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  /  3  /  4 
외전

급발진주의 날조주의 알못주의....
스크롤주의













사고 후 8개월 뒤, 또 다시 겨울. 이명헌은 초췌한 얼굴로 퇴원했음. 

 

복귀 후 첫 출근 전, 이명헌은 자택에서 현철에게 사전 보고를 받았음. '새끼사자가 무리를 떠나 산을 내려갔다.' 그게 산왕에서 별안간 사라진 우성에 대해 뭇 세계에 만연한 평이었음.

 

박경신 사건 이래로 산왕에서 정우성의 이미지는 이명헌의 남창에서 그가 부리는 새끼사자로 변해 있었기에, 어디 한 군데 켕기는 곳이 있거나 주제넘은 야망을 가진 이들은 이명헌이 그렇게 아낀다던 정우성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음. 언제나 판로를 읽는 이명헌이 다음 수를 위해 목줄을 풀어놨다고만 생각했지.

 

보고를 하면서도 현철은 조심스러웠음. 지난 기간 누구보다 정우성을 찾고자 했던 게 이명헌이었으니까. 화를 내든 어이없어 하든 할 줄 알았는데 이명헌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음. 보스, 하고 현철이 대답을 구하자 천천히 입을 열었음.

 

- 당분간 그렇게 생각하게 두세용. 우성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긴장하고 경계하겠지용.

 

약 5년 전 박경신에서 시작된 내란 직후 이명헌이 체력단련 명목으로 우성을 가둬놨던 건 우성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 다수의 표적이 될 것을 걱정해서였음. 하지만 지금은 표적이 된다 해도 상관없었음. 그 떄와 지금의 우성은 다를 테니까. 게다가 산왕이 아직까지 행방을 못 찾았을 정도면 우성은 웬만해서는 그들이 보내는 끄나풀들 따위에게 꼬리를 밟히진 않을 터였음.

 

- 혹시 아나용. 어디 덫에라도 걸려서 몸부림치다 소식이 들려올지.

 

멀리 창밖을 보며 건조하게 소망하는 눈에 현철이 안타까운 한숨을 삼켰음.

 

 

 

 

 

 

 

 

 

이명헌은 하루하루 말라갔음. 다리 한 짝이 병신이라, 앞으로 살만 뒤룩뒤룩 찌는 거 아닌가 몰라용. 자조적인 농담이 무색하게도 병원에 있는 동안 줄어든 몸집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았음. 그럴만도 한 게, 이명헌은 이렇다 할 복귀 선언도 없이 조용히 원래 그랬던 것처럼 제자리에 돌아와 일을 시작했음. 그것도 아주 많이. 일이 없으면 찾아서 하고 없으면 새로 만들어냈음. 안 가던 계열사 현장들을 죄다 시찰을 돌질 않나, 전국에 깔린 공장이며 물류창고를 들쑤시고 다니질 않나. 평소엔 시간낭비 자원낭비라고 혐오하던 짓을 자처하니까 현철이 걱정을 했음.

 

- 보스. 진행중인 건설현장만 여덟 개, 호텔이 열다섯 갭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 괜찮아용. 누가 하루 안에 다 가자고 했나용. 남는 게 시간인데.

- 차라리 저희가 돌겠습니다.

- 지랄, 그럼 일은 누가 하고. 호텔부터 일정 잡아용. 너도 이참에 배에 기름칠 좀 하게용.

 

몇 달 간, 이명헌은 그렇게 밤낮으로 밖으로 나돌면서 몸을 혹사시키고 다리 통증으로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담배를 태워댔음. 

 

미팅은 또 어찌나 많은지, 북산이며 능남에서도 번갈아가며 사람이 찾아옴. 때로는 적군이었다가 아군이었다가, 언젠가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였다가 하며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조직과 산왕은 당시 바뀐 정권에 줄을 대고자 일시적 휴전 상태였음. 이명헌이 북산의 송태섭, 능남의 윤대협 등을 붙잡고 긴밀하게 일 얘기를 하고 나면 꼭 조용히 물어보는 게 있었음. 거기에 돌아오는 답은 항상 아니오, 뿐이었고. 그러면 이명헌의 잠못드는 밤은 더 깊어져만 갔음.

