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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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짝사랑은 내가 하고 있네.
우성이 요 며칠 간 글로브박스에 태섭의 사진을 모시고 다니면서 수시로 구경하고 살았던 본인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음. 이제 우성이 놀림 당할 차례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음. 오, 네 짝사랑 상대야? 야 얘 짝사랑 중이래!!! 태섭이 우성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당한 거랑 똑같이 말이지. 짝사랑... 정말 우성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사람이 사람한테 반하는 거 정말 별 거 없이도 일어나는 일이니까.
누군가한테 반하면 어떻게 해야되지? 우성은 지난 날 자신이 거절한 많은 고백들이 떠올랐음. 저 매정하고 배부른 자식, 이라며 핀잔을 주던 현철의 목소리도 같이. 다 받아주는 게 더 문제라고 항의하면 대드냐고 관절이 꺾였었지. 잊을 만 하면 있던 그 난리에, 어떤 날엔가 명헌이 우성의 편을 들어준 적도 있었던 거 같음.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용. 그 말에 바쁘게 고개를 끄덕끄덕했었는데... 그래서 아마 우성이 누굴 진짜 좋아할때 그 애는 아닐 확률이 아주 높을 거에용. .....? 이런, 끝까지 기억해보니 편 들어준 게 아니었어. 기억을 중간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괜히 더 심란해진 우성이임.
아무튼 우성은 저 사진을 이대로 차에 계속 놔뒀다간 언제 한 번 사고를 낼 거 같아서 (마치 조수석에 태섭이 있는 것 마냥 신경을 써댔기 때문에) 오늘은 집으로 챙겨 오는 길이었음. 좀 덜 볼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서랍 안 쪽에 깊이 넣어버렸지. 그런데 그거 괜히 넣은 거였음. 이따 도로 꺼내게 됐거든.
자기 전 확인한 이메일에 태섭의 이메일이 와 있던 거임. [송아라님 미션 왔다. 디즈니랜드 가야함. I need your help....] 태섭의 동생이 이번엔 디즈니랜드를 찍어달라고 한 모양이었음. 와, 잠깐만. 이건 너무 데이트 같은 거 아냐? 같이 가도 되는 거 맞나? 아니 근데 영어 쓴 건 뭔데...나한테 영어를 왜 써...뜬금없게 귀엽네 진짜... 이러고 혼자 설레발 치고 주책 떠는 중에도 긍정의 답장은 이미 써서 보냈음. 그리고 이 때 사진을 다시 꺼냈지. 덜 봐야겠다고 생각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렇게 태섭이 사진은 방에서 가장 자주 눈길을 주는 일과표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음.
감정의 타당한 이유 같은 건 우성도 따질 생각 없었음. 그게 뭐가 중요하나. 좋아졌으니까, 좋아하고 있는 거겠지 싶을 뿐임. 하지만 그런 거랑은 별개로 우성 본인부터가 이 상황이 낯설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중이었음. 지금껏 감정을 숨겨본 적이 없는데, 아니 애초에 이 감정을 숨겨야 맞는 건지 아닌 건지 그것부터 모르겠는 걸.
"...진짜 어떡하지."
*
여기를 너랑 오다니 진짜 어이가 없다.
디즈니랜드 입구에 도착한 태섭이 꺼낸 감상이었음. 아라님 미션이에용! 우성이 이미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외치니, 태섭이 귀여운 척 하지마세용! 하면서 받아쳤음. 앗. 나도 모르게 명헌이형 말투가. 아마 간만의 회상때문일지도 모르겠음. 아 근데 미친 거 아냐? 지가 더 귀여우면서? 우성은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겨우 참아냄.
어쨌거나 태섭은 저러고 항상 툴툴대놓고 최선을 다해 즐기는 놈이었기 때문에 미션을 빙자한 나들이를 알차게 즐겼음. 우성이 틈만 나면 저를 모델로 셔터를 마구 눌러대는 것도 못 알아차렸으니까. 정말 잘 논 거지. 오늘 이 우성이의 사진 욕심은 태섭이 아라를 닮은 다람쥐 조형물을 발견해서, 저것 좀 찍어보라고 했을 때 들통이 나버렸음.
"...태섭아, 필름 다 썼나봐."
"벌써 다 찍었다고?"
"응."
"그거 거의 40장 짜린데..?"
"......"
"......"
"...얼마 안 되네, 40장..."
"미친놈인가..."
결국 태섭은 사진 대신 그 옆에서 팔던 같은 모양의 인형을 구매해야했음. 사실 미쳐버린 가격에 눈썹이 3배는 삐딱해져서 우성이 내가 잘못했다면서 대신 계산함. 그걸로 넘어가나 했는데 대망의 불꽃놀이 시간에 다시 혼나야했지. 이걸 못 찍잖아, 바보야. 우성은 평온하게 또 오면 되지, 대답함. 사심을 많이 담아서. 평소라면 또 한 소리 들을 만한 낭창한 대답인데, 딱 그 타이밍에 고맙게도 폭죽이 터지기 시작하더라고.
