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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6 04:35
ㅅㅈㅈㅇ

BGSD

1: “이게 사람 같습니까? 영화도 안 봐요?”

2: “하... 니네도 늦잠 좀 자지 그랬냐.”

중간에 사운드 있음(안 들어도 됨)
중간에 약공포짤 ㅈㅇ
학교 알못 ㅈㅇ 고증 오류 ㅈㅇ 그냥 다 ㅈㅇ...






#22.

대가리가 꽃밭인 건지 전쟁통인 건지 모를 애 하나를 교실로 올려보낸 후, 허니쌤은 다시 매점 근처에 주차해뒀던 차로 향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던 좀비를 찾아 어서 밀어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올 작정이었다.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이 조금 빨라질 때였다.



“키에엑!”

“그르륵...”



...소리가 왜 겹쳐서 들리지? 뻣뻣하게 굳은 목을 억지로 움직이려니 끼기긱, 하는 이상한 효과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 제발. 집에만 가겠다고. 내가 대단한 거 바라?

허니쌤의 공허한 시선이 건물 반대편을 향했다. 건너편에서 학교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는 좀비는 총 두 마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좋게 손까지 붙잡은 채로 평화로이 걸어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허니쌤은 하마터면 피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빌뻔했다. 저게 뭐야. 좀비 친구? X바디스? 본 적도 없는 영화의 제목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다행히 최근 1시간 동안 허니쌤은 비현실적인 광경에 조금 면역이 생긴 참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자세히 보니 손을 잡은 게 아니라 두 좀비 모두 손은 없었고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상대방의 손목이 붙은 채로 얽혀 있는 것뿐이었다.

휴, 난 또 뭐라고. 그냥 살점이 서로 붙은 것뿐이었네. 하하하!



허니쌤이 학교로 무작정 달렸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단순히 응고된 피로 붙어 있거나 인위적인 힘으로 묶여있거나 한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건 모로 봐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재생능력이었다. 시체가 저게 가능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심이 허니쌤을 사로잡으려다 실패했다. 일단 지금은 도망이 먼저였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학교 건물로 들어가 가장 눈에 띄는 방으로 구르듯 뛰어들었다.

평생 몸 쓰는 일이라곤 새해 아침 맞이용 3일짜리 조깅이 전부였던 허니쌤은 문을 닫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거친 숨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바로 폐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저런 비주얼을 보니 기운이 쭉 빠졌다. 저딴 걸 어떻게 이겨...


문 앞에서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밖에서 그 괴상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못 봤나? 못 들었을 수도 있고...

비무장 상태로, 외부에서, 게다가 혼자 좀비를 마주한 공포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여전히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스르고 뺨을 약하게 쳤다. 저 꼴을 보니 더더욱 죽을 수가 없었다. 죽어도 사람으로 죽고 말지, 나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자식이랑 같이 손 붙잡고 칠렐레팔렐레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싶진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이게 아닌가. 아무튼 허니쌤이 우연히 들어온 곳은 처음의 목적지였던 경비실이었다.

경비원의 흔적은 없었지만 열쇠꾸러미는 얌전히 벽 한쪽에 걸려 있었다. 문득 초기의 목적이 떠올랐다.
저거 매점 열쇠 같은데.


어차피 지금 난 혼자고. 장비도 조금 했고. 근데 가진 건 없고. 애들은 교실에 짱박혀 있을 거고... 집까지 가는 길에 뭐가 필요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허니의 변명이 조금씩 길어졌다. 손은 이미 자연스럽게 칼럼의 운동복 주머니에 열쇠를 챙겨 넣는 중이었다. 물이나 간식만 조금 챙기자. 진짜 금방이면 되니까......







#23.

매점까지 가는 길은 또 소름 끼칠 만큼 조용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학교 문이 버젓이 열려 있는데 경비원도, 늘 허니보다 일찍 출근하는 행정실장님도 보이질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다들 뉴스를 잘 챙겨보고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직 쌤들도 한 명도 안 보인다고? 책임감 강한 경비원 존이 학교 문을 다 열어두고 혼자 퇴근을 했을 거라고?