 

이명헌을 걱정하는 건 현철만이 아니어서, 언젠가부터 낙수가 은근슬쩍 이명헌에게 붙었음. 이명헌도 그걸 모르지 않았음. 하루는 밤늦도록 서류를 보던 이명헌이 사무실 구석에 그림자처럼 지키고 선 낙수를 불렀음.

 

- 낙수야.

- 예.

- 퇴근해용. 나 안 죽어용.

 

입 다물고 버티고 있는 낙수한테 냅다 재떨이가 날아옴. 대답 안 해? 낙수 그대로 이마에 얻어맞고 웅크렸다가 얼른 허리 펴는데 이명헌이 서류 접고 일어남. 

 

- 김 이사.

 

누굴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나용. 이명헌의 일갈에 낙수가 납작 무릎을 꿇었음. 그게 아니라고, 오히려 그 날카로운 이로 스스로 숨통을 끊으실까 걱정돼 그런다고. 낙수가 드물게 애걸하듯 걱정하면 그제야 어슴푸레 드러나는 속내는 간결하고 명확했음.

 

- 그럼 찾아오든가.

- ...죄송합,

- 닥치고 나가.

 

너희는 걱정할 자격이 없어용. 그게 정우성이든 나든.

 

차가운 말에, 낙수가 뭐라 입술을 달싹이다 꾹 다물었음.

 

그렇게 회장님이 동에번쩍 서에번쩍 밤낮없이 일하는 통에 이명헌 의전한다고 산왕 본부 직원이며 현장 직원이 갈려나갔음. 비공식적으로는 많은 자원과 인력이 정우성 찾는 데에 동원되기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경찰 쪽에 손을 못 대서 교통사고 용의자에 대한 수사조차 더디게 진행되었음. 때마침 바뀐 정권이 문제였음. 전에 구워 삶아놓은 담당자들이며 유관부서 태도가 다 바뀌어서.

 

그 상태로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이명헌은 정우성 실종 이후 이빨 빠진 사자나 마찬가지라고 폄하하는 말이 돌기 시작함. 이명헌이 정신 빠져있는 게 티가 나니까 불안해진 송태섭부터가 산왕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협정 깨겠다고 으름장을 놓음.

 

외부에서 압박 들어오고 내부적으론 직원들 갈아대니 불만 생기고 기강 해이해지고. 서서히, 산이 무너지고 있었음. 밟고 선 왕좌의 아래가 들썩이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이명헌은, 그러나 어떤 일을 벌이기에는 지나치게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음. 항상 기민하게 움직이고 아랫것들은 예측 못할 수를 놓던 이명헌이 무뎌졌음은 그가 부재한 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산왕 계열사 우두머리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호승심을 건드렸음.
 

안팎으로 어수선한 낌새에, 현철이 송태섭한테 연락받은 거 보고하면서 이명헌이랑 상의해서 사장단 회의를 소집함.

 

 

 

 

 

 


 

 

 

- 모양 빠지게 이딴 짓거리 하지 말랬지용. 

 

회의 당일, 이명헌이 지팡이를 하나 짚고 출근하자 본사 앞에 차를 댄 곳부터 출입문까지 시커먼 이들의 인사행렬이 이어졌음. 이명헌이 지팡이로 성구의 정강이를 툭툭 치면 성구는 허허 웃으며 애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라는 답을 했음. 이명헌은 혀만 한번 쯧 차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음.

 

대회의실에 도착하니 산왕 계열사 사장단과 핵심 임원진이 모여 있었음. 복귀 후 처음 있는 회의였음. 안건은 각 사의 정기 실적보고였지만 실상은 이명헌의 상태를 탐색하는 자리였음. 6년 전 대부분의 임원진이 물갈이돼서 모두 이명헌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산왕은 1년 가까이 되는 이명헌의 부재를 허투루 여기지 않았음.

 

쿵,쿵,쿵. 이명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팡이가 회의실 바닥에 깔린 카펫을 찍는 소리가 울렸음. 끼이익, 하고 마침내 상석에 앉은 이명헌이 좌중을 휘 둘러보고는 건조하게 인사했음.

