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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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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무선이 혼자 연화오에 방문했음. 원래는 망기와 아이들이 꼭 동행하는데 망기에게는 급히 처리해야 할 선독의 수많은 일들이, 아이들은 고소 남씨 직계손으로서 참석해야 하는 가문의 중요한 행사 웅앵웅이 겹쳐서 함께 가지 못하게 됨.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망기와 아이들 뒤로 하고, 무선이는 마중 온 연화오 부사 따라서 팔랑팔랑 손 흔들며 발걸음 가볍게 출발함


그날 저녁, 언제나 일정 시간만 되면 칼같이 정확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던 선독이 저녁 식사 시간을 넘긴 후에도 늦게까지 집무실을 지킴. 무선이가 운심부지처 비운 거 몰랐던 수사들도 그거 보고 아 선독 부인이 출타 중이시구나 알아차렸겠지. 물론 업무가 많기도 했음


정실에 돌아와서도 해시가 되어갈 때까지 별로 급하지 않은 이런저런 편지나 서류들을 살펴보던 망기는 문득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음.


- 부친.... 부치인.....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문 열면 베개 끌어안은 사윤이가 문 앞에 있다가 냉큼 방 안으로 들어옴. 사윤이 따로 전각을 받아 제 처소를 갖게 된지도 벌써 몇 년이었음. 새삼스레 베개를 갖고 정실까지 걸음한 사윤에게 무슨 일이냐 한 마디 정도는 물을 법도 한데, 망기는 별 말없이 문을 닫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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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 심심하실까 봐 온 거예요.


큰 선심쓰듯 말하면서 사윤이 부친모친 침상 위에 제 베개 당당하게 내려놓음. 그리고 서탁 앞에 돌아가 앉는 망기의 맞은 편에 저도 턱을 괴고 앉아 제 부친이 하는 일을 구경했음. 잠시 그러고 있던 사윤이 서류 끄트머리를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톡톡 침. 부친의 시선이 저를 향하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궁금하다는 듯 물음.


- 야렵 일지 검토해주시는 거예요? 
- 음.


별다른 말이 없어도 그런 부친에게 익숙한 사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종알종알 참견을 했음.


- 이 정도는 이제 형장들이 해도 되지 않아요? 부친은 다른 일도 많으신데...
- 사추와 경의는 **산에 갔단다.


아~ 사윤이 고개를 끄덕였음. 여귀가 나타났는데 근처 작은 세가에서 해결하지 못해 꽤 애를 먹고 있다면서 도움을 청해온 것을 사윤이도 알고 있었음. 잠시 간격을 두고 망기가 한 마디 덧붙였음. 


- 이번만이다. 


평소에 소년조들 야렵 일지 정도는 사추와 경의 형장이 검토하지만 이번에는 의뢰를 받아 떠나는 바람에 바쁘니 도와주시는 거라는 말뜻을 알아서 잘 해석한 사윤이 생글생글 웃었음. 모친까지 운심부지처를 비우셨으니 시간도 보내실 겸, 이라는 속뜻까지. 
다른 사람들 기준에는 짧디짧은 덧붙임이겠으나, 사윤은 과묵한 부친이 언제나 저희 형제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말을 하려 노력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부친이 좋았음.


사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년조들의 일지에 첨삭까지 마친 망기가 서탁 한 가득 올려두었던 두루마리들을 정리했음. 얼른 일어선 사윤이 침상으로 가 이불과 베개를 잘 정리하고는 부친보다 먼저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누웠음. 어른보다 먼저 자리에 누운 것으로 버릇없다 걱정들을 거란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음. 뭐.... 숙조부님이셨다면 한 시진에 걸친 훈계가 이어졌겠으나 제가 아실에 가서 누울 일은 없으니까....


