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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6 16:30


협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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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협은 원래 새벽 낚시를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싸늘하고 어두운 곳에 가만히 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게 좋았다. 그러다 가끔 자기같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이면 손 한번 들어주고 각자의 낚시대에 집중하는 시간들. 그러고 있으면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속에 파묻혀버리면 마음이 편해졌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오로지 홀로. 하품을 해도 눈을 감아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있다가 입질이 오면 낚아채는 것이다.
“오-”
요즘은 올라오는 게 괜찮았다. 목적이 생겨서 그런 건지 대협은 집중력이 좋아졌다. 심지어 좀 큼직한 게 걸릴 때까지 기다리는 습관도 생겼다. 오늘도 3마리나 낚았다. 그 중에서 제일 괜찮은 걸로 골라 챙기고 나머지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대강 담아서 집으로 향한다. 해가 뜨는 해변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낚시대를 정리해놓고 가볍게 지느러미와 비늘을 손질한 생선을 챙겨서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강백호 집까지 가는 버스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좀 일찍 나가야 한다. 그래야 들렸다가 능남의 체육관까지 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서 탈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체육관까지 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서 탄 적은 한번도 없지만 어째든 그랬다는 기분은 내야 되니까. 사실 생선만 걸어놓고 바로 버스를 타러가면 그럭저럭 시간이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대협은 좀 이상한 취미가 생겨버렸다. 생선을 걸어 놓은 첫날이었다. 상태가 안 좋은 강백호네 집 현관 문고리에 조심스레 비닐 봉지를 걸어놓을 때는 삐걱 소리라도 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정작 걸어놓고 돌아서니 궁금해졌다. 이걸 보고 강백호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혼자 그 반응들을 계속 상상하게 되었다. 좋아할까? 짜증낼까? 어떤 반응이든 재밌겠다는 생각을 체육관에 와서도, 연습을 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건 드문 일이었다. 대협은 뭔가를 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그것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농구든, 공부든, 낚시는 조금 달랐지만. 하지만 그 날은 생선을 발견한 강백호를 상상하느라 종일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웃어대면서 실수도 좀 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늘 그렇듯 정신차리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영수도 땍땍댔는데 며칠 연달아서 그러니까 갑자기 따로 불러내서 요즘 왜 그러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대협은 잠깐 당황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생각을 좀 했다.
 다음날, 다시 강백호의 집 앞까지 비닐 봉지를 들고 걸어간 대협은 요 며칠 그랬듯이 강백호의 반응을 상상하며 돌아서다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집 주변을 한번 살펴보았다. 고요한 아침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
말 그대로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대협은 일단 저항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결국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와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강백호의 집으로 돌아간 대협은 굳이굳이 190짜리 장신이 눈이 잘 띄지 않지만 강백호의 현관문은 보일 만한 장소를 찾아냈다. 거기에 몸을 숨기고 강백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좁고 불편하고 더러운 장소에 구겨져서 한 곳만 빤히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자각도 못하고 이거 새벽 낚시랑 되게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나 했다. 진짜 웃긴 게, 그러고 있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다. 가슴이 막 설레면서 기분이 계속 좋아지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강백호가 나왔다. 반팔 차림에 츄리닝, 발가락이 보이는 슬리퍼만 신은 채였다. 한겨울인데 그렇게만 입고 나왔다. 잠깐 밖에 나온 건지 어디 뛰기라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안 춥나, 하는 생각도 잠시 강백호가 현관문 고리를 봤다. 멀뚱히 보다가 슬쩍 안 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안을 본다. 그리고 눈이 땡그랗게 커진다. 거리가 좀 있는데도 그게 다 보일 정도로 크게. 대협은 숨죽어 웃었다. 그 작은 웃음 소리에 맞춰 자신의 어깨가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살펴보는 강백호, 봉지를 고리에서 빼내고는 안 쪽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강백호, 그리고 작게 시작된 미소가 커다란 웃음으로 번지는 강백호. 그 얼굴, 잔뜩 풀어진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따라 대협도 웃는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입가가 아플 만큼 활짝 웃는다. 헤헤헤, 하는 강백호의 웃음 소리가 멀리 있어 들릴 리가 없는데 들린다. 그렇게 강백호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보다가 먼지가 가득 묻은 채로 나온다. 이상한 후련함을 느낀다. 갑갑했던 게 쑥 내려간 기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타러 간다. 그래서 버스를 타서도, 체육관에 가서도, 쭉 그런 얼굴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상상할 필요가 없으니까, 실제로 어떤지 아니까. 상상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대협은 계속계속 평소보다 훨씬 늦게 체육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도 괜찮은 것 같은데.”
주말이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위해 토요일 아침부터 어머니가 내려왔다. 미리 좀 알아봤다고 하더니 대협을 차에 싣고 전혀 모르는 동네로 데리고 갔다. 당연히 바닷가 쪽을 생각하고 있던 대협은 어머니에게 넌지시 자신의 의견을 전했지만 한번 보기만 하자는 대답이 돌아와 그래요, 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되니까. 어머니의 차가 멈춘 곳은 2층 가정집이 많은 주택가였다. 차에서 내리니 부동산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왔다.
