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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03:00

행맨밥으로 회귀물 엣1오1투 같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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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회귀가 성공한 것이다.

밥은 방금까지 느꼈던 죽음의 감각을 희미하게 느낀다.
자신의 몸은 안개 낀 호수처럼 일렁이고 가슴을 짓누른 응어리가 식도를 통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불쾌함을 느낀다.

침대 헤드에 기댄 채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본다.

  월     일   요일 5시 50분.

제이크 “행맨” 세러신과 처음 대면하는 날.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해.’

밥은 죽기 전까지의 기억을 회상했다. 제이크는 어렴풋이 오메가의 정체를 알아냈다. 제이크는 밥에게 자신이 알아낸 알파와 오메가의 정체와 그것들의 관계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밥은 그것을 토대로 작전을 계획했다.

1. 알파는 회귀의 방아쇠가 있다.
2. 그러나 회귀 능력의 주체는 오메가이다.
3. 오메가는 외부에 노출되거나 죽임을 당한 적이 없다.
4. 제이크 세러신은 회귀의 방아쇠를 잃었다. 그러나 제이크 세러신의 피, 즉 알파의 피를 수혈받은 밥 플로이드는 아직 회귀의 방아쇠가 있을 것이다.
5. 회귀의 능력과 회귀의 방아쇠가 충돌하게 된다면 미지의 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6. 로버트 플로이드는 죽더라도 회귀할 것이다. 제이크 세러신이 그랬듯.

그는 모든 알파의 어머니이자 회귀의 주체인 오메가를 죽이기 위해 오메가가 잠들어 있는 해구 깊숙이 전투기와 함께 낙하했다. 그리고, 전투기에 장착되어 있던 모든 무기가 폭발하며 밥은 오메가와 함께 죽었다.

‘회귀의 주체인 오메가는 죽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지?’

‘아직 오메가가 죽지 않은 건가?’

‘그럼 제이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회귀가 가능한 건가?’

수많은 의문점을 노트에 하나하나씩 기록해 나가니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어느새 나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밥은, 황급히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근무복을 꿰어 입었다.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밥은 관사를 빠져나갔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질란테 소속 제이크 세러신 대위입니다. 그쪽이 내 윙맨입니까?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데.”

“...”

“...이봐, 플로이드 대위. 집중 안 하지?”

행맨은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히며 밥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행맨을 그의 동공에 인식시켰다.

“미안합니다, 아침부터 서류를 보느라.”

행맨은 눈을 찌푸리다 혀를 한번 차고는 시선을 옮겼다.

‘상대할 가치마저 못 느끼겠다는 건가.’

밥은 씁쓸히 시선을 내렸다. 아무래도 제이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말해줘야겠지, 듣지는 않겠지만.

“행맨, 오늘 출격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후 밥은 외계 생물체 무리에 관한 보고서와 오메가가 존재해 있을 해구를 조사하다 하루를 훌쩍 넘겼다. 스트레칭을 하며 느릿느릿 침대로 향하던 그는 심장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극심한 통증이었다.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져 가고, 이내 밥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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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감각은 다르지만,
회귀다.
분명히 시간을 되돌아갔다.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생경한 감각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회귀의 방아쇠는 밥이 아니었다.

‘제이크.’

제이크가 다시 회귀의 방아쇠가 되었다.

-

“…”

“제이크 세러신 대위.”

“뭐?”

밥은 행맨의 손목을 낚아채어 하드 덱 구석으로 끌고 갔다. 행맨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밥의 손에 이끌렸다.

“어디까지 기억해?”

“…너 정체가 뭐야.”

“외계 생명체 따위는 아니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 알파의 피를 맞은 것?”

“그걸 어떻게…”

“잊기 전에 빨리 대답해. 몇 번이나 회귀했어? 몇 번의 하루가 지나갔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한 번의 하루니까,”

“두 번. 내가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던 하루랑 느낄 수는 있었지만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꿈같았던 한 번의 하루.”

“첫 번째 하루는 뭐였어?”

“하드 덱에서 너와 만나고, 그래, 네가 출격하지 말라는 말을 했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조금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어. 그 이후로 같은 날이지만 또 다른 하루가 있었어. 하드 덱에서 너와 만나고, 출격을 나간 후, 외계 생명체 무리 사이로 떨어져서, 맨몸으로 버티다 은색의 피를 맞으며 죽었지.”

‘제이크가 말한 첫 번째 하루랑 똑같아. 어떻게 된 거지?’

