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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41

전편






* 알못 주의,,, 뇌절 주의,,,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백호의 호언장담대로, 백호의 앞에 음식이 착착 쌓였음. 퓨전 팟타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과 테두리가 바삭하게 부쳐진 김치부침개, 매콤하게 염지 된 채 환상의 짝꿍 치킨무와 머스타드 소스를 곁들인 크리스피 치킨. 음식 하나 하나가 나올 때마다 패널들의 환호성도 커졌음. [아 저기에 소주 한잔, 크.] [치킨엔 소주가 아니라 맥주죠.] [어묵탕에 맥주가 왠말이에요, 당연히 소주 가야지!] [저기 부침개는 무시하세요? 받고 막걸리 가야죠!] 딱봐도 술에는 별 관심없어 보이는 태웅은 뒤로 하고, 의외로 백호가 술 얘기에 고개를 갸웃했음. [사이다가 있는데 왜 굳이...?] 백호의 말에 패널들의 시선이 백호에게 쏠림. [아 백호씨가 뭘 모르시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뜨끈한 어묵탕에, 어 쐬주 한잔이면 이야, 크으,] [그만그만, 다들 운동 선수분들한테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거에요 지금.] 가만 있던 태웅이 입을 열음. [...술은 별로 내키질 않아서요. 다음날 머리도 아프고.] 백호도 왠일로 태웅의 말에 보조를 맞춤.[맛도 없고.] 태웅과 백호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패널들은 둘을 맛알못 취급 중이었음. 화면 너머에선 이제 음식들을 앞에 둔 백호가 수저를 입에 물고 한가득 입 안으로 퍼 나르는 중이었음. 그 앞에 앉은 호열이 제 몫으로 캔맥 하나를 들고 옴. 호열의 앞에 놓여진 건 기본 안주로 나가는 튀겨서 설탕을 입힌 건빵 한 접시 였음. 백호가 눈을 동그랗게 뜸. "호열이 넌 안 먹어?" "종일 일해봐라. 일하는 곳 음식은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아, 질려서." "그럼 어떡해! 밥은 먹고 일해야지!" "ㅋㅋ딴데서 시켜먹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백호야.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그럼 디저트도!" "알았어, 파인애플 샤베트 줄게." "...응..." "뻥튀기 아이스크림도 줄까?" "응!!"


호열과 백호의 대화에 패널들이 다들 터짐. [호...열씨? 그러니까 저 분이 백호씨 친구인거죠?] [그럼요! 중학교때부터 알았어요!] [근데 되게 친구라기보단 뭐랄까, 되게...] [보호자같다. 그쵸?] [봐봐, 봐봐. 턱 괴고 백호씨 먹는거 되게 흐뭇하게 바라보잖아. 나 저거 알아. 우리 할머니가 나 먹을 때 저러셨어.] [네에? 아닌데, 호열이는 친군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패널들과 백호가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태웅은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음.



