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86398577
view 1919
2024.03.03 01:46


보고싶다







재생다운로드

스완에게 연기는 일생이었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에 데뷔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있었고 잘 연기한건 아니어도 마음이 가는 작품도 있었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연기를 허투루 한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그랬다. 열정이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예술성이고 대중성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가주의 영화? 좋아. 로맨틱 코미디? 그것도 좋아. 거대자본 히어로 무비, 에르큘 포와로 풍의 스릴러, 상냥한 패밀리 무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 뭐든 좋았다.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을 받을지 말지도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스완은 세자르, 칸, 골든 라즈베리도 상관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골든 라즈베리를 받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리에 앉은 스완은 맞은편에 앉아 저를 뚫어지게 지켜보는 킴의 시선을 애써 모른척 했다. 풍성하게 물결치는 짙은 나무색 머리칼은 군데군데가 희끗한 제 머리와 비교가 되었다. 너무 어린 거 아닌가... 워스트 콤비상에 수상은 아니더라도 최소 후보는 되겠는걸... 폭풍의 언덕의 프랑스 버전이 될 거라더니 너무 예쁜 청년인 거 아닌가... 작가는 저 애의 어디에서 로미오나 히스클리프 같은 광기 어린 사랑을 본 거지. 너무 국적 캐스팅 아닌가... 엉뚱한 생각들이 막 튀었다. 착잡해서 막 담뱃불을 붙이려다 말고 킴과 언뜻 눈이 마주쳤다. 어린애 앞에서 피워도 되나 싶게 파릇했다. 아... 내가 너무 애 취급하나. 그래도 이제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 배우니까 프로처럼 대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완은 애써 밝은 낯으로 킴과 눈을 맞췄다. 무표정하게 이쪽을 보던 킴도 씩 웃더니 인사를 건넸다.

"안녕.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네."

킴은 전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돼요 했다. 그래서 스완이 그래도 서글서글한 청년이네 생각하려는데, 킴은 거기다 대고 대뜸 이랬다.

"그럼 누나라고 부르는 건요?"
"뭐?"
"남자랑 로맨스를 찍어본 적이 없어서 안 익숙해서요. 이러면 좀 쉬울까 싶어서."

당황스러운 소리에 말문이 막혀 담배를 물고만 있었다. 담뱃불을 대주면서 씩 웃는 얼굴이 얄밉게 잘생겼다. 스완은 올라오는 담배연기에 눈을 세모꼴로 떴다. 서글서글한 청년은 개뿔... 몸만 컸지 아주 어린 애나 진배없었다. 앞으로 이 아기를 달래가며 일해야 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한 스완은 싹 다 무르고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그러다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을 황홀한 듯 지켜보는 작가의 초롱한 눈과 마주쳤다. 그래, 내가 어른이니까... 나라도 어른이니까... 어른은 울면 안되지... 울음을 삼킨 스완은 상냥하게 대답해주기로 했다.

"곤란한데."
"왜요?"
"내가 싫어서."

이쯤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싶었는데 그건 어른의 오산이었다. 킴은 어린애답게 떼를 썼다.

"에이. 정말 안돼요?"

웃는 얼굴은 상큼하니 예뻤고 올라가는 말끝이 앳되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스완은 담배연기를 멀리로 내뱉으며 잘라 대답했다.

"어. 싫어."



