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Hiddleston Gif Imagines - ☆ 16 ☆ - Wattpad

​​​​​​전편



 나는 다시 한번 아스가르드 성문 앞에 서 있었다.

몇 번을 온 자리임에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 당신의 뜻을 존중하지만 말이야.

 
내 옆에 선 로키가 말했다.

 
- 혹시라도 도망치고 싶으면 말해. 언제든 당신을 안고 도망칠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그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저 안에 들어가는 순간 감시하는 사람이 수백 명인데, 그 말을 어떻게 하니?

- 수신호라도 먼저 정하자.

 
그가 속삭였다.

 
- 도망치고 싶으면 왼손을 들어.

- 싫어. 눈에 띄어.

- 그럼 손가락.

 
절레 절레.

 
그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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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말하던가 그럼. ‘로키님! 지금이예요!’ 라고.

- 그렇게 하면 네 손이 나를 붙잡기도 전에 헤임달한테 죽을 거야.

 
내가 말했다.

 
- 그리고 로키'님'은 무슨...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로키가 긴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당신이 저 자리에 선 후로 좋았던 일이 하나도 없다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나한테는 미래를 보는 눈도 없고, 아버지께 대적할 힘도 없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당신과 함께 모습을 감추는 것뿐이야. 그게… 당신을 지킬 수 있는 내 힘의 전부라고.

 
나는 고개를 돌려 왕자를 바라봤다.

 
그의 말이 맞다. 

내가 항상 이곳에 불려왔을 때, 좋은 일이라고는 없었다.


오딘의 재물로 선택되고,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그리고 또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처럼 로키도… 그것이 두려운 거겠지.

 
- 기억나?

 
내가 말문을 떼자, 로키는 나를 바라보았다. 


- 작은 왕자와 정령이 아니라… 왕자와 작은 정령으로 우리가 다시 만난 날에 말이야. 넌 날 포도나무의 정령으로 변신 시켜줬잖아?

 
나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웃었다.

 
- 그리고 그 다음엔 네가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고 회장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함께 춤을 췄었지.

 
로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나쁜 기억만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나를 믿어 봐, 왕자님.

 
나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효과가 있던 걸까, 아니면 나의 따스한 기운이 잡고있는 그의 손으로 전달이 된 걸까, 아님 둘다 일까.


로키는 다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렇게 손을 잡고 서 있던 것도 잠시,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성문이 열리며 황금색 길이 앞으로 드러났다. 

로키와 나는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성안에는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물론, 로키의 불에 목숨을 잃었다가 살아난 숲의 동물들과 나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황금색으로 높게 쌓여진 벽 아래로 여러 개의 황금의자가 있었는데,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들이 그 곳에 있었다. 


풍요의 신, 프레이님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보다 더 위에, 더 높은 곳에, 그토록 많이 마주하였으나 언제나 내 안에 두려움을 일으켰던 신들의 왕, 오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우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천천히 다가갈수록 그의 한쪽 눈도 우리를 따라 내려 왔다.

 
나는 폐하의 앞에 섰을 때,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란 것을...





 모든 백성들과 아스가르드의 신, 그리고 오딘. 

그들의 눈은 단 한 가지, 연회장 중심에 나란히 서 있는 나와 로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신들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여러 의자 중, 사슴처럼 커다란 뿔이 박힌 황금 의자가 주인을 잃은 채로 텅 비어 있었다.

 
오딘은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그의 한쪽 눈으로 우리를 근엄하게 내려다보더니, 이내 천둥이 지나가듯 소리치며 말했다.


- 모든 신은 제자리로 돌아오라!


왕의 눈은 이제 둘이 아닌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통에도 장난의 신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오딘은 무엇이든 꿰뚫는 창, 궁니르를 바닥에 내리치며 그에게 무언의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왕자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아무리 궁니르가 지면과 부딪히며 지진 같은 굉음을 내어도 장난의 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오딘이 왕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 모든 신은 제자리로 돌아오라!

- 폐하의 말씀대로 해.

 
나는 그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로키는 다시금 내 손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 이번은 안 돼. 아무리 당신이 괜찮다고 말해도… 이번은 안 돼.

 
그는 오히려 나를 막아서며 말했다.

 
- 난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더 할 말은 없어. 이미 끝난 얘기야.

- 하지만 폐하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은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왕좌 쪽을 흘긋 바라보며 속삭였다.


오딘이 다시 한번 궁니르를 바닥에 내리쳤다.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손을 모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왕비님의 불안한 표정까지도 이 먼 곳에서 보일 정도였다.

 
나는 재촉하며 말했다.

 
- 아까 나를 믿기로 약속했잖아. 나를 믿고 위에서 지켜봐 줘.

- 하지만…

 
로키는 불만 섞인 말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지만, 내가 바로 그 입을 막아 세웠다.

 
-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왼손이든 왼발이든 들 테니까, 응?

 
그는 한숨을 쉰 후 입을 꾹 다물더니 왕좌와 나를 번갈아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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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왕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장난의 신이 제자리에 돌아가 앉음으로써 아스가르드의 모든 황금 의자가 채워졌다.