"...으으, 어떡하지..." 신나게 먹고 있던 백호가 젓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함. 호열이 눈을 크게 떴음. "왜그래, 백호야." "치킨..., 치킨 맛있는데..." 그러고보니 치킨은 하나도 줄지 않은 채였음. 호열이 고개를 갸웃했음. "맛있는데 왜 안 먹어. 아, 백호야, 혹시 식단 중이야?" "아니 비시즌에도 너무 풀어지면 시즌 준비할 때 힘들어가지고, 아우 근데 왤케 맛있어 보이냐..."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백호의 입에는 치킨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들이 끊임없이 쏙쏙 들어가는 중이었음. 그 모습을 보면 호열이 피식 웃음. "그거 오븐에 구운 거야. 내가 설마 신경 안 썼겠냐. 튀긴 거보단 낫지?" "헉, 호여라...!" 순식간에 백호의 눈에 감동이 그렁그렁 차오름. "잠만 기다려봐." 호열이 주방으로 쓱 사라짐. 잠시 뒤 나타난 호열의 손에는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들이 들려 있었음. 동그랗게 모양이 잡힌 김치볶음밥 주위에 치즈가 마찬가지로 동그랗게 둘러져 있고 위엔 반숙프라이가 예쁘게 자리잡고 있었음. 나머지 접시 하나엔 수북하게 담긴 숙주나물 위로 토치로 불향을 입힌 차돌박이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양을 본 백호의 눈이 빛남. "호여라!!" "아하하, 너 또 아침도 안 먹고 길거리 코트에서 연습하다 왔지?" "헉, 어떻게 알았어?! 너 나 감시해??" "어떻게 알긴, 너 임마 땀 범벅이야." "아." 쿡쿡 웃은 호열이 백호가 벌써 해치운 접시들을 들고 일어남. 동시에 백호가 음식 접시에 코를 박음. 세 번의 숟가락질만에 음식 반절이 사라지는 기염에 패널들이 입을 벌렸음. [...백호씨 진짜 잘 드신다...] [천재는 먹는 것도 천재!] [와 근데 저렇게 드시면 백호씨 식비 장난 아니겠어요.] 패널들의 말에 백호가 눈알만 슥 굴림. 그런 백호의 모습에 패널들의 야유가 터짐. [와! 그런거 생각 안하고 드신다 이거죠!? 부르주아다!] [부르.., 부르, 네?] [잘 버셔서 부럽다구요!] 웃고 떠드느라 스튜디오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태웅 혼자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음. 양호열네 가게에서 양호열이랑 단 둘(분명 직원이 한 명정도 있던 것 같은데 일단 백호와 밥을 같이 먹는게 양호열임)이서 밥을 먹는 강백호.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는데 방송에서 티낼 수가 없으니 간신히 주먹 꽉 쥐고 참는 중임. 옆에서 뭐라뭐라 떠드는게 하나도 들리지 않음. 태웅의 눈은 화면속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음. 이제 화면 속 백호는 양호열이 추가로 내온 접시까지 해치우고 세상 행복한 얼굴로 파인애플 샤베트 한 입, 뻥튀기 아이스크림 한 입 번갈아 가며 퍼먹는 중이었음.  



"호열아 이거 진짜 맛있다..." "입맛에 좀 맞아?" "너가 주는 건 다 맛있어!" 태웅의 눈썹이 꿈틀함.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멍청이의 연애로망(애인끼리 '서로 만든' 발렌타인 초콜렛 주고받기 같은)에 맞춰준답시고 팔자에도 없는 초콜릿을 녹여서 틀에 붓고 굳히고 상자에 포장해서 건네주기 까지 했는데 한 입 먹고 그대로 입 밖으로 흘려내던 백호의 모습이 생각나서 였음. 애인이 주는 건 맛없어서 뱉을 지경인데 친구인 양호열이 주는 건 다 맛있다 이거지. 태웅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거나 말거나, 말 많고 리액션 좋은 백호가 들어와서 수다가 즐거워진 패널들은 태웅의 기분은 신경 쓸 새도 없이 좋다고 백호와 하하호호중이었음. 패널들은 백호와 떠들면서도 그와중에 양호열에 대한 칭찬을 빼먹지 않아 안그래도 다운된 태웅은 기분이 아주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듯 했음. [호열씨 진짜 사람이 대박이네요. 와, 여자친구 생기면 진짜 잘 해주실거 같아.] [그러게요. 친구한테도 이정도면 여친한테는, 와.] 타이밍 좋게 화면에 떡하니 양호열의 인터뷰 영상이 뜸.



Q. 백호 선수 친구시라는데, 흡사 부모님을 뵙는 줄 알았다. 그렇게 지극정성인 이유가?


"아하하. 그, 이런 말 하면 백호가 화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백호가 쉬운 인상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학창 시절에 오해도 좀 많이 받았어요. 시비도 좀 많이 걸리고. 근데 이제는 응원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저도 그냥 더 잘해주고 싶어서요."




