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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7 18:51

*알못주의,,,



방 안은 깜깜했음. 적외선 카메라 특유의 색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겠지. 그리고 알람이 울림. 침대에 불룩 솟아있던 이불 속에서 손이 쓱 빠져나오고 머리맡을 여기저기 더듬음. 드디어 목표물을 찾아 손 안에 쥔 누군가가 시끄럽게 울려대던 알람을 끔. 그리고 빼꼼, 고개를 내밀고 베개에 얼굴을 문댐. [으...] 고정된 카메라에 얼굴이 비침. 방금 잠에서 깼는데도 전혀 굴욕적인 얼굴이 아님. 카메라에 미친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건 서태웅이었음. 


[방금 일어났는데도 믿기지 않는 우월한 얼굴] 화면 밑에 자막이 쓱 달렸음. 물론 화면에 무슨 자막이 달리는지 알 턱이 없는 서태웅은 그냥 마른세수만 한 번 함. 꾸물꾸물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하겠지. [아.] 그리고 다시 딥슬립. [.....?] 물음표 자막이 달리고 방 안에 점차 햇빛이 들어오고... 적외선 카메라대신 일반 카메라 색감으로 돌아오고도 서태웅은 여전히 수면 삼매경이었음. 점차 밝아오는 방 안이 카메라에 착착 잡히고 있었지만 태웅은 깰 기미가 안보임.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고, 말끔하게 그루밍된 서태웅이 나타남. 인터뷰 화면이었음. 


Q. 깊은 수면이 인상적이었다. 항상 그렇게 딥슬립 모드인가?


"...비시즌이니까..., 더 자도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Q. 만약 시즌이라면?


"훈련하러 나가야죠."



그리고 다시 화면 전환. 여전히 적막한 집 안에서 주인공은 쿨쿨 자고 있었음. 정적을 깬 건 초인종 소리임. 한번, 조금 있다가 두번, 그리고 소리가 채 끊기기도 전에 띵동동동동동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더불어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남. 뭐라뭐라 소리도 지르는 거 같은데 잘 안들림. 화면을 보던 패널들이 걱정스레 태웅을 바라보았음.

[어, 저러면 옆집에서 항의 들어오지 않나요...? 아니 그 전에 태웅씨 집을 저렇게 찾아올 정도면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서야...?] 패널들의 말에 태웅이 어깨를 으쓱였음. [저 층엔 저 밖에 안 살아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 [...더 보시면 알아요.]


패널들이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음. 화면 속 태웅의 현관문 너머에서 시끄럽던 말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삑삑삑삑, 도어락을 해제하는 소리가 났음. 패널들이 벙찜. [...아니 비밀번호를... 아네요?] [네.] [문은 왜 두드린거야?] [저 녀석이 멍청이라...] [멍청, 멍청이요?] [딴에는 예의 차리는 거예요. 남의 집이라고. 저렇게 두드리는게 더 민폐인데, 그것도 모르고.] 이어지는 태웅의 말에 패널들의 눈이 커졌음. [태웅씨 지금 말 제일 길게 한 거 알아요?] [...그런가요?] [그래요!] 패널들과 서태웅의 대화 장면이 이어지다가 다시 화면 전환됨.





도어락을 해제하고 들어온 사람은 백호였음. 패널들 눈동자 졸라게 커짐. [어 강백호씨다!] [그, 태웅씨 멍청이라는게,] [네.] [두분 많이 친하시구나...] [그렇게들 많이 말하시더라고요.] 


화면에 잡히는 백호의 입이 쉬지 않고 있었음. "야 여우xx(삐처리됨) 사람이 벨을 눌렀으면 재깍재깍 나와서 문을 열어야할거 아냐 어 내가 어제 언제 간다고 문자까지 했는데 이새x 또 처자고 있냐!?" 그렇게 나불대는 백호의 양 손엔 뭔가가 바리바리 들려있었음. 태웅에게 불만을 있는대로 퍼부으면서 백호가 익숙하게 향하는 곳은 태웅의 부엌임. 냉장고 문 열고 바리바리 싸온 짐들 정리해 넣는데 졸라 익숙함. 휑하니 생수밖에 없던 냉장고에 아무리봐도 엄마표 반찬통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함. 여기서 패널들 또 벙찜. [...그, 백호씨가 굉장히... 익숙해 보이시는데요.] [아, 저희 어머니께서 저보다 더 좋아하셔서. 자주 부르시는 거 같아요.] [누구를요. 백호씨를요?] [네, 뭐.] 화면에선 백호가 쉬지 않고 떠들며 부지런히 냉장고 정리중이었음. "새꺄 어머니 걱정하시는데 알아서 좀 찾아뵙고 해야지 사람이 덜 됐어 사람이. 어? 덕분에 나야 반찬도 얻고 좋은데 아 하여튼 이새x 농구 빼면 젬병이지 뭐든지 하여간에."
마이크도 안찼는데 선명하게 들리는 미친 데시벨..., 백호가 떠드는 소리에 끼익 하고 방문이 열림. 눈만 꿈뻑이며 태웅이 걸어나옴. 그 장면에 화면을 보던 패널들이 감탄사를 흘렸음. [...태웅씨 지금 세수도 안 하신거죠...?] [근데 2시간 메이크업 받은 저보다 나은 듯.] [진짜, 이 정도면 사기 아니예요?] 패널들의 대화에 태웅은 별 다른 반응 없이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음. 


