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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1 11:49

협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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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바닷가에서 대협의 기숙사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그렇게 걸어가는 내내 강백호는 끝도 없이 종알종알거렸다. 처음 1/3은 여전히 움직이는 생선을 맨손으로 들고가라고 자신에게 내민 대협에 대한 포효와 불평불만이었고 중간 1/3은 서태웅을 향한 난데없고 근거없는 인신공격, 마지막 1/3은 자신이 가세할 북산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에 대한 허세였다. 얘 진짜 서태웅 엄청 신경 쓰는 구나, 하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준 대협은 집에 비닐봉지 같은 게 있나 생각했다. 사실 아까 낚시바늘 가지고 장난칠 때 강백호라면 이제 필요없어! 하고 생선 같은 건 내팽겨치고 그냥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대협이 그럼 어디 담아갈래? 라고 말하자 강백호가 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생선을 좋아한다고? 딱히 선호하는 음식이 없는 대협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뭐 안 될 것도 없어서 그럼 자기 기숙사 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또 이렇게 쫄랑쫄랑 잘 따라오고 있는 셈이었다. 지루할 틈이 없게 대협을 웃겨주면서 말이다. 심지어 대협은 가는 동안 크게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들고 있던 물고기도 몇 번이나 놓쳤다. 낚시할 때 낚시대와 미끼 정도 밖에 챙기지 않는 대협으로서는 맨손으로 들고 갈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럴 때마다 강백호가 생선이 떨어진 반대 방향으로 후다닥 몸을 피하는 게 웃겨서 일부러 천천히 잡고 하다 보니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1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야, 이제 죽었나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쯤 되자 강백호가 생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쌍하게도 강백호의 낚시바늘질과 윤대협의 길바닥 패대기를 몇 번이나 당한 물고기가 그쯤 되어서야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걸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어서 대협은 그러게, 하고 답해주곤 현관문을 열었다.
“오- 윤대협, 이런 데 사는군.”
강백호는 태연자약하게 열린 문 안으로 쏙 들어가 대협보다 먼저 기숙사에 들어섰다. 그리곤 묻지도 않고 안쪽까지 들어가 대협의 침대에 털썩 앉더니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찾아 들어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대협은 오늘 종일 그랬듯이 그저 웃곤 작은 싱크대에 생선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씻은 후에 비닐봉지나 찾았다.
“저건 무슨 테이프냐? 야한 거냐?”
어느새 아예 침대에 옆으로 누운 채 채널을 삑삑 돌려대던 강백호가 킥킥대며 물었다. 비닐봉지 같은 게 잘 안 보여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던 대협이 응? 하고 고개를 돌리자 강백호가 턱짓으로 텔레비전 옆에 쌓여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가리킨다.
“아, 그거 조던.”
“조던? 마이클 조던?”
“응. NBA 경기 녹화한 거야.”
그 말을 듣더니 침대에 붙어있던 몸이 일어난다. 표정이 미묘해진다. 그 모습을 보던 대협의 머리 속에 지난 번에 덕규 선배가 과일을 줬던 봉지가 떠올랐다. 다른 서랍을 뒤져서 겨우 찾아낸 봉지에 한번 씻은 생선을 담아서 돌아서니 강백호가 비디오 테이프 앞에 구부정하니 좀 이상한 자세로 서선 테이프들의 네임텍을 보고 있었다.
“빌려줄까?”
그리 말하자 고개가 반짝 들려서 대협을 돌아본다. 기쁨과 설렘이 빠르게 떠오르는 얼굴을 보고 저건 또 어디 담아줘야 되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뭔가가 끊긴 것처럼 강백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분위기도 순식간에 바뀌어서 영문을 알 수 없던 대협은 왜 저러나 생각하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한번씩 다 봤어. 들고 갈래?”
조던의 플레이야 봐도 봐도 지겨울 리 없다만 요즘은 손이 잘 안 가는 테이프들이었다. 빌려줘도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상해진 얼굴을 수습하지 못한 강백호는 티나게 어색한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됐다. 뭐 이 천재께서는 그런 걸 보고 따라할 필요가 없으시다, 이 말씀이지-”
그러면서 일어나서는 대협의 손에서 생선 봉지를 받아가는데, 그 뒷모습이 또 기운 빠져 보였다. 뭐가 일이 있기는 있구나 싶어진 대협은 강백호의 발걸음에 맞게 따라 나가면서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그래, 그래도 나중에 필요하면 말해. 조던 경기는 농구 생각 안하고 그냥 재미로 봐도 좋으니까.”
그러자 강백호가 걷다 멈추더니 조금 놀란 얼굴로 대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협도 같이 멈춰 섰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강백호의 눈동자는 또렷하고 짙었다. 잔디처럼 사방으로 뻗치며 자란 빨간 머리카락이 창백한 형광등 아래 선명했다. 힘이 풀린 미간 아래 입술을 멍하니 벌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강백호의 얼굴이 그 날 따라 유달리 어려 보인다고 생각했다. 한번 생긋 웃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협은 덧불였다.
“난 그렇더라고.”
그러고서 대협은 눈도 꿈뻑이지 않는 강백호에게 집에는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잠시 넋이 나간 듯했던 강백호는 갑자기 파다닥 고개를 젓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걸, 걸어간다! 천재는 걸음이 빠른 법이니까!”