-



영화의 골자는 프랑스 영화답게도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이었고 그 주체는 두 남자였다. 그 둘의 관계는 교수와 제자, 후원자와 피후원자,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였지만 연인은 아니었다. 연인이라는 달콤한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관계였나보다고 스완은 생각했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인 몽테뉴 교수를 사랑하게 된 학생 안톤이 어느날 자신의 후원자가 몽테뉴 교수임을 알게 되고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몽테뉴 교수는 크게 당황하고, 이상함을 느낀 안톤이 아버지와 몽테뉴 교수의 관계를 의심하며 벌어지는 치정극이었다. 트레일러를 배정받고 각자 시간을 좀 보내라고 해서, 스완은 원작을 집어들었다. 스크린플레이용으로 각색된 대본만 읽었을 뿐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었다. 캐릭터 빌딩을 어쩌면 다시 해야 할지도 몰랐다. 중간이 조금 못 되게 읽었는데 지금까지 두 남자주인공이 나눈 밀어라고는 킴이 맡은 캐릭터가 스완의 캐릭터의 귀에 속삭이는 "당신의 부정을 고발하겠어요." 뿐이었다. 그리고 스완의 캐릭터가 무겁게 눈을 감고 고통에 잠기는 묘사를 마지막으로 챕터가 덮였다.

"어디 읽어요? 나 좀 가르쳐줘요."

스완은 마치 자신이 몽테뉴 교수인 것처럼 눈을 감았다가 킴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들어오라는 말도 안 했건만 이 어린 불청객은 어느새 커피테이블에 걸터앉아 있었다. 아까랑 다른 무거운 마음이 눈을 질끈 감게 했다.

"자요?"

킴은 턱을 괴고 웃는 투로 말을 붙였다.

"좀 친해질려고 왔는데."
"우리가 친해지면 안되는 부분까지 읽었어요."
"말 편하게 하면 안 돼요? 너무 딱딱하다."

스완은 눈을 감고도 킴이 왔다갔다하는 게 언뜻언뜻 느껴졌다. 정신이 사나워서 스완은 결국 몸을 일으켜 앉았다.

"뭐요. 뭐 해줘요."
"해주긴 뭘요, 제가 어린애예요?"
"아닌가?"

뾰족하게 말하는데 킴은 아랑곳않고 시원스레 웃었다. 또 익숙하게 영화에서 본 미소였다. 평소에도 화면에서랑 똑같이 잘 생겼네. 스완은 그렇게 생각해놓고 괜히 민망해져 베고 있던 쿠션만 퍽퍽 때려 일으켜세웠다. 그러는 동안 킴이 대답했다.

"사실 맞아요, 어린애. 그러니까 좀 예쁘게 봐주면 안되나?"



-



킴은 그린듯이 예쁘게 웃어보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진짜 충분히 예뻤다. 됐겠지? 스완이 여전히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어도 킴은 자신이 있었다. 너무 잘생겨서 당황했나? 헤헤. 여전히 머릿속이 꽃나라별나라였다.

사실이 그랬다. 킴이 사는 곳 자체가 꽃별천지였으니까. 한번쯤 웃고 한번쯤 손 까딱하면 안 되는 게 없었다. 갖고싶은걸 금방 가질 수가 있는데 사랑이라고 달라? 우리가 지금 하는게 그거잖아? 너도 나 사랑하지? 그런 말들을 하며 킴에게 먼저 다가왔던 사람들, 킴이 다가갔던 사람들을 줄세우면 못해도 이 촬영장은 가득 채울 수 있을 터였다.

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나 다름없는 거였다. 상대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나 사랑해?"
"응, 사랑하지."

그런 대화들. 수많은 사람들과 나눴던 정확히 똑같은 대화들이 생각났다. 킴은 여유있게 웃었다.



-



자기 혼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웃지. 뭔가 이상한 걸 꾸미는 얼굴인데. 스완은 킴이 수상하게 웃는 얼굴을 빤히 살폈다. ...잘생긴 빌런같다.

"그래서 누나는 안된다고 하길래 생각해 봤는데요."

또 그 얘기냐. 스완의 눈빛에 잠깐 환멸이 스쳤다. 킴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쥘이라고 불러도 돼요?"
"쥘?"

스완의 캐릭터 이름이었다.

"네, 쥴리엣이라고 부를까 했는데 화낼 것 같아서 프랑스 식으로 줄여봤어요. 마침 캐릭터 이름이랑도 같고."
"아니, 잠시만... 쥴리엣? 무슨 말이야?"

킴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썩 들어올렸다.

