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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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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캐붕주의
비문오타주의





하나가 눈물을 멈추면 다른 하나가 울어버리니 품에 안아줄 수도 없는 둘은 그저 닿지 못하는 손만 허공을 쓸며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예전의 감촉을 떠올리며 상대의 윤곽을 더듬는 손끝이 떨렸다. 둘이 겨우 울음을 그칠 수 있던 건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독방은 작은 창에서 비추는 달빛에 의존해 서로의 모습을 겨우 구분했다. 그 정도도 충분했다. 눈물이 잦아들고 존은 다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벅, 너 계속 있던 거지?"


"..응, 네가 수용소에 도착한 그날부터."


게일의 대답에 존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벙긋거리다 입을 열었다.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투정 같은 어투가 튀어나오는 걸 막진 못 했다.


"그러면 왜 바로 와주지 않은건데."


존은 게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곧은 시선엔 온갖 감정이 뒤엉켜 있는 게 보였다. 슬픔 기쁨 혼란 그리고 의문. 존은 어째서 게일이 자신을 찾아와 이렇게 있어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러주지 못 한 채 떠나야 했던 그날이 가슴에 박혀있는데. 마지막 인사조차 못 했는데, 이렇게 마주 앉아 있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어째서.
게일은 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자신이 다시 눈을 뜬 그때를 떠올렸다. 혼란스러운 자신에게 대답을 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정신 차리니 몸뚱이 없이 세상 속에 떨어졌다. 확신할 수 있는 무엇도 없었다. 지옥일까, 천국은 아닌데. 그런 고민은 잠시였다. 존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지옥은 아니구나. 그러나 자신의 욕심으로 존의 옆에 붙어있기엔 게일은 조금 두려웠다. 천하의 게일 클레븐이.


"내가 내 상태를 잘 몰랐어. 정신 차리니 사람들 틈에 있었는데 다들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더라, 불러도 대답 없고..주변을 보니 네가 있었는데 뭘 하기도 전에 음, 그러니까, 사라졌었어. 사실 나도 기억이 안 나. 그러다 문득문득 정신 차리면 네가 있는 근처였어. 이게 죽어서 꾸는 꿈인지 내가 귀신이 된 건지 몰라 그냥 네 주변을 떠돌고 있었어 널 보고 싶으니까 그런데..네가 나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좀..겁났어."

"겁났다고?"


"죽은 내가 네 곁에 머물면..너를 붙잡을까 봐."


"나를 붙잡는 게?"


"죽은 사람이 산사람에게 붙어 있는 게 좋진 않을 테니."


게일은 씁쓸하게 내뱉었다.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가 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지 예상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존의 옆에 있어서 존이 아프거나 고통스러워한다면 게일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먼발치에서 주변을 맴도는 걸 참을 수 없던 건, 게일 또한 존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자신이 떠난 후의 존이 무사한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기적인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게일은 다시 차음으로 돌아가도 존의 곁을 떠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존은 그런 게일의 대답에 속이 끓어올랐다. 자신에게 게일이 어떤 의미인데. 당장 게일을 끌어와 품에 안고 싶은 욕망이 세차게 일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흐릿한 게일의 형태만을 바라봐야 했다. 순간 게일이 피를 쏟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함이 섬뜩하게 되살아 나는 착각에 온몸이 잘게 떨려왔다. 존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세상에 그런..! 벅, 그거 알아? 난 네 환각이라도 보려고 하루하루를 살았어. 죽느니만 못 한 하루를 사느니 네 곁으로 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 거 같아? 목구멍에 음식이 넘어가는 내가 싫고, 밤이면 잠드는 게 괴로운데 결국 잠드는 내가 싫었어. 내가, 내가..살아있는 게 달갑지가 않았다고. 네 흔적이 하루하루 옅어지는 것 같은데. 그렇게 무력하게 너를 잊어갈까봐...죽으면 널 볼 수 있을까 한 생각까지 했었는데.."


"존, 그런 말 하지마! 네가 그러면 난...."