“1층에 방 3개 화장실 1개, 2층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옥상 베란다도 넓고 남향에다가 구조도 좋아요.”
꼼꼼하게 듣고 살펴보는 어머니와 달리 대협은 별 생각이 없었다. 쓸데없이 큰 집이었고 정원까지 딸려있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너무 멀었다. 학교까지는 버스타면 20분이면 갈 수 있겠지만 바다까지는 1시간까지도 생각해야 했다. 강백호의 집까지는, 글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부동산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둘러보니 한적하고 깨끗한 동네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바닷가 쪽으로 할 테니 자신과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며 현관문에 기대 서있는데 저 쪽에서 익숙하고 큼직한 인영이 보였다. 양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자신 쪽으로 오고 있었다. 옆에서 나란히 서서 걸어오는 단발머리 여자애도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있었다. 시선이 고정되니 상대방도 자신을 알아본다. 대협은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윤대협?”
“안녕하세요, 치수 선배.”
그러고 나서 채치수 옆을 보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하는 순간, 머리 속에서 동글동글한 빨간 머리가 외쳤다.
[야! 윤대협! 소연이 보지 마!]
“안녕하세요.”
‘그 소연이’가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그래서 대협도 적당히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답했다. 강백호가 좋아하는, 딱 사진만큼 예쁜 여자애에게.
“내 동생이야, 채소연이라고 해. 여기는 윤대협.”
하지만 그건 의외였다. 동생? 하나도 안 닮았는데…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대협은 아니었다. 대신 싱긋 웃어주기만 했다. 그러자 대협을 알아보는 듯 하던 채소연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익숙한 반응을 가볍게 넘긴 대협은 잠시 채소연을 살펴보았다. 적당한 키, 투명하고 하얀 피부, 순해 보이는 눈매, 마른 몸, 가느다란 팔다리, 살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강백호는 이런 타입을 좋아하는 구나 싶었다.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데. 이어지려는 상념을 끊은 건 채치수의 물음이었다.
“여기는 웬일이냐, 윤대협.”
“아, 저 이사 갈 집 알아보고 있거든요.”
“이사?”
괜히 말했나, 뭔가 더 물을 기미를 보이는 채치수를 향해 일부러 한번 크게 웃은 대협은 시선을 채치수 손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그건 뭐에요?”
대강 내용물을 살펴보니 다 식재료였다. 명절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남매가 쌍으로 가득 들고 있는데 뭐가 많기도 했지만 종류도 아주 다양해보였다.
“요리해야 될 게 좀 있어서.”
“설날 준비를 좀 빨리 하시나 보네요.”
그 뻔한 말에 둘의 반응이 좀 애매했다. 채소연은 어색하게 웃었고 채치수는 약간 인상을 쓰며 그런 셈이지, 하고 작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돌린다.
“이 집으로 이사 오는 거야?”
턱짓으로 대협이 기대고 있던 현관문을 가리키며 말하는데 뭘 확실하게 대답해주기는 싫었다. 애초에 확실하지도 않았고.
“아직 몰라요. 보는 중이라서요.”
“이 집에 이제 누가 들어오나봐, 오빠.”
“그러게.”
둘은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다시 대협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들 갈 길을 갔다. 대협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남매는 정확히 대협이 보고 있는 집의 옆옆옆 집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여기로 이사 오면 완전 이웃집이 되어버리는 셈이었다. 흠, 하는 소리를 한번 낸 대협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한번 생각해보자 대협아.”
부동산 사람들과 헤어지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말했다. 대협은 창 밖만 보다가 왜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부동산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거기 있으면 집안일 할 사람을 구해서 붙여주겠다고 했다. 대협은 한번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만으로도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몇 주 남아있으니 한번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대협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대협은 오랜만에 기분이 안 좋았다. 어머니 때문은 아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깊게 생각할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낚시가 안 되는 건 문제였다. 유달리 추운 날이라서 그런지 입질조차 거의 없었다. 답지 않게 초조해져서 간신히 들어온 입질을 놓치고 나니 기운이 다 빠졌다. 해도 벌써 떴는데. 일요일이라 체육관 안 가니까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약간 울적해진 대협은 생각을 좀 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 쪽이더라, 기억을 더듬어 부두 안 쪽에 있는 수산 시장으로 향했다.
“얼마라구요?”
그런데 막상 시장에 가니 또 욕심이 났다. 낚시로는 잡기 어려운 괜찮은 것들이 많아서 자꾸만 눈이 갔다. 좋은 걸 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이걸 강백호가 요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버렸다. 정신 차리니까 이미 진짜 큰 걸 사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 전문가의 손질까지 되어 있어서 아무리 강백호라도 이걸 내가 낚았다는 말을 믿을까 싶었다. 괜히 요리 힘들어하는 애 더 시무룩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도착해버렸고 시간은 평소보다 늦었고, 그제서야 그냥 같이 요리하자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었다. 왜 이런 생각을 빨리 못 했지? 요즘 안 하던 짓을 해대서 좀 멍청해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긁적인 대협은 강백호한테 옮았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이제는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강백호의 아파트 건물이 눈에 들어온 순간, 평소보다 먼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저도 모르게 몸을 숨겨야 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덩치와 뒷모습, 채치수가 맞았다. 어제처럼 양 손 가득 뭔가를 잔뜩 든 채치수가 대협보다 앞서 강백호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강백호, 나다.”
