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이 바로 드실 수 있게 식탁을 차릴 시간이었다.

한 명이 거의 항상 무릎을 꿇고 사는 만큼 바닥이 더러우면 곤란했다.





지옥같이 길었던 지난 일주일이라고, 뱅상이 생각했다.
 
주인님이 출장을 가셨다. 야근하고 거의 새벽이 다 되어서 돌아오시는, 그래서 서로 얼굴도 얼마 못 보고 잠이 들어야 하는 날도 있으니 그저 그런 날들의 짧은 연속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늦게라도 하루의 끝에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있고 바깥 바람을 몰고 들어와 신발끈을 풀어달라고 내미는 발이 있고, 피곤하다고 투정을 부리며 욕실에 안 들어가려고 식탁에 엎드려버리는 작은 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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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없는 24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들 투성이였다. 혼자 열심히 뭔가를 해먹지 않으니 설거지도 생기지 않았고 어지르는 이가 없으니 청소나 정리정돈도 할 게 없었다. 책은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고 TV 소리는 그저 소음이었다. 장이라도 볼까 하고 나가 걸으면 온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 새들마저 저를 비웃는 것 같았다. 주인도 없는 것. 쓸모없는 것. 죽어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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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을 붙들 수 있게 한 유일한 것은 밤에 오는 주인님의 연락이었다. 문자 몇 마디일 때도 있고 짧은 전화일 때도 있었으나 (무릎 꿇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었다) 마지막 날에는 시간이 좀 남았다며 영상 통화가 왔다. 일로 바빠 죽겠는데 태평하게 눈시울이나 벌겋게 하는 꼴을 보시고 기막혀 하실까봐 애써 차분한 척을 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호텔 좋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주인님이 침대에 누운 채로 볼멘소리를 하셨다. 맛있는 것 해놓고 기다릴 테니 어서 오시라면서 웃는 시늉을 했다.
 
단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늘 단정하게 유지하던 집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부엌에는 신나게 음식을 해먹은 흔적이 즐비했고 거실 한복판에 엉망진창으로 펼쳐놓은 캐리어가 나뒹굴었다. 아무것도 치우지 못하게 하신 주인님 때문에 손이 묶인 뱅상이었지만 불만은 조금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훌훌 벗고서 소파에 누워 제게 발을 맡기신 주인님이어서, 그게 몹시 보고 싶었다는 마음의 표현이셔서.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들려왔다. 온 세상 시간을 나 홀로 다 가진 것처럼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내가 물에 드리운 유혹에는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았다.”
 
항상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는 TV조차 오늘은 조용했다. 그 대신 스피커로 음악을 아주 작게 틀었다. 깊은 첼로음이 나지막하게 깔린 것을 배경 삼아 주인님은 낚시에 대한 책을 소리내어 읽고 계셨다. 강 풍경을 즐기며 하는 낚시로 유명한 지역이었건만 관광이 아니라 출장으로 간 것이니 남의 회사 사무실밖에 못 보고 왔다고 툴툴 성질을 부리시더니 기어코 그 지역 여행 에세이를 찾아 사신 것이었다. 그 발치에서 뱅상은 명 받은 대로 주인님의 발톱을 분홍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펄감이 가득한 액체가 옆으로 비어져나가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집중하면서 뱅상이 나긋나긋 계속되는 책 낭독을 들었다.
 
“이대로라면 오늘의 수확은 한 마리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초조하지 않았던 것은 바람이 너무 부드러웠기 때문에-”
 
조그만 발가락, 더 작은 발톱. 분홍색이 조심스럽게 그 끝을 덮었다.
 
“그 바람이 만지고 지나가는 귓가가 간지러웠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싼 잎들이 너무나 보드랗게 푸르렀기 때문에-”
 
서러웠던 일주일이 천천히 증발해 사라져갔다. 작은 미소를 희미하게 품은 채로 뱅상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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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씻으시는 동안 모든 것을 부리나케 다 치웠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출장지에서 사오신 초콜릿의 포장지들이 뒹구는 것을 보고 괜히 웃었다. 은박의 속포장지는 구겨서 다 버렸지만 그림이 그려진 겉포장지는 조심스럽게 주워서 잘 폈다. 그것들을 자석으로 냉장고에 쫑쫑 붙여두면서 다시 한 번 미소짓는 뱅상이었다.
 
서로 별 인사 없이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허니는 침대 위에, 뱅상은 침대 밑 매트리스에. 아무리 침대 아래라지만 주인과 같은 방 안에 재우는 것도 남들이 알았다면 파격적이라고 평했을 터이나, 이 침실에서 더 웃긴 게 있었다. 밑에 까는 요는 무슨, 주인이 담요 한 장만 준 것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며 맨바닥에서 그것만 꼭 끌어안고 자는 이들이 훨씬 많을 텐데 뱅상의 매트리스는 도톰하고 푹신하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에 무언가가 침대로부터 구렁이마냥 스르르 내려와 제 옆에 자리를 잡는 감각에 살짝 깬 뱅상이 소리 없이 푸스스 웃었다. 베개는 제 것을 안고 내려왔지만 이불은 남의 것을 잡아당기며 그 밑으로 들어오는 허니를 뱅상이 능숙하게 받아주며 자리 잡는 것을 도왔다. 대화는 없었다. 허니가 뱅상의 손을 붙들고 당겨 저를 뒤에서 안게 한 후 멋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무시하며 뱅상이 눈을 감고 주인님과 낀 손깍지에 부드럽게 힘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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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너붕붕 스완아를로너붕붕 스완너붕붕

 
2024.05.06 16:51
ㅇㅇ
모바일
분위기 미쳤다.. 주인님만 바라보는 뱅상 짠한데 예뻐ㅠㅠㅠ
[Code: e1cc]
2024.05.06 17:25
ㅇㅇ
모바일
아 얘네찐사다ㅠㅠㅠㅠ 행복해라 뱅상허니ㅠㅠㅠㅠㅠㅠ
[Code: ed6c]
2024.05.07 00:10
ㅇㅇ
모바일
센세 최고에요... 존맛
[Code: 1e57]
2024.05.07 00:20
ㅇㅇ
모바일
으아아아아아아아ㅠㅠㅠ
[Code: 18da]
2024.05.07 00:52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뱅상 사랑받고 지내는구나 둘다 애틋해보여서 넘조타 ㅠㅠㅠ
[Code: 8a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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