우성이 불꽃놀이를 본 건 아주 잠깐이었음. 태섭에게로 다시 시선을 뺏겼지. 와아, 하는 오늘 중 가장 큰 태섭의 감탄사가 들렸거든.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보다 눈이 배는 커져 있었음. ...예쁘다. 태섭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꽃을 보며 할 감상을 우성은 저만 혼자 다른 대상을 보며 떠올렸음. 바보처럼 다 쓴 필름의 카메라를 들었다가 헛손질을 하고 다시 내려놓기도 해. 근데 바보 짓을 끝내고도 하늘을 볼 생각이 안 들지 뭐야. 진짜 큰일났다. 어떡하지?
"태섭아."
"왜?"
"내가,"
너 좋아한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 ...뭐라 그랬냐?? 안 들려!"
뻔한 클리셰처럼 폭죽이 펑펑 터지는 소리에 묻혀버린 말 때문에 굉장히 허무한 답이 돌아왔음. 영화 같은 우연을 주시더니 영화 같은 방해도 주시네요. 예쁘다고! 거짓말은 아닌 내용으로 우성은 대충 말을 돌려버렸지. 오늘은 그 타이밍이 아니란 건가보다, 셀프로 달래면서.
*
보자, 영화 같은 방해랬나. 우성인 그게 팔자 좋은 착각이라는 걸 얼마 안 가서 알게 됐음.
정말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서로의 합의 하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을 뿐인 날이었음. 오늘이야말로 한식을 먹자고 한식당을 찾았고, 덕분에 과식을 해버려서 소화시키겠답시고 공 좀 가지고 놀았고, 승패로 유치하게 왈가왈부하다 딴 길로 새버린 수다를 늘어놓다가 시간이 늦어버린 것 뿐이었음. 다음 날은 마침 주말이었을 뿐이고. 태섭의 기숙사보다 우성의 집이 더 가까웠을 뿐임. 정말 그 뿐이라. 우성은 그만 간과해버렸던거지, 자기 방에 떡하니 애인 마냥 붙여놓은 태섭의 사진을. 이미 우성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집의 일부였으니까. 먼저 욕실로 들어가는 우성에게 태섭이 방 구경 괜찮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는데. 바보도 아니고.
늦었나? 벌써 봤겠지? 그래, 그렇게 대놓고 붙여놨는데. 뭐라고 둘러대지? 바쁘게 생각하면서 씻던 걸 대충 수습하고 나오는데, 몸보다 빠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향하기 시작함. 그냥...알아버려도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 전할지 말지, 전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수시로 고민했던 이런 복잡한 마음 같은 거 그냥 먼저 알아채주면 그것도 좋겠다고. 짝사랑은 적성에 안 맞았으니까.
서툴기 그지없게 엉성히 감춰놨던 감정은, 방문을 열고 나온 태섭을 향해 약간의 기대까지 가지도록 만들어버렸음. 너는 무슨 말을 할까.
".......벌써 다 씻었어? 그럼 나도 좀."
"...어?"
하지만 태섭이 꺼낸 말은 우성의 걱정과 기대 중 아무것에도 충족되지가 않았지. 우성은 당황스러웠음.
"...왜 아무 말 안 해? 물어볼 것도 없어?"
"뭔 말을 해...?"
"그냥 모른척이야?"
"......"
영화 같은 방해. 그딴 건 없었음. 다 철저하게 태섭의 모른척이었던 거임. 그제서야 우성은 태섭이 보인, 당시에는 인식 못 했던 망설임들이 기억 속에서 튀어 나왔음. 조금 전 방에서 나왔을 때의 망설임. 오늘 집에서 자고 가라 권했을 때의 망설임.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불꽃놀이 중의 고백 아닌 고백을 못 들은 척 할 때의 망설임까지도. 멍청하게도 이제서야.
"다 알았던거지?"
"무슨 말인데, 대체."
"너 선택 잘못했어. 아예 모른척이 아니라, 징그럽게 저걸 왜 붙여놨냐는 소리라도 했어야지. 오히려 티나잖아."
"......"
"태섭아."
".....야, 하지마. 말하지마."
"좋아해."
"아니 말을, 하 너 진짜."
"이런 식으로 차일 거면 차라리 고백이라도 하고 차일래. 나 너 좋아해, 송태섭."
미치겠다, 진짜... 라며 중얼거리는 태섭의 반응에 좀, 눈물이 날 거 같기도. 얼마 전 회상 속에서 찾아낸 명헌의 말이 다시 아프게 우성의 가슴에 꽂혔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안 좋아할거랬죠. 역시 형은 유능하다니까, 다 맞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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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데 짝사랑은 개 못하고 고백도 개 못하는 정우성 보고싶어
슬램덩크 우성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