“플로이드 대위, 이걸 어떻게 알아?”

“나도 경험했으니까. 그리고 과거의 네가 전부 알려줬어.”

행맨의 미간이 좁아졌다.

“젠장, 행맨. 처음엔 나도 황당무계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어째서 이 상황이 일어난 거지?”

“나도 지금 파악하고 있어. 방금 네가 말한 하루는 제이크가 말한 첫 번째 하루랑 똑같아.”

“제이크?”

“…미안, 과거의 너. 과거의 너는 알파의 능력, 그러니까 회귀의 방아쇠가 되어 아마(이 부분에서 밥은 확신하지 못한다는 듯 말을 늘렸다) 몇십 번의 회귀를 통해 여길 침략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알아냈어. 그래, 이것부터 설명해줘야겠네. 외계 생명체는 우리가 알고 있던 베타만이 아니라 알파, 오메가도 존재해. 베타는 네가 익히 알고 있듯 촉수로 우리를 공격하는 놈들이야. 알파는 베타와 외관이 비슷하지만 더욱 난폭하고, 죽으면 회귀의 방아쇠가 되어 오메가가 하루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도록 만들어. 마지막으로 오메가는 회귀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시간을 되돌리는 주체지.”

“그럼 왜 나는 이 모든 걸 잊은 거야?”

“내가 너의 회귀의 방아쇠를 받아서 오메가를 죽였어.”

“어떻게?”

“그건… 설명하기 복잡해. 일단 상황을 파악하자. 날 따라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작전실이 있어.”

“처음 하루에서, 네가 침대에 잠든 이후로 꿈, 혹은 회귀가 시작되었을 거야. 현실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과거가 너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겠지.”

행맨은 잠자코 밥의 설명을 경청했다.

“저번 과거에서 나는 오메가를 죽였어. 당연히 우리는 회귀가 끝날 줄 알았지.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귀는 반복되었어. 너는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회귀의 방아쇠가 되었고, 나는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능력이 사라졌어.”

“그럼 우리의 목적은 다시 어디에 있을지 모를 오메가를 죽여야 한다는 거네.”

“맞아. 하지만 자료를 뒤져 보니 과거에 오메가가 존재했던 위치에 지금은 오메가가 없어. 나름 자기도 살아보겠다고 발악하는 거지.”

“워우.”

“왜? 발악 맞잖아. 가끔 넌 나보다 감상적일 때가 있는 것 같아, 행맨.”

밥은 입술을 한번 삐죽이고는 지도에 집중했다.

“내가 조사한 해구는 태평양 대부분이야. 오메가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 만큼 얕지도, 신호가 알파들에게 닿지 못할 만큼 깊지도 않은 곳을 골라 서식했어. 비슷한 해저의 해구를 조사해봤지만, 오메가의 모습은 흔적조차 안 보였어.”

“그래서?”

“얄짤없이 다른 대양의 해구들을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지.”

“플로이드, 너 이러려고 나를!”

“행맨, 나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야. 순순히 협조해.”

밥은 눈을 아치 모양으로 휘며 쥐고 있던 펜의 끝으로 마치 고양이가 꼬리로 바닥을 치듯 책상을 탁, 탁 쳤다.

-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의 해구를 전부 뒤졌다. 그러나 오메가의 흔적은 없었다.

“설마 하나하나 뒤져야 하는 건 아니겠지.”

“요즘 위성 카메라가 얼마나 잘 발달되어 있는데. cm 단위 추적이 가능하다고.”

“이렇게 하루를 허비한 거야? 어제도?”

“어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단 말이야.”

“경력자면서.”

.
.
.

모든 해구에 가위표를 친 밥은 열두 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보며 턱을 괴었다.

“행맨?”

행맨은 이미 얕게 흰자를 보이며 잠에 빠져든 지 오래였다. 온몸이 뜨거웠다. 가슴이 꿰뚫리는 듯한 통증이 그를 헤집었다.

“!”

회귀였다.


==


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5시 50분. 밥은 눈도 못 뜬 채 화장실로 직행해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옷을 대충 꿰어입은 후 행맨의 관사로 향했다.

“행맨-!”

6시 20분, 그가 구보를 마치고 서서히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제이크 세러신은, 눈에 경악을 담은 채 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기억해?”

“...”

“뭐든 괜찮아, Talk to me, Hangman. 오메가는 꽁꽁 숨었어. 너만이 유일한 단서라고.”