신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마치 죽음을 맞이한 후 심판의 자리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머리 뒤로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오딘의 파수꾼, 후긴과 무닌이 연회장으로 날아 들어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왕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이 발톱을 딱딱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음산하게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것을 신호 삼아, 왕께 나아가 예의를 표하며 절을 했다.

 
- 그래, 문제의 정령이 돌아왔군.

 
내 인사를 받은 오딘이 날카로운 창 끝을 자신에게로 가까이 세우며 말문을 열었다.

 
- 참으로 질긴 목숨이구나. …살아 돌아온 소감이 어떠하느냐?

-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폐하.

 
나의 당돌한 말에 왕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티 없고 해맑은 마음이 정령들의 보물이긴 하지만… 그대에게 빗대니 이토록 어리석을 수가 없군.

 
모두가 오딘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로키는 제 아버지를 노려보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오딘은 웃음을 멈추고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 그대는 기억과 함께 불에 타 죽을 운명이었거늘…. 그대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면, 또 다른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눈을 뜨자마자 도망가지 않았지? 왜 이 아스가르드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 저는… 폐하께 생명의 나무를 보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의 말에 일순간 회장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두가 수군거리며 내가 한 말을 되뇌였다. 

어떤 이들은 놀라움에, 두 손으로 입을 막는 자도 있었다.

 

신들중에 가장 현명하다는 크바시르가 물었다.

 
- 생명의 나무라면… 온 우주와 아홉 개의 왕국을 매달은 이그드라실을 말하는 것이오? 한낱 정령이 그 이그드라실을 다녀왔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 감히 신들도 함부로 꿈꾸지 못하는 곳을… 게다가 살아서 돌아오다니?

- 지금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겁니다!

- 그래요. 저건 거짓말이오!

 
연회장 안은 순식간에 혼란스럽게 변해버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들이 한꺼번에 입을 여니, 온 세계가 흔들리며 요란을 치기 시작했다.

 
세계가 갈라지기 전에 그것을 막은 건 다름아닌 풍요의 신이었다.

 
- 자, 다들 진정하시고… 저 너도밤나무의 정령이 감히 신께 거짓을 고하는지 안 고하는지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소?

 
신들을 둘러보던 프레이는 곧 로키를 가리키며 말했다.

 
- 우리에겐 위대한 거짓말의 신이 있으니까.
 

이제 모두의 시선이 로키에게로 쏠렸다.

 
 로키는 아까부터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나만 바라보느라 다른 신들의 말 따위는 들을 시간이 없었는지 풍요의 신이 몇 번 더 자신을 부르고 난 후에야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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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 아니, 저 정령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짓이 아니예요.

 
그의 말에 모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놀라거나 비명을 질렀다. 

그 말을 하는 로키조차도 여간 놀란 게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미안하네. 미리 말해줄 걸 그랬나….

 

- 조용!
 


소란이 계속되자, 오딘은 궁니르를 내려치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일순간에 한밤중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오딘은 여전히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 그래, 이그드라실에 관한 그대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란 것은 잘 알았다. 게다가 그 경험은 이 황금 의자의 주인 중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영광이란 것도 알고 있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그 사실로 그대가 특별하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것인가?

- 우월감은 모르겠지만…. ‘특별하다’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그곳에 보낸 것은 폐하시니까요.

 
나의 말에 다시 한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오딘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궁니르를 내려치며 주위를 정리하였다.

 
- 무슨 증거로 그리 말하는 것이냐?

 
그가 근엄하게 물었다.

 
- 모두를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드는 전사나, 지혜를 얻기 위해 샘물에 뛰어드는 무모한 자…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자와 같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모두 이그드라실로 들어갈 수 있다고, 폐하께서 그 옛날 이그드라실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왕을 향해 외치듯 말했다.

 
- 하지만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황금으로 빛나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순금 위로 오딘의 얼굴이 반사되어 함께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빛나는 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 폐하께서는 도대체 왜 먼 옛날 저와 같이 이 자리에 섰던 또 다른 정령의 마지막 목숨을 거두지 않으셨는지… 수많은 사람의 기억은 지우시고 어째서 유일하게 풍요의 신의 기억만은 모른 척 지나가셨는지… 장난의 신께서 저지른 죄를 왜 희생자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셨는지... 제 존재를 지우신 이후에도 왕자님께서 제 목소리를 기억하실 수 있도록 왜 내버려두셨는지… 그리고!”

 
나는 마지막 외침과 함께 눈을 들어 다시 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참고 있던 숨이 터져 나오며 내 어깨와 가슴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고요한 적막을 깨며 나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 왜 이그드라실에서 제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셨는지를요.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내뱉는 말들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죠. 폐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려고 해선 안 된다. 깨달아야만 한다고.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 이제야 진정으로 그 뜻을 알겠습니다.

-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오딘이 부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가로막았다.

 
- 폐하께서는 그 누구보다 이 아홉 왕국의 모든 생명을 아끼고 계시죠. 그것이 열쇠였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재앙의 원인은… 폐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폐하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서 비롯된 것이죠.

