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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04:32
3편






와...잘 자는 거 봐. 난 한 숨도 못 잤는데.

꼴딱 밤을 샌 우성은 소파에 잠들어 있는 태섭을 보고 약간의 억울함이 올라왔음. 에잇. 심술이 나서 이불을 당겨 태섭의 얼굴 위로 휙 덮어버렸지. 별로 깨울 의도는 아니었는데 겨우 그거에 태섭이 움직거리더니 이불을 치워내면서 눈을 떴음. 깨자마자 우성이 보인 건, ...아무래도 별로였는지 바로 눈썹이 삐딱해졌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실례 아니냐고.

"...배드 모닝이네요. 왜 거기 계세요."
"잘만 자놓고 배드모닝은 무슨. 나만 못 잤지."
"뭐래냐 진짜, 해 뜨고 잤거든...하 눈 뻑뻑해..."

잠시 눈 비비는 자세로 웅크려있는 태섭을 우성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봤음.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태도와 말투인 게 마음에 안 들지 뭐임. 그래서 우성이 또 심술을 부려봐. 너 빨리 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툭 던졌더니, 하여간 진짜 얄미워 죽겠는 게 태섭이 거의 바로 일어나서 겉옷을 챙기고, 짐을 챙기고, 바쁘게 움직이는 거야. 그 와중에 이불 정리까지 하고 있는 게, 태평해보여서 더 서운했음. 괜히 심술부렸다 싶어. 사실은 안 갔으면 좋겠는데.

"...송태섭."
"......."
"태섭아아아."
"뭐, 왜. 빨리 가라며."
"데려다줄게."
"....네가 잠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구나?"

꺼지라고 했다가(꺼지라는 표현은 쓴 적 없다고 우성은 속으로 억울해했지만) 데려다준댔다가 뭐하는 거냐고. 하나만 하라며 태섭이 타박하길래, 그래서 우성은 그럼 데려다줄래. 라며 하나를 골랐을 뿐인데. 미쳤냐는 소리나 또 듣게 됐지.

"아 왜, 하나만 하라며. 골랐잖아."
"됐다, 말을 말자."
"너 진짜 매정하다...그래 가버려, 가. 너 가면 이불 뒤집어쓰고 울 거야."

그 말에 태섭이 뭐라 한 소리 할 것처럼 우성을 돌아봐놓곤, 잠시 보기만 보고 관둬버리더라고. 우성은 그것도 맘에 안 들었음. 몰라, 지금 전부 다 서운한가봐.




그래서 이 날 우성이 울었나, 하면 다행이라고 해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는 않았음. 근데 안 울었다 뿐이지 종일 이불 속에 콕 박혀있기는 했어. 안 되겠다 몸이라도 움직이자,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가도 금방 기운이 빠져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 정우성 인생에 거의 없는 무기력과의 싸움이었음. 그게 실연의 아픔이란다. 이렇게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바람에 아마 더 힘든 걸지도.
미국에 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는 친한 지인도 꽤 있는데도. 우울하다 힘들다 하소연하고픈 일이 생기면 꼭 떠나 온 한국의 사람들이 생각났음. 아빠, 엄마, 산왕의 형들. 형들한테 놀림 받고 싶다. 이번 일 얘기하면 진짜 엄청 놀리겠지. 그래도 괜찮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태섭이 우성의 집을 나서기 전에, 그러니까 너 가고나면 울 거라고 협박같지도 않은 협박을 했을 때. 나가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간 말이 떠올라. 너 내가 한국인이라 편해서 그래.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알게 되서 그렇지, 다른 데서 봤으면 너 나 안 좋아했어. 그럴 일 없다고.
참 웃기는 말이네. 저 말에 대한 우성의 감상은 고작 이 정도였는데, 태섭은 알까. 이제 정말로 나가려는 태섭의 등에 대고 우성이 대답 대신 질문을 했지. 네 말대로면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널 좋아하게 된 건데, 그게 뭐가 잘못이야? 그냥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근데 태섭도 딱히 대답은 해주지 않더라고.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우성은 생각해. 그런 상황, 그런 만남이라서 널 좋아하는 거라면, 넌 왜 날 안 좋아하는 거야.

그 날 밤에 우성은 태섭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제 친구도 못 하는 거냐고 태섭에게 물었음. 친구하자면 할 수는 있고? 반문하는 태섭에게 우성은 별로 긴 고민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지. 안 되겠다, 난 네 손도 잡고 싶고, 끌어안고 싶고, 키스도 하면 좋... 이 말은 못 끝내긴 했지. 태섭이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 이렇게 친구 사이마저 끝. 그래도 우성인 안 되겠다고 대답한 걸 후회하진 않았음. 친구는...좀 힘들 것 같아.