"...멍청이..." 말 끝이 길게 늘어지는 태웅을 보고 백호가 혀를 쯧쯧 참. 이자식이거 아직도 잠 덜 깼구만. "야 내가 너 보고 싶어서 온게아니라 어머니가 하도 니 걱정을 하고 나한테 사정사정을 하시면서 부탁한다고 하시니까, 어? 그래서 온 거야, 알았냐? 이 불효자식아. 알았으면 빨딱빨딱 준비하고 와서 밥x먹어." "...졸린데." "x먹고 자. 너 밥 먹는지 감시하랬단 말야." 화면에 보이는 태웅의 표정은 뚱했음. "엄마꺼는 너무 과한데." 태웅의 말에 백호가 빠직 미간을 구김. 그리고 그 화면을 보던 태웅이 슥 손을 들어 귀를 막음. 패널들이 태웅의 행태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음.


"야이xx복에겨운xx가감사한줄을모르고어머니성의를무시해?!?!자식새끼키워봤자다헛거라더니이새x딱그짝아니야어머님이운동하는아들놈고생한다고반찬바리바리해주셨으면감사합니다하고납작업드려서아이고고생이많으십니다하고받아먹어도모자를판에뭐어?과해?과하긴니재수없는몰인정함이과하다이배은망덕한여우새x같으니라고...!"



패널들이 다같이 기겁해 귀를 막았음. [어우 백호씨 지금 마이크 안 차고 있는 거 아니예요...?] [진짜, ...대박이다...] [멍청이라 그래요. 목소리만 커서.] [와 근데 태웅씨 은근히 약았다. 자기 혼자 미리 대비하는 거봐.] [헐, 그러게요. 미리 알려주면 어디 덧나요?] 패널들이 태웅에게 너무하다고 아우성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태웅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못박혀 있었음. 저거 찍을 당시엔 잠에 취해서 잘 몰랐는데 지금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보니 백호가 자신의 집 냉장고를 열고 정리하는 커다란 뒷모습이나 내내 종알거리는 입술 모양이나, 지금은 또 익숙하게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고 싱크대 선반에서 컵을 꺼내 물병에서 물 따라놓고 식탁을 착착 차리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음.



우렁차게 잔소리를 마친 백호가 태웅을 향해 삿대질을 했음. "알아들었으면 얼른 씻고 기어나와라." "...멍청이." 식탁 위엔 어느덧 두사람분(일반사람이었다면 대략 8인분정도의)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음. 화면을 보던 패널들이 입을 떡 벌림. [...저거 두 분이서 다 먹어요...?][운동선수라 그런가?] [아니 그래도 그렇지...] 패널들이 기겁하거나 말거나 태웅은 화면 속의 백호에게 집중함. 널따란 대접(흡사 냉면 그릇)에 한가득 밥을 퍼서 가져온 백호가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집어 넣었음. 밥 한술 넣고, 반찬 이것저것에 손을 뻗음. 소고기메추리알 장조림, 멸치 호두 볶음, 여러 야채가 정갈하게 썰려 도톰하게 말린 계란말이. 그 외에도 오이소박이나 마카로니샐러드, 배추겉절이랑 제육볶음, 한 입 크기로 작게 부친 버섯전 같은게 백호의 입 속으로 끊임없이 사라졌음. 체감상 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벌써 삼인분은 되어보이는 양을 해치운 백호를 보며 패널들이 얼떨떨하게 서로 떠듦. [어... 근데 이거는 그건데. 태웅씨 나혼산이 아닌데?] [그러게요. 완전 백호씨 먹방인데?] [와 근데 나 운동 선수면 막 엄청 식단 지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멍청이라서 그래요.] 가만히 듣던 태웅이 한 마디 던지고, 패널들이 피식 웃음. [아 이거 그거네. 멍청이가 태웅씨 백호 애칭이구나!] [...예?] [아침부터 밥 차려주고 씻으라고 닦달하고 같이 밥 먹으면 이건 뭐...] [거의 부부라고 할 수 있죠.] 솔직히 서태웅 저 말 듣고 좀 신났음. 그랬다. 탱백 비밀 연애중임... 근데 남들 눈에 부부같다그러니까 쫌 뿌듯하고 어깨도 으쓱하고 그럼. 화면 속에서는 백호가 여전히 와구와구 밥을 먹는 중이고, 눈빛이 좀 더 또렷해지고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은 태웅이 터벅터벅 식탁으로 걸어옴. 동시에 패널들 탄식이 흐름. [...와... 미쳤다.] [남신이다 남신] [태웅씨 세상 혼자 사세요?] 물론 화면 속 백호에게 집중한 태웅에게는 아무것도 안 들림. 



