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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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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온 더 브릿지.”
“현재 진로 상황 보고 해.”

금발의 함장이 들어오자마자 함장석에 앉으며 지시를 내렸다. 그에 응한 것은 카피드 스팍이었다.

“베리스이트를 향해 워프팩터 2로 이동 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시간 후, 목적지 근처에서 임펄스 드라이브로 동력 전환 예정입니다.”
“좋아, 이대로 항로 유지해. 그 외 특이사항은?”
“현재까지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좋아.”

스팍은 사전회의에서 브리핑 받은 사항과 기판에 뜬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그리고 상황 파악을 완료했음을 의미하는 커크의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함교가 잠시 고요해진 틈을 타, 한 명의 크루가 하품을 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지만 억눌린 숨소리를 짧게 내고 만다.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곧 있으면 오늘의 첫번째 교대 근무 종료 시간이었다. 

“…….”

스팍은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는 시스템 창들을 확인한 뒤 한 번 더, 지난 시간의 시스템 로그를 확인했다. 그때, 그가 보고 있는 화면 한 켠에 작은 메시지가 떴다.

[스팍, 조금 있다가 네 근무 시간 끝나면 잠깐 시간 좀 내줘.]

‘스팍’. 일등항해사가 아닌 스팍 개인에게 보내는 다이렉트 메시지였다. 

[오늘 맨도티 소위 생일이거든. 휴게실을 빌려서 깜짝 파티를 해주기로 해서,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모여 줬으면 해. 알잖아, 맨도티 소위가 그런 이벤트를 좋아한다는 거?]

바로 뒤에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커크 함장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참석하겠습니다.]

짧은 답장을 보내고선, 아까 훑어보던 로그를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근무를 교대 하기 전까지 내용을 복기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답장이 돌아왔다.

[네가 온다면 소위가 무척 좋아할 거야. 이상할 정도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더라고. 역시 우리 일등항해사야, 이래저래 인기가 많다니까.]

이 함선 내에서 정말로 인기가 있는 사람은 사실 함장인 당신이라고 답장할까 하다, 금새 생각을 지웠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스팍의 뒤를 듬직하게 지키고 있는 함장석의 사내는, 자신을 절대로 ‘카피드 스팍’이나 ‘나의 스팍’이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스팍은 오직 한 명 뿐이고, 제임스 커크 또한 오로지 저기 앉아있는 한 명 뿐이다. 
스팍은 이 세계가 연옥 같다고 생각했다. 



카피드 스팍은 현실에선 자신의 신체가 가사 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엔터프라이즈호는 일종의 도피처이자 빠져나가야만 할 공간이었다. 
매일 똑같은 항해가 이어진다. 미지의, 혹은 기원이 오래된 R급 행성을 방문해 비밀스럽게 탐사기록을 남기고 다시 다른 R급 행성으로 연이어 나아가는 일정. 아무런 사건도, 어떠한 사고도 없이 모든 탐사는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이 평화로움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면, 오히려 반기고 안정감을 얻었을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진짜로 엔터프라이즈호의 현재 일등항해사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바미넬’의 ‘카피드’ 스팍이었다.

“…….”

이것은 일종의 단죄다. 정말 단 한순간의 유혹으로,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시험을 한 죄로. 카피드 스팍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한 악행이었다. 카피드 스팍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짐을 지켜줄 것이라 말해야 했다. 비록 그의 행동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하더라도, 그 날 그 자리에서 ‘그의 짐’에게 그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벌칸이 아닌 나머지 반쪽, 인간의 마음은 짐의 사랑을 확인하고서도 또 다시 확인 받고 싶었다. 질투란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오리지널 스팍과도 본딩되어 있다는 사실에 마음 속에 불안감이 일었다. 바미넬의 짐을 다시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는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염려와 다르게 바미넬의 짐은 너무나도 확고한 자세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겼고 운명은 그 작은 틈새를 나락으로 만들어 냈다. 
원치 않는 이 꿈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바미넬에 있던 둘 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염원은, 이곳을 빠져나갈 가능성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아마도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이곳에서 머무르게 될 것이다. 

저항을 포기하고, 이곳에 적응한 뒤 늘 그랬던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근무교대를 하고, 이 세계에서 오직 한 명 뿐인 제임스 커크와 업무적인 내용과 개인적인 사담이 섞인 대화를 하고 현장 탐사나 각종 이벤트에 참여했다. 오늘 맨도티 소위의 생일 파티에 참가한 것과 같이. 

“부함장님!”

맨도티 소위는 정말로, 함선내의 인기쟁이인 함장을 두고 스팍에게만 큰 관심을 가진 듯 그가 나타나자마 화색을 띄며 다가왔다. 카피드 스팍은 여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맞았다. 이런 반응이 처음도 아니고 벌써 네 번째이다 보니, 이 이후에 보일 소위의 반응도 짐작대로였다. 매년 생일 때마다 했던 말 그대로. 

“부함장님, 솔직하게! 함장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생일의 주인공이 자신을 끌고 구석진 곳으로 가서 물어보는 것은 4년 내내 언제나 함장에 대한 부함장의 감정이었다. 처음엔 조금 당황하고, 그가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가 싶어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이제는 매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그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 매력적인 유능한 상사입니다.”

그리고 소위는 예상한 대로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카피드 스팍 또한 전년에 그랬던 것처럼 다른 상념에 빠진다. 
오리지널 스팍은 함장 커크에게 연모의 감정을 갖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카피드 스팍인 자신과 동일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은 그 이전부터 함장에게 끌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기억을 잃은 짐을 책임지게 된 걸까. 그렇다면 나의 짐은 캡틴 커크의 대용품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불경한 상상이었으나, 지금은 그의 원죄를 자극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곳의 제임스 커크에 대해 자신이 일말의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기억을 잃지 않은 제임스 커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그의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자신을 카피드 스팍이 아닌 ‘나의 스팍’이라고 불러주는 ‘바미넬의 짐’ 뿐이었다. 

“정말 그것 뿐이에요?”

여전히 작년처럼 반복되는 반응. 반복되는 대답.

“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반복되는 상념. 

‘바미넬의 짐’, ‘나의 짐’, ‘뜻도 모를 굿나잇 키스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던 이’, ‘복제된 스팍을 기다리는 제임스 커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무리를 맡아서 하겠다고 고집하던 짐’, ‘기억을 잃은 순간에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사랑’, 그리고…

“실망이야, 스팍!”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그리운 목소리에 스팍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니. 우리 사이가 그것 밖에 안됐어?”

어느샌가 커크 함장이 그들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https://hygall.com/583960632
2023.09.23 01: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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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Code: 7200]
2023.09.23 08: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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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랑해!!!!!!!!!!! 스팍 저 상태에 빠진 게 단죄라고 생각하는 거 흑흑
[Code: 3984]
2023.09.23 1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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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센세야??????? 진짜????? 이런미친??????????
[Code: 545f]
2023.09.23 1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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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히히히발 여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1편부터 재주행하러간다 딱기다려 헉헉헉허거ㅓ헉
[Code: 545f]
2024.02.05 02: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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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돌아와 센세..
[Code: fc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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