 

- 잘들 계셨지용? 보시다시피 난 죽지도 않고 살았어용. 덕분에.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지만 이명헌은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바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음. 회의실 불이 꺼지고, 각 회사 사장과 임원들이 각 계열사 영업 현황에 대해 직접 발언했음.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보고가 끝나고 다시 조명이 켜졌을 때, 이명헌은 손익표를 가지고 계열사를 하나하나 조지기 시작했음. 아니나 다를까 이명헌 없는 사이에 지표가 나빠져 있었던지라. 뭔 짓을 하든 상관없는데 한 자리에 안주하는 거, 이명헌과 산왕이 제일 싫어하는 짓이었겠지.

 

​- 호텔 강선금 대표님.

- 옙!

 

이명헌의 왼편에 앉아있던 호텔 대표가 등받이에서 튕겨나듯 허리를 세웠음. 물산의 임원직을 맡다가 호텔 대표 겸 서울 총지배인직에 앉은 지 갓 일 년. 이명헌의 부재와 맞물려 헛물이 들기 제일 좋은 인물이었음.

 

- 작년 하반기 비용이 튀네용?

- 네 회장님, 삼사분기에 부산점 객실 리뉴얼 공사 잔금을--

- 아아, 맞다. 아까 이쁜 사진도 봤는데 까먹었네. 내가 교통사고 이후로 돌대가리가 돼버렸지 뭐예용. 그나저나 우리 부산호텔 오션뷰가 최곤데. 장사 못 하셔서 어째용?

- 예, 하지만 매출은 연회와 식음업장에서 최대한 세일즈를 해서 커버를--

- 아니,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도 간만에 가봐야겠다고용. 재단장도 했는데 매상 올려드려야지. 안 그런가용, 신 이사.

 

일정 잡겠습니다. 한쪽에 서 있던 현철이 박자 맞춰 대꾸했음. 이명헌은 이번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림.

 

- 건설 장정한 대표님. 호텔 공사 잘 쳐주셨지용? 

- 예에, 예. 물론입니다.

- 시공 수주는 누가 했나용? 부산 업체들?

- 예에, 물산과 거래 실적이 있는 시공삽니다. 부산에서 매출 1위인--

- 상반기엔 속초랑 여수도 하셨고. 근데, 속초 공사한지 얼마 안 됐다면서용.

- 18년도에 객실 리뉴얼을 했고요, 노후화로 부분공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식음업장을--

- 건설이 돈 좀 버셨겠네. 장 대표님, 요즘은 중간마진 몇 프로 떼세용? 십삼 프로?

- 십육 프롭니다, 하하. 워낙 물가가 올라--

- 십유욱? 아니 내가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얘기를 하고 있었네용? 비싸네, 호텔은 피눈물 나셨겠고. 거 계열사끼리 잘 좀 해주십시다용. 내년에 송도에도 땅 판다며.

- 예에, 회장님, 물론입죠.

 

이명헌의 질문은 그렇게 대표들에게 차례로 돌아갔음. 건설 다음은 물산, 물산 다음은 유통, 유통 다음은 다시 호텔로. 대화가 길어질수록 조곤조곤 숨통을 옥죄어오는 이명헌의 언사에 대표들의 얼굴이 굳었고, 계열사 간에 먹고 먹히는 돈의 굴레를 지켜보며 동오가 계산을 빠르게 굴렸음. 

 

- 사장님들.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니들 뒷구녕이나 빨라고 앉혀드린 자리가 아닐 텐데용. 돈을 벌 거면 남의 피를 빨아야지용. 못할 거면 가진 돈이나 잘 지키시든가. 응?

- ......

- 특히 호텔, 강선금 대표님. 거긴 적자만 안 나면 칭찬받아야 될 업종이에용. 적자 안 내고, 물 잘 팔고, 클럽에 사고나면 잘 묻고. 그러라고 있는 데지 니 취향대로 방 뜯어고치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용. 분기마다 방 삼백 개씩 갈아엎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벌려용? 회사 돈으로 니네 집 리모델링해용?

- 회장님, 그게--

- 됐고, 다음 회의 때는 안 봤으면 좋겠네용.

 

이런식으로 현철이 기대한대로 기강 잡고 판 한번 갈아엎어주고 회의 끝내는데 이명헌 많이 지쳤겠지. 병원에만 있느라 가뜩이나 체력 저하됐는데 사장들 손익보고 두 시간 듣고 기싸움하느라 상태가 말이 아님.
 

이명헌 데리고 회의실 나오던 현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음.