호열의 인터뷰에 스튜디오가 일순 조용해졌음. 패널들이 백호의 눈치를 보다 슬쩍 물음. [저, 백호씨. 저 말 진짜인가요...?] [네, 뭐. 교실에서 누가 뭐 잃어버렸다 그러면 제 가방이나 주머니부터 검사하고 그랬거든요. 나 아니라고 화내면 어디서 성질이냐고 혼나고.] 이건 태웅도 처음 듣는 얘기였음. 저도 모르게 백호에게 고개가 돌아가고 패널들도 할 말을 잃고 어버버하는데 백호가 씩 웃음. [그게 다 천재에게 주어지는 시련이니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들 다시 화면에 집중하게 됨. 화면에 보이는 백호는 디저트까지 모두 해치우고 괜찮다고 말리는 호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가게 일을 돕는 중이었음. 직원이 높다란 선반에 있는 재료를 꺼내기 위해 우유 박스 위에 올라가 낑낑대고 있자 백호가 훅 다가섰음. "어, 이거 꺼내면 되나? 맞아요?" "아, 아뇨, 그 옆에, 네 그거요! 맞아요, 감사합니다...!" 팔만 쭉 뻗어 직원이 찾던 재료를 집어 건네준 백호가 테이블로 돌아와 앉으려다 의자를 붙든 채 인상을 찡그렸음. "...윽...!" 입 밖으로 나온 백호의 신음에 호열이 부리나케 달려와 백호의 상태를 살핌. "백호야, 왜그래. 어디 아파? 설마 너, 등이 또," "으으, 아냐아냐, 팀 닥터가 한 번 봐줬었는데 환장? 환장통이래." "...환상통, 백호야." 백호의 말을 정정해주면서 호열이 안도의 한숨인지 근심의 한숨인지 모를 숨을 길게 내쉬었음. "갑자기 그래?" "갑자기는 아니구. 그냥 가끔 이랬는데 요새 들어서 좀 자주인거 같기도 하고..." 백호의 말에 걱정스럽게 보던 호열이 문득 물었음. "너 이거 서태웅한테는 말했어?" "흥, 여우 자식한테 약점을 보일 수는 없지." 화면 속 백호의 말에 태웅이 이를 뿌득 물었음. 홱 백호를 쏘아보는데 백호가 우물쭈물 시선을 피함. 화면 너머에선 호열의 염려가 백호에게 쏟아지고 있었음. "...백호야 이거 방송 나가면 서태웅도 알게 될텐데...?" "...헉! 피디, 피디님? 피디님 맞죠?? 이거 편집!! 편집해주세요!!"



그리고 화면 속 백호의 말에 태웅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음. 대번에 백호의 앞에 서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백호를 노려보던 태웅이 한마디 던졌음. [강백호.] [...야, 여우, 아, 앉아, 촬영 중인거 안 보여?!] [별 거 아니라며.]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패널들은 그저 자기들끼리 시선을 맞추며 눈만 굴렸음. [저, 태웅씨? 백호씨? 그러니까, 이게 무슨, 두 분끼리의 사연이 있나요?] [자자 두분, 사랑싸움은 나가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사사사 사랑 싸움이라뇨!!!] 태웅에게 뭐라고 변명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백호가 패널의 말에 기겁 해서 외쳤음. 태웅도 움찔함. 그야 물론 과열된 분위기를 식히려고 장난스레 건넨 말이겠지만 사랑, 사랑 싸움이라니. 백호의 얼굴이 머리카락과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랐음. [저저 여우 자식이랑 제가 무슨 사랑 싸움이에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억울한 표정으로 외치는 백호의 모습에 스튜디오에 흐르려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다시 웃음 소리가 가득 찼음. [밥 챙겨주고 씻으라고 잔소리하고 친구 보다 소식 늦게 알면 화내고. 두 분 진짜 사귀시는 거 아니에요?]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패널은 장난이었겠지만 백호는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았음. 나, 나 여우 자식이랑 사귄다고 말했나? 아니? 안 했는데? [저 저자식이랑 안 사귀는데!! 진짠데!!] [와, 백호씨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시니까 점점 냄새가 나는데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백호씨랑 태웅씨, 설마...] 건수를 잡은 패널들은 고기 냄새를 맡은 맹수들 마냥 집요하게 놀려댔음. 눈꼬리가 축 처진 백호가 자기도 모르게 태웅을 올려다봤음. 그리고 태웅은 도와달라는 백호의 울망한 표정을 마주하고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있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 걸 느낌. 자기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고 내가 이 멍청이를 좋아하는게 진짜 중증이구나 싶어 헛웃음이 피식 샘. 태웅이 패널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백호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폭탄 발언을 던졌음.