위화감이 온몸을 감쌌지만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이든 뭐든 안 마주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쌍둥이 좀비랑 다시 마주치면 오줌을 지릴지도 모르겠다는 오버 섞인 걱정이 무색하게 허니는 몸을 잘 숨겨가며 매점 셔터를 올리는 것까지 성공했다.

가건물이라 그런지 셔터 외의 보안 장치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몇 년째 제대로 된 매점을 ‘곧’ 만들어 주겠다고 입만 털어대던 시골 촌뜨기 학교의 일 처리 속도에 처음으로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매점 속은 평화롭고 풍족했다. 혼자라면 몇 달은 버틸 정도로. 다행히 아직 전기까지 나간 건 아닌지 냉장고도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다. 허니가 더플백에 물건을 집어넣었다.

딱 들고 뛸 수 있을 만큼만... 조난을 당해본 적은 없었지만 애들 말마따나 영화 속 간접 체험은 충분한 선행학습이 되어주었다.


물 몇 병에 마른 간식은 새 봉투를 뜯어 부피를 줄여가며 구겨 넣었다. 무슨 학교 매점에 안줏거리가 이렇게 많아? 이번만 고맙네.

점점 무거워지는 어깨가 아파지기 시작하자 허니의 손도 멈췄다. 일단 이 정도만 하고, 아니면 차에 옮겨두고 올까?


애초에 학교 방문 목적이 매점이었던지라 차는 주차장이 아니라 매점 근처에 대충 주차되어 있었다. 10M도 떨어져 있지 않을 테니 마음만 먹으면 10번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리였다.

허니가 두둑한 가방을 들고 매점을 조심스레 나섰다. 혹시 몰라 셔터만 내려두고 두어 발자국 내디뎠을 때였다.









Rrrrrr-



학교 전체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벌써 시간이...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쳐다보던 허니의 귀에 종소리의 뒤를 잇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진으로 땅이 흔들릴 때와 비슷한 소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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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강당에서 좀비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24.

씨이이이이발!

우선 가까운 매점에 잠깐 몸을 숨기려던 허니쌤은 셔터를 내동댕이치듯 집어던지고 1초 만에 튀어나왔다. 아직 교실에 애들이 남아 있었다.

저 빡대가리 시체 덩어리들이 소리가 난 스피커로만 달려가고 있다 해도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뭐야, 우리 마을 사람들 다 저기 있던 거야? 황망한 얼굴로 구경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허니쌤이 다시 달렸다.


허니쌤의 달리기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좀비들도 기럭지나 몰골에 비해서는 행동이 굼떴다.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잡아 눌러대도 허니쌤의 다리는 쉬지 않았다. 입을 헙 다물고 본관 뒷문을 열어젖혔다.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건물 밖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볼 것만 같았다. 허니쌤은 돌아보지 않았다.



2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 몇 번을 미끄러졌는지도 모르겠다. 투박한 보호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아마 팔꿈치 한 번은 가볍게 부러졌을 터였다. 일곱번 쯤 다시 일어난 허니쌤이 가방을 움켜쥐고 다시 헐떡거리며 움직였다.

학교 본관 정문은 유리문이었다. 바글바글한 좀비 떼가 조만간 문을 뚫을 게 분명했다. 빨리, 더 빨리.

교실 문 앞에서 한 번 더 구를뻔한 허니쌤이 문고리를 잡고 가까스로 버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은 잠겨 있었다. 니들은 왜 이럴 때 갑자기 똘똘해지고 그러니.

허니쌤이 차마 큰 소리도 못 내고 문만 똑똑 두드려댔다. 얘들아, 얘들아.



“허니!”

“쌤!”



다시 겹치는 목소리.

벌컥 열린 문에서 팔 하나가 튀어나와 허니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허니의 시선이 복도 끝을 향했다.







#25.

해리와 톰은 선생님 몰래 창문의 커튼을 열고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쓰고 있었고 칼럼과 리지는 무기가 될만한 걸 찾아 헤맸다. 빌은 아이들의 배려로 복도 감시 담당을 맡았다.

