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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 16:09
a-picture-of-the-wedding-in-forest-flower-decorat-upscaled.jpg(짤은 대충 어찌저찌 AI로 만든 이미지..) 
노잼주의 짧음주의 캐붕주의 설정주의
허니바라기 리무스 20 





105.

그 날 둘 사이에 대화가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허니는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시꺼먼 담요를 덮고 소파에서 졸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아른아른 느껴지는 세베루스의 체향에 속이 울렁거릴 뿐이었다.



“ 세베루스? ”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있을 리가 없지, 그래. 허니는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어제 있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대화는 하긴 한건지, 아니면 고요한 적막만이 있었는지 이상했던 밤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애썼다. 굳이 오블리비아테를 말하지 않아도 지워진 듯 이미 흐려진 시간이니까. 

허니는 그 대신 시리우스와의 일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되뇔수록 두통이 거세지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이제 호그와트에서 투덕대던 어린애들이 아니었으니 그때는 늘 외면하고 모른척했던 그들의 갈등을 이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 잘못이 본인이 아닐지언정 시리우스 자신이 더 지옥 속에 있는 기분일 테고, 홧김에 와버린 이 장소마저도 그가 듣는다면 다시 화낼게 뻔 하니.

불같은 시리우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 푸르른 허니는 늘 그를 용서하고 달래주었다. 이게 둘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를 사랑하는가? 허니는 그 물음에 대해 언젠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머글 출신의 소심하고 조용하던 허니를 알아봐주고 먼저 다가와준 것은 시리우스가 처음이었으니 둘 사이가 어떻게 되든 시리우스는 이미 허니의 인생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몫은 허니를 시리우스 곁에 머물게 했지만, 그 보이지 않는 몫에 시리우스는 늘 불안해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비뚤어진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으니까. 시리우스는 늘 온전한 사랑에 목말라했다.





106.

사건은 결국 허니가 집에 조용히 들어오면서 마무리되었다. 시리우스는 적막하고 어두운 집에서 조용히 허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했던 이 집에서 어젯밤 꺼놓은 불을 켜지 않은 채 빛이 들어오지 않는 틈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예전 어느 날 그럤던 것처럼 그가 말하거나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도 허니는 그의 감정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괴로움과 불안함, 그리고 초라함으로 가득한 그의 내면이 굳이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아도 허니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레질리먼시를 할 줄 모르는 마법사나 마녀가 와도 바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 시리우스. "

" .......미안해. 미안해, 허니. "

" 그리고? "



시리우스는 엄마에게 잘못을 털어놓는 어린아이처럼 말을 이어갔다. 



" 다신 그러지 않을게. 허니,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게. 내가 잠시 미쳤던 거야. 응, 그런 거지. "

" 마지막 그 말은 반성이 아닌데, 시리우스 블랙. "

" 아니야, 나 정말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어 허니. 나는 네게서 벗어날 수 없어. 그저 네 곁에서 내가 머물 수 있게 해줘, 허니. 이런 나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해줘. "

" 다신 그러지마, 정말. 약속해. "

" 약속할게. 네 앞에서 난 늘 어린애처럼 작아지는 거 알잖아. "



울지 않으려 애쓰는 시리우스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이 커다란 개를 어쩌면 좋을까. 허니는 마치 어머니가 그러는 듯이, 시리우스를 안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고작 하루뿐이었는데 그에겐 너무 큰 고문이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지만 허니가 떠날지도 모르는, 그런 밤은 시리우스에겐 너무나 큰 고문이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어. 시리우스의 물기 가득한 말에 허니는 그를 더욱 꽉 안아주었다.





107.

1979년의 여름,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나마 화창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불사조기사단의 기지인 허니와 시리우스의 집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고 있었고 간간히 허니나 리무스의 손길에 벽에 생화나 리본장식이 추가되고는 했다.

1979년 8월 30일, 제임스 포터와 릴리 에반스의 결혼식 날이었다.


릴리는 신부대기실이라 적힌 양피지가 붙은 허니의 방 안에서 분주히 준비 중이었다. 두 볼이 장밋빛으로 물들어 생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 릴리, 들어가도 돼? "

" 오, 허니. 당연하지. 얼른 들어와서 내 화장 좀 봐줘. "



릴리는 허니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릴리는 흰 백합 같았다. 허니는 머글들 사이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읽은 백설 공주를 떠올렸다. 새하얗고, 붉고, 새까만.. 좀 다르려나. 어쨌든 허니는 릴리의 뒤에 앉아 아름답게 올린 릴리의 붉은 머리를 매만져주었다. 드레스처럼 하얀 안개꽃이 릴리의 머리카락 중간 중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 역시 생화 장식으로 하길 잘한 것 같아, 허니. 리본이나 티아라보다는 이게 좋은 것 같아. "

" 그러게, 네 이름이랑도 잘 어울리고. 정말 예뻐. "

" 그런 너야말로, 시리우스랑 결혼할 때 꼭 생화로 장식해야해. 꽃과 허니, 완전 환상의 조합이잖아! 보자마자 시리우스 블랙 걔는 널 잡아먹어버릴걸! "



릴리는 자신의 머리칼에 꽂힌 안개꽃 한 송이를 빼내어 허니의 땋아 내린 머리카락 사이에 꽂아주었다.
오늘도 너무 예뻐서 그래버릴지도 몰라, 허니. 릴리의 장난기 넘치는 말에 허니는 간지럽혀지는 어린 아이처럼 킥킥 웃어대었다.



" 아직 시리우스는 너 못 봤지? "

" 으응, 아침에만 보고 제임스가 너 보러 온다는 거 막는다며 걔 끌고 어디론가 들어갔어. 그리고 아마 신랑 들러리 연설 준비하고 있을걸. "

" 진지한 시리우스 드디어 보는거야? 왠지 긴장 풀린다. 허니, 그리고 넌 부케도 잘 받아줘야 해! "

" 당연하지, 릴리. "





108.

결혼식은 허니와 시리우스의 집 정원에서 열렸다. 다들 집이 숲 속 외딴 곳에 있었기에 정원이라 이름 붙였지만 숲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스스로 연주 중인 악기들이 한쪽에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해내고 있었고, 소박한 결혼식의 사회를 맡은 리무스는 어색한 듯 헛기침하며 옷매무새를 자꾸만 다듬었다. 



" 아아, 음음. 들리세요? "



리무스의 약간은 건조한 목소리가 식장을 가로질렀으나 자리에 참석한 마법사, 그리고 마녀들은 오랜만에 가지는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에 떠들기 바빴다. 리무스는 한숨을 작게 내뱉더니 호그와트에서 숱하게 보았던, 교장 연설 시간을 떠올렸다. 덤블도어, 참 힘들었겠구나.



사일런스!



덤블도어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서려있는 모습에 하객들은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리무스를 바라보았다. 각자 신부 측, 신랑측 하객들 사이에 앉아있던 허니와 시리우스도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 크흠, 흠. 그럼 이제부터 신랑 제임스 포터 군과 신부 릴리 에반스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해포 친세대 리무스너붕붕 시리우스너붕붕 스네이프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