 
나는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 폐하께서는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시며 더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어머니 안에 작은 생명을 남겨두셨죠. 언젠가 같은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또 다른 정령, 바로 절 위해서요. 제가 정령의 명예와 의무에 따라 제 목숨을 바쳤을 때, 폐하의 뜻대로라면 저는 어머니의 생명력을 받고 다시 살아났어야합니다. 하지만... 일이 꼬여버렸죠.


나는 로키를 흘긋 쳐다봤다.


- 폐하는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에 누구보다 가슴 아프셨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제가 제 목숨을 바쳐 모두를 위해 희생한다면, 분명 이그드라실이 절 받아들일 거란 걸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만나게 될 거란 걸 아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제 제안을 허락하신 거고, 그들을 위해 끔찍했던… 불에 대한 모든 기억 또한 지우신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고통에 괴로워하는 왕자님을 위해… 풍요의 신의 기억을 지우지 않으시고, 왕자님의 마음 속에 제 목소리를 지우지 않으셨어요. 로키가 저를 다시 기억하기를 바라시면서요.

 
한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이 상황을 지켜보던 로키가 나의 말을 듣고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왕의 눈길은 여전히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폐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이 모든 건 폐하께서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기에... 저와 왕자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시기에... 그리고...


나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 먼 옛날 폐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제 어머니에게… 폐하께서는 용서를 구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모든 말을 마치고, 나는 떨어지는 눈물도 내버려 둔 채 그저 왕을 바라봤다.


이 회장 안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신들조차 아무 말 없이 오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여전히 단 한 사람, 나만을 보고 계셨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머니의 생명을 바라보고 계셨다.

 
폐하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슬프게 느껴졌다.

 
- 그대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오랜 침묵을 깬 그가 내게 물었다.

 
- 그 정령은… 비는 나를 원망하더냐?

- 아니요, 폐하.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 원망은 커녕 폐하의 자비로 이그드라실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폐하께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는걸요.

 
내 말을 들은 오딘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작은 미소를 지었다.

 
- 예나 지금이나 네 어미는 이길 수가 없는 존재구나.

 

 오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궁니르를 들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다시 근엄한 표정을 나를 내려다보았고, 그의 까마귀들은 주인의 어깨로 날아올라 앉았다.

 
- 그래도 다시 돌아 온 그대는 여전히 죄인의 신분이다. 세상 만물의 관례에 따라 그 죄를 치러야 함이 마땅하기에… 나, 오딘은 그대에게 심판을 내리겠다. 


왕은 궁니르를 하늘로 높게 들어올리며 외쳤다.


- 지금 이 순간부터 너도 밤나무의 정령이라는 그대의 지위를 빼앗겠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백성과 정령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야유를 해대며 오딘에게 반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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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또한 당장이라도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들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왕비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막았다. 

로키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오딘은 더 큰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주변을 진정시켰다.

그는 궁니르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 지금부터 나는 그대에게 아스가르드의 모든 대지를 맡기겠다. 그대의 이름은 대지 위의 모든 생명들보다 위에 존재할 것이며, 아홉 왕국의 모든 이들이 그대를 ‘대지의 여신’이라 부를 것이다. 대지의 여신은 앞으로 아스가르드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이 곳에서 신들과 함께 할 것이다.

 
왕은 말을 마치며 궁니르를 바닥에 내리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궁니르에서 튀어나온 빛은 그대로 나에게 명중되어 내 온몸을 휘감으며 빛을 내었다. 

그 빛은 나의 몸에 스며들었고, 걸치고 있던 정령의 옷을 황금 비단으로 만든 신들의 드레스로 바꿔주었다. 

내 어깨와 팔 그리고 무릎에 황금과 수많은 보석으로 수를 놓은 아름다운 견갑이 채워졌고, 머리 위로는 너도 밤나무 잎으로 만든 월계관이 쓰여졌다.


- 폐하!

 
난 놀라 소리쳤다.

 
- 하지만… 저는 그럴만한 자격이…

- 이그드라실이 그 자격을 말해주었다.

 
신들의 왕은 나에게 예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 대지의 여신이여. 언제까지나 아스가르드를 영광으로 빛내주시오.

 
그 후 왕비님을 비롯한 모든 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허리를 숙여 내게 예의를 표했다.

 

  모든 상황이 얼떨떨하고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엄청난 비명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장로님은 공중으로 올린 나를 끌어안고는 어깨를 연신 토닥여 주셨다. 그리고 그 후 레아와 형제 자매들이 몰려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백성들은 박수치며 나를 환호하였고, 숲에 사는 동물들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아기 다람쥐, 스퀴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내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나는 다시금 신들의 왕좌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내 눈은 단 한 사람만을 찾고 있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신들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있던 로키와 눈이 마주쳤다.


- 로키! 


나는 그가 잘 볼 수 있도록 왼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의 의미를 눈치 챈 로키는 곧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초록 망토를 휘날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고, 나 또한 형제 자매들 틈에서 벗어나 그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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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의 품으로 뛰어들자 그는 단번에 나를 안아 들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우리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날은 아스가르드에 영원히 기억될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날이었다.

 

 

 

  연회는 아주 오랫동안 밤낮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스가르드의 모든 정령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주하고… 또 끊임없이 술을 빚어냈다.

나의 자매들을 포함한 정령들은 빠른 연주에 몸을 맡긴 채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춤을 추기 바빴다.