종이가 덕지덕지 붙은 창틈으로 무슨 소리가 날 때 바깥을 내다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당분간 복도에 큰 소리 날 일도 없으니 그냥 기분 전환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팅팅 부은 얼굴이 조금 쪽팔렸던 빌은 흔쾌히 배려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평화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종소리가 울리고... 붐!



교실이라고 그 큰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까까지 여유롭게 하늘 구경이나 하던 천하의 해리 스타일스마저 헛숨을 들이키게 만들 만큼 무시무시한 굉음이었다.

다섯 사람이 바짝 굳었다. 손에는 각자 쥘 수 있는 무기 -문구용 가위, 의자, 드럼스틱 따위- 를 들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숨도 조심조심 쉬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킨 채 3분처럼 느껴지기도, 30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이 지났다.



똑똑



작은 소음에 빌이 의자를 내동댕이치고 문으로 달려갔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벌컥 열린 문 너머 작은 인영을 빌이 다급하게 끌어당겼다. 쿠당탕 소리가 나며 뒤로 쓰러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는데도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는 건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바닥에 부딪힌 등이나 제 가슴팍을 누르는 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팔로 선생님을 붙잡은 채 눈을 굴려 바쁘게 상태를 살폈다. 잡힌 손이 피범벅이었다. 쌤, 괜찮아요? 이거, 피...

빌은 창밖으로 헐떡거리며 달려오던 허니쌤을 발견하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사지가 바짝 얼어 있다가, 작은 노크 소리에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뛰쳐나간 것이었다.

무작정 문을 열어젖힌 빌 덕분에 당황한 아이들이 상황을 수습해보려 주춤거렸다. 그나마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톰이 삐걱거리며 다가가 문단속부터 하려고 할 때였다.



“잠, 잠깐만.”



빌의 품에서 벌떡 일어난 선생님이 몸으로 문을 막아섰다. 톰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선생님...?’ 하고 불렀지만 잘게 떨리는 손에 가슴팍이 밀릴 뿐이었다. 너희 다 뒤로 물러나 있어. 잠깐만.

어쩐지 넋이 빠진 것 같은 얼굴에 아이들 마음에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이길래 저 선생님이 저렇게 반응하는 거지?

설상가상, 복도 멀리서부터 탁탁탁 뜀박질 소리까지 들려왔다. 칼럼과 해리의 주먹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여차하면 선생까지 날려버릴 폼이었다. 리지가 불안한 눈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을 살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내밀고 복도를 빤히 쳐다보던 허니쌤이 한순간 맥이 탁 풀린 듯 뒤로 물러났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파업이라도 선언한 건지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선생님의 팔에 가로막혀 이도 저도 못 하던 톰이 우물쭈물하며 팔을 내밀 때였다.



“허니!”



웬 덩치 2명이 교실로 구르듯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허니쌤의 이름을 절박하게 부르지만 않았어도 당장 의자 몇 개가 날아왔을 만큼 엉망인 꼴이었다.







#26.

벌써 두 번째, 아픈 어깨를 꽉 붙잡힌 허니쌤이 자신을 붙잡은 남자의 팔뚝을 힘없이 툭툭 치며 속닥거렸다. 아파요.

남자는 그 신호를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려는 건지 계속해서 허니의 상태만을 물었다. 이상한 분위기에 문단속부터 마친 아이들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보건쌤 아냐? 옆에 저 사람은 체육쌤 같은데... 보건 쌤 허니쌤이랑 아는 사이였나?



“허니, 허니 괜찮아? 안 다쳤어? 뉴스는 안 봤어? 학교에는 왜...!”

“...오는 길에 라디오 들었어. 집에 혼자 있긴 좀 그래서 학교로 온 거야. 그리고, 애들 만나서,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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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그래. 애들 있으니까 적당히 해라. 허니쌤이 아까보다 강한 의미를 담아 잭의 어깨를 밀어내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주변을 살폈다.

깜빡거리는 눈에 달린 속눈썹이 나풀거리는 동안 허니쌤의 미간은 딱딱하게 굳어 펴질 줄을 몰랐다. 얘는 왜 또 여기 있는 거야.