백호의 맞은 편에 앉은 태웅이 비어 있는 제 밥그릇에 딱 한 공기 분량 만큼 덜어 놓고 반찬도 비슷한 양으로 덜어서 제 쪽으로 당김. 백호가 혀를 쯧쯧 참. "여우 너 그렇게 먹으니 비실비실하지." "넌 그렇게 덮어 놓고 먹다가 폼 다 무너진다." "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래서 저번 연습 경기 말아먹었냐?" "아악 이 자식이 아픈 곳을 건드려...!" 밥 먹다 말고 백호가 식탁을 쿵 침. 얌전하게 밥 먹던 태웅이 백호를 흘깃 건너다봄. "부서지면 니 돈으로 물어내." "쪼잔한 자식."  "쪼잔한게 아니라 당연한거지. 네가 여기서 부순 물건 몇 갠지나 알아?" "으윽!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냐!" 한동안 백호와 옥신각신하던 태웅이 아, 하고 입을 벌렸음. "멍청아, 나 지금 촬영중이다." "엉? 여기 집인데?" "그러니까." 그러고 다시 밥 먹는데 열중한 태웅을 보며 백호가 가슴을 퍽퍽 침. 아이여우새끼 또 사람 열받게 하네 촬영은 무슨 개뿔, 집에서 어떻게 촬영을, 까지 말하던 백호가 입을 딱 다뭄. 눈살을 좁히고 여기저기 휙휙 둘러보는데 그냥 인테리어인줄 알았던 까만 물체들이 그제서야 카메라라는 걸 알아보고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짐. "그럼 지금 나도 같이 찍히고 있단 얘기잖아!!" "응." "아이자식아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왜." "왜기는, 아악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나왔는데! 쓰레빠 끌고 왔다고!!" "아무도 신경 안써." 쓸데없는데 시간 안 써도 된다는 의미로 말한건데 백호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건지 태웅을 향해 왁왁대고 손가락질을 해댔음. "이자식이 지 혼자 스포이드 다 받을라고...!" "스포트라이트겠지." "어쨌든!!"





화면이 진행되는 내내 패널들의 입이 다물릴 줄 몰랐음. [...태웅씨 말..., 되게 잘하시네요...?] [그런가요.] [심지어 백호씨한테 시비도 먼저 걸었어.] [두 분 진짜 친하시구나...] 패널들의 말에 태웅은 그저 어깨만 으쓱였음. 태웅도 집-훈련-집인게 다인 제 생활 패턴이 도대체가 뭐가 나올게 있다고 방송제의가 들어온 건지 의아했던 참임. 그 이유를 알게 된 계기가 있는데, 알맞게 화면 속에서 백호가 태웅을 척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결연하게 외치는 중이었음.



"나도! 나도 찍는다!" "멍청아. 뭘. 똑바로 말해." "아씨 나도 니가 찍는 거 찍고 있다고!!" "...근데 왜 말 안했어?" "너도 말 안했잖아!!" 드물게 먹던 젓가락질을 멈춘 태웅이 백호를 노려봄. "언제부터 찍었는데." "...쫌, 쫌 됐지..., 일, 일주일 전...?" 태웅은 오늘이 첫 촬영이었음. 태웅의 눈매가 점점 사나워짐. 그럼, 그 동안 비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태웅의 전화며 문자며 데이트하자던 조름을 끈질기게 무시하던 이유가. "이 멍청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태웅의 모습을 끝으로 화면이 뚝 끊겼음. [...어, 이거, 이거 뭐죠?] [냄새가, 이거 냄새가 나는데?] 패널들이 호들갑을 떨며 태웅에게 대답을 재촉함.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까맣게 꺼졌던 화면이 다시 켜지고, 이번에 화면을 가득 채운 건 백호였음. 그리고 동시에 스튜디오 문이 열리면서 백호가 들어옴. 패널들 난리난 건 당연지사였음. [와! 이거 뭔데요?! 완전 서프라이즈인데?!] [와하핫, 제가 좀 천재라서!] 태웅은 다들 난리법석인 와중에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음. 물론 패널들과 신이 나서 떠들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아주 난리부르스인 백호는 그런 태웅을 눈치채지 못함.