 

- 보스, 재활할 겸 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현철이 보기에도 많이 한심한가용.

- 이러다 쓰러지기라도 하실까봐 그게 겁나서 그럽니다.

- 병원에 제 때 데려다 줄 현철이 있는데 내가 뭐가 무섭겠어용. 뒤지기밖에 더 할까.

 

현철이 결국 인상을 구겼음. 답답한 넥타이를 거칠게 끌러내다 먼 발치에서 수군대는 임원들을 발견했겠지. 차마 그 자리에서 뭐라고는 못 하고, 성큼성큼 눈앞에 보이는 빈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열고 기다리자 이명헌이 천천히 지팡이를 옮겨 뒤따라 들어갔음. 쾅, 다소 거칠게 문이 닫히고 현철이 후, 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음.

 

- 그래서 하는 말이다, 명헌아. 죽을 생각밖에 없는 사람 같아서.

 

최근의 이명헌은 모든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였음. 항상 앉던 상석의 가죽 의자가 아니라 낮은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기대어 앉은 이명헌의 모습이 유난히 작았음. 툭 건드리면 땅으로 꺼질 것처럼. 조용한 회의실 공기에 흩어져 사라질 것처럼. 이명헌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미간을 문질렀음.

 

- 그만...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용.

- 싸우자는 거 아니야. 하소연이지.

 

어디 들어보자는 듯 눈을 드는 이명헌에, 현철이 천천히 진심을 내비쳤음.

 

- 명헌아. 그 날 너를 잃을 뻔했던 나도 좀 생각해주면 안 되냐?

- ......

- 같은 차를 타 놓고 병원에서 너보다 한참 먼저 눈 뜬 나는 어땠겠냐. 일어나서 죽은 듯이 자는 너를 본 나는, 너는 절뚝거리는데, 그 차 운전대 잡아놓고 사지 멀쩡한 나는... 어떻겠냐고.

 

현철이 이명헌에게 자기 감정을 내세우는 일은 드물었음. 그럴 일이 있어도 현철은 대개 나도 이기적으로 살아보자, 하고 농담처럼 밑밥을 깔곤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하는 말에 이명헌은 비로소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음. 현철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성구나 동오 낙수까지 대변하는 말일 텐데, 근래에 그들의 마음을 단 한 순간도 헤아리지 못한 게 사실이라. 현철이 이명헌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음.

 

- 난 그 날 사고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거고, 그 망할 트럭기사를 누가 사주한 건지만 알아내면 사지를 갈가리 찢어서 멧돼지 밥으로 던져줄 거다. 

 

근데 명헌아. 현철이 이명헌의 앞에 의자를 가까이 당겨 앉았음.

 

- ...찾으려고 우리도 별 짓거리 다 해봤잖아. 경찰에 읍소한다고 클럽에 마약 사다 갖다놓고 넘겨, 허구헌날 호텔 접대해줘, 관공서 공사 건은 죄다 후려쳐서 입찰 들어가고. 근데 그것도 이제 한계인 것 같다. 북산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봐.

 

송태섭 그 새끼가 뭐라는 줄 아냐? 산왕 혼자 딴 맘 먹은 거 아니냐고, 나대다가 망할 거면 혼자 망하라고. 한 번만 더 혼자 움직이면 휴전도 끝이라고 협박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 북산 하나쯤야 문제도 아니지만, 송 실장이 움직이면 능남도 가만히 안 있겠지. 건방지게 들고 일어나면 당연히 밟아줘야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잖아.

- 그렇지용...

- 이런 말 어렵게 꺼낸 거 좀 알아줘. 명헌아. 나 좀 봐봐. 보스.

 

​우성이가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가늠도 안 되지만 말이다.

 

- 저어기 룸살롱에서 술상 닦는 애부터 사장이라고 앉아서 담배나 쳐 피우는 놈들까지, 아무리 바닥 인생들이라도 딸린 식구들 입에 풀칠은 하게 해 주자며. 내 사람인 한은, 그거 하나는 책임져 주자며. 난 그게 이명헌의 산왕이라고 믿었다. 그것만 믿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런데 지금 너는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그러니까 죽을 각오로 살자며. 근데 지금 너는 죽고 싶은 것도 살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아.

