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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5 16:17
고문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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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는 혼란스러웠다.

납치당한 것은 분명했다. 그 점은 딱히 혼란스럽지 않았다. 미션을 하던 중이었고, 포인트에 선 스티브를 커버하고 있었다. 큰 차질 없이 진입하던 중 어느 한순간 의식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머리에 마포가 씌워진 채 어딘가 매달려 있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넓게 벌려 묶은 결박구는 천장에 매달린 듯했다.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딱히 몸에 닿는 물체나 벽이 없고 까치발을 해야 발 끝이 겨우 바닥에 닿았다. 두 발목 역시 손목과 같은 재질로 결박되어 바닥에 연결되었다. 온몸의 하중이 손목에 지워져 감각이 얼얼했다. 왼쪽 메탈암 출력을 최고치로 올려봐도 구속이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일반인을 묶어두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다. 이정도 준비를 했다면 버키, 또는 근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사람을 타겟으로 삼았다고 봐야 한다. 

마포 사이로 비쳐오는 빛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선 어두운 곳이다. 차갑고 습한 공기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미뤄 보아 환풍시설이 없거나 가동되지 않는 지하실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버키가 알 수 없는 것은 납치범이 3시간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납치범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하이드라이다. 굳이 자신을 다시 잡아온 걸 봐서는 윈터솔져 프로젝트 잔당들이겠지. 그렇다면 바로 기억을 삭제하든, 냉각을 시키든, 재교육을 시키든 바빴을 텐데, 뭘 기다리는 걸까. 버키가 기억하는 하이드라의 작업 패턴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만약 하이드라가 아니라면 DPWSA(Death Penalty for Winter Soldier Association: 윈터솔져 사형 협회)일 수 있다. 버키의 사면과 복권을 반대하는 사람들. 윈터솔져로 인해 고통을 입고 피해를 당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버키의 죄가 고작 몇 개월의 재판과 정치협상을 통해 사라진 것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마가 버젓이 숨을 쉬고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윈터솔져가 지은 죄의 크기만큼 값을 치르길 원하는 사람들. 

버키는 상상했다. 지금 자신 머리 위에 씌워진 마포가 벗겨지고 납치범이 DPWSA로 밝혀지는 순간을. 피해자들이 윈터솔저의 죄를 낱낱이 읊어주며 왜 자신이 고통받다가 죽어야 하는지 말해주는 장면을. 버키는 간절히 바랐다.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버전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합당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납치범은 DPWSA가 아닐 것이다. 버키는 그 점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했다.  만약 정말 DPWSA라면 버키를 잡아 두고 이렇게 몇 시간째 방치할 수가 없다. 그 집단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버키의 고통과 사형이기에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버릴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 정말로 많지 않을테다. 납치건 도주건 간에 버키가 사라진 경우 국방부와 CIA, 백악관까지 단시간에 보고된다. 당장 추적팀이 꾸려질 것이며 스왓팀이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까지 시간은 6시간 안쪽이라 봐야 한다. 사실 스왓팀 보다 스티브가 먼저 올 가능성이 더 높지만.

스티브. 

마음 한편이 찡하고 울렸다. 걱정을 하고 있겠지. 아주 많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모두 뒤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날처럼. 

 

스티브의 브루클린 아파트에 함께 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도통 잠들 수 없던 새벽, 근처 24시 보데가에 우유를 사러 잠시 나갔다. 냉장제품 코너에 서서 60년 사이 엄청나게 늘어난 우유의 다양성에 당황하고 있을 때, 스티브가 가게 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왔다. 1월의 새벽 그 추운 날씨에 스티브는 맨발과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고, 부여잡듯 끌어안던 품에선 찬바람 냄새가 났다. 빨갛게 언 코끝을 어깨에 묻은 스티브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듯했다. 

‘다행이다, 버키.’

그때 알게 되었다. 넌 이게 걱정이었구나. 내가 어느 날 기억을 되찾아 널 찾아갔듯, 어느 날 다시 기억을 잃고 에셋이 될까 봐. 어느 날 말도 없이 훌쩍 사라질까 봐. 그게 두려웠구나.