그리곤 뭐가 그리 급한지 막 빠르게 신발을 구겨서 신는데 양말도 안 신어서 허옇게 일어난 뒷꿈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은 참…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농구화도 안 신고 양말도 안 신고, 그러고 보면 인터하이 예선 때도 양말 안 신고 나왔었지. 그걸 보곤 저 녀석은 근본도 안 돼있다고 누가 뭐라 하니 경태가 가난은 죄가 아니라며 큰 소리를 냈던 게 떠올랐다. 아, 그러면, 그런 건가?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나? 양말도 그렇고? 딱 봐도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만…
“발 안 시려?”
“뭐, 뭐?”
“잠깐만 기다려봐.”
바로 옆에 양말 서랍이 있어서 대협은 거기서 하얀 양말 한 켤레를 꺼냈다. 그리고 강백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강백호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고 가. 걸어간다며. 날도 추운데.”
그래서 말로 해줬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 대협을 바라보며 얼굴이 벌게지기만 했다. 여전히 힘이 풀려 있는 미간 아래 입술을 달싹거리는 꼴이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싶던 대협은 등 부상을 떠올렸다. 그러자 양말을 신는 자세 자체가 힘든 걸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라이벌이라고 난리치는 자신의 앞에서 보여주기 싫을 수도 있을 터다. 그게 뭐라고 싶긴 했지만 원체 정신 연령이 어린 녀석이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잠깐 여기 앉아 볼래?”
그리 말하며 강백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아래로 살짝 눌렀다. 워낙에 힘이 좋은 녀석이라서 힘 좀 줘서 눌러야 되나 싶었는데 건드리니까 그냥 스르르 내려가더니 털썩 현관에 주저앉았다. 이거…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은 걸 수도 있겠는데, 생각한 대협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상하게 신겨져 있던 강백호의 신발 한쪽을 벗겼다. 그리고 재활하느라 근육이 빠진 건지 생각보다 가는 발목에 하얀 양말을 신겨주며 말했다.
“재활 중일 때는 이런 걸 잘 챙,”
겨야 한다- 고 말을 마무리하며 양말을 발목까지 끌어올리려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양말을 신겨주고 있던 강백호의 발이 위로 치솟아 올랐다. 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피해야 한다고 판단한 순간 이미 늦었다. 눈 앞에 별이 번쩍하더니 그 다음 순간 대협은 뒤로 나자빠져 있었다.
“???”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대협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얼굴을 움켜쥐며 상체를 일으켜 강백호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눈이 점이 되는 것 같았다. 허나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대협을 걷어차놓은 강백호가 자기가 더 놀란 얼굴로 사색이 되어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 그게-”
강백호가 더듬더듬 이상한 소리를 내며 말을 하는 걸 들으며 눈만 껌뻑이는데 손에 뜨끈한 게 느껴졌다. 뭔가 싶어 손을 내리니 피 범벅이었다. 콧속에서 시작된 시큼한 피 냄새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움켜쥔 강백호가 내지른 으아아악- 하는 비명이 대협의 기숙사 방을 채웠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대협은 오늘 하루 정말 스펙터클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계속 피식피식 웃었다. 그냥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강백호랑 있으면 심심하진 않았다. 비록 휴지로 막아놓은 콧구멍 안이 아직도 뜨끈하긴 했지만 혼자 있었으면 이리 웃지 못 했을 것이다.
“넌 뭘 자꾸 웃냐. 윤대협.”
강백호는 심통난 목소리로 아까부터 그렇게 틱틱대고 있었다. 미안하다 말은 못 하고 안절부절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대는 꼴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안 났다. 양말 신겨주는 게 부끄러웠으면 부끄럽다고 말을 하면 됐을 텐데. 뭐, 말보다 몸이 먼저 나오는 게 강백호답기는 하다만 이렇게 피해자가 되고 보니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냥 뭐, 니가 뭐 해줄까 기대되서.”
“…그, 그래. 이 천재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영광을 감사히 여기라고!”
그리 말하는 강백호의 윗옷은 피투성이였다. 누가 보면 크게 다친 줄 알겠지만 다 대협의 코피였다. 대협의 코피를 본 강백호가 놀라서 자기 윗옷을 들어올려 대협의 코를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또 얼마나 힘이 좋던지 이 녀석이 지금 날 질식 시키려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에 미안함과 걱정이 너무 선명해서 그냥 냅뒀다. 강백호 스타일의 이상한 응급 처지를 받아들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사실 좀 놀랬을 뿐이지 그렇게 화도 안 났다. 하여튼 골때리는 놈이었다. 어째 예상한 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곤 대협의 출혈이 잦아들자 강백호는 극도로 초조해 보였다. 대협은 괜찮다고 말해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생선 봉지를 챙겨주었다. 그래도 애가 어깨를 움츠리며 어쩔 줄 몰라 하길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한번 더 말해줘야 했다.
[야, 너 저녁 뭐 먹냐.]
그런데 강백호는 또 난데없이 그런 소리를 해댔다. 대협은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서 보니 강백호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땅바닥만 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내가 물고기 구워줄까? 나 좀 한다?]
그리곤 슬쩍 시선을 들어올리며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이번에는 대협이 강백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 이상한 방식의 사과였다. 하지만 먹혔다. 다치게 해서 미안해요, 제가 저녁이라도 대접할게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어린 애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게 다가와 대협을 어쩔 수 없게 만들었다. 눈썹을 찌푸린 채 웃으며, 그럴까, 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답하면서 내린 시선의 끝에 보인 하얀 양말은 여전히 한쪽 발에만 신겨져 있었다.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하자!!!

슬덩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