교실로 들어오기 직전, 복도 끝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돌아본 곳에서는 웬 문짝 두 개가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게 중 하나는 좀비인가? 라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겨운 얼굴이라, 허니의 얼굴에도 잠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갔다.

다행히 뒤따르는 좀비 무리가 많지 않고 그마저도 느려 보여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상황 파악을 하려고 하는 와중에 빌에게 질질 끌려 들어왔던 것이었다. 분리불안도 아니고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허니쌤에게 당장 생긴 제자의 분리불안보다는 언제 좀비에게 물어 뜯길지 모르는 동료 교사 두 명이 더 급한 문제였다.

아플 정도로 팔뚝을 붙잡고 있던 빌을 어떻게 밀쳐냈는지도 솔직히 기억나지 않았다. 고개를 내밀고 바깥을 다시 살피자 두 사람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엉망인 몰골을 보고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닫을까 잠깐 고민하긴 했다. 정말 잠깐.

그런데 아까 ‘허니’를 외치던 목소리는 애틋하기 그지없었기에.

그래 좀비는 내 이름 같은 거 못 부르니까.



...그렇게 성심껏 들여줬더니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하고 말이야. 속으로 혀를 찬 허니쌤이 잭을 째릿 노려봤다. 잭의 어깨가 조금 좁아진 것 같기도 하고.



“어, 얘들아. 너희들이 학교에는 어떻게...”

“학생이니까 학교에 오지.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나 설명해요. 저것들은 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쌤들도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건지.”



설명을 종용하는 허니쌤의 말투에 리지가 속으로 몰래 웃었다. 선생님 역시 아까부터 애들 앞이라고 화 참고 있으셨구나. 학생한테만 화 안 내신다는 소문이 정말이었어.

타이밍 좋게 아마 지금 허니쌤의 화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일 빌이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남겨뒀던 생수를 뚜껑까지 열어 선생님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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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드세요. 근데 쌤은 괜찮으신 거죠?”

“빌, 아까 넌 내가 아무나 문 열어주지 말랬... 아니다, 됐다. 고마워. 죽을뻔했네.”

“쌤 다친 곳 없어요? 이거 피...”

“응, 그냥 묻은 피야. 그나저나 아까 넘어진 건 괜찮아?”



것봐. 짜증이 미약하게 묻어나던 목소리 톤이 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누그러졌다.

빌이 아까 뭘 봤는지는 몰라도 몰골을 보면 보건쌤이랑 체육쌤이 더 고생하신 것 같은데.

리지가 볼 안쪽을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과한 긴장감에 얼굴 근육이 바짝 굳어 있던 참이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묘하게 학생들만 싸고 돌던 허니쌤은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작위적이었다고 느꼈는지 괜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체육쌤에게 생수를 들어 보였다.



“...근데 체육쌤은 괜찮으세요? 힘들면 물 좀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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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아, 예...”



언제 봐도 무뚝뚝한 인간이야. 허니쌤이 아직도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더플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다...







#27.

“오늘 당직은 체육 선생님이랑 보건 선생님이신가 봐요.”

“안녕하세요, 존.”

“안녕하십니까.”



늦은 밤, 순찰을 돌다 마주친 존과 로우든, 그리고 조엘은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는 존의 미소에 선뜻 화답한 두 남자가 함께 경비실로 향했다.


시골에 있는 학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 주제에 사건사고는 잦았다.

저번 주 주말 새벽, 웬 양아치 패거리들이 학교에서 싸움판을 벌인 바람에 학교는 때아닌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야 했다. 그러나 주먹구구 운영의 끝을 달리는 학교는 경비 인력을 투입하는 대신 선생들에게 당직을 ‘부탁’했다.



“이게 말이 좋아 부탁이지...”

“그러니까요. 그러게 진작 경비 업체 좀 쓰자니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고, 흡연구역에서 오며 가며 안면 정도나 튼 보건쌤과 체육쌤이 학교 시스템을 욕하느라 간신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에 떨어진 존의 일시적 농땡이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늦가을의 밤은 쌀쌀했다. 따뜻하게 내린 커피 한 잔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학교를 한 바퀴 더 돌고, 당직실에서 조금 쉬다가...