[네, 그러게요. 이녀석이랑 사귀는데 얘는 자기 몸 상태도 비밀로 하고 있네요.] [네에에?!?!] 패널들이 난리가 남. 백호도 이 새끼가 미쳤나 싶어 벌떡 일어나 태웅의 멱살을 잡음. [야이미친 여우 자식아 무슨 개소리야!!] [흥, 그럼 친구를 사귄다고 하지 뭐라고 해. 모신다고 해?] [...아 그 뜻... 와... 아... 어우... 태웅씨 안 그렇게 생겨서 개그 본능이 있으신가봐...] [저 지금 너무 놀라서 심장이 안 가라앉는데. 아우 이거 산재처리 되죠?!] [와 저 편집 새로 싹 하고 녹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아찔했어요...] [근데 두 분이 진짜 친하시긴 한가보다. 백호씨 지금 진심으로 화난 거 같은데. 그죠??] 백호는 백호대로 심장이 벌렁거려서 죽을 지경이었음. 가끔 이 여우 자식은 진짜 여우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은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었음. 진이 다 빠져버린 백호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음. [와... 아... 하하... 이 여우 새x(작게 묵음 처리 됨)가 진짜 미쳤나...] 거의 넋이 나간 채로 중얼 거리는 백호를 보며 태웅은 왠지 뿌듯한 기분이 되어 자신도 자리에 앉았음. 이 정도로 해 놨으면 양호열이랑 강백호 사이에 뭔가 있다는 뉘앙스의 말은 안하겠지 싶어서였음. 그랬음.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음. 서태웅도 어느 한 구석은 강백호 못지 않은 또라이끼가 있었음. 강백호보단 나은 사회성으로 그 또라이끼가 티날 건덕지가 없던 덕분이지 서태웅도 엄연한 강백호과였음.




어수선한 스튜디오 분위기에 패널들이 박수를 짝짝 쳤음. [자자 다들 정신들 차리시고, 두 분 예쁜 사랑, 아니 친구 관계 이어가시고요. 저희는 이대로 화면 시청 가겠습니다.] 




화면 속은 아직 호열의 가게 안이었음. 테이블은 싹 정리되어 있었고 양호열은 여전히 백호의 앞에 앉아 뭐라뭐라 떠는 백호의 말을 경청 중이었음. 그러다가 슬쩍 시계를 한 번 보고 백호에게 한마디 던짐. "백호야, 너 근데 오늘 우리 가게에 그냥 아침 겸 점심 먹으러 온 거야?" 호열의 말에 백호가 퍼뜩 시계를 쳐다봤음. "으악!! 망했다!!" "아하하, 볼 일 있었는데 시간 떠서 겸사겸사 왔는데 나랑 수다 떨다가 또 까먹었지." "와아아악!! 호열아 잘먹었다!! 나중에 또 올게!!!" "응~ 열배로 달아놓을게~"