치수는 현관문을 몇 번 두드린 후에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한숨을 한번 쉬고 들어간다, 라고 말하며 문고리를 잡으니 안에서 후다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현관문이 덜컹해서 문고리를 돌리는데 돌려지지가 않는다. 문도 열리지 않는다. 어차피 고장 난 문고리를 완전히 망가뜨릴 셈인지 반대쪽에서 꽉 잡고 버티는 강백호의 모습이 선해서 한번 더 큰 한숨이 나왔다.
“뭐하는 거야. 문 열어.”
좀 엄하게 말해보지만 끄떡도 안 한다. 대답도 없지만 이상하게 끙끙거리는 소리는 들린다. 혼자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러고 건지. 가슴이 답답해져서 또 화가 난다.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다.
“빨리 열어! 강백호!”
“싫어!”
그리곤 저도 똑같이 가! 고릴라! 하고 소리를 질러 댄다. 치수는 분명 오는 내내 오늘은 화내지 말아야지, 애한테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왔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렇게 다짐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소리를 질러댄다. 강백호랑 있으면 항상 그랬다.
“이 녀석이 진짜! 빨리 안 열어!”
“시끄러, 이 고릴라야! 황금 같은 일요일에 남의 집까지 쳐들어오고 난리야! 꺼져!”
“뭐? 꺼져?”
이 자식이 진짜! 열 받아서 또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문고리가 아니라 현관문 전체가 삐걱거릴 만큼 힘싸움을 하다가 강백호가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른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여서 현관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진짜 이게 뭐라고 벌써 숨이 차서 헉헉대며 집 안을 보니 뒤로 떠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강백호가 보였다. 아차 싶었다.
“넘어졌냐? 괜찮아? 등은?”
서둘러 다가가 애를 일으킨다. 그러니 치수의 손을 밀치며 짜증을 낸다.
“아, 괜찮다고, 등 이제 안 아프다고!”
그러면서도 아야야, 하고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난다. 이씨, 멍드는 거 아냐, 하는데 또 움찔하게 되는 치수였다.
“어디 봐, 많이 아프냐?”
“이 고릴라가 미쳤나, 어딜 봐? 변태냐?”
밉살스럽게 말하면서 투덜대는 걸 보니 그냥 엉덩방아만 찧은 듯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치수는 들고 온 짐을 안 쪽으로 넣고는 현관문을 닫는다. 그리고 재빨리 안을 살펴본다. 그럭저럭 정리가 되어있는 걸 확인하고 바로 더 안으로 들어간다. 뒤에서 어딜 가, 고릴라! 하고 빽빽대는 걸 무시하고 바닥에 널부러진 이불 아래로 손을 넣었다. 다행히 따뜻했다. 이불 아래에 삐져 나온 선이 콘센트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대만이 집에 남는다고 준 전기 장판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준호가 챙겨 준 비디오는 줬을 때 모양 그대로, 서태웅이 버리는 거라며 주고 간 텔레비전 비디오 플레이어 옆에 놓여있었다. 이 녀석이, 혀를 차며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강백호가 힉, 소리를 내면서 달려와 닫으려고 했다. 그걸 밀어내면서 반찬통을 연다고 또 몸싸움을 한바탕 했다. 그 와중에 잘못 건드리면 애 또 아플까봐 예전처럼 막 대할 수도 없어서 반찬통 뚜껑 몇 개 열고 나니 그냥 진이 빠졌다. 떠밀려서 핵핵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강백호도 비슷해보였다. 그래도 반찬통이 비어 있어서 좀 안심이었다. 먹긴 먹었나 보다 생각하며 빈 반찬통을 챙기고 새로 가져온 걸 채워 넣으려니 또 벌떡 일어난 강백호가 치수의 손을 막는다. 억지로 냉장고 문을 닫으려고 한다.
“아, 필요없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녀석을 다시 밀어내며 몸싸움이 이어졌다. 저리 가서 앉아 있으라고 소리를 지르니 똑같이 소리를 질러댄다. 싫다, 필요없다, 가라, 꺼져라, 더 모진 말은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펄쩍펄쩍 난리치는 얼굴은 말도 못하게 일그러져 있다. 시뻘건 눈가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 있어서 화를 더 내기도 어려웠다. 치수는 어떻게든 힘으로 버티며 냉장고 안에 다 넣어 놓고선 밀려나 헐떡이는 강백호와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노려보는 날선 눈동자를 감당하며 차라리 무서우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볼까지 축축히 젖은 채 씩씩대는 어린애로 보이는 게 아니라, 열여덟 제 나이로라도 보이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멈추지 못 했다. 그런 자신의 얼굴이 강백호에게 또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지 못 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받아내고 있었다.
 


치수백호 아님, 논커플링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좀 나오긴 할 것임.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슬덩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