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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5 19:22
우성이가 호랑이새끼인거 잘 알아서 긴장하는 이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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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랑 큰 상관없는 짧은 외전
우성이 막 데려와서 열살때임










이명헌 없는 이명헌의 집에서 낙수는 우성의 의식주 담당이었음. 생필품이나 책 같은 것을 주기적으로 날라다 주었고, 잘 때가 되면 재우고 일어날 때가 되면 깨웠음. 우성은 낙수가 대체로 좋았지만 단 하나 싫은 것이 있다면 아침 먹으라는 잔소리였음. 애기 살 찌워야된다는 이명헌의 지시로 밥을 먹여야 하는 낙수와 왜인지 아침만은 안 먹겠다고 고집이 황소고집인 우성의 의견차이로 아침마다 실랑이가 벌어졌음.



'아오오, 이 조막만한 걸 때릴 수도 없고!'



낙수가 본격적으로 우성에게 아침밥을 먹이기를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음. 그 험난한 산왕에서 타칭 참을성의 왕자로 불리는 김낙수가 참다 못해 폭발했음. 허공에 대고 화를 버럭 내지른 낙수는 밥상에서 도끼눈을 뜨고 있는 우성을 어르고 달래기에 이르렀음.



'꼬마야. 밥을 계속 이렇게 안 먹다간 보스가 네 모가지에 구멍 뚫고 처넣어주라고 할 거야. 그러다 내 모가지도 뚫리는 거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좀 먹어라. 어?'

'...아저씨는 아침 안 먹어요?'



우성이 지칭하는 아저씨는 당연히 이명헌이었음. 낙수는 단호하게 대꾸함.



'보스는 한밤중인 걸.'



우성은 저만치에 꽉 닫힌 침실 문을 쳐다봤음. 문 너머에 이명헌이 암막커튼을 치고 한창 단잠을 자고 있을 모습이 눈에 훤했음. 우성이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낙수와 외출 준비를 하는 반면 이명헌은 잠을 자느라 얼굴을 보여주는 법이 없었음. 동이 틀 때 귀가하고 한낮에 출근하는 생활패턴 때문임은 우성도 잘 알고 있었음.



'그럼 낙수 아저씨가 같이 먹으면 안 돼요?'

'난 안 된대도.'



이것도 일주일째 반복되는 패턴이었음. 우성은 매번 낙수에게 식사를 권했고 낙수는 단칼에 잘라냈음. 우성은 어째서인지 저와 절대로 밥을 같이 먹어주지 않는 낙수가 원망스러웠음. 씨이, 아저씨는 잠만 자고, 낙수 아저씨는 안 된다고만 하고. 도무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낙수의 태세에, 우성은 잔뜩 울상이 되어선 그제야 속내를 내비쳤겠지.



'...혼자 먹으면 맛없단 말이에요...'



낙수가 그런 우성을 가만히 들여다봤음. 눈가가 꿈틀, 하는 듯했으나 결론은 가차없었음. 맛 없어도 먹어, 그래야 키 크지.



그런데 다음날 아침. 하늘이 우성의 말을 들어준 걸까, 어쩐 일인지 덜컹 침실 문이 열리고 이명헌이 비척비척 걸어나왔음. 아저씨가 이 시간에? 식탁에서 또 낙수와 실랑이를 하던 우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명헌을 쳐다봤음. 차르르 몸에 감기는 곤색 파자마를 입은 이명헌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주방에 들어왔고, 눈도 못 뜬 채로 낙수에게 이만 가보라고 휘휘 손을 내젓더니 식탁에 우성과 마주 앉았음. 해를 못 봐 창백한 얼굴이 퉁퉁 부어서는, 짙은 쌍꺼풀이 더 짙어지고 두꺼운 입술이 더 두꺼워진 채였음. 항상 무섭던 얼굴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음. 우성은 그 얼굴을 본 순간 히힛, 하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가 합 하고 입을 가렸음. 우성이 웃거나 말거나, 이명헌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르게 식탁에 기대 앉아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음. 그저 우성의 앞에 차려진 밥에 턱짓을 하며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지.



'밥. 먹어용. 있어줄 테니까.'



그러면 우성은 이명헌 앞의 빈 식탁을 쳐다보았고.



'...같이 먹어요.'



우성의 고사리같은 손이 용기를 내어 이명헌의 잠옷 소매를 붙잡았음. 곧 솥뚜껑같이 커다란 손이 우성에게 다가왔음. 맞는다, 싶어서 반사적으로 눈을 꼭 감고 움츠렸던 우성은 제 머리 위에 턱 하고 올라온 손에 천천히 눈을 떴음. 아가.



'계란후라이 먹을래용?'

'...같이 먹을 거예요?'

'응.'



이명헌의 대답에 우성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면 이명헌은 또 비척비척 일어나 부엌에 섰음. 곧 지글지글 기름에 계란 익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났음. 우성은 양손에 수저를 꼭 쥐고 이명헌의 뒷모습을 구경했음. 덩치에 비해 장난감처럼 작은 후라이팬을 쥔 커다란 등이 든든해 보였음. 프라이가 익는 잠시동안 이명헌은 거실로 나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음.



'어, 현철아. 오늘 좀 일찍 시작하자고. 지금 애기랑 밥 먹고 곧 가용.'



...웬일은, 원래 아침형 인간인데용. 이명헌의 대꾸에 수화기 너머로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샜음. 시끄러워용, 한 마디와 함께 이명헌은 전화를 철컥 끊고 돌아와 가스레인지 불을 껐음. 노른자가 다 터진 못생긴 달걀 프라이 두 개를 각각 접시에 담아 건네는 손길이 어색했겠지. 우성은 이명헌이 자리에 앉아서 제 몫의 계란을 한 조각 잘라먹는 걸 보고서야 밥을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음. 흰 쌀밥이 전에 없이 달콤했음. 이명헌은 여태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런 우성을 멍하니 쳐다봤음. 그리고 소가 여물 씹듯 저작질을 하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소리를 냈음. 우성은 열심히 밥을 먹다 놀라서 이명헌을 올려다봤고, 이명헌이 굼뜨게 입을 열었음.



'정성구 말이... 입맛 없을 때는 케찹이 좋다던데용.'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이명헌이 다시 느릿느릿 일어나 냉장고에서 토마토케찹을 꺼냈음. 포장도 안 뜯은 새것이었음.



'먹어볼래용?'



이명헌의 질문에 우성이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음. 곧 우성 몫의 프라이 위에 삐뚤빼뚤 빨간 별모양이 그려졌음. 반짝이는 눈으로 이명헌의 투박한 손끝을 지켜보던 우성이 배시시 웃었고 이명헌은 시선을 피했음. 우성이 이명헌의 손에서 케찹통을 뺏은 건 순식간이었음.



'나도 그려줄래요.'



우성이 이명헌의 몫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음. 도중에 어린 손이 힘조절을 못해서 케찹이 뿌지직 소리를 내며 왕창 쏟아져 나왔고 한쪽이 삐뚤어진 새빨간 하트가 달걀 프라이 크기만큼 퍼질러졌음. 앗...! 우성이 당황해서 눈치를 봤지만 말없이 하트를 내려다보던 이명헌은 불평도 없이 그걸 한 입에 털어넣었음.



'맛있네용.'



느릿한 소감에 우성은 까르르 웃었음.



그날 밤, 혼자 잠자리에 든 우성은 이명헌과의 아침을 떠올리며 혹시라도 누가 들을새라 수줍게, 새털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음.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











슬램덩크 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