정령들의 이러한 모습은, 연회가 백만 배 정도는 더 시끄럽고 정신없게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품는 사람이 없었다.

신들과 정령들과 그리고 백성들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이 연회를 즐겼다.

 

그리고 나는 발코니에 기대어 누구보다 유쾌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배시시 허공에 웃음을 터뜨리자, 어느새 내 곁에 선 로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뭐가 그렇게 웃겨?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 아무것도 아니야.

 
내 대답에 장난의 신은 아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래도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난 그 날, 솔직히 이런 결말이 올 거라 예상하진 못 했어.

 
나는 턱을 괴고 로키를 쳐다봤다.

 
- 그럼 무슨 결말을 예상했는데?

-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가 대답했다.

 
- 당신과의 끝은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오… 그래? 나는 생각해 본 적 있는데.

 
그러자 나의 말이 로키를 자극시켰는지, 그는 즉시 나에게 되물어 보았다.

 
- 그래?

 
- 응. 그 있잖아, 신들의 모든 이야기가 책으로 기록되어 아홉 세계와 먼 후세에 전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여진다면 이렇게 되겠구나… 그런 생각은 해봤지.


- 그래서 당신이 생각한 우리의 결말이 뭔데?

 
그가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흠…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그리고 골똘히 글귀를 떠올렸다.

 
- 아주 먼 옛날, 오딘의 숲에는 너도밤나무의 정령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장난의 신, 로키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그녀는 그와 온 세계를 누비며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잠깐 고민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그 정령은 그 어떤 정령도 감히 꿈꾸지 못할 모험으로 자신의 인생을 꽉 채운 후, 나무로 변하여 다시 오딘의 숲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다시 혼자가 된 장난의 신은 그 나무를 평생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끝.

 
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을 마친 뒤 로키를 바라봤다.

하지만 로키는 어쩐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 표정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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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말만 장황하게 했을 뿐이지 결국 먼저 죽겠다는 내용이잖아.

- 내가 언제 먼저 죽겠다고 했니?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 말을 지어내지 마.

- 아무튼 당신이 먼저 죽는다는 말이잖아.

 
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 모든 건 언젠가 죽어, 로키.


나의 건조한 말투에, 로키는 더 툴툴거리며 말했다.

 
- 그니까 왜 당신이 먼저 죽을 거라고 확신하냐고. 게다가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혼자 결말까지 감히 다 멋대로 정해버리고 말이야. …아니지. 심지어 당신, 실제로 먼저 죽기까지 했잖아?

 
그는 팔짱을 끼며 발코니에 기대었다.

 
- 마음에 안 들어.

 
로키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내미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나를 보며, 로키가 인상을 전보다 더 찌푸리며 물었다.

 
- 왜 웃는 거야?

- 아니… 지금 네 모습… 정말 유치한 거 알아? 다 지난 일 가지고 말이야.

- 당신은 당연히 이해 못 하겠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그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미안하게.


나 또한 그의 눈치를 살폈다.


로키는 말없이 연회장을 내려다보며 영혼 없는 눈길을 허공에 두었다.

 
슬금슬금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난 괜히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밝은 목소리로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 다들 정말 즐거워 보인다, 그치?

 
로키는 시선은 그대로 유지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 내가 먼저 죽는다는 건 기정 된 사실이었잖아. 나는 정령이니까.

- 아직도 그 소리야?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가 질린다는 듯 투덜대자, 나는 그를 툭 치며 말했다.

 
- 내 얘기 아직 안 끝났거든? 정령과 신의 시간은 엄연히 다르잖아. 너의 하루가 나에게는 1년이고, 너의 10년이 나에게는 100년이지. 우리가 아무리 같은 시간을 살아도 끝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잖아?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의 미소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 폐하의 축복을 받고 나는 신이 되었으니까, 이제 너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같고, 너의 100년이 나의 100년과 같아. 드디어 완전해진 거야, 우리.

 
나는 그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너랑 나, 둘이서! 그러니까 항상 내 곁에 있어야 해, 알았지?

 
나는 로키를 바라보았고, 로키도 말없이 나의 미소만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불안한 눈빛을 띄고 있던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 …그래, 그렇게 할게.

 
로키는 내가 아주 먼 기억 속에서 간직하고 있던, 어린 날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그날 밤 내 곁을 지켜주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과연 장난의 신과 대지의 여신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무엇일까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갯수가 얼마나 많은지 대화를 나누면서 적어내린 종이만 구겨도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caffeine and fiction — lokihiddleston: Loki sleeping. My headcanon is...
지치지도 않는 내 말을 듣느라 두배로 지쳐버린 로키는 어느새 침대에 기댄 채 잠들어버렸고,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별빛이 왕자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잠시 말없이 그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얼른 깃펜을 들고 다시 종이에 글귀를 적어 내려갔다.

 
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던 로키와 함께라면 딱 한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로키와 작은 정령은 영원토록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글귀를 적은 종이를 손 안에 꼭 움켜쥐고, 이제 그만 로키의 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별들은 밤새도록 우리 두 사람을 비춰주었다.


마치 좋은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따스한 빛으로.