두다다다 뛰어 사라지는 백호의 뒷모습을 담는 영상이 격하게 흔들렸음. 스튜디오에서 그 화면을 본 패널들이 탄식을 흘림. [아, 또 열라게 뛰는 중이시구나.]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백호씨 스피드 진짜 장난 아니야.] [헉, 혹시 육상 쪽은 생각 없으셨어요?] [전 바스켓맨인데요!] [어우, 그래도 탐내시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 백호는 뿌듯하게 에헤헤 웃어보였음. [아무리 안타까워도 천재가 하고 싶은 건 농구 하나뿐이니까요!!] [와, 진짜 농구 선수시구나. 정말 좋아하시는게 느껴져요, 멋있다.] 여자 패널의 말에 백호의 귀가 새빨개졌음. [에, 에헷, 가, 감사합니다아...] 온 몸을 비비꼬며 쑥스러워하는 백호의 모습에 험악하게 생겨서 답지않게 귀엽다며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이 빵 터졌음. 서태웅은 빼고.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백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무표정에서 별로 티가 안 나는터라 불만 만땅이라는 건 스튜디오 안에서 백호 정도나 캐치할 수 있을 거였음. 하지만 백호는 그냥 평소의 자기 모습일 뿐인데 멋있다, 귀엽다를 연발하는 패널들의 말에 입이 귀에 걸려 있는 터라 태웅은 뒷전임. 그 모습에 또 서태웅은 심기가 뒤틀렸음. 저 멍청이, 그래도 내가 자기 애인인데 신경은 좀 써야 할 거 아니야. 태웅의 속이 꼬이거나 말거나, 화면에서는 양호열이 다시 인터뷰 중이었음.




Q. 백호 선수가 해치운 음식 양이 상당한데, 가게로서는 꽤 손해가 아닌지? 


"아하하, 가게 오픈할 때 백호가 많이 도와줬거든요. 그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새발의 피."



Q. 그렇다면 납득이 간다. 두 분의 우정이 보기 좋다. 혹시 백호 선수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음, 따로 하고 싶은 말이라기 보다는, 그냥 항상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데, 백호가 의외로 여리거든요.(자료 영상으로 자신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선수를 상대로 상당히 공격적인 파울을 행하는 바람에 경고를 먹는 장면이 지나가는 중이었음) 보기에는 안 그래보여도 남 시선도 꽤 신경 많이 쓰고요.(자료 영상2로 상대편 관중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도발적인 제스처를 서슴지않는 백호의 모습을 보여줌) 그래도 백호야,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까. 널 향한 환호성은 줄어들지 않은거 알지? 힘내, 천재 강백호!"




호열의 인터뷰 영상에 패널들이 다시 난리가 남. [널 향한 환호성이래. 우와, 뭐야? 뭐야? 호열씨 말 너무 예쁘게 하신다!] [저 정도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래도 믿겠어요.] 패널들이 호열의 말에 남자분 답지 않게 낯간지러운 말도 잘 한다며 난리법석이었음. [백호씨, 호열씨랑 중학교때부터 친구셨다고 했죠? 원래 예전부터 저랬어요? 저건 연습해서 나온 말빨이 아닌데.] [맞아, 맞아. 저건 그냥 습관성이야, 습관성. 툭 치면 알아서 나오는 수준.] 친구의 칭찬에 신이 난 백호가 자기도 신나서 말을 얹으려다 (자기한정)말 많은 여우 자식이 여태 대화에 한번도 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심코 알아차렸음. 의식해서 알았다기 보다는, 불타는 태웅의 시선과 잠시 마주쳤던 덕분임.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저 얼굴은 존나 심기 불편 맥스치에 달하는 얼굴이었음. 저거 나중에 어떻게 달래주나 싶어 백호의 등에 식은땀이 쓱 흘렀음. 호열이의 장점을 한 열가지 정도 나열하려던 백호가 노선을 틀었음. [아하하, 맞아요, 호열이 국어 은근히 잘했어요!] 