“밥, 너는 원래 남의 목숨에는 끔찍할 정도로 집착하면서 네 목숨은 그렇게 가볍게 여겨?”

“뭐?”

“작전은 완수했어. 이기적인 선택을 해.”

“무슨 소리야? 무슨 과거였어?”

“...네가 죽었어.”

“...그렇구나.”

“...”

“근데, 그게 다야?”

“뭐?”

행맨은 담담한 밥의 반응에 짐짓 놀란 듯 보였다.

“그거 말고 더 없어?”

“아니, 넌 무슨…”

“이미 지나간 과거야.”

“하, 그래. 과거가 기억났어. 그러니까, 너와 만나는 이 과거도, 회귀한 과거도.”

“그렇다면 네가 잔 후에 꾸는 ‘꿈’은 과거의 네 행동들을 다시 보여주는 거겠네. 너는 그 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평행세계 같은 건가?”

“평행세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며. 네가 알고 있는 과거의 내가 그 사건들의 일부를 알려줬고.”

행맨은 문간에 어깨를 기대었다.

“회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오메가, 오메가의 죽음, 마지막 발악.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 시공간에 조작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좋은 가설이야. 해구를 뒤지는 방식으로 오메가를 찾을 수 없으니 이전에 네가 오메가를 찾은 방식을 다시 시도해보자.”

“뭔데?”

“알파와 오메가는 연결되어 있어. 알파가 죽으면 알파는 오메가에게 어떠한 신호를 보내. 오메가는 그 신호를 받고 지구의 시간을 되돌려. 알파가 죽기 하루 전으로. 그 신호를 역추적하면 오메가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내가 죽어야 하는 건가?”

“아니, 저번에는 알파를 잡아 왔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신호가 떴지만 네가 기억했지.”

“그럼 처음부터 이 방법을 시도하지 그랬어.”

“알파들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군.”

“그리고 알파들에게 접근하려면 공중전보다는 육지전이 더 쉬워. 그만큼 죽을 확률이 크지만. 따라와, 창고에서 사병들이 사용하는 강화 외골격 두 기 빼돌리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

“강화 외골격 사용법은 알아?”

“사관학교 때 시제기만 사용해 본 적 있어.”

“나도 금세 배웠어. 날 가르친 너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야.”

밥은 행맨의 강화 외골격 착용을 도왔다. 어설프게 자세를 잡은 행맨은, 팔과 다리를 크게 돌리며 강화 외골격의 범위를 가늠했다.

“행맨, 조심해! 그러다 나 치겠어.”

“아, 미안.”

행맨이 기계에 서서히 적응하는 것을 지켜본 밥은 강화 외골격에 올라 작동을 시험했다. 기계와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를 내며 깨어난 강화 외골격은 밥의 명령에 따라 더욱 강력한 조화를 이루며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
  
“오늘 출격은 무리겠는데?”

밥이 웃으며 말했다.

“밥, 넌 반칙을 썼잖아.”

땀에 흠뻑 젖은 행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거야?”

“아직 두 번이니까. 내가 아는 제이크 세러신은 두 번의 생으로는 오메가의 위치를 찾아낼 위인이 아니거든.”

“야, 밥!”

“과거를 기억해낼수록 강화 외골격에 적응하기 쉬워질 거야. 내게 강화 외골격을 알려줬던 넌 이 기계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었으니까.”

“...”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행맨을 향해 밥이 고개를 돌렸다. 벌써 행맨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밥 또한 곧이어 올 고통을 견디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목을 헤집는 날카로운 감각은 꽤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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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 시계 소리가 울리자마자 밥은 화장실로 뛰어가 샤워를 하고는 6시가 되기도 전에 관사를 나섰다.

“나와, 행맨!”

행맨의 얼굴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로, 온 볼이 눈물 범벅인 채 망가져 있었다.

“뭐야, 행맨, 괜찮아?”

“미안, 일어나 보니 이런 상태여서.”

행맨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닷새를 살았어.”

“...닷새?”

“난 언제나 그랬듯 비행을 답이라고 여겼어. 넌 내 윙맨이었고. 과거의 나는 너에게 친절하게 굴었더라.”

너무 훌쩍여 헐어버린 코를 다시금 손등으로 닦은 후 행맨은 자조했다.