예전엔 내가 널 걱정했는데. 네가 또 감기에 걸릴까, 앓아누울까, 아니면 어디서 또 그 정의감을 참지 못하고 싸움에 휘말릴까, 너의 그 올곧은 성정이 세상에 짓밟힐까. 그때 스티브 로저스는 세상만 걱정하면 됐었는데, 지금 캡틴 아메리카는 세상에 더해 나까지 걱정해야 하는구나.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고결한 캡틴 아메리카의 유일한 오점, 윈터솔져. 그 오점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캡틴 아메리카. 

내가 뭐라고. 
어쩌면, 내가 이런 식으로 사라진다면, 스티브에겐 나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훨씬 좋은 일이다.

버키가 사라진다면 스티브는 최근 그가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러시아 용병으로 일했던 조국의 배신자를 보호하는 캡틴 아메리카. 그에 대한 대중의 의구심 어린 시선. 매번 인터뷰마다 받게 되는 질문들. 

이전 쉴드 조직의 붕괴 이후 스티브가 추진하는 쉴드 재건 사업도 버키 때문에 난항에 처했음을 알고 있었다. 조직내 하이드라로 인해 붕괴된 쉴드에서 전직 하이드라인 버키가 다시 활동하는 것이 정부의 온갖 위원회에서 용인 될 리가 없다. 스티브가 사실은 비밀 하이드라 요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된다. 윈터솔져의 범행과 사면, 관리에 대한 청문회나 민사소송마다 불려 가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증인석에 앉아 둘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친구가 확실한지, 친구가 아닌 다른 관계는 아닌지 따위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대답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럴 땐 스티브의 타협 없는 성질머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의 어벤저스 친구들도, 새로운 쉴드도, 온 세상이 말렸지만 스티브는 버키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 정도면 포기 해도 돼, 스티브. 넌 최선을 다했어. 난 네가 구원해야 할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냐.’ 하는 말이 늘 입술 앞까지 간질간질하게 머물다 간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그 말을 한들 들어먹을 녀석은 아니지만. 

넌 늘 그랬으니까. 내가 뭐라든, 세상이 뭐라든 자기가 마음먹은 것을 끝까지 하는 녀석이니까. 그땐 그 점이 존경스러웠다. 코피를 뒤집어쓰고 천식으로 쌕쌕거리는 숨을 내쉬면서도 동네 건달 무리에게 주먹을 올리는 스티브의 모습에 어떨 때에는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비루한 현실과 나약한 몸을 전복시키는 강렬하고 곧은 그 정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비천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면 모든게 그때부터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때 너와 친구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때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버키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7시 방향, 두 명.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나며 주변이 밝아졌다.

그들이 걸어와 양쪽에 섰다. 
왼쪽에 선 자는 문으로부터 다섯 걸음. 오른쪽에 선 자는 일곱 걸음을 걸었다.
보폭과 발걸음의 무게로 미루어 보아 성인 남성. 희미하게 느껴지는 건파우더 냄새. 사용한 지 얼마되지 않은 화기이다.

마포가 벗겨졌다. 안구에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에 버키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미간을 찡그렸다.

콘크리트 마감 방. 창문도 없는 방을 형광등이 황량히 밝히고 있었다. 도주 경로는 아까 그들이 들어왔던 7시 방향 철제문 단 하나. 자신 앞에는 벽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거대한 거울이 있다. 거울에 비춰 보이는 자신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방 한가운데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납치되기 전 미션에서 장착하고 있었던 무기와 미션웨어는 보이지 않고 안에 간편히 입었던 티셔츠와 바지만 걸쳐져 있다. 거울의 크기나 반사율로 보아 거울 반대편 방에서 이쪽을 보는 반거울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취조실, 또는 고문실.

양쪽에 선 두 남자는 검은색 점프수트를 입고 AK-47 소총을 버키에게 겨누고 있었다. 오른쪽 허리춤에 찬 M17 핸드건, 왼쪽 발목에 매어진 나이프까지 모두 정확히 똑같은 기종으로 같은 위치에 무장했다. 무장 단체가 아니고선 이렇게까지 맞출 수 없다. 거기다 같은 군용 워커에 장갑, 눈만 보이는 스키마스크까지. 신분을 가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 
죽일 계획이 아닌가?