사윤이 벗어놓은 옷까지 한켠에 잘 개어놓고 돌아선 망기는, 자리에 누워 얼른 오시라고 손을 붕붕 흔들고 있는 아들을 보고 보일듯말듯 입꼬리를 올렸음. 저를 한껏 예뻐하는 표정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사윤이 히히 웃으며 옆자리를 탕탕 쳤음.










잠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평소와 달리 선잠이 들어 순간순간 정신이 깨었다 말았다 하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 망기가 눈을 번쩍 떴음. 짙은 어둠에 잠긴 방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음. 위험도 삿된 기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평생 지내온 공간이 왠지 낯설었음.


잠에서는 깨었으되 아직 현실로 명료하게 돌아오지 않은 정신은, 품 안이 텅 비어있음을 선명히 느끼고 있었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음. 긴 세월 홀로 눈을 뜨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했으니까. 그런데 왜 이리 허전하고 불안한가. 아니... 이게 맞나? 홀로인 것이? 


위영..... 


가슴에 사무치는 이름이 그의 심장을 묵직하게 내리눌렀음. 


모두 꿈이었나.... 
위영이.......... 위영이 돌아와 제 곁에 머물러 주고.... 저를 사랑한다 속삭여주고..... 목숨보다 귀한 아이들을 선사해 주고.....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완벽해서 말 그대로 "꿈만 같았고"..... 꿈 속에서조차 순간순간을 의심했던 그런 행복한 꿈.


여전히 위영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고 매일 밤의 문령에는 답조차 없었음. 문령. 망기는 갑자기 떠오른 단어에 가슴이 철렁했음. 그건 매일의 당연한 일과였음.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나. 기억을 되짚던 망기가 벌떡 몸을 일으켰음. 내가 잊고 있었던가? 어떻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위무선을 향한 맹목적이고도 절대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망기가 다급하게 침상 밑으로 내려서려는데 턱. 뒤에서 허리를 휘감아 오는 손이 있었음. 혼자인 줄 알았던 공간에, 같은 침상 위에 누군가 있었음. 


망기는 뒤에서 잡아끄는 힘에 얼결에 도로 몸을 눕혔음. 예상치못한 상황에도 이상하게 피진으로 손이 가지는 않았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배 위에 올려진 손이 이내 토닥토닥 망기를 도닥이기 시작했음.


- 괜찮아요.... 모친 연화오..... 연화오 어른들 기일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조용히 웅얼거리는 음성에 잠이 가득 묻어났음. 그가 아는 목소리였음.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그에 반응하듯 한 뼘 쯤 떨어져 자던 사윤이 바싹 망기에게로 붙으며 한쪽 다리를 망기 몸에 올리고 부친을 끌어안았음. 

..........아윤.


- '위영' 돌아왔어요.... 세 밤만 자면 다시 부친에게 오실 거예요.... 부친 두고 아무데도 안 가요..... 아니... 연화오에 가긴 가셨는데에......


머리꼭지가 눈높이에 올 정도로 큰 아들이 온 몸을 이용해 끌어안으니 답답할만도한데, 오히려 쿵쾅이던 심장과 거칠어지던 호흡이 안정을 되찾았음. 그리고 조금 민망하게도 망기는....


- 괜찮아요..... 모친도, 저도, 운이도 아무 일 없어요.... 그니까 우리 부친 자장자장.....


아들이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말을 들으며 스르륵 도로 잠이 들었음. 깊고 편안하게. 그리고 묘시가 되기 전까지 다시 깨지 않았음.










사윤은 무선이 없을 때의 망기 모습을 두 번 목격했음. 


처음은 다섯 살 무렵. 한밤중에 자다 깬 사윤이 때문에 덩달아 잠에서 깬 무선이가 아들 다시 재우느라 정실 마당으로 업고 나왔던 어느 봄날의 밤.


무선이는 망기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배려였는데, 품 안의 도려와 옆 자리의 아들 둘 다 없어진 거 느낀 망기가 퍼뜩 잠에서 깨어서는 혼비백산해서 뛰어나왔었겠지. 새하얗게 질려서 뛰어나온 망기 본 무선이는 잠깐 놀랐었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게 웃었었음. 