Q. 서태웅 선수의 집에서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꼭 집처럼 익숙해보이던데, 평소에도 자주 드나드는지?


"고등학교 때 연습이 늦게 끝나 여우, 아니 서태웅네 집에서 신세 졌던 적이 좀 있는데, 어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서. 그 뒤로 종종 찾아뵙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Q. 집안일도 꽤 익숙해 보였다. 가사 일을 좋아하는 편?


"하핫, 천재니까 뭐든 잘 하는게 당연하죠!"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화면은 다시 캄캄한 방 안이었음. 적외선 카메라가 돌아가며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음. 패널들이 다시금 쑥덕거림. [와, 나 이거 알아. 데자뷰.] [태웅 선수, 백호 선수랑 친하잖아요. 뭐 들은 거 없어요?] [...없습니다.] 그리고 울리는 알람 소리. 태웅의 알람은 정직하게 핸드폰 기본 벨소리였는데, 백호의 알람은 요새 유행하는 여자 아이돌의 중독성 강한 후렴구였음.  이불 속에서 탄탄한 팔이 불쑥 뻗어져 나오더니 꾸물꾸물 핸드폰을 쥠. 노랫소리가 멈추고, 이불을 주섬주섬 벗어던지고 나온 백호의 모습에 패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옴. 동시에 태웅의 미간에 힘이 들어감. [오우, 백호씨...] [저러니까 벗고 자는 구나.] [역시 운동 선수라 그런지 남다르네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에 패널들이 손뼉을 짝짝 쳤음. 그 꼴을 보는 태웅의 속도 타들어갔음. 태웅의 속을 알 길 없는 저 매정한 빨간머리는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방안의 불을 켜고, 커튼을 걷고, 화장실로 향함. 가는 길에 익숙하게 바지도 벗으려다가 카메라랑 눈이 마주치고 헉, 맞다 하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뒷머리를 벅벅 긁음. "아씨, 습관이 되가지고..., 다 벗을 뻔 했다." 화면 속 백호의 말에 스튜디오는 난리가 남. [시청률 대박 찍을 수 있었는데 아 아쉽게 됐어요.] [시청률 대박 찍고 우리는 방송 금지 찍고.] 



문 닫힌 화장실 너머로 백호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옴. 촵촵 물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박박 문대며 백호가 나오는 모습이 잡힘.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옷장 앞에 선 백호가 신중하게 옷을 고름. [오, 데이트? 데이트 각인가요?] [옷 고르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요.] 근데 이제 입고 나온 옷이 무지 반팔티에 트레이닝 바지임... 패널들 떨떠름해짐. [아니 저 옷을 고르는데 표정이 그렇게 심각할 일이에요?] [아 천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니까요!] 뚱한 표정의 태웅이 한마디 덧붙임.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마, 멍청이.] [이 여우자식이 왜 또 시비야?!] [너 저번 연습 경기,] [악! 그만그만! 언제까지 울궈먹을 건데?!] 시끌벅적해진 스튜디오 분위기에 패널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림. [와, 태웅씨랑 백호씨 친구분들은 진짜 심심할 틈이 없었겠다.] [태웅씨도 확실히 친구랑 같이 있으니까 텐션 업 되는 거 같아요.] 패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이 화면 속 백호가 향한 곳은 어느 농구 코트였음. 익숙하게 몸을 풀고 챙겨온 농구공을 탕탕 두드리며 골대로 슛. 하지만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음. "에잇!" 분하다는 듯이 백호가 다시 자세를 잡음. 어느새 패널들도 한마음 한 뜻이 되어 화면 속 백호를 응원했음. [어어? 어어어?! 이번엔 들어갈 거 같은데?!] 하지만 역시나 들어가지 않음. 패널들이 곧이어 짓궂게 백호를 놀리기 시작함. [천재라더니~ 에이~] [가끔 고릴라도 나무에서 떨어질때가 있는 법이죠!] [원숭이겠지, 멍청이.] 틈을 놓치지 않고 태웅이 끼어들음. 백호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음. [이 자식이 진짜...!] 말을 그렇게 했지만 사실 태웅의 눈은 백호의 등 부근에 고정되어 있었음. 고등학생 시절 당했던 등 부상은 무사히 재활을 마쳤고 재발되는 일 없이 여태껏 잠잠했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었음. 백호의 아침 기상 장면에서 기지개를 펴다가 움찔 굳는 백호의 모습을 캐치한 건 태웅밖에 없는 모양이었음. 심지어는 백호 자신도 모르는 듯 했음. 태웅은 할 말이 많았지만 방송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참는 중임. 방금 전 골을 던지는 장면에서도 그래. 팔을 뻗어 던지고 바닥에 착지하면서 순간적으로 표정이 흐트러지잖아. 저 체력 괴물인 강백호가. 필시 신경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이 확실한데 저 멍청이는 몸을 사릴 생각도 안 하고...! 당장이라도 백호의 멱살을 잡아 사실대로 말하라고 탈탈 흔들어제끼고 싶은 태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 앞의 백호는 여자 패널들의 앞에서 표정이 헤 풀어져서 바보가 따로 없었고 화면 속 백호 또한 멍청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음.