때마침 화면은 백호 시점에서 태웅의 집으로 전환되고 있었음.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는 태웅과 백호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는데, 서태웅은 머리가 죄다 쥐어뜯긴채였고 백호는 티셔츠의 목 부분이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었음. 누가 봐도 우리 한바탕 했어요, 한 모습이라 패널들이 다같이 빵 터짐. [풉, 아니아니, 두분 서로 말 안하고 이거 찍었다고 한 판 붙으신거예요?] [빨리 먹기 시합하는 고딩들도 아니고, 두분 은근히..., 되게 유치하게 노시는구나.] [태웅 씨는 진짜 그렇게 안 생겨서 저러고 계시니까 뭐랄까, 참 감회가 새롭네요.] 맞다고, 서태웅 저 여우자식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이제야라도 알아줘서 속이 시원하다고 맞장구를 치려던 백호가 입을 다물었음. 아니, 그래. 여우 자식 유치하고 말 많고 억지 부리면 자기 보다 더하기로 아주 학을 떼는거 맞는데, 왜..., 왜 이걸 다른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마냥 좋지많은 않은지 모를 일이었음. 말많고, 유치하고, 억지부리기 대마왕 서태웅은 내 앞에서만 그러던 서태웅인데. 나만, 나만... 알던 여우 모습인데. 당장 신이나서 같이 떠들 기세던 백호가 조용하니 패널들은 대충 그래도 친구라고 싫은 말 듣기가 썩 좋진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음. [두 분 안 그런척 해도 서로 엄청 챙겨주고 그러시는거 맞죠?] [어우, 저기 아침 부터 찾아온 백호씨 봐봐. 저는 어머니가 혼자 사는 아들내미 사는 거 점검하러 오신 줄 알았어요.] [저는 여우 자식 엄마 아닌데요!!!] 딴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귀신같이 자신에 대한 지적을 캐치한 백호가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음. 이씽, 어딜봐서 내가 저 자식 엄마야. 어? 엄마랑 막 !@#$%^&*한 그런 일을 하겠냐고. 누가 알면 큰일날 생각을 하며 백호가 입을 삐죽였음. 대충 미운 정 단단히 든 친구 정도로 둘의 관계를 정의한 패널들이 백호를 달랬음. [백호씨가 그만큼 태웅씨 잘 챙겨주신단 의미죠. 그러고 보니 백호씨 살림 은근히 능숙한데요?] [아까보니까 밥 먹고 식탁 행주질 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어.] [이야, 백호씨 다방면으로 천재 맞네~] 자기를 띄워주는게 기분이 나쁘진 않아 백호가 헤벌쭉한 얼굴을 해선 웃었음. 태웅은 태웅대로 아까 마주한 백호의 표정에서 백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고는 꽁해있던 기분이 아주 조금 풀린 상태였음. 자기는 자기만 알고 있는 강백호의 모습은 모조리 감춰놓고 자기만 보고 싶은데 그거 하나 이해 못해주던 멍청이가 드디어 제 심정을 알아주나 싶어서.







패널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화면을 따라 태웅의 집으로 넘어감. [와, 근데 태웅씨 되게 깔끔하게 해놓고 사신다.] 패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 속에서 백호의 고함이 울려퍼졌음. 



"내가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부터 분리해서 버리라고 했지!!! 어?! 이건 왜 여기 들어가 있어?! 아악 비닐 지저분한건 분리수거 안된다고!! 일반 쓰레기라고!!" 종이상자와 빈 페트병을 같은 곳에서 꺼낸 백호가 태웅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음. 태웅은 쥐 파먹은 머리 꼴을 하고 대꾸했음. "...너 오기전에 정리하려고 했어." 태웅의 말에 백호가 가슴을 마구 쳤음. "그렇게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좀 잘할 수는 없는 거냐고, 이 여우 자식아!! 이새x 하 진짜 농구빼고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어 너 진짜 어머니한테 잘해라." "울 엄마는 나보다 너 더 좋아하시니까 상관 없지 않나. 네가 잘하잖아." 태웅의 말에 백호가 태웅을 들이박았음. 물론 반사적으로 피한 태웅 덕분에 졸지에 태웅의 어깨에 기댄 꼴이 됨. 그리고 당연히 그 그림을 놓칠 제작진들이 아니었음. 배경음악으로 숨겨왔던 나~의~ 가 깔리고 둘 주변 화면에 장미와 꽃 덩굴과 하트가 뿅뿅 깔림. 이런 식으로 편집 된 걸 보는 건 처음인 백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태웅은 호오? 하는 표정이 됨. 패널들은 웃느라 숨이 넘어가는 지경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