앞으로의 일정과 시간 외 업무의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하느라 가물가물해진 잭의 정신을 깨운 건 존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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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뭐지?”



경비실의 CCTV 화면 한구석이 기이하게 와글거리고 있었다.

화질이 낮은 탓에 멀리서는 형체를 구분할 수가 없어 잭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 조엘도 몸을 기울였다.


존이 가리킨 화면 아래에는 <정문>이라고 적힌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정문 가로등이 또 나갔나 보네. 깜빡거리는 화면을 보며 싱거운 생각을 하던 잭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잠겨 있는 정문 앞에 사람 비슷한 형체가 잔뜩 몰려 있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믿을 수 없겠지만... 문에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신종 변태들인가. 조엘이 낮게 중얼거렸고 잭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넘을 거면 넘고 들어오든가, 꺼질 거면 썩 꺼지든가 저기다가 왜 서로 몸을 비비고들 있어?

물론 그들의 황당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저게 신종 변태든 며칠 전 학교를 뒤집은 양아치 무리든 간에 학교에 들여서는 안 될 수상한 자들인 건 확실했으니까.

존이 자신이 먼저 가보겠다며 손전등을 챙겨 몸을 일으켰다. 잭과 조엘도 경찰을 부르며 금방 따라나섰다.

키는 좀 작아도 발은 빠른 존은 이미 이상한 무리의 근처까지 다가가 있었다.



“이보세요, 누구십니까? 이 시간에 학교 오시면 안 돼요!”



존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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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성거림이 멎었다.



잭과 조엘은 아직 그 사람들과 한참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동시에 존을 바라봤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묘한 적막이 1초, 2초, 3초...



“키야아악!”



괴성을 지르고, 저들끼리 밟아대며 정문을 넘었다.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가슴팍을 밟혀도, 머리가 땅에 부딪혀 굴러도 이상한 각도로 일어나 존에게 달려들었다.

잭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경찰에게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젠장, 존이 이리로 달려왔다. 뒤에 이상한 뭔가를 몇십 명 정도 달고.







#28.

저 사람들이, 아니, 저것들이 대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공포심이 먼저 왈칵 그들을 덮쳤다. 서로를 챙길 정신도 없이 도망쳐 도착한 곳은 강당에 딸린 비품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도 모조리 강당으로 따라 들어왔다.

비품실에 몸을 던진 후 곧바로 문을 잠갔다. 그것들이 두꺼운 철문에 몇 번씩 쾅쾅 부딪혔다. 두 남자는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그게 다시 마를 때까지 흔들리는 문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어야만 했다.


서로 눈치채진 못했어도 도망치던 내내 곁에 있던 잭과 조엘은 같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존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누구도 존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바깥은 점점 조용해지다가도 중간중간 ‘키에엑’ 따위의 괴상한 고함이 메아리쳤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비품실에서 찾은 야구 배트를 쥐고 있던 조엘이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작은 볼륨으로 뉴스를 틀었다. 잭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축구부 유니폼 몇 벌을 꺼내 창문을 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화는 없었다.

적막을 볼륨 한 칸짜리 뉴스가 소곤소곤 채웠다.

“수도 한복판에서 엽기적인 범죄 행각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의 목을 치아로 물어뜯어 사망케 한 사건인데요. 일각에서는 흔히 말하는 좀비 바이러스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괴담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뉴스를 현실적으로 파악해보려 해도 딱히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법까지 떠오르는 건 아니라. 둘은 밤새도록 비품실에 가만히 뭉개고 있었다. 잠이 오진 않았지만 돌아가며 쪽잠도 잤다.

낮이 되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우리를 구하러 학교에 방문하지 않을까, ...혹시 잘 도망친 존이 경찰이나 군대를 데리고 와주지 않을까. 공기 중을 떠돌던 무수한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고 추락했다.

현실이 무겁게 그들을 짓누르다 못해 좀비 대신 공기에 눌려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강당에서 발을 구르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지금이야.