곧 죽을 인질이 납치범의 신분을 알든 말든 무슨 문제란 말인가. 목격자가 생기는 길거리도 아니고. 여기는 CCTV도 없는 밀실이다. DPWSA라면 들어오자마자 정체를 밝혔을 것이다. 우리는 너로 인해 수많은 세월을 고통받은 누구누구라고, 네가 나의 가족 누구를 죽였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널 죽이겠다고. 버키가 이제껏 받은 50개가 넘는 협박편지는 보통 그런 식으로 시작했었다. 

하이드라일리는 더더욱 없어졌다. 저들의 복장이나 무기, 진행 방식이 버키가 아는 하이드라의 업무처리와 상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하이드라는 버키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세뇌시키는 기술, 그리고 트리거워드를 가지고 있다. 굳이 이렇게 결박하거나 얼굴을 가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지? 무엇을 원하지?


“원하는 게 뭐지?” 


물었지만 그들은 반응이 없다. 인이어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들 귀에 꽂힌 소형 이어폰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귀를 세워보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지령이 끝났는지 그들이 소총을 놓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쪽 남자는 방 뒤편에 있던 책상으로 가 무언가를 챙겼다. 손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이는 사이 왼쪽 남자가 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다. 그의 왼손은 나이프를 들고 있다.

총을 두고 나이프를 든 까닭이 무엇일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옷 속으로 들어온 나이프에 티셔츠가 찢겨 나갔다. 칼날이 옷을 찢으며 오른쪽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딱히 신경 쓸 만큼의 고통이 없는걸 보니 얕은 열상인 듯하다. 일자로 맺힌 피가 거울에 보인다.

버키는 거울을 통해 상의가 벗겨진 채 매달린 자신의 모습을 봤다. 숨이 가빠졌다. 폐가 물에 잠긴 것처럼 숨을 들이마쉬기가 어려웠고 잊으려 했던 기억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여기와 비슷했던 콘크리트 방. 자비 없는 형광등 아래 옷이 벗겨지고 명령 몇 마디에 사지가 묶였던 시간들. 머리로는 이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하면서도 자극에 몸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날들.

산소가 모자라다. 지금 3분 45초째 무호흡 상태이다. 깨어나야 한다. 이것은 기억이다. 현실이 아니다. 

버키는 숨을 골라쉬었다.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쉰다. 괜찮다.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 난 바지를 입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고문을 했으면 좋겠다. 

되뇌었다. 차라리 때리길. 차라리 죽여주길. 

다시 숨을 쉰다.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고.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순간,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등뼈를 관통해 뇌에 꽂혔다. 갑작스런 자극에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오려는 걸 이를 악물어 막았다. 패닉어택에 주의를 빼앗겨 오른쪽 남자가 들고 있는 짧은 채찍을 보지 못했다.

남자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휙 하고 공중으로 호선을 그리며 올랐던 채찍은 버키의 가슴과 복부에 날카로운 대각선을 그리며 마찰했다. 신경이 불에 타올랐다. 화상같은 아픔이 몸을 훑고 지나가며 정신을 흔든다. 단 두 번만에 숨이 가빠지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이건 이상하다. 버키는 기형적으로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전기충격과 고문, 온갖 전투로 웬만한 아픔은 인지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아프다면 이건 단순한 채찍이 아니다. 전기 충격일까? 아니다. 버키는 전기고문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건 다르다. 채찍에 맞은 부분이 곧장 뇌로 직행하는 느낌. 신경 공격 기법인가? 통각을 증폭시키는 약을 발랐거나 최소한의 접촉으로 고통 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라거나. 그렇다면 일반인을 상대로 사용하려 만든 고문장치는 아니다. 세럼 없이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보통 정신을 잃거나 심장마비로 사망할 테니. 

강력한 고통에도 심정지가 오지 않을 사람을 겨냥하고 만든 고문장치. 목적성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이 장치의 대상이 스티브가 아닌 나라서. 


"무엇을 원하지?"


다시 물었다. 두 남자를 번갈아 보았지만 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죽이지도 않으면서 요구사항도 없다. 단순히 고통받기를 원하는가? 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거울 반대쪽에 있을까? 

채찍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깨물었다. 내리치는 채찍에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환각이 들었다.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한 시간은 넘길 수 있을까. 한 시간까지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몇 분? 아니, 몇 번으로 세는 것이 적합할지도. 이것으로 셋.

채찍을 든 오른쪽 남자의 눈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가 기계처럼 오른손을 휘둘렀다. 