***


#에필로그



 오늘도 어김없이 아스가르드 궁전은 황금 같은 평화로 빛나고 있었다.

태양은 이제 막 동쪽으로 떠올랐지만, 이미 나는 왕궁 드레스로 환복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직 잠옷 차림인 나의 시녀들은 길게 늘어뜨린 내 머리카락에 서둘러서 꽃장식을 해주느라 쉴 틈도 없이 손을 움직였지만, 새벽부터 불려 나오는 바람에 졸린 눈을 계속 부비적대느라 손이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내 정수리에 작은 화환을 올렸고, 내가 비로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마침내 침실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나는 방에 혼자 남아 작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먼저, 얼마 전 강의 정령들이 선물해 준 푸른 빛의 보석함을 꺼내어 그 안을 뒤져 보았다. 

아주 작은 보석함치고는 꽤 많은 물건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 순금으로 만든 손거울과 빗을 꺼내어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내 시선은 얼마 전부터 협탁 위에 고이 모셔둔 밤나무잎으로 향했다. 

사실 실제로 고이 모셔둔 것은 이 나뭇잎이 아니라 나뭇잎 사이에 끼워 둔 종이 한 장이었는데, 너무 소중해서 아직은 꺼내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것 또한 가방 깊숙한 곳에 잘 챙겨 두었다. 

나는 방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리 매무새는 어떤지, 가방은 잘 메었는지 등등을 확인하였다.

 

- 좋은 아침!

 

내가 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자, 방문 언저리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벌떡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싱그러운 아침 인사를 날려주며 황금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몇 개의 복도와 몇 개의 계단을 지나서 나는 어떤 문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내가 노크를 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그 방을 담당하는 호위병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 여신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출입이 불허합니다. 아직 왕자님께선…

- 괜찮아요. 지금 만나기로 했거든요! …심지어 조금 늦었어요.

 
내 말에도 병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심기가 불편해진 나는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어깨를 토닥였다.

 
- 항상 수고가 많아요!

 
겨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으며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 무슨 경비가 이리 삼엄한지…. 누가 보면 금고라도 들어가는 줄 알겠네.

 
그곳은 에메랄드빛 카펫과 수많은 황금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이곳에 처음 오는 자라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책장과 창 너머로 보이는 아스가르드의 절경에 분명 그 시선을 빼앗겼겠지만, 허구한 날 이곳에 드나드는 나의 관심은 더 이상 끌지 못했다.

 

나는 곧장 침대로 달려갔다.

 
로키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가 살짝 흘러내린 그의 잠든 모습은 지나치게 매력적이었다. 

평소라면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잠든 뺨에 키스하며 좋은 꿈을 꾸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 일어나, 로키!

 
내 외침은 대지를 흔들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나의 아침 인사에, 왕자가 경기를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놀란 그의 두 눈이 싱긋 웃고 있는 나의 눈과 마주쳤다.

 
내가 말했다.

 
- 좋은 아침.

- 좋다면서 소리는 왜 질러.

 
그는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좋으니까 소리 지르지. 일종의 ‘기비’랄까? 아, 기비는 기쁨의 비명을 줄인 말이야.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로키를 위해, 나는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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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기분이 좋을 땐 웃도록 해.

 
로키가 부탁하며 말했다.

 
- 당신 비명에 땅이라도 갈라지면 어떡하려고.

-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가녀린데!

- 어련하시겠어.

 
로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를 새침하게 쳐다보았다.

로키도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나의 차림새를 눈치채고는 다시 내게 물었다.

 
- 그나저나… 그 옷이며 머리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왜? 이상해?

 
나는 허겁지겁 손거울을 꺼내 머리 매무새를 확인했다. 

다행히 망가진 곳은 없었다.

 
- 난 괜찮은 거 같은데… 너는 별로야?

- 그런 게 아니라. 꼭두새벽부터 맞이할 차림새는 아니란 뜻이지.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 무슨 소리야, 로키!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나는 침대를 두 손으로 쾅 내리치며 말했다. 

그 바람에 침대 위에 있던 로키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 내가 말했지. 나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상, 당신 혼자 정해버린 기념일은 같이 축하해줄 수 없다고.

- 오늘은 ‘처음으로 다 같이 꽃을 심은 날’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짜증 내며 말했다.


- 오늘은 드디어 네가 예전부터 약속했던 미드가르드에 가기로 한 날이라고!

 
내 말을 들은 로키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아-’하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네.

 
나는 뾰로통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 내가 오늘만 얼마나 기다렸는데. 설레서 잠도 못 잔 나에게 비하면… 왕자님은 아직도 잠옷 차림이고….

 
나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 이런 사람이 나의 정혼자라니…. 불쌍한 나의 앞날이여…. 삼가 앞날의 명복을 빕니다….

- 하지만 새벽부터 가잔 말은 안 했잖아.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 네가 분명 오전에 가자고 했거든? 그래서 태양이 뜨자마자 달려온 거란 말이야.

- 정오라고 말한 걸 거꾸로 들은 거겠지.

- 거짓말의 신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고?

 
이번엔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 내가 왜 그런 재미없는 거짓말을 하겠어. 무엇을 얻는다고.