- 아이, 남잠. 남이공자님. 이젠 나 없이 잠도 못 자는 거야?


잘생긴 부친의 얼굴이 새하얬음. 겨울 눈처럼 너무너무 하얗게 변한 얼굴이 무서울 정도라서 잠깐 놀랐던 사윤은, 곧 부친에게 짧은 팔을 내밀었음.  그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던 기분이 기억남. 부친을 꼭 안아주고 싶었었음. 제가 팔을 내밀자마자 저를 받아 안은 부친이 숨이 막힐 만큼 저를 꼬옥 끌어안았음. 맞닿은 부친의 가슴에서는 쿵쾅쿵쾅 북소리가 났었음. 한참 동안.


두 번째는 열두 살 때였음. 자기 전각 따로 생긴 사윤이 이제 저도 어른이 된 듯한 뿌듯함을 만끽하던 무렵.  


아주 오랜만에 무선이가 망기 없이 홀로 사추, 경의들과 함께 야렵을 떠났던 날이었음. 사윤이 모친과 형장들을 따라가고 싶어 안달을 했으나, 허락받지 못했었음. 이거저것 많이 경험해 봐야 한다며 웬만하면 허락해 주었을 무선도 그때만큼은 위험하다고 딱 잘랐었음. 걱정스런 망기 표정과는 달리, 무선은 '남잠, 나를 못 믿어?' 라며 태평하기만 했었음. 


- 넉넉잡고 사흘이면 충분할 거야. 그리 멀지도 않은 마을이니까.
- 조심해.


짧은 한 마디에 모든 염려와 걱정이 묻어났음. 


그리고 그날 밤. 아무리 배추의 탈을 쓴 돼지라고 불린다고 해도 운심부지처의 아이답게 해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사윤은, 한밤중에 퍼뜩 잠에서 깨었음. 무슨 소리를 들은 거 같았음. 잠깐 잘못 들었나 했는데, 곧 아주 천천히 방문이 열렸음. 침입자? 사윤은 섣불리 소리를 지르거나 움직이는 대신, 도로 눈을 감았음.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만 뻗어 침상 곁의 패검을 이불 속으로 가져와 단단히 움켜쥐었음. 침입자가 무슨 행동을 취할까 온몸의 근육을 한껏 긴장시키고 기다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음에도 방 안은 고요하기만 했음. 뭐지? 슬쩍 실눈을 떴던 사윤은 안도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음.


- 부친!


침상 곁에 망기가 서 있었음. 


- 무슨 일이 있나요?


운심부지처에 무슨 일이 났나? 큰일인가? 그게 아니라면 자시도 훌쩍 넘었을 이 깊은 밤중에 부친이 잠도 주무시지 않고 제 처소까지 걸음하셨을 리 없었음. 걱정가득한 사윤의 물음에도 망기는 우뚝 서서 아들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기만 했음. 마치 제 눈 앞에 있는 것이 사윤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윤이 잡았던 검을 내려놓고 망기에게로 손을 뻗었음. 


- 부친.......?


손이 스치는 순간 움찔 놀란 듯 하던 손가락이 이내 있는 힘껏 사윤의 손을 움켜잡았음. 맞닿은 손이 차디찼음. 아플 만큼 세게 쥐어오는 악력에도 뭐라 묻지 못하고 사윤은 침상에 앉은 채 그저 부친만 올려다보았음. 놀랍게도 부친이 침의 차림인 것이 눈에 들어왔음. 어느 곳을 어찌 돌아다니셨는지 흰 옷자락이 엉망이었고 심지어 신도 없이 다니셨는지 흰 버선이 흙투성이였음. 수상한 자가 들어 한바탕 전투라도 치르고 오셨다 해도 믿을 지경인데, 부친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음. 