 

이명헌이 가라앉은 눈으로 현철을 마주봤음. 그 눈빛이 현철은 답답했겠지. 반평생 넘는 시간동안 알던 것과 다른 사람 같았음. 차라리 예측불허하던 전처럼 불같이 화라도 냈으면. 전처럼 울기라도 했으면. 아파하는 이명헌을 지켜보던 지난 시간 곁에서 깊숙이 접어놓았던 의구심을 현철은 천천히 꺼내 펼쳤음. 그게 이명헌의 가슴 속에 뒤틀린 불씨라도 되어주길 바라면서.

 

- 벌써 2년이다, 명헌아. 내일이 애 생일이지.

- ......

- 2년간 흔적도 없어. 살았으면 어디선가 기별이라도 보내야지. 네가 걔한테, 걔가 너한테 어떤 의미인데. 그걸 알면 이렇게 숨어있으면 안 되잖아. 어?

 

우성의 죽음을 추정하는 이야기에, 이명헌이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음. 마치 뇌사상태에 빠진 환자가 그리운 목소리에 손가락을 가까스로 움직이듯.

 

- ...사고 낸 트럭 기사. 경찰 말로는 현장에서 그놈 손이 하나 사라졌다고 했어용. 누가 가져간 게 아니고서야...

- 이명헌!

 

결국 현철이 고함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음. 드르르륵, 우당탕. 바퀴 달린 회의용 의자가 굴러가다 속도를 못 이기고 뒤집혔음.

 

- 그 새끼들 말을 믿어? 뒷구녕으로 처먹기나 받아처먹고 여태 내놓는 것도 없는 새끼들을! 

- ......

- 비가 그렇게 왔는데... 진작 아작났든지 쓸려내려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잊었냐.

- ......

- 명헌아. 오늘부턴 그렇게 생각하자, 우리. 그래야 네가 살아. 제발, 부탁이다.

 

이명헌이 입을 달싹이다 말았음. 항상 한 수 접어주는 쪽은 현철이었는데, 이번엔 그럴 생각이 없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을 때는 한층 더 표정이 지워져 있었음.

 

- 신 이사. 미안해용.

- ...보스.

- 미안.

-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요.

 

순간적으로 불안해진 현철이 그대로 방을 나서려는 이명헌을 붙잡았음. 이명헌이 희미하게 입술을 끌어올렸음.

 

-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용. 정신 차릴게용.

- 그런 말이 아니라,

- 쉬는 건... 좀 더 있다가 할게용. 아직은 자신이 없어용.

 

밤에 잠이 잘 안 와용. 웃으려다 웃지도 못하는 얼굴에 현철도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었음. 화내서 미안하다 말하며 이명헌의 얄팍해진 몸을 안아주는 수밖에. 이명헌은 가만히 안겨 있다가 현철의 팔뚝을 두드리고는 회의실을 나섰음.

 

 

 

 

 

 

 

 

 

 

그 날 오후,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이명헌은 침실에 들어가 달이 지고 해가 뜰 때까지 나오지 않았음. 현철의 연락을 받고 집에서 대기하던 낙수가 괜히 이명헌을 방 문 앞에서 자꾸 불러보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방에 쳐들어가고. 새벽에는 결국 축객령에 침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졸다가 깨다가 하기를 몇 번. 끼익,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커다란 거실 창에 아침햇살이 들이치고 있었음. 낙수가 찌뿌둥한 몸을 펴고 간신히 고개를 들었음.

 

- 낙수야.

 

근래의 초췌한 인상은 한결 걷히고, 말쑥하게 까만 정장 차림을 한 이명헌이 문턱을 밟고 서 있었음. 낙수가 잠이 홀라당 달아나 눈을 크게 떴음.

 

- ...보스? 괜찮으십니까.

- 한결같이 미련한 놈. 운전할 수 있겠나용.

 

이제와서 졸음운전에 뒤지기는 싫은데. 오랜만에 그다운 말에 낙수가 벌떡 일어나 매무새를 가다듬었음.

 

이명헌을 태운 차는 어김없이 바닷가 묘소를 향했음. 남자들의 몸을 감싼 검은 옷자락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를 머금고 축축 늘어졌음. 땅을 다지듯 봉분 주변을 몇 걸음 뱅뱅 돌던 이명헌은 결이 고슬고슬한 코트가 엉망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주저앉았음. 손에는 양주 한 병을 든 채였음.