모르긴 몰라도 좀비들은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스피커를 찾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좀비들 뒤를 따라 나가면 슬쩍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학교 밖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겠지만,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과 평생 먹을 거 하나 없고 쿰쿰한 냄새만 나는 체육비품실에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잭이 먼저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야구 배트와 어깨 보호대 따위를 넘겨주고 바로 따라나선 조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아직도 미친 듯이 달리는 좀비들이었고, 그다음으로 보인 건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달리는... 로우든 선생님?



건물 벽 뒤에 숨어 동태를 살피던 잭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까만 머리칼이었다.

아, 설마. 안 돼.

잭의 숨이 턱 막혔다. 고작 좀비 따위와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큰 두려움이 숨통을 막아왔다. 피떡이 된 좀비 대가리에 가려지는 바람에 동그란 뒤통수가 자꾸 시야에서 사라졌다.

굳었던 잭의 몸이 움직였다. 좀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 당황한 얼굴이 문득 뒤를 돌아보는 것 같다가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허니. 괜찮은 거지?

허니가 들어간 본관 뒤 철문은 이미 좀비 바리케이드가 견고히 벽을 쌓는 중이었다. 잭이 이를 악물고 본관의 주 출입구로 향했다. 이제 막 창문을 타고 나온 조엘은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잭의 뒤를 따랐다. 왜 저러지?



허니를 쫓는 좀비와 좀비를 쫓는 잭, 그리고 영문도 모르고 잭을 따르던 조엘.

이상한 기차놀이는 방향을 꺾는 잭을 보고 번뜩 정신을 차린 조엘이 학교 밖으로 향할 때 끊어질 뻔하긴 했지만, 다행히 운동장에 있던 좀비 무리가 그를 무사히 원래 대열에 합류시켜 준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29.

“그래서, 사람 보고 무작정 여기까지 따라오신 거라고요?”

“...네. 어, 그냥 반가워서. 사람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허니쌤과 보건 쌤 사이 이상한 기류를 읽어내지 못한 건 칼럼 정도밖에 없었다. 그냥 선생님들끼리 조금 친한 것보다는 조금 더 묘한 뭔가가 분명히 있는데. 두 분 다 학생 앞에서는 티 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너무 명확해 보여서 아무도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교실 전체에 어색한 분위기가 퍼졌다고 해서 바깥 사정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근근이 들리는 괴성에 허니쌤이 일단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살폈다. 어차피 애 보는 건 보건쌤이 나보단 잘할 테니까.

저 아래에 내려가 있을 때보단 그 위압감이 덜 하긴 했지만, 어쨌든 학교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라면 차 타고 탈출하는 것도 힘들 것 같고... 그런데 진짜 저것들이 다 어디에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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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동장을 돌아다니는 좀비만 해도 벌써 50마리 정도였다.

학교에 분명히 뭐가 있으니까 저것들이 단체로 정문에 몰려온 걸 텐데... 늦은 밤에 학교에서 소리 날 만한 게 뭐가 있다고 굳이 여길? 그것도 어림잡아 100마리 정도가.

...애초에 봉쇄된 수도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퍼진 건 맞는 건가? 수도와 이 촌구석은 차로 가도 꼬박 30시간 정도를 운전해야 했다. 저 걸음걸이로는 600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일 텐데 이 땅덩어리 큰 나라에서, 잠복기도 없는 바이러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저, 선생님.”

“어, 어? 어, 리지. 왜 그래?”



손가락 끝을 감싸는 온기에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허니쌤의 생각도 뚝 끊겼다. 돌아본 곳에는 시커멓게 몰려 앉아 소곤거리며 좀비의 특성에 관해 토론하는 남자 무리와 허니쌤만 쳐다보고 있는 리지가 있었다.

아, 불편해서 여기로 왔나. 낡은 사상에 찌들어 언제나 남녀가 유별한 허니쌤이 리지를 챙겨 교실 안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학생들이 제멋대로 열어둔 커튼을 다시 치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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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 집에 못가요...?”



허니쌤의 손이 우뚝 멈췄다. 슬슬 목소리가 커지던 방구석 토론장의 대화도 같이 멎었다. 눈치 없는 좀비 떼도 마침 입을 다물어줘서, 허니쌤은 제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부디 학생들에겐 들리지 않았길 간절히 바랐다.