게일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존은 아차 싶었다. 게일에게 쏟아부을 말이 아니었음에도 속에 쌓이고 고여버린 감정이 그대로 튀어나와버렸다. 당장이라도 게일이 도망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벅 내가 실언했어.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그냥, 그만큼 힘들었어. 네가 옆에 없었으니까.. 절대 네가 날 나쁘게 만들 거라 생각하지 마. 넌 어떤 상황에서도 내 유일한 좋은 거니까."


"응.."


게일은 바짝 마른 입술을 잘근거리며 애처롭게 바라보는 존의 눈빛에 겨우 대답을 들려주었다. 게일도 알고 있었다. 상처가 아물기에는 상황도 환경도 너무나 열악했다. 열악하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래도 존은 버텨주었다. 사실 그거면 괜찮았다. 게일은 꼬질한 얼굴로 실수한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한 존의 모습을 보자 지금 상황도 잊고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수용소에 오기 전 어느 날도 존이 저런 얼굴을 했었다. 저런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니. 이런 나의 유일한 좋은 거. 그건 너인데 존 이건. 게일은 존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존."


"왜, 벅?"


"널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


존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얼굴에 저 안 어딘가부터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목이 메였다.


".........나도.."


존과 게일은 독방 한켠에 붙어앉아, 비록 온기를 나누진 못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밤을 지세웠다. 존은 한기가 도는 방의 온도 속에서 느껴질리 없는 게일의 온기를 느끼며 어느 때보다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에 감사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제 숨을 끊어 지옥으로 떨어졌다면 분명 게일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 둘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사실 게일은 잠과는 상관없었으니 존 만 밤을 꼴닥 지세운 거였지만. 그래도 좋은지 연한 새벽 햇살이 들어와 환해진 독방 안에서 게일의 얼굴을 확인한 존은 퉁퉁 부은 눈으로 비실비실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게일은 마주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지난 얼마간 멀리서 지켜본 존은 표정이라곤 없이 하루하루를 시들어가고 있었다. 죽은 이가 곁에 머물러 혹여 존에게 죽음이 드리워질까 두려워 갈피를 못 잡는 사이 존을 더 힘들게 만든 것 같아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허락되는 한 자신은 존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게일이 마음을 다잡는 순간 다시 사라질 것을 직감했다.


"존, 나 사라질거야."


"뭐?!"


잔잔한 평화 속 갑작스러운 게일의 발언에 존은 기겁하며 반문했다. 게일은 존의 뺨을 감싸듯 손을 뻗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놀라지 말고, 말했잖아 나도 모르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고. 나타날 땐 불시에 정신이 드는데 사라질 땐 이상한 감각이 있어. 몸이 붕 뜨는 듯한..금방 돌아올게 잠 좀 자고 있어. 알았지? 바로 네 곁으로 올 테니까."

 
"....알았어. 꼭 와. 바로 와. 빨리 와."


"알았어. 굿나잇 버키."


"다녀와 벅...진짜 갔네."


존은 담배연기처럼 사라져가는 형체를 보며 잠시 자신을 진정시켰다. 게일이 다시 오기로 약속했으니 믿어야 했지만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마치 꿈같은 만남에 존은 홀로 남은 방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난밤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머리가 뜨거웠다. 지난밤 확신했다. 존은 이제 상관없었다. 자신 앞에 나타난 게일이 진짜 영혼이라도 혹은 확실하게 미쳐버린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의 형태라도. 자신 앞에 있기로 한 약속. 그 약속이면 충분했다. 후우..깊은 호흡과 함께 존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






게일을 만났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존은 이 수용소에 온 이후 가장 깊게 잠들었다. 약속한 대로 바로 존의 곁으로 돌아온 게일은 그런 존의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 그간 자는 모습을 훔쳐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안심한 얼굴로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악몽에 시달리듯 앓거나 새벽이 지나도록 잠들지 못하거나 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조금 더 일찍 왔어도 좋았을걸. 조금은 후회했지만 이제는 함께할 순간을 생각하기로 했다.
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사이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됐다. 지난밤 소모한 감정을 채우기엔 조금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곁에 돌아와 존을 옆에서 지키던 게일은 독일어로 툴툴거리는 경비병이 들고 온 식사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존을 깨워야 했다. 