넷.
형광등이 점멸했다. 아니, 형광등이 아니라 내 정신이 가물거리는 중이다.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다섯.
비릿한 피맛이 난다. 나의 상상인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입안을 씹은 것 같기도 하다.


여섯.
숨을 골라 쉬었다. 하이드라의 고문실에선 얼마 만에 빌었었지? 세 달? 삼 년? 아직 여섯 대 밖에 맞지 않았다. 시간으로는 3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사이 약해진 걸까. 방금 전만 해도 차라리 때리길 원했던 자신이 아닌가.


일곱.
이명이 들린다. 내가 낸 소리인가? 내가 소리를 질렀던가? 파도처럼 몰려오는 고통에 집중이 힘들다. 이럴 바엔 손가락을 몇 개 잘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쪽이 과다 출혈로 빨리 죽을 텐데. 버키는 다시 올 매질을 기다리며 숨을 참았다.


 
조용하다.
여덟 번째는 오지 않았다. 채찍을 든 남자는 인터콤을 듣는 듯 하더니 바로 섰다. 

뭐지?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하고 일곱대로 끝내지는 않을텐데. 버키는 자꾸 흐려지는 시야의 초점을 잡으려 미간을 찌푸렸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상체. 피부가 타들어간 것처럼 남은 채찍 자국. 긴 회초리 모양의 인두로 지진 것처럼 움푹 파인 상처에서 피가 스며나왔다. 다시 올려다 본 자신의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버키 반즈. 숨 쉬어.
스스로에게 말했다. 
숨 쉬고 집중해.



그때, 거울 반대쪽에 서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너편 방이 흐릿하게 보인다.

처음엔 인영만 보였다. 서있는 사람이 셋, 이쪽을 정면으로 보고 의자에 앉은 사람이 하나. 조금 더 선명해진다. 서있는 자들은 모두 무장을 했고 총 끝이 앉은 이를 향했다. 그리고 앉은 자는,

숨이 멎었다.


스티브. 


의자에 결박되어 앉아 있는 스티브. 

몸싸움이 있었는지 수트 군데군데가 찢어지고 상처 난 곳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고문을 당한것 같지는 않다. 채찍 자국도 없고, 손가락도 다 그대로 있고. 스팁이 묶여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그렇게 안심이 되자 나머지가 버키의 눈에 들어왔다.

스티브의 씨근대는 호흡. 
상기된 얼굴. 
충혈된 눈. 
그리고 나라를 잃은 듯 비통한 눈동자. 



시선이 마주쳤다.

 

아, 이거였구나. 
한탄과도 같은 날숨이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스팁의 얼굴이 곧 울 것처럼 일그러진다. 



버키는 눈을 감았다.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나 때문이다. 결함 없는 사내의 유일한 약점. 견고히 빚어진 캡틴 아메리카의 신념에 난 흠결. 

버키가 돌아온 후 스팁이 대외적으로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납치범들이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중이 아는 캡틴 아메리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 캡틴의 기존 도덕관에 부합되지 않은 일들을 했으니까. 러시아 스파이를 사면시키기 위해 증언하고, 그 연쇄살인범을 변호하고, 그 하이드라 용병을 본인 집에 데려다 재웠으니까. 버키를 이용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스팁이 하도록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겠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틀렸다. 스팁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스팁이 그런 일을 했던 이유는 스팁 본인이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버키 반즈가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아주 특별한 친구여서가 아니다. 반즈 병장은 전쟁 포로이고, 세뇌를 당하여 의사에 반해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스팁 본인이 믿었기 때문이다. 버키의 자리에 덤덤이나 가르니에가 있었어도 스팁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버키가 아는 스팁은 그랬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사람. 온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신념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사람. 납치범들이 스팁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얻지 못할 것이다. 스팁은 다른 이의 압력에 무릎을 굽힐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버키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버키는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눈이 마주친 스팁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지 마. 네가 내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어떻게 하면 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버키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입을 열자 목소리가 갈라지며 나왔다. 스팁의 눈이 버키의 입술에 집중했다.