그 후로 우성인 태섭을 만나기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되돌려지는 중이었음. 카메라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영어, 영어, 영어, 뭐 이건 당연하지. 주유비는 많이 줄었고. 친해진 집주인이 빌려줬었던 컴퓨터를 돌려주게 되면서는, 간혹 들여다봤던 태섭과 주고 받은 이메일 구경도 못 하게 되서. 점점 조각조각 뭔가 떨어져나가는 일상에 문득...저 사진도 떼야되려나.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지.
...그 날 새벽에 전화벨이 안 울렸더라면, 조만간 그랬을까?

"...Hello...."
[......여보세요.]

한 달. 한 달만에 듣는 목소리에 이 새벽에 누구냐는 성가심은 싹 없어져버렸음. 좀 봐봐. 네 말대로 모든 상황이, 심지어는 너까지 날 부추기는데. 어떻게 널 그만 좋아해.

"......태섭아."











*

[...Hello....]
".......여보세요."
[.......태섭아.]

영어가 지긋지긋해서 모국어가 그리워지는 날이었음. 신경을 쏟아부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 별 쓸데없는 말조차 대충 들어가지곤 뭐가 안 되는 외국어라는 존재. 다 집어치우고 싶은 날. 왜 오늘 그런 날이 되었냐 하면, 좋은 사람이라 믿은 태섭에게 살가웠던 팀원이 사실은 착한 척 했을 뿐인 개같은 인종차별자인 걸 알아버려서, 라고 요약할 수 있겠음. 이 놈의 외국어는 화가 났을 때도 집중해서 말을 내뱉어야 되서 여간 피곤한 게 아냐. 그래서 태섭이 한국의 욕을 들려줬더니 웃기는 놈이 어떻게 욕인 건 알았는지 주먹을 날리지 뭐야.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다시금 따가웠음.

"안 자고 뭐해."
[...전화 와서 깼지.]
".....내가 깨웠네."
[무슨 일 있어...?]

오늘 진짜 영어 그만 쓰고 싶더라고. 분란이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기억도 안 나. 그것도 다 영어로 나불거리잖아. 룸메 녀석이 수다 떠는 것도 오늘은 진짜 듣기 싫더라. 저 멀리 고향 땅의 누군가한테 전화라도 할까 했는데, 거기 지금 몇시지...하는 시차 계산도 갑자기 지치더라고. 결국 지금 너한테 이러고 있네. 양심 없게.
태섭은 속으로만 떠든 이 모든 말을 우성에게 진짜로 늘어놓으면 어떤 반응일까, 생각해봄.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쓰레기같기만 했음. 어떻게 얘한테 전화 할 생각을 하냐.

"아니, 없는데."
[없는데 전화는 왜 해.]
".......아라가 사진 고맙다더라."
[....그거 말하려고 이 시간에 전화했다고?]

귀엽고 귀찮은 동생 아라는 우성을 몰랐지만, 우성에 대해 자주 얘기하는 편이었음. 우성이 찍어 준 사진을 받고 나면 항상 오빠 친구한테 고맙다고 해줘~ 하거나, 오빠는 그 친구분 좀 찍어줬어? 하거나. 그러다 언젠가 이런 말도 남긴 적이 있었지. 오빠 친구가 오빠 많이 좋아하나봐. 아니...사진만 보고 어떻게 아는데, 싶었건만. 최근 우성과 태섭이 친구도 안 하기로 한 그 일 이후에, 우성이 우편으로 보낸 사진 뭉치를 본인 우편물인 줄 알고 뜯어 본 룸메이트마저 니 애인 너 진짜 좋아하나보다. 해버려서.
그래서 너한테 전화 하고 앉았어. 네가 없는 일상에도 자꾸 네가 있어서. 의지랑 상관없이 오늘도 너부터 생각나버려서.

"...만날까, 우리."

결국 후회할 말까지.
와 이건 진짜 아니잖아. 진짜 쓰레기다. 태섭이 벽에 머리를 꿍 찧었어. 이 전화도, 방금 한 말도. 다 실수야. 실수인 걸로 마무리하자.

"...야, 미안하다. 그냥 술 취한 놈이 주정부렸구나 해. 어? 미안해. 끊는다."
[뭐? 태섭아, 야! 송---]








*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웠음. 잠을 깰 수 밖에 없는 소음에 태섭이 찡그리면서 눈을 떠.  룸메이트가 외박 어쩌고 했던 거 같기도 함. 이 새끼 열쇠가 없나? 딴 방도 다 깨우겠다 싶어서 태섭은 억지로 일어나서 문을 열었음. 그런데 왜 룸메 자식이 아니라, 정우성이 서 있는 걸까.

"야, 뭐, 너, 왜....."
"뭐야, 너 입술 왜 그래?"