“사흘간은 공중에서 폭탄만 투하하는 작전만 수행했어. 작전본부 대대장은 우리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저공비행 타격 명령을 내렸지. 나 역시 내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어. 우리 둘이서 새끼 베타들이 쏟아지는 둥지로 돌격했지만, 베타들의 물량 공세로 공기흡입구가 고장난 바람에 추락해 버렸어. 넌 베타들의 촉수에 가슴이 꿰뚫려 죽었어. 난, 목을...”

행맨은 잠시 주저했다.

“...몸을 찔려 죽었고.”

행맨의 말을 잠자코 듣던 밥은 긍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직 강화 외골격은 생각하지 못했나. 강화 외골격 작동 방법은 기억나지? 어서 연습하자. 상대 쪽에서 먼저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밥, 잠깐만- 나 닷새를 쉼 없이 비행했어. 네겐 하루겠지만, 나는 너와의 하루, 그리고 과거의 닷새, 총 엿새를 경험했다고. 잠깐만, 10분만 쉬자.”

“…알겠어.”

행맨은 문턱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그 10분 동안 다리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알파는 이름처럼 베타 무리를 이끌어. 노란빛을 내는 베타와는 다르게 알파는 푸른빛을 내고. 알파는 베타보다 더욱 덩치가 크고 난폭해. 자기 목숨은 무한하다는 자신감이지.”

밥은 행맨의 상단부를 공격했다. 강화 외골격끼리 부딪치며 둔중한 소리를 내었다.

“그게 강화 외골격을 착용하는 이유야. 우리는 베타가 아니라 알파를 상대하니까. 알파를 죽이지 않고-!”

하부를 공격하는 행맨의 발놀림을 뒷구르기로 빠르게 회피한 밥은 행맨을 향해 돌격했다.

“제압해서 남몰래 이곳으로 가져와야 하니까.”

행맨 또한 옆구르기로 밥의 돌격을 회피했다. 콘크리트 벽에 움푹 패인 자국은 외골격의 힘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밥이 행맨을 돌아보며 웃었다.

“이 정도면 전장에 나가 죽지는 않겠어.”

-

검은 분진으로 어둑한 하늘은 행맨과 밥의 자취를 숨겼다. 밥은 외골격의 날카로운 검으로 베타들의 머리를 쳐내며 알파를 찾았다. 행맨은 그 뒤에서 로버트를 보조했다.

“알파의 심장은 다른 베타들처럼 뇌와 가까이 있어. 촉수는 전부 쳐내도 목숨에 지장이 가지는 않을 거야.”

그는 사람 세 명은 거뜬히 담을 듯한 마대를 들고 밥을 따라 계속 전진했다.

“알파야, 행맨. 집중해!”

밥은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문어처럼 촉수를 움직이는 알파를 가리켰다. 알파는 우아하고 잔혹하게 인간의 머리를 촉수로 뚫다가 목표를 밥에게 옮겼다.

곤충의 진액같은 베타의 샛노랗고 진득한 피로 온몸이 뒤덮인 로버트 플로이드는 아마 알파의 정신을 놓게 만들었을 테지

자신을 공격해오는 촉수를 하나하나 칼로 자르던 밥은, 알파의 아가리가 자신의 머리를 먹으려 들자 외골격의 거대한 손으로 그것을 저지했다. 외골격에 달린 전기톱은 부둥거리는 알파의 촉수를 하나 하나 썰었고, 썰린 다리마다 은빛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행맨이 마대 입구를 크게 열자 밥이 그곳에 손질된 알파를 던져넣었다. 마대가 은빛 피로 물들었다. 꾸르륵대며 알파가 저항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밥이 어떤 용액을 마대 안에 뿌려대니 알파의 피부가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강염기 용액이야. 생명체라면 이걸 맞고 살아남는 놈은 없을걸. 그게 인간을 포함해서라는게 문제지만. 튀는거 조심해. 살 뿐만 아니라 뼈까지 녹이니까.”

“마대 안은 코팅이 되어 있으니 안심해. 어느 동안은 녹지 않을 거야. 행여 녹더라도 우리는 회귀하니까… 괜찮을걸?”

행맨은 밥이 약간 무서워졌다. 

-

빈사 상태의 알파에게 신호 증폭기를 붙였다. 자신에게 미래가 없음을 직감한 알파는 몸을 축 늘였다. 숨만 쉬는 것인지 알파의 몸을 뒤덮은 푸른 빛이 밝게 빛나다 흐려졌다.

강화 외골격을 입은 밥이 알파의 심장을 찌르자, 상처에서 남은 은빛 피가 울컥 흘러나오며 알파의 몸에서 나오는 푸른 빛이 꺼져 갔다.