“스티브,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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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버키 
 
2022.01.15 17: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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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 ㅠㅠㅠㅠ 안돼 센세 이거 끝 아니죠 어나더 있는 거죠 그쵸
누가 버키를 저렇게 고문하는 거지? 왜지? 했는데 반대편에 스티브가 보고 있는 거 보고 찌찌터짐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ed4]
2022.01.15 17: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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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개쉐끼들아 팁버 개로피지말라고ㅠㅠㅠㅠㅠㅠ
스팁 ㅈㄴ 가슴 아프겠네 어떡해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 스팁이 다 뿌셔뿌셔하고 버키 구해내는 거 어나더에 나오는 거지? 그치? 센세?
[Code: 5ed4]
2022.01.15 17: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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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나더 없음 버키는 영원히 저 고문 당하고 있는 거라고ㅠㅠ 센세 얼른 어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ed4]
2022.01.15 17: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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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센세 이대로 끝은 아니겠지 아니야 버키의 착각을 깨부시는 스티브까지 보여주실거져 ㅜㅜㅜㅜㅜㅜㅜ하몰입감쩔어내센세사랑해 도라와ㅠㅠㅜㅜㅜㅜㅜㅜㅠ
[Code: f3f7]
2022.01.15 18:08
ㅇㅇ
선생님... 너무 사랑해요 이 글을 내 경전으로 삼고싶어 진짜 좋은 부분이 셀수도 없이 많은데 지금 너무 행복해서 어떻게 해야 될줄 모르겠어가지고 잠깐 삼도천 건넜다가 올게요
[Code: 774c]
2022.01.15 18:21
ㅇㅇ
센세 진짜... 천재만재라는 게 이런 걸까? 어떻게 글을 이렇게 잘 쓰지 눈에 글자를 담자마자 상황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몰입감.. 미쳤어요 그냥 미쳤어요 센세.. 글고 DPWSA 설정 맘 아픈데 존나 현실적이고 그걸 대하는 버키 심리가 ㅠㅠㅠㅠㅠㅠㅠ 현눈난다 버키가 밤중에 우유사러 간 날 일화는 또 어떻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여기 진짜... 너무 아릿한데 좋아요 절박한 스티브도 그 스티브의 마음을 여과없이 느끼는 버키도.. 찬바람 냄새랑 빨개진 코끝 그리고 전해지는 걱정과 거기서 버키가 느끼는 감정들이 ㅠㅠㅠㅠㅠ
[Code: 774c]
2022.01.15 18:23
ㅇㅇ
'비루한 현실과 나약한 몸을 전복시키는 강렬하고 곧은 그 정신.' 여기 진짜 내가 스팁한테 맨날 치이는 부분이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버키가 스팁을 너무 사랑하면서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완전 나개똥비 헤드캐논인데.... 아악 센세....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걸 누군가의 정교한 글로 보니까 진짜 너무 좋아서 죽을거같아요
[Code: 774c]
2022.01.15 18:29
ㅇㅇ
고문 장면도 아..... 이거 좋다고 말해도 되나 싶지만 너무 좋아요; 센세 글을 너무 잘쓴 탓이다.. 나에겐 죄가 없다.. 버키 미안... 근데 강화인간한테도 힘든 고문이라 바로 스티브 생각나서 네가 대상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버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슴아픈데 너무좋아ㅠㅠㅠㅠㅠㅠ 읽으면서 무슨 목적인걸까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물음표 백만개 띄우면서 봤는데 시발... 스팁 보라고 버키 고문하는 걸줄이야................. 누군지 몰라도 지모 뺨치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스티브 보자마자 버키 생각이 고통에서 전부 스팁 걱정으로 몰려가버리는 거 ㅠㅠㅠ 으어아아아머ㅏ아어앙 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견고히 빚어진 캡틴 아메리카의 신념에 난 흠결' 이거 진짜 왜 이렇게 좋냐 크아아아아 자연발화중 센세 너무 사랑해요... 우리.. 우리.. 우리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ㅇ어.. 제발..
[Code: 774c]
2022.01.15 18: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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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 센세 진짜 제가 스팁은 정신적으로 버키는 육체적으로 개롭히는걸 좋아하는걸 어떻게 아시고ㅠㅠㅠㅠ 사랑해오
[Code: 6552]
2022.01.15 18: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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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진짜 센세.... 어나더 제발 제바렞바레잫제발
[Code: 354a]
2022.01.20 02: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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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ㅏ악!!!!!!!!!! 선생님 미쳤다.... 이게뭐야ㅠㅠㅠㅠㅠ 센세 나 지하실에서 기다려.....
[Code: 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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