 담장 안에서 만나지도 이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머무르기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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