“신호 발생, 증폭, 윽-!”

밥이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밥!”

“신호기를 확인해! 회귀의 전조야, 어서!”

행맨은 신호계측기를 확인했다.

신호는 그다지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았다.

정말,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

행맨은 외골격을 이끌고 쓰러져있는 밥에게 다가갔다.

“흐으-뜨거워, 뜨거워- 온몸이···”

밥은 마치 죽어 가는 동물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입에서는 흰 게거품과 정신없이 웅얼거림이 쏟아졌다. 밥은 자기 옆에 무릎을 꿇은 행맨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행맨, 어디야? 어디에 신호가 닿았어?”

행맨의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그의 눈은 공허했다.

그가 성대를 울리려 할 때, 눈이 뒤집히며 옆으로 쓰러졌다.

잠에 든 것이었다.

로버트는 몸이 녹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며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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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가 울먹였다.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로버트는 순간 무언가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을 기억한다.

로버트 플로이드의 검푸른 눈동자가 더욱 커져 흰자를 물들인다···

미래의 로버트 플로이드 네가 많은 것을 말하게 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은
이 말 하나만은 과거의 제이크 세러신에게 전해줄 수 있어


“너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그러니 우리 둘 모두가 살 수 있는 미래를 찾아. 이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로버트가 제이크의 볼을 쓰다듬었다.

기지 밖은 알파와 베타로 가득했다. 그 둘을 제외한 인간은 전부 반죽이 되어 외계 생명체들에게 승리의 쌉싸름한 피냄새만을 남기고 있었다.

로버트는 울고 있는 제이크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고,


아, 외계 생명체들이 몰려 온다.

  
곧이어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머리가 터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로버트 플로이드는 죽었다.


==


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자신의 온 몸을 녹이는 그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해 밥은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입거나 걸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만지고 싶지 않았다. 자명 시계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오늘 하루만큼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쌓인 과거들이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게 만들어
그러니 로버트 플로이드, 밥, 너는 눈을 떠, 깨어나, 일어나야 해
어서 나
와, 로버트!”

행맨의 목소리이다. 관사 문을 쿵쿵 두드리는,

나를 찾는 과거의 제이크 세러신.

나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갈 과거의 제이크 세러신.

그래. 우리 둘 모두가 살 수 있는 미래를 찾자.

시련을 이겨낸 네 과거들이 나를 더욱 강해지게 만들었으니까.

너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이 나를 더욱 강해지게 만드니까.

너는 죽지 않으니까.

-

“오메가의 위치가 뜨지 않았어.”

“정말 꽁꽁 숨었네...”

“저번에는 어떻게 오메가를 찾아 죽인 거야?”

“알파와 베타가 쏟아져 나오는 포탈을 찾았어. 알파와 베타는 오메가가 내뱉는 알에서 태어나니, 그 포탈 안으로 들어가면 오메가가 존재하겠지. 하지만 너무 위험해.”

“그렇지만,”

“맞아. 과거의 제이크가 시도했고, 그것 때문에 죽었어...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까.”

-  

행맨과 밥은 회귀하지 않기 위해 알파는 죽지 않을 만큼 무력화시키고, 베타의 목을 쳐내며 앞으로 나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탓에, 결국 시곗바늘은 돌아 갔다.

그래도, 지름길은 찾았으니까.

그 의미가 아주 작을지라도, 모든 회귀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다시금 심장을 찌르는 고통이 로버트 플로이드를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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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러신 가의 장남은 일면식도 없는 인간을 납치하는 특이 취향을 가지고 있나 보네요.”

“로버트, 넌 날 모르겠지만 난 널 잘 알아. 네가 아는 것보다 더. 우리 둘에게는 이게 최선의 미래야.”

-

제이크는 로버트를 감금했다. 부드러운 입술로 그의 입술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 로버트 플로이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당신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했죠. 나에게는 이게 최선의 미래라고요? 이게 최선이라면 나는 최악을 선택할 겁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삶이 아니에요, 세러신 대위. 내가 이런 삶을 선택할 것 같나요? 차라리 나는 몇 번이고 자살을 선택할 겁니다. 나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나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로버트는, 제이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그의 저택 지하실에서 심장을 찔러 자살했다.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 독수리는 스스로 날개를 꺾는다.
제이크 세러신은 손목에 칼을 그었다.
죽어가는 로버트 플로이드의 눈에 은빛 피가 흩뿌려졌다.
과다출혈.
그가 경험한 죽음 중 가장 황홀하고 역겨웠던 죽음이었다.