 
하긴….

 
- 그럼… 내가 정말 잘못 들은 거였어? 오전이 아니라 정오란 말이지?

 
로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 아이, 이게 뭐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실망감으로 온몸이 가득 찬 나는 탄식과 함께 침대 위로 벌러덩 쓰러졌다.

 
-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 오전 의식까지 미리 다 끝냈는데….

 
나는 슬픈 한숨을 쉬었다.

 
- 세상에, 유감이군.

 
로키는 안타깝다는 말을, 전혀 안타깝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 정오까지 뭐하지….

 
하지만 내 한마디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좀 더 야릇하고… 장난스럽게…. 바뀌었다.


- 여신께서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그는 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 여기 그대로 있어도 좋아. 당신이 먼저 나를 방문한 것도 오랜 만이니….

 
내 허리를 안은 로키는 내 품속으로 머리를 기대었다. 

그의 손길로 추정되는 감촉이 내 허벅지를 천천히 쓸어올렸다. 

하지만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창문을 쾅쾅쾅 두들겼다.

 

나는 손으로 로키의 얼굴을 밀어내며 재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쾅쾅쾅-!’

 
- 여신님! 여기 계세요?

 
붉은 털뭉치가 창문 너머 작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이 보였다.

 
- 어머, 스퀴르!

 
나는 얼른 창문을 열어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도와주었다.

 
- 여기까진 어쩐 일이니?

- 방에는 안 계시길래 혹시 여기 계실까 하고 와봤어요!

 
스퀴르는 천진난만하게 찍찍거리며 말했다.

 
- 왕자님도 안녕하세요!

 
아이의 인사에 침대 위에 걸터앉아 뺨을 문지르던 로키는 대충 손을 들어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스퀴르는 왕자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내게 소곤소곤 말했다.

 
-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

- 응, 그런 일이 좀 있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 그나저나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급한 전달사항이라도 있니?

-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붉은 다람쥐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콩콩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코를 벌름거리며 앞니가 다 보이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 여신님도 느끼셨죠? 엄청난 지진이요! 그것 때문에 숲에 사는 모든 생명이 다 깨어나 버렸어요! 다들 여신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 중이예요.

 
오…. 진짜네.

 
뒤에서 로키가 ‘거 봐, 뭐랬어.’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거 가지고 또 엄청 놀리겠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스퀴르에게 설명했다.

 
- 사실은… 아까 차를 마시다가 입을 데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거든. 그것 때문에 그래. 별일 아니야.

-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스퀴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숲은 지금 난리가 났어요, 여신님. 물푸레나무들까지 잠에서 깨어났는데 너무 오랜만에 잠에서 일어난 거라 그런지 엄청 난폭하더라고요. 풀이며 꽃이며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는 걸요. 저기 좀 보세요.

 
스퀴르는 작은 팔을 최대한 쭉 뻗어서 저 멀리 오딘의 숲을 가리켰다. 

나는 그를 따라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며 숲을 바라보았다.

 
하얀 가지들이 오딘의 숲 사이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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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러다간 숲이 남아나질 않겠어.

 
로키가 내 옆에 서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빨리 가봐야겠는데, 여신님?

- 나도 알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로키에게 쏘아붙이고는 스퀴르를 데리고 방을 뛰쳐나갔다.

 

 

 

 

 오딘의 숲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태는 많이 심각해진 후였다.

잔뜩 흥분한 물푸레나무들이 들풀을 망가뜨리며 육중한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끌고 다니는 동시에 100개나 되는 가지마다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했을 정령 한 명씩을 매달고 있었다.

 

- 저기! 여신님이야!

 

비명을 지르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령들은 내가 나타나자 이번엔 나를 향해 반가운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다. 

그들은 울면서 나에게 호소했다.

 
- 여신님! 어떻게 좀 해보세요!

- 벌써 몇 백명이 잡혔다고요!

- 우릴 다 먹어치울 거예요!

- 다들... 일단 진정해요!

 
나는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 저들과 대화해볼게요.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중 가장 큰 물푸레나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3000년 된 아스가르드의 고귀한 나무 중 하나였는데, 그 긴 생애에서 거의 절반 이상 동안은 잠들어 있던 나무였다. 

그녀는 이제 난폭함을 넘어서 거의 폭주상태에 이르렀다.

 
- 그만!

 
나는 나무를 향해 소리쳤다. 

물푸레나무는 일동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들이 폐하의 숲을 망가뜨리고 있잖아요!

 
나는 일부러 목소리에 더 날을 세웠다.

 
- 그대의 주인이 명합니다! 모든 물푸레나무는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 우리의 주인은 단 한 분, 모든 대지를 관장하는 오딘이다! 함부로 주인이라 사칭하는 하찮은 정령의 말을 우리가 들을 것 같으냐?

 
나무는 비웃으며 소리쳤다.

 
- 아, 아직 소식을 못 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계속 잠들어 있었으니까.

 
나는 공손하게 말했다.

 
- 저는 대지의 여신, 허니예요. 새로운 당신의 주인이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꽤 물푸레나무들의 심기를 자극한 듯 했다. 