"아, 배고프다." 그러더니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아씨 하고 한숨을 내쉼. "핸드폰 안가져왔다." 혀를 쯧 차던 백호가 이내 코트 근처에 있는 수돗가에서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고 챙겨온 가방에서 스포츠타올도 꺼내서 머리카락을 챱챱 털음. 그리고 가방을 챙겨 어디론가 훌쩍 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길마다 아주 산만하기 짝이 없음. 자그맣게 피어난 클로버밭에 그 큰 덩치를 박고 손가락으로 샅샅이 훑어서 기어코 네잎클로버를 찾아내질 않나, 빨간머리 덩치가 풀밭에 구겨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인 어린 아이가 자신을 빤히 구경하고 있자 제 팬이냐며 대뜸 말을 걸어 신나게 조잘조잘 이야기 하질 않나, 가판대에 널린 조막만한, 짝퉁이 틀림 없는 싸구려 큐빅이 잔뜩 박힌 액세서리 같은 걸 구경하며 사람을 홀리는 말빨의 가게 주인에게 넘어가 제 손가락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사이즈의 반지를 구매하질 않나. 주의는 그토록 산만한 주제에 긴 다리를 성큼성큼 뻗으니 훌쩍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통에 VJ의 울분에 찬 외침이 그대로 녹음된 바람에 패널들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음. [와, 백호 선수 진짜 뭔가,] [생긴 거랑 따로 놀죠?] [첫인상은 솔직히 좀 무서운데, 그거 같다. 동네 하찮은 형.] [하찮다뇨! 이 천재한테!!] [이거봐 이거봐. 진짜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그때 화면 속 백호가 자길 찾느라 두리번 거리는 VJ에게 저 멀리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음. "아오 진짜..." 진심이 실린 VJ의 음성에 스튜디오가 다시 웃음바다가 되고, 백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제작진 하나를 발견하고 대뜸 손가락질을 해댔음. [천재를 따라오기 힘들면 말을 해야지 뒤에서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전 아무것도 몰랐는데!] [말 할 틈도 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데 제가 운동 선수 걸음걸이를 어떻게 따라 잡아요...] 조용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에 절로 백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음. [...앞으로는 조심해 볼게요.] 다시 화면 속으로 돌아가서. 손을 붕붕 흔든 백호에게 다가선 VJ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음. "백호씨, 좀만, 좀만 천천히 걸어주시면 안될까요..." "앗, 넵!" 그 이후로 정말 백호는 성큼성큼 걷다가 아차한 얼굴로 보폭을 줄이거나 가만히 서서 뒤따라오길 기다리거나 했음. 그렇게 백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작은 음식점이었음. 4인용 테이블 두어개와 오픈형 주방을 따라 일자형 테이블이 늘어서 있는. "호열아!" 익숙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선 백호가 겁도 없이 주방 쪽으로 성큼 걸음을 딛고, 놀란 직원이 제지하기 전에 주방 안에서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음. "백호야! 무슨 일이야, 연락도 없이, ...어..." 백호의 뒤에 따라붙은 스태프들을 발견한 호열의 표정에 놀라움이 스쳤다가, 백호에게 소곤소곤 물음. "뭐, 뭐야 백호야, 촬영이야?" "응!나hon산!" "...미리 말 좀 해줘 백호야..." 곤란한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호열은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오픈 팻말을 뒤집었음. "너 오늘 매출 다 뽑아내야 된다." "나만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