로버트 플로이드, 내가 본 모든 것을 네가 똑똑히 봐

-

어떡하지, 로버트.
내가 죽지 못해 네가 죽어야 하는구나.


==


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다시금 그들은 오메가가 있을 포탈로 향했다.

포탈로 향할수록 알파와 베타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행맨과 밥은 전처럼 알파는 죽지 않게 무력화 시키고 베타는 목을 썰어 죽였다.

거대한 포탈에 수류탄을 던져 공간을 만든 후 그들은 진입했다. 알들에서 새끼 알파들과 새끼 베타들이 부화하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덕에 무력화시키기 쉬웠다.

그때 로버트의 뒤를 알파가 공격했다. 제이크가 대검을 뽑아들어 로버트를 공격한 알파에게 뛰어들었다.

“죽이면 안 돼!”

제이크는 그것의 목을 쳤고, 알파의 목이 있던 곳에서는 은빛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제이크 세러신,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로버트, 그냥 빨리 도망쳐!”

갓 성체가 된 알파와 베타들이 그들에게로 뛰어들었다. 밥은 덮쳐올 고통을 인내하기 위해 그것들에게서 도망치며 눈을 감았지만, 아무런 고통도 그에게 밀려오지 않았다. 외계 생물체의 알에서부터 풍겨 오는 축축한 공기를 가르는 그와 그가 착용하고 있는 강화 외골격의 감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

알파를 죽여도 회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자마자 온갖 무기로 자신들을 무장했다. 전기톱, 대검, 기관총··· 온갖 무기들이 그들의 강화 외골격에서 튀어나왔고, 축축한 둥지는 온통 은빛 피바다가 되었다. 그들은 몰려오는 외계 생명체들을 쳐내며 한발 한발 알들의 수가 점점 작아지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간 복도가 파랗게 물들었다 다시 암전되었다.

“뭐지?”

“전조등을 켜!”

그들의 눈앞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거대한 크기의 알파가 있었다. 수많은 촉수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강화 외골격의 발을 빠르게 놀리며 여러 다발의 얇고 두꺼운 촉수들을 피했다. 날카로운 촉수가 로버트 플로이드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

“로버트-!!”

행맨이 강화 외골격의 두꺼운 팔로 밥을 밀쳤다. 날카로운 촉수가 그의 배를 뚫었다. 제이크 세러신이 로버트 플로이드 대신 알파의 촉수에 찔려 죽었다.

그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회귀다.
어느 알파를 죽여도 멈추지 않던 시곗바늘이 제이크 세러신의 죽음을 방아쇠로 삼아 우뚝 멈춰, 거꾸로 향한다.


==


현재, 인류는 외계 생물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외계 생물은 마치 인류를 몇천번이고 상대한 듯 인류가 가하는 모든 공격 패턴을 예상했다.
사실 외계 생물이 인류를 몇천번 상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류에 의해 죽음을 맞을 때마다 회귀했기 때문이다.
제이크 세러신은 외계 생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그것을 깨달았다.
제이크 세러신은 그것들의 피 덕분에 회귀자가 되었다.
그 또한 죽음을 맞을 때마다 회귀한다.
제이크 세러신이 사랑하는 로버트 플로이드는 미 해군항공대의 조종사 및 무기관제사이다.
그는 임무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죽음마저도 감수하는 인간이다.
제이크 세러신은 저번 죽음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이제 내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로버트 플로이드
내 직감이 네가 답이라고 외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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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타고 있는 전투기가 속도를 높여 바다를 향해 낙하한다.
몇 번의 폭발음이 들리고 바다에 파묻혀 있던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덩이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온다.
제이크 세러신은 푸른 빛이 마치 제 윙맨이자 연인-로버트 플로이드의 차갑고도 시린 푸른 눈 같다고 생각했다.
...정정한다. 그 눈은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한 푸른 눈이었다.
제이크 세러신은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듯 하다.



·
·
·
·
아니야,
아직 안 늦었어



==


요란스레 울리는 자명 시계 소리에 밥은 눈을 떴다.  

-

“제이크, 다시는 그런 짓거리 하지 마.”