눈도 한 쪽밖에 못 떴고, 상황 파악도 덜 되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헛것인가 싶은 우성이 얼굴을 잡아오는 바람에 강제로 아 미친 진짜잖아! 상태가 되버려. 몇 시야, 지금. 설마 아까 통화 끊고 바로 여길 온 거야? 잠깐만,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건데. 이 새끼 설마 담 넘었나 지금?

"정우성...너 진짜 미쳤구나..."
"이거 봐, 무슨 일 있었잖아. 괜찮아?"
"없어없어, 없다니까."
"없는데 얼굴 꼴이 이래?"
"일이 있어봤자 밤 새가면서 운전해 올 일은 아니라고...!"
"나한테는 올 일이야, 아직 너 좋아하니까!"
"......"

다시 상처를 살피려드는 우성의 손을 태섭이 밀쳐냈음. 그런 실랑이가 또 한 번 더. 결국 우성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지. 그러곤 둘 다 말이 없어서 그렇게 잠시 조용하다가. 인사는 없이, 우성이 멀어져갔어.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태섭은 문 앞에 그대로 멈춰 있었지. 정말 곤란하다고 태섭은 생각했음. 칭얼대는 어리광은 괜찮아. 동생인 냥 취급하면서 넘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정우성은 너무 곤란해. 다정한 손길로 상처를 살피고, 진지한 눈으로 걱정을 하는 건, 너무...

또 맞닥뜨린 망설임의 시간이었음. 지금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감정의 정체를 이번에도 모른척 할지, 말지. 그래도 결정만 하면 그 다음은 괜찮을 거야. 걸어가는 사람을 따라잡는 것 정도는 태섭에겐 아주 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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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우성태섭
 
2023.03.12 04: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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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ㅁㅊ 내가 이걸 보려고 지금까지 깨어있은거네 너무좋다ㅠㅠㅠㅠㅠ태섭아 어서 돌아서 가는 우성이 잡아ㅠㅠㅠㅠㅠㅠ그런 사랑 쉬운거 아니고 그런 사랑 흔하지 않다고
[Code: 6913]
2023.03.12 08: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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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태섭이가 약해진 순간 침묵했지만 속으로 많을 삼키고 있었고 우성이가 그걸 눈치채고 와준 다정함에 결국 태섭이가 한걸음 떼는거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 미국이라서 나 좋아하는 거야 이러다가 일본가서 아라가 눈치 줄 정도로 염병첨병하는 커플 된다고 생각하면 잇몸 만개 ㅠㅠㅠㅠ 그리고 이 때가 그 때구나 피곤한 날이라고 했지만 아라가 힘든 날이라고 직감한 그 때 ㅠㅠㅠㅠ 가슴이 뭉클하고 너무 설레거 행복하고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해 센세 계속 써줘서 고맙고 내가 이 글 읽으면서 행복한 만큼 센세도 행복하면 좋겠어 ㅠㅠㅠ 우리 계속 억나더길만 걸어
[Code: 6638]
2023.03.12 08: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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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좋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좋아한게 뭐가 잘못이냐는 우성이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태섭이 얼른 달려!!!!!!!!
[Code: 803b]
2023.03.12 10: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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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 우성이 너무 다정해ㅠㅠㅠㅠㅠ 뛰어가서 잡아 송태섭!!!! ㅠㅠㅠㅠ
[Code: bbb1]
2023.03.12 1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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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자 태섭아 잡자...... 아 미친 이라한테 말해준 날이 이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슬픈게 싹 가시고 행복했다가 센세의 개쩌는 필력에 또 슬펐다가 그래요..... 센세 사랑해 우리 평생가자....
[Code: a042]
2023.03.12 10: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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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아 빨리 우성이 잡아!!!!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0926]
2023.03.12 11: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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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잡았구나 결국 잡았구나..... 센세 나 제목만 보고 팬티도 못입었는데 개같이 달려왔잖아...... 억나더 가보자고........
[Code: ee74]
2023.03.12 16: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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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너무 좋아...ㅠㅠ
[Code: f1e3]
2023.03.12 2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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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태섭아 잡자 움직이자!!!!
[Code: 1a62]
2023.03.20 15: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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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시발 눈물나....ㅠㅠㅠㅠㅠ 감정 뚝 터지듯이 와르르 쏟아져서 수습안되더라도 용기 내 사랑하는 둘이 너무 존나 좋다
[Code: 426c]
2023.04.12 00: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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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제발 이 둘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뭐든 다 할게 얘들아 제발
[Code: 3f5f]
2023.08.15 23: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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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최고다 진짜 태섭아 잡는거야 우성이처럼 직진하자 솔직하게ㅠㅠㅠ
[Code: 8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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