그녀들은 가지에 매달은 정령들을 공중으로 씨 뿌리듯 내던지더니 엄청난 분노로 땅을 후려치며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가장 큰 나무가 나에게 말했다.

 
- 감히 네년이 아스가르드의 고귀한 나무를 속이려 들다니….

 

 …년?

 

- 목숨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가장 굵은 가지를 들고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주위에서 정령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 이름을 불렀다. 


깜짝 놀란 나는 전투태세를 취하고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이 나의 심장을 찌르려던 그 순간, 엄청난 불길이 그녀와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불길이 치솟은 쪽을 바라보자, 로키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로키?

 
그는 나를 잠깐 바라보고는 곧 물푸레나무를 향해 다가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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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가르드의 물푸레나무가 드디어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나무는 당황하며 갑자기 공격을 멈췄다. 

로키가 내 곁으로 다가와 함께 그들 앞에 마주 서자, 그들을 가로막던 불길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뒤에는 나무가 아닌 하얀 얼굴을 한 물푸레 정령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로키에게 예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로키가 말했다.

 
- 나를 알아보는 걸 보니 아주 막장은 아닌 것 같은데.

- 외람된 말씀이오나, 어찌 왕자님께서 정령들의 싸움에 끼어드십니까.

 
늙은 모습의 정령이 로키에게 물었다.

 
-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장난의 신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닐 텐데요.

- 그대들이 여간 멍청해야지. 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덤벼드는 꼴이라니….

 
왕자가 혀를 차며 말하자,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로키를 바라보았다.

 
- 주인이라니…. 그렇다면 이 정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 이 여신은 더 이상 정령이 아니다. 그대의 눈에는 그녀의 몸 위로 황금 견갑이 보이지 않는가.

 
로키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물푸레 정령들은 조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나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오는지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름 새벽부터 단장한 건데….

 

로키가 말을 이었다.

 
- 폐하께서 대지 위의 모든 것을 여신에게 맡겼으니 그대들의 주인은 이제 오딘이 아니라 방금까지 그대들이 죽이려고 했던 이 여신이다. 게다가 왕자의 정혼자를 모욕했으니 그건 동시에 나와 폐하에 대한 모독이다.


그는 굉장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그러니 목숨으로 용서를 구할 쪽은 오히려 당신들 같은데.

 
어색한 긴장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물푸레 정령들은 땀을 잔뜩 흘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지만, 로키는 그들에게 자비로운 눈길 따위는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 용서하십시오.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예의를 다하여 나에게 사과하였다. 

나는 괜히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하면서 그들의 기운을 북돋았다. 

애초에 물푸레나무를 깨운 건 난데… 그들이 이렇게 죄송스러운 얼굴로 사죄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양심이 괴로웠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주인을 도우러 오겠다는 맹세를 한 채 다시 나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후….

 
모든 것이 끝난 숲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물푸레나무들이 어질러놓은 탓에 지면은 들쑥날쑥 튀어나온데다가, 야심차게 일궈놓은 해바라기밭까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로키가 태워버린 들판까지….

 
- 이거 골머리 좀 앓겠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나의 심경과는 반대되는 듯 즐거운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정령들이 내가 아닌 로키의 주변에 몰려들어 그를 경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왕자님! 너무 멋있으세요!

-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 저희를 구하러 오신거예요?

 
그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느라 바빴다.


I Am Iron Man — marveladdicts: Loki + smiling in Thor ragnarok
- 그대들이 곤경에 처했다면 이 몸이 당연히 나서야지.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로키가 잔뜩 멋이 들어간 표정을 말했다.

 
- 맞아요! 여신님을 괴롭히는 건 우리를 괴롭히는 거랑 같으니까요!

- 또 여신님을 괴롭히는 건 왕자님을 모욕하는 거랑 같고!

 
정령들은 로키의 행동을 따라 하며 그와 똑같은 건방진 표정을 보였다. 

물론 로키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흡족해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

 


 그 후, 겨우 정령들의 배웅에서 벗어난 우리는 왕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령들은 돌아가기 전, 내가 정령일 때 가장 좋아하던 꿀주머니를 한아름 안겨주었다. 

덕분에 돌아가는 길이 무척이나 끈적였다.

 

- 꽤 즐거워 보이네.

 
로키가 꿀주머니를 빨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응.

- 이제 곧 있으면 정문인데 계속 그거… 먹으면서 갈 거야?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길 위에서 격식 없이 행동하는 내 모습이 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정혼자가 그러고 다니면 왕자인 로키 입장에서는 조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 뭐라 하지 마. 아침부터 난처한 일을 겪어서 지금 내 심신이 많이 놀란 상태란 말이야. 이건 치료라고.

 
그러면서 나는 꿀을 몽땅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행동을 조심해. 지원요청이라도 하고 떠나란 말이야. 고작 다람쥐 한 마리만 업고 가지 말고.

- 나무였잖아, 나무.

 
나는 답답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 당연히 내 말을 들을거라 생각했지. 근데 1000년 이상 잠을 자느라 최신 뉴스를 전혀 못 들었다잖아. 게다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

 
투덜대는 나를 보며 로키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당신 입지를 단단히 만들어줄 방법이 있긴 하지.

 
그가 말했다.