출격 전, 로버트 플로이드는 수송기 좌석에 앉아 있는 제이크 세러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이크 세러신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로버트 플로이드는 무인 수송선의 통신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낙하 지점 변경. 현재 입력 포인트로 전환. 16°01'12.151"N 18°22'09.51"W”

“결국 다음 생에서 봤네, 로버트.”

“……”

제이크 세러신은 쓰게 웃었다.

-

수송기에 실려 있던 온갖 화기들로 그들이 낙하할 지점을 폭격했다. 알파를 죽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송기 내부가 경광등의 붉은 빛으로 붉게 물들며 바닥의 문이 열렸다. 기계음이 섞인 음성이 반복해서 소리쳤다.

“Titan Fall. Titan Fall. Titan Fall.”

둔중한 소리를 내며 주변 100m 내에 어떤 생물체도 살아 있지 않은 전장에 활강한 그들은 알파와 베타들이 쏟아져 나오는 포탈로 향했다.


외계 생물들은 달려왔다. 모든 생에서, 똑같은 궤적으로.

그들은 달린다. 모든 생에서, 각기 다른 궤적으로.

-

온갖 화기들로 무장한 채 알들이 바닥과 벽을 채우고 있는 곳까지 달려간 그들의 뒤에서는 알파와 베타들이 질리도록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처럼, 그 거대한 알파가 올 것이다. 로버트가 이전 생에서 내려다보았던 끝없는 시궁창에서 알파가 흉흉한 촉수를 쿨쩍이며 기어올라왔다. 주위를 파랗게 빛내는 거대한 알파는, 인간의 악취를 맡자 마자 그들에게로 돌진했다.

“오메가는 분명 저 시궁창에 있을 거야. 알파를 피해 저곳에 폭탄을 던질게.”

행맨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밥을 엄호했다. 알파의 두꺼운 촉수가 밥을 향했지만, 행맨의 대검이 그것을 막았다. 마치 미식축구 선수가 골대에 공을 던지듯이, 밥은 자기 머리의 세 배는 될 듯한 폭탄을 시궁창에 던졌다. 벽을 퉁, 퉁, 퉁, 치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진 폭탄은 새빨간 화염으로 그 거대한 알파의 몸 절반을 삼켰다. 타는 냄새가 두 인간의 코를 간질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버트 플로이드는 절망했다. 제이크 세러신은 깨달았다.


역시 네가 답이구나.


행맨은 벽에 있던 철문을 열고 두꺼운 강화 외골격의 손으로 멍하니 서 있던 밥의 강화 외골격 뒷판을 잡아 당겨 빈 방에 던져넣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밥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너였어, 로버트. 거짓말해서 미안해. 네가 아닐 줄 알았어.”

굳게 잠겨 있는 문 너머에서는 점점 더 몰려온 알파와 베타들이 쿵쿵대며 그들을 위협했다.

“무슨 짓이야!”

“네가 오메가야.”

“그게 무슨-”

“저 시궁창엔 오메가가 없어.”

“······”

“네가 알파의 심장을 찔렀을 때,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어. 나는 알파의 신호가 네게 닿는 것을 봤고.”

로버트 플로이드는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강화 외골격의 배터리가 거의 바닥을 보였다.

“알았으면 저번 생에서 날 죽이지 그랬어.”

제이크 세러신은 그 말에 미소지었다.

“어떻게 널 죽이겠어.”

“······”

로버트 플로이드는 강화 외골격에 붙어 있던 대검을 건넸다.

“그래도 외계 생명체에게 죽는 것보다 너에게 죽으니 낫네. 아마 마지막이 될 생을 이렇게 마쳐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제이크 세러신의 눈에서 짠 것이 뚝뚝 떨어진다. 로버트 플로이드 위에 양 다리를 벌려 걸터 앉은 제이크 세러신은 그의 심장 위에 수직으로 대검의 날을 겨눴다.

“만약··· 저번처럼 네가 죽어도, 내가 모든 걸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번엔 안 그럴 거야, 제이크. 확신해. 네가 그랬지, 내가 답이라고.”

“······!”

제이크 세러신은 미소짓는다.


로버트 플로이드의 눈은 푸른 빛을 내보인다. 그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하지만 똑똑히 기억하는 과거의 생에서 봤던 오메가의 그것처럼.


“See you in the afterlife, Baby On Board.”


로버트 플로이드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매진 심장에서 발광하는 은빛과 푸른 빛이 섞인 피를 흘리며 눈을 감는다. 제이크 세러신은 찔러넣은 대검 옆에 볼을 붙이고는 자신의 얼굴을 따뜻하게 덮는 연인의 피를 느낀다.