"책 읽었잖아요? 비극적인 사랑 얘기의 몽테뉴 교수니까 당연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몽테뉴인데 내가 줄리엣이고, 니가 로미오고?"
"네. 왜냐면 사랑에 미친놈은 제 역할이니까요?"

그렇게 말해놓고 킴은 해사하게 웃었다.



-



무심코 "대본은 잘 읽어봤나보네." 했던 건 스스로 생각해도 실언이었다. 킴 눈초리가 좀 날카로워졌다. 당연하죠, 저도 이 판에서 구른 짬이 있는데요. 목소리가 차가워서 스완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알아서 곧바로 사과했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으니까.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알아요."

안 얼굴이 아닌데. 입술도 삐죽거리네. 스완은 문득 그 표정이 낯설다고 느꼈다. 영화에서 보던 표정이 아니었다.

능글능글 웃거나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거나. 스완에게 익숙한 킴은 그 둘 중 하나였다. 영화에서 킴은 웃고 울거나 화를 내거나 사랑을 했고, 동시에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아는 얼굴이었다. 그건 이야기에는 잘 녹아들었지만, 진짜 사랑을 아는 얼굴은 아니었던 탓에 스완이 킴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기분이 상한 건 맞았지만 킴은 그 정도로 쪼잔한 남자는 아니었다. 다만 기회를 놓치는 남자도 아니었기에 킴은 스완의 사과에 얼른 조건을 걸었다.

"미안하면 말 편하게 해요."
"아..."
"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편하게 하고 있네. 그럼 나도 편하게 할게요?"

킴은 스완이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가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자리가 제법 널찍했는데도 자기 곁에 바짝 붙어앉는 킴 덕에 이 넓은 트레일러가 좁게 느껴진 스완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았다. 거 참 거리감 이상한 애네. 이탈리아 사람은 다 이런가. 자길 빤히 쳐다보는 킴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지우려고 스완이 딴청을 피고 있으려니까 킴은 스완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여기서 더 가까워질 수가 있네, 얘 왜 자꾸 붙지, 덥지도 않나, 아 지금 겨울이지 참... 스완은 괜히 민망해 귀가 달아오르는 것 같아 급기야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킴은 거의 스완의 귓전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있죠, 나 남자랑은 키스해본 적 없는데."
"...?"
"그것부터 가르쳐줄래요?"

스완은 얼굴이 터질 듯 오른 열이 부끄러움 따위가 아니라 빡침이라고 확신했다.

"나가!!!"



-



킴은 대본으로 맞은 뒷머리를 머쓱하게 쓸며 스완의 트레일러 문을 닫았다.

"프랑스 사람은 다 저런가..."











스완이 너 키스 가르쳐 줄려면 책 중반도 넘어야 된다고 이 어린애야
킴로시스완아를로
2024.03.03 02:09
ㅇㅇ
모바일
이런ㅁㅊ 제목 옆에 붙은 숫자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요 센세 어나더라니ㅜㅜㅜㅜㅜㅜ 어휴 아기킴로시 진짜 어쩌면 좋냨ㅋㅋㅋㅋㅋㅋㅋㅋ 이와중에 작품 시놉도 개꼴려서 킴스완이 저 내용을 어떻게 찍고 어떻게 감정이 발전할지 너무 기대된다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센세 우리 억나더까지 함께해요💦💦💦
[Code: d74c]
2024.03.03 02:21
ㅇㅇ
모바일
센세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존나 최고야
[Code: b421]
2024.03.03 05:58
ㅇㅇ
모바일
저 둘이 어떻게 연애할지 궁금해 죽을것같다.....
[Code: 2f7e]
2024.03.03 07:50
ㅇㅇ
모바일
헐헐헐 내 센세가 압해에 어나더를!!!!!!!킴 저 애샛기ㅋㅋㅋㅋㅋㅋㅋㅋ그나마 대본으로 맞은건 스완이 많이 참은거다 진짴ㅋㅋㅋㅋ
[Code: 0b3e]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