"존 일어나, 식사 나왔어."


흠칫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존은 눈뜨자 앞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일을 마주했고 퉁퉁 부어 다 떠지지 않는 눈을 해서는 빙긋 웃었다. 그저 꿈이 아니었구나. 존은 부스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세차게 머릴 털며 정신을 불러왔다. 게일의 뒤편 바닥을 보니 문틈으로 밀어넣어진 감자 두덩이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보다는 게일이 먼저였다. 존은 다 잠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진짜 왔네."


"너랑 한 약속은 지켜야지. 그런데 좀 문제가 있어."


"뭐가?"


잠에서 다 깨기도 전에 문제가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은 존은 혹시 게일의 상태에 관한 일이까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게일이 예상치 못 한 대답을 하자 잠시 고장 난 듯 멈춰야 했다.


"네 식사에 경비병이 손을 댔어. 감자랑 같이 나온 삶은 계란이 없어졌다고. 개자식 감히 네 식사를 훔치다니."


게일은 진심으로 분노하며 독방문을 노려봤다. 식사가 나올 때 게일은 문밖의 경비병이 들고 있던 배식판을 확인했다. 분명 감자 두덩이와 계란 한 알이 있었는데 문틈으로 밀어 넣은 것은 감자뿐이었다. 다급하게 경비병을 쫓아가 보니 그 손엔 출처가 확실한 달걀 하나가 쥐어져있었다. 게일은 싸늘한 눈으로 그 뒤통수에 짧은 욕설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존은 게일이 욕설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걸 보곤 당황했다. 자신을 걱정해 주니 뛸 듯이 기뻤지만 굶기는 것도 아니고 수용소에서 이런 소소한 이벤트야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여기 들어오게 된 것도 비슷한 경우였고 이전 수용소에서도 이런 일을 같이 겪기도 했고. 억울했지만 포로였기에 참아야 하는 건 조금 당연한 일이었다. 할 수 있다면 당장 쫓아가 멱살잡이라도 할 듯이 양 주먹을 꽉 쥐는 게일의 모습에 오히려 존이 얼르듯 게일의 시선을 끌어왔다.


"게일, 난 괜찮아 그래도 감자는 나왔잖아. 이게 어디야."


"난 안 괜찮아. 네 몰골이 어떤데. 너 이리로 오면서 그나마 나오는 감자도 순무도 잘 안 먹었잖아. 얼마나 살이 내린지 알아? ...안되겠어. 존, 너 나가면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알았어?"


무언가 결심한 게일의 결연한 모습에 존은 눈치를 보다 슬금슬금 바닥에 놓인 감자를 가져와 얼른 먹으며 알았다며 고갤 끄덕였다. 싫다고 할 생각도 없었지만 감히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가 마치 전대에 있던 날의 모습 같았다. 존과 마찬가지로 수용소에서 이전만큼 기운을 내지 못 했던 게일이었다. 존은 그런 게일의 모습에 목 막히는 감자를 씹으면서도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감자를 먹다 웃는 존의 행태에 눈썹을 치켜뜬 게일은 고갤 절레절레 젓다 결국 입꼬리를 올려 버리고 말았다.








마옵에 존게일 칼틴버


 
2024.04.21 02: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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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화내는거 넘 든든하고 사라지는 거 넘 슬프고ㅠㅠㅠ
[Code: 0c56]
2024.04.21 11:18
ㅇㅇ
모바일
무의식적으로 존 곁으로 돌아오는 게일 게일의 환각이라도 보기위해 하루하루 버틴 존ㅜㅜㅜㅜ 존나 슬픈데 그래도 둘이 그렇게라도 같이있으니 덜 불안해보여서 다행이기도하고ㅜㅜㅜ
[Code: ae81]
2024.04.24 18:10
ㅇㅇ
모바일
센세가 또 와줬어!!!!!!!!!!! 게일 갑자기 말없이 사라지는거 아니고 미리 알수있어서 뭔가 다행이야ㅜㅠㅠㅠㅠ 존게일 다시 만나서 행복해
[Code: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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