알파와 베타들이 제이크 세러신과 로버트 플로이드였던 시체를 덮치고, 두 갈래로 갈라져 평행선을 달렸던 시간대는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

새하얀 빛이 로버트의 시야를 밝힌다.

 

“...당신이 내게 속삭인 그 사람이군요.”

 

“맞아요, 로버트.”

 

“오메가이기도 하고.”

 

“그것도 맞아요.”

“내 모습, 당신과 닮았죠?”

 

로버트 플로이드와 닮았지만 조금 더 젊은 남자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슬픈 표정이었다.

 

“미안해요.”

 

로버트는 그에게 화내지 못했다. 그의 얼굴 반쪽이 전부 불탔기에. 그는 불탄 쪽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 흉터는…”

 

“당신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내 죄에요.”

 

“…”

 

“고맙게도 당신들이 이겨내 줬어요. 오메가가 됐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거든요. 그저 인간에 대한 증오감만이 날 이루었어요.”

 

로버트와 그는 어느샌가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는 커피 두 잔과 커피포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요?”

 

“…네.”

 

“고마워요.”

 

그는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어 삼킨 후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를 죽인 후 나는 당신에게로 흡수되었어요. 당신의 몸을 도는 모든 피가 내 일부였죠. 그 덕에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가끔 당신과 대화하기도 했고.”

 

그가 말을 할수록 주위 풍경은 구체화 되었다. 60년대 호텔 같이 생긴 그 공간은 무언가 따스한 느낌도 드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말갛게 변했고 그의 옷은 황록색의 호텔리어 복장으로 바뀌었다.

 

“다시 한번 고마워요. 인간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로버트는 그의 얼굴을 보다 그의 명찰에 시선을 옮겼다.

 

“마일스 밀러, 당신은 누구죠?”

 

“그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면 잠에서 일어나게 될 거에요.”

 

로버트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로버트의 눈은 마일스를 응시했지만 손은 컵을 들어 입에 내용물을 옮겼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로버트 플로이드.”

 

다 식어버린 커피가 로버트 플로이드의 목구멍을 차갑게 씻어내렸다.

 

호텔은, 마일스 밀러는, 불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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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로버트의 얼굴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로버트는 얇고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에 쏟아지는 햇살을 가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로버트 "밥" 플로이드 대위가 공식적으로 특수 임무 부대 - 탑건에 가는 날이다. 플로이드 대위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더듬다 단추를 풀어 명치를 더듬었다. 명치를 중심으로 하얗게 생긴 흉터는 그의 사라진 과거를 상기시켰다.

 

제이크 "행맨" 세러신 소령은 창가에서 자신의 눈두덩이로 내려꽂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치우며 일어난다. 세러신 소령은 집무실 책상에 올린 발들을 내려놓은 후 다시금 서류를 검토하다, 누군가의 프로필을 보고는 미소지었다.

 

『Lt. Robert "BOB" Floyd』

 

서류 위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Present. -J]



==

 

마일스가 서류를 훑으며 차를 마시고 있는 남성에게로 향해 걸어간다. 온 세상은 하얗다.

 

오직 그 남자와 테이블, 마일스만이 존재한다.

 

“당신이 존 글렌인가요?”

 

“그렇다면 당신이 마일스 밀러겠군요.”

 

마일스는 의자를 꺼내 존의 앞에 앉았다.

 

“많이 늦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나도 잠깐 나갔다 와야 하거든요.”

 

마일스는 따뜻한 커피를 한 번 들이킨 후 물었다.

 

“그 서류는 뭐죠?”

 

“선물이에요.”

 

그렇게 말한 존은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은 후 그것을 서류에 붙였다.

 

“제이크가 좋아하겠죠?”

 

“그럼요.”

 

 

[Present. -J]

 


 

*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속적이다.





파월풀먼 존글렌마일스

2024.01.02 08:34
ㅇㅇ
와.... 진짜 또 입 벌리고 읽었네 진짜 어마어마하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5d9]
2024.01.04 06:33
ㅇㅇ
모바일
고통스러웠던 반복이었지만 그 모든게 계속되는 인연이자 돌고돌아 운명을 만들었네ㅠㅠㅠ 센세글 숨도 못쉬고 복습했다 하 존잼 여운도길고 행맨밥의 재만남까지 너무 짜릿해 센세 금무순 읽게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Code: 9b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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