“아니야. 쌤이랑 집 가기로 했잖아. 이제 선생님 3명이나 있는데 뭐가 무서워.”



급조되어 삐뚜름한 웃음 따위를 보여봤자 역효과만 날 게 뻔했다. 덕분에 여전히 뒤돌아 있는 허니쌤의 목소리만은 평온하기 그지없어서,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그 담담함에 마음 한구석을 슬그머니 의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허니쌤은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커튼을 탁탁 털어 마저 정리하고 나서야 빙글 돌아섰다.



“그렇죠, 선생님들?”



꾹꾹 눌러 내리는 악센트에 담긴 건 부담감과 압박감이었다. 너희도 애들 달래는 데 협조해라- 라는 속뜻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 잭과 조엘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선생이라는 직위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허니쌤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피 묻은 스패너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학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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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학교 x 내가 그린 거고 이런 학교 있는 지 모름 그냥 동선 짜다 보니 나온 상상 속 학교임... 학교가 이래도 되는 건지도 모름 대충 참고만 해줘 허접해서 ㅁㅇ


교주너붕붕으로 좀아포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허니쌤

다른 어른들 등장! 그리구 좀비도 100마리 정도 더 등장!
계속 좀비 이야기만 많이 해서 ㅁㅇ... 그치만 좀비조아

그리고 짤은 내 기준 제일 덜 무서운 걸로 넣었는데 많이 혐짤이면 알려주면 고맙겠조



https://hygall.com/510611843



일단은
빌슼너붕붕 칼럼너붕붕 해숙너붕붕 토모너붕붕 리지너붕붕 리지올슨너붕붕 로우든너붕붕 조엘너붕붕 + ???너붕붕 X 4
2022.11.26 04: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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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땐 몰랐는데 마을 표시 뭔가 피자국(?) 같아 보여서 마을로 가도ㅠㅠㅠ 좀비가 더 많을까봐 걱정이다ㅠ 센세 재업은 사랑입니다 너무 재미있어요ㅠ
[Code: 4c74]
2022.11.26 08: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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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존잼 ㅠㅠㅠㅠㅠㅠㅠㅠ 다른 어른들 등장 개좋아... 억나더까지 줘요 ㅜㅜㅠㅠㅠㅠㅠ
[Code: 8c2b]
2022.11.26 13: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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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ㅜㅜㅜㅜㅜㅜㅜㅜ센세 너무 좋아.. 진짜 하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cbe4]
2022.11.26 13: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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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화보는거같아...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e65]
2022.11.26 23:04
ㅇㅇ
모바일
와 학교지도까지 미친.. 우연히 밟았는데 바로 다 읽었다 존잼
[Code: 2ea6]
2022.11.26 23: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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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존잼 ㅜ 허니쌤 파이팅 ...
[Code: e2a0]
2022.11.27 0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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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잭이랑 조엘까지...맛있다
[Code: e015]
2022.11.27 04: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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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아 센세 사랑해ㅠㅠㅜ
[Code: b34c]
2022.11.27 05: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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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센세 글만 기다랴 ㅜㅜㅜㅜㅜ 허니랑 로우든 떡밥도 넘 기대된다…
[Code: b865]
2022.11.27 19: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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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존잼이야 내가 다 쫄린다
[Code: 948e]
2022.11.30 0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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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스쿨 맵까지 그린 센세의 정성 가득한 글을 읽게 돼서 너무 기뻐 잘 읽었어 센세!!!!! 다음 편도 기다릴게
[Code: 8a50]
2022.12.20 07: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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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나더가 나왔었다니!!!!!
[Code: 225d]
2022.12.20 07: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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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너무 많다 어케 빠져나가냐 허니 든든한 선생이다
[Code: 225d]
2023.01.17 18: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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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쌤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피 묻은 스패너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허니는강하구나
[Code: debf]
2023.03.23 09: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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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대존잼!!!!!!!!센세 진짜 재밌어요!!!!!
[Code: 96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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