 

- 이거 받으세용. 우리가 파는 술 중에 제일 비싼 거예용. 그치, 낙수야.

 

종이컵 두 개에 술을 채운 이명헌이 봉분 앞에 하나씩 내려놓음. 낙수는 묵묵히 먼 발치에서 자리를 지킬 뿐이었음.

 

- 받으시고... 염치없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용.

 

짠, 그리고 짠. 종이잔에 각각 병 끄트머리를 부딪친 이명헌이 양주를 병째로 들이켰음. 뜨겁게 목을 타고 내려간 알콜이 위장에 불을 지르고 요란하게 뇌에 신호를 보냈음. 앉은 채로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이명헌은 고개를 탈탈 털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음. 취기를 빌려, 묘소에 대고 그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을 했음.

 

- ...혹시 우성이, 거기 있나용.

 

이명헌의 입술이 떨리고 목이 갈라졌음.

 

- 얼마 전까지는 꿈에 줄기차게 나오더니 이젠 꿈에도 안 나와서용. 제가 맘에 안 드시겠지만 한 번만,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제 꿈에 보내주시면 안 될까용. 이명헌의 목소리는 너무 조심스럽고 작아서, 거의 파도 소리에 묻히려고 했음.

 

- ...평생 생일을 못 챙겨봐서, 초에 대고 소원 한 번 못 빌어본 불쌍한 이명헌이한테. 적선 한 번 한다 셈치시고용.

 

죽은 놈 극락왕생할래도 이승에 남은 놈이 곱게 놔줘야 한다더라고용... 중얼거리며 술병을 내려놓은 이명헌이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가져갔음. 품에서 하얗게 한들거리는 꽃머리가 통, 하고 고개를 내밀었음. 동그란 국화꽃이 한 송이, 두 송이...

 

- 저도 깔끔하게 잊고 놔주고 싶으니까... 한 번만요.

 

부탁드립니다. 꽃을 두고 바닥에 납작 무너지는 이명헌을 따라 낙수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음. 거센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며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붙었음. 간청은 곧 사죄의 말로 바뀌었음.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폭풍우 같은 파도소리가 기어이 이명헌의 통곡을 집어삼켰음. 엎드린 이명헌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일수록 낙수도 눈을 질끈 감았음.

 

- ...정우성은 죽었어용.

 

울산에서 돌아온 이명헌은 회의를 소집해서 우성의 죽음을 선언했음.

 

- 2년 전에, 내가 죽였어용.

 

산왕 주요 임원진이 웅성대며 서로를 마주보았고, 이명헌은 완전히 꺼져버린 눈빛으로 회의실을 둘러보았음.

 

- 핑계거리가 없어졌으니 처신 잘들 하시길 바라용.

 

빈 술병과 함께 이명헌이 떠난 묘소 앞, 국화꽃 세 송이가 팔랑거리며 가느다란 꽃잎을 흔들었음. 

잘 가요, 잘 가. 미련도, 잘못도, 사랑도. 마치 인사하듯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명헌의 애도기간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음.

 

 

 

 

 

 

 

 

 

 

 

산왕이 다시 활기를 띠었음. 이명헌은 지방 출장을 줄였고, 우두머리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으니 자연히 사무실과 사업장에 일하는 직원들도 조금 더 긴장하면서 조직은 어느정도 제자리를 잡았음.

 

결정적인 계기는 그 이후 열린 월간 사장단 회의였음. 회의는 항상 같은 대회의실에서 같은 자리 배치로 진행됐음. 직전 회의에서 이명헌에게 쥐 잡듯이 잡힌 호텔 대표를 포함한 몇몇 임원이 발령으로 인해 새 얼굴로 바뀌어 있었음. 말이 발령이지,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판이라. 새 얼굴들을 확인한 기존 인사들 간에 싸늘한 긴장이 흘렀음. 이명헌은 새로워진 분위기가 꼭 이십 년 전 자기가 처음 회장이 되었을 때 같다고, 쾌활하게 회의의 서두를 열었음.

 

회의는 큰 문제 없이 끝나고, 이명헌과 간부들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장내가 웅성댔음. 서로의 눈치를 보던 이들은 누군가 그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말문을 텄겠지.

 

- 정우성이 죽었다더니, 진짜인가봅니다.