한 몸과도 같은 피진마저 잊으신 이런 부친을, 사윤은 알고 있었음. 평소라면 상상치도 못했을 낯선 모습인데도.... 처음이 아니었음. 어린 시절, 따스했던 봄밤. 희디흰 부친의 창백한 얼굴과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 숨 막힐 듯 저를 끌어안았던 절박한 팔이 사윤의 기억에 있었음.


사윤은 부친에게 잡혔던 손을 조심히 빼내었음. 제 손에서 빠져나가는 아들의 손에 망기가 흠칫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두 팔이 단단하게 망기의 허리에 둘러졌음. 부친의 배에 얼굴을 묻으며 꼭 끌어안은 사윤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었음.


- 제가 몰래 모친 따라갔을까 봐 걱정돼서 확인하러 오셨어요? 저 진짜 얌전하게 있었어요. 숙조부님께서 내주신 숙제도 자기 전에 다했는 걸요. 


깊게 내쉬는 숨소리와 함께 사윤의 머리를 익숙한 손길이 천천히 쓰다듬었음. 부친을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고 고개만 움직여 올려다 본 사윤은 부친이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은 걸 확인했음. 개구지게 웃으며 올려다보는 아들의 얼굴을 망기가 가만히 매만졌음. 


- 미안하다. 잠을 깨웠구나.
- 그럼 저 다시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세요.
- ............음.


망기의 대답을 들은 사윤이 냉큼 자리에 누워서는 부친의 손을 끌어다 제 가슴 위에 올려놓고 꼭 잡았음. 


- 저 잠들기 전에 가시면 안돼요.


약속대로 부친은 제가 다시 잠들 때까지 침상 한 켠에 앉아 제 손을 꼭 붙잡고 계셨음. 


아마도 묘시가 될 때까지.


4년 전 기억이었음. 그 때 사흘이 걸릴 것 같다던 모친은 다음 날 해시가 되기 전 돌아오셨었음. 남잠 외로울까 봐 얼른 처리하고 왔지~! 하고 웃던 모친의 목소리는 명랑하기만 했었음. 










이번에도 무선이는 일정 당겨서 이틀 만에 돌아옴.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서두르느냐는 강징의 타박에 '남잠 보고 싶어서 안 되겠어.'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거 같아도 자기가 곁에 없을 때 망기가 어떤 상태인지 무선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겠지. 발걸음 재촉하고 서둘러서 운심부지처 떠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새벽, 묘시도 되기 전에 도착함. 아직 산문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통행 옥패로 결계 통과해 들어온 무선이 정실의 문을 열었을 때, 저절로 피어오르는 행복한 미소를 숨길 수 없었겠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이 침상 위에 꼭 붙어 잠이 들어 있었거든. 형장이 전날 저녁 정실에서 잤다는 걸 알고 망설이다 찾아온 빙운이까지 함께. 












장꾸지만 속깊은 장남 사윤이가 취향

두 번째 저 일이 있은 후 사윤이는 사일지정을 비롯한 망기와 무선의 역사를 찾아보고, 부친의 16년 기다림과 모친의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해했겠지. 
망기는 사윤이가 자기 트라우마를 안다는 걸 알고 다소 겸연쩍어 했겠지만, 들킨 것을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 사윤이가 기억하는 그 밤에 망기는 무선이 찾아 온 운심부지처를 헤맸었음. 무선이가 돌아온 게 맞는지 자기 기억을 확신할 수 없어서. 사윤이 처소에 도착했을 때도 사윤이가 존재하는 게 맞는지조차 믿을 수 없어서 방문을 여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웠었음. 사윤이가 꽉 안아주었을 때 비로소 사윤이 존재와 무선이가 돌아와 제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을 거임.


글 내용이 그런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단단한 고소 패밀리 완전 사랑함
+ 막내 소소는 더 나중에 사윤수애네 해아랑 같이 세상에 오는 게 내 안의 오피셜




시간 상 몇년 후 → 내가 사랑하는 고소 패밀리





망기무선 고소패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