 
- 그것도 아홉 세계에 전부.

- 그게 뭔데?

- 결혼식이지.

 
그는 그 어떤 말보다 담담하고 간단하게 말했다. 

반면 나의 반응은 비 오는 날 개구리보다 시끄러웠다.

 
- 뭐? 얘기가 왜 또 그쪽으로 가?

 
나는 아까보다 더욱 투덜대며 물었다. 

로키는 그런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 당신도 생각해 봐. 왕자의 결혼식이라 온 세계의 저명한 인물들은 모두 초대될 텐데, 그들만큼 확실한 비둘기들도 없지.

- 그냥 진짜 비둘기를 쓸게.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대 설득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히자, 로키는 직접적으로 내게 물었다.

 
- 도대체 왜 결혼은 안 된다는 거야.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심각한 로키의 표정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그냥 넘어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며 도도하게 팔짱을 꼈다.

 
- 여러 번 말했잖아, 로키.

 
나는 꿀주머니를 흔들며 말했다.

 
- 나도 물론 네가 좋아.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지. 그래서 약혼까지 한 거고. 하지만…

 
- 그래.

 
로키도 똑같이 팔짱을 꼈다.

 
- 하지만, 뭐.

- 하지만… 이 또한 여러 번 말했듯이 아직 토르…

- 형 핑계라면 그만둬.

 
그가 질린다는 말투로 몸서리를 쳤다. 

나는 그런 로키를 타일렀다.

 
- 핑계가 아니라 예법이 그렇다니까! 네가 예전에 '신이라면 이런 얇은 예법 책 정도는 외워야지.' 라고 말하면서 줬던 15000페이지짜리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

- 그러니까 당신 말은 저 싸움밖에 모르는 모자란 형이 레이디 시프와 예식을 올릴 때까지 우리는 얌전히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거지.

- 내 말을 좀 왜곡하긴 했지만 넓은 의미로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는 길동안 더 이상 결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어느덧 우리는 정문에 도착했다.

나는 손에 묻은 끈적임을 없애며 말했다.

 
-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아까 묻은 흙먼지에 꿀까지 더해져서 완전 엉망이야.

 
나는 드레스 위에 군데군데 노랗게 물든 자국을 로키에게 보여주었다.

 
- 누가 보면 꿀술로 목욕한 줄 알겠어.

- 괜찮겠어, 당신? 다시 준비하고 오면 시간이 늦을 텐데.

 
로키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순수할 정도로 깜빡거렸다.

 
- 늦어? 어디에?

- 여신께서 오래토록 기다린 날이라더니.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군.

 
로키는 내 행동이 재밌다는 작게 웃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 표정은 그를 더 웃기게 만들었는지 그는 이번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곧 웃음을 멈춘 로키는 여전히 미소를 가득 띄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뺨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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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지 않게 오도록 해. 이제 곧 정오니까.

 
그의 말대로 어느새 시간은 흘러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따뜻한 태양빛을 느끼며 생각했다.

 
맞다, 미드가르드!

 
하지만 이미 정답을 눈치챘을 땐, 로키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먼저 약속장소에 간 것 같았다.

 
나는 허공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 진짜, 치사해!


나는 긴 한숨을 쉬며 준비를 위해 서둘러 성으로 돌아갔다.


***

해피 뉴이어 기념으로 완결까지 한번에 올려 :) 사실 다른 사이트에서 몇 년 전에 쓴 글인데, 나 혼자 다시보려고 올린 글 다들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워. 로키와 정령 시리즈로 시즌 3까지 썼는데, 내 부지런함이 허락하면 여기다 쭉 올리도록 할게.

디즈니가 정신차리고 로키 인 어나더 유니버스로 이런 드라마나 좀 만들어줬음 좋겠다.

아무튼 2024년, 우리 히들이 그리고 히들러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해야해! 안녕!

 
2024.01.01 09:23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ㅜㅠㅠ새해 선물 고마워!! 센세도 새해 복 많이 받아!!!!!
[Code: b16d]
2024.01.01 09:55
ㅇㅇ
모바일
센세..... 센세 .......... 내 센세....... 고마워...........
[Code: d80f]
2024.01.01 10:26
ㅇㅇ
모바일
너무 행복한 새해 선물이야ㅜㅜㅜㅜㅜ 센세 덕분에 즐거웠고 새해 복 많이 받아!
[Code: e357]
2024.01.01 11:07
ㅇㅇ
모바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귀엽고 사랑스러워
[Code: f675]
2024.01.01 13:27
ㅇㅇ
진짜 너무너무너무 고마워 새해복 많이 받고 ㅠㅠㅠ 에필로그도 100개 써주면 안돼? 이런 작품 보여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진짜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와줘ㅠㅠ나 너무좋아
[Code: 68b3]
2024.01.01 23:04
ㅇㅇ
모바일
( ˃̣̣̣̣o˂̣̣̣̣ ) 최고다 최고 맨날와
[Code: c4f7]
2024.01.04 22:48
ㅇㅇ
모바일
흐아악 시즌3까지요? 센세ㅣ 붕붕이 기뻐서 눈물로 나일리버 만들었어요:')
[Code: d0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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