 

진짜 죽은 거냐, 장례식 얘기를 못 들었는데 시신은 찾았다냐.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도 대화의 끝은 하나였음. 

 

- 뭐 어쩔 겁니까. 회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안 그래요?

 

나서서 장내를 정리한 건 산왕물산 대표였음. 크흠, 그렇지요. 그 말이 맞지요. 중역들이 연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림.

이명헌의 의도대로 산왕 내부의 의구심은 그 정도에 그쳤음. 그러나 다른 조직의 수장들은 달랐음.

 

강남 모처 북산 관할의 술집, 산왕과 북산 능남이 모였음. 송태섭이 이명헌에게 협박을 철회하고 사과하는 자리였음. 

 

- 자자, 제가 사과의 의미로 초청드린 거니까, 오늘은 맛있게 드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명헌은 성구를, 태섭은 이제 막 일을 배우는 막내 오중식을 데리고 왔는데 윤대협은 혼자 참석했음. 너무 긴장감 없는 거 아니냐는 태섭의 농담 섞인 핀잔에도 허허 웃기만 하는 대협이었음. 우리 이 회장님에 송 실장님까지, 아주 거성들이 모여 계신데 별 일 있으려구요. 능청스러운 태도에 기가 막힌 이명헌이 픽 웃어버리고 거기에 태섭이 맞장구를 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됨.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의 일에 대해 농담도 하고 한탄도 주거니받거니 해가며 앞날을 도모하던 중이었음. 이명헌에게 긴급한 일이라며 연락이 옴. 이명헌이 양해를 구하며 성구까지 데리고 방에서 나가자, 대협이 기다렸다는 듯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꺼냄.

 

- 이거야말로 왕의 귀환이네요. 북산이 나서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대협이 술잔을 내밀었고, 입에 발린 소리인 걸 아는 태섭은 경쾌하게 마주 잔을 부딪치면서도 우쭐하진 않았음.

 

- 저 늙은 사자의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만. 정신 차려서 다행이죠. 산왕이 흔들리면 피차 좋을 게 없으니까요.

 

북산은 건설과 유통을, 능남은 조선과 무역업을 메인으로 하는 조직이었음. 북산은 언뜻 보면 산왕과 업태가 겹치지만 규모 면에서 산왕보다 작고, 인천을 베이스로 항만을 낀 지역을 관할했기 때문에 산왕도 북산도 서로를 경쟁자로는 여기지 않았음. 한편 능남은 사업영역도 다르고 무대로 삼는 주요 지역이 달라서 전통적으로 산왕과 공생하는 관계였음. 모두 산왕이 바다와 친하지 않아서 생겨난 양상이었음. 산왕이 그 옛날 울산지부까지 자멸시킨 후로는 선대 수장들이 무슨 미신이라도 믿었던 거냐 수군댔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겠지.

 

-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송 실장님. 그 이명헌이, 양아들 하나 죽었다고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튼 산왕을 대하는 북산과 능남 간에 다른 점이 있다면 북산은 산왕 같은 거대 조직이 흔들리며 뒷세계에 균열을 일으킬까 조심하는 주의였고, 능남은 한 발 느긋하게 물러서서 주시하는 입장이란 거였음. 직함만 안 달았다 뿐이지, 각각 조직은 현재 태섭과 대협이 실질적인 대표로써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참이었음. 때문에 태섭은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함.

 

- 그러게 말입니다.

- 그래도 재미있어질 수 있었는데 아쉽단 말이죠. 산왕이 마땅한 후계가 없잖습니까? 정성우가 죽어버려서.

- 정우성이요, 정우성. 윤 전무도 참.

 

아아, 맞다. 정우성이요. 굳이 죽은 후계를 거론하는 대협의 말에, 태섭이 한쪽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음.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이 자식은.

 

- 뭐, 정우성 빼고는 후계 감이라고 알려진 바가 없긴 했죠.

- 그 녀석 실종되고 한동안 돌았던 소문 기억하십니까.

- 당연하죠. 실종이든 사망이든 아무도 안 믿었잖아요. 감히 누가 산왕의 자식을 건드리려고.

​- 바로 그겁니다. 이명헌이 일군 과거의 산왕은 밖에서 시비를 거는 놈들이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감히 아무도 건드릴 생각을 안 합니다. 산왕 최대의 적은 내부에서 나올 겁니다. 칠 년 전에 있었던 전쟁도 내란이었고...

- 이명헌의 근본도 거기서 오고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태섭의 옆에서 앳된 얼굴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질문했음. 근본이요? 그러자 태섭이 아차 하는 얼굴로 그를 돌아봄. 중식이 너 거기 있었구나. 태섭이 자못 다정한 투로 설명했음. 옛날에 이명헌 회장이 일으켰던 반란 말하는 거야. 숫사자들 본능이고 습성이거든. 다른 우두머리를 물어죽이고 그 무리를 차지하는 거. 이야기를 들은 중식이 고개를 끄덕임.

 

- 아, 그래서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라고 부르는군요...

- 그 때 산왕이 아마 계열사 임원 삼분의 일을 갈아치웠다죠?

- 그거 뒤처리는 다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어후, 난 후폭풍이 무서워서라도 그렇게는 못 해.

 

그나저나 교통사고 범인은 잡았던가요? 태섭이 술을 넘치게 따라주며 하는 말에 대협이 싱긋 웃었음.

 

- 보나마나 내부자 아니겠습니까.

- 설마 또 내부자요? 산왕이 무슨 콩가루 조직인가.

- 이명헌이 권력을 잡은지도 벌써 이십 년이 다 돼가니까요. 슬슬 내려올 때도 되었죠.

 

태섭은 은근슬쩍 말꼬리를 돌리려 했음.

 

- 그 정우성은, 시신도 못 찾았다는 것 같던데요.

- 그래서 말인데요, 실장님.

 

대협이 소파에 깊숙이 기댔던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음.

 

- 정우성 말이에요. 사실 안 죽은 거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얘가 뭐라는 거야. 태섭이 질린 얼굴을 했음. 대협은 개의치 않고 계속 이야기를 했음.

 

- 산왕 전체가 걔 찾겠다고 온갖 로비란 로비는 다 하고, 격 떨어지게 그 지랄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뚝 관둬버리는 게, 의심스럽단 말이지요.

- 의심은 무슨. 죽었다는데 관둬야지 뭘 어쩝니까.

 

설사 살아있대도, 생사도 모르는 사람 오래 붙들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요. 태섭이 드물게 표정을 싹 굳히고 하는 말에는 대협도 할 만큼 했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뺐음. 

 

- 역시 그런가요? 

 

태섭은 이때다 싶어 대협에게 취한 것 같으니 안주를 좀 먹으라며 권하고, 밖에다 대고 물을 가져오라며 일부러 수선을 피웠음. 그러고 있으려니 달칵, 룸의 문이 열리고 이명헌이 들어왔음. 평소의 무표정보다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음.

 

- 미안하게 됐어용. 일이 생겨서 가야겠어용.

 

​조만간 우리 쪽에 한 번 모시지용. 고개를 까딱이며 물러나는 이명헌에 태섭이 문을 열어 잡아주고, 대협이 일어서서 배웅을 했음. 성구가 자리에 두고 갔던 가방을 집어들었음.

 

- 아쉽네요, 이 회장님. 요즘 남해가 조황이 좋습니다. 언제 한 번 같이 내려가시지요. 최고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 응, 낚시 좋지용.

 

이명헌 알겠다고 따박따박 대꾸는 하지만 표정이 영 정신이 없었겠지. 복도에 대기 중이던 시커먼 산왕 조직원까지 우르르 떠나고 실내가 조용해졌음. 중식과 눈빛을 교환한 태섭이 문을 지키던 직원에게 말했음.

 

- 야, 밖에 도청기 가져와봐.

 

그리고 윤대협 너. 태섭이 불시에 대협의 멱살을 잡고 고개를 끌어내렸음.

 

- 뭐 아는 거 있지. 불어.

 

철컥, 룸의 문이 잠기고 앞뒤로 북산 조직원들이 대협의 퇴로를 가로막았음.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인 채, 대협은 항복하듯 두 손을 들고 허허 웃었음.

 

이것 참, 난감한 걸요.

 

 

 

 

 







-
늦어서 미안합니다
퇴고도 덜됐고 빡머갈 인증만 될거같은 글이지만... (아무거나 나가라 씨발 짤)
읽어줘서 코맙읍니다

슬램덩크 우명

https://hygall.com/5591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