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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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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케니는 의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의심은커녕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탈이었다. 어떻게 보면 경찰관으로서 매우 큰 단점이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케니는 누군가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싫어했다. 그런 케니가 스스로에 대해서는 의심이 많았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걸까. 저 사람을 향해 느끼는 이 감정이 진짜 사랑일까. 흔히들 심장이 두근거리면 그걸 사랑으로 오해한다고 하는 것처럼, 그냥 내 심장이 워낙 경박스럽고 주책맞아서 시도 때도 없이 두근대는 것일 뿐,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번 이런 삽질 대장정 끝에 망한 연애의 신으로 거듭나는 케니였다.

 

이제 저 그만 주고 형사님 먹어요.”

밖인데 형사님이라고 하지 말자. 자기랑 멀어지는 기분이야.”

... 아직 좀 어색한데...”

우리 한 침대에서 잔 사인데. 그럼 여보는 어때? 입에 착 붙지 않나.”

 

저 사람이 지금 진지한 건가 싶어 케니가 테리를 판단하는 눈길로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테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얼굴이 또 너무 잘나서 케니가 눈을 돌리며 커피잔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동료들과도 자주 오는 곳이었다. 여기서 그중 누구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 점심에 이 둘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할 광경이었다. 그걸 인식한 순간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졌다. 이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었다. 테리가 원하는 것과 케니가 원하는 것이 과연 같은 것일까? 혹여라도 두 사람이 같은 걸 원해서 잘 된다고 쳐도 현실적으로 사내 연애인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가치 판단 문제까지 곁들여지자 머리까지 지끈거리며 아파졌다. 아니 왜 하필 반해도 동료 파트너로 함께 일해야 하는 형사를! 하루 늦은 판단에 케니가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자기야, 지금 뭘 씹는 거야.”

 

케니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혼란을 기민하게 읽은 건지 테리가 장난인 듯 말을 걸었다. 케니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포크를 내려놨다.

 

갑자기 입맛이 사라졌어요.”

 

민망하게도 접시에는 시럽의 흔적만 겨우 남아있었다. 케니의 시선이 자동으로 테리의 반 이상 남아있는 팬케이크를 향했다. 그는 어제도 버거를 반쯤 먹다 말았고 지금도 저랬다. 지난밤 악몽을 꾸며 인상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릴 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케니의 얼굴이 절로 시무룩해졌다. 이 건들건들해 보이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형사가 어쩌면 가벼운 게 아니라 가벼운 척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테리 너머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다. 케니가 다시 테리를 바라봤다. 테리 역시 케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눈이 완전히 초록색이네.”

악몽 매일 꾸는 건 아니죠.”

 

동시에 내뱉은 말이 서로 너무 다른 종류의 것이라 둘이 잠시 멍해졌다. 그러다가 곧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나갈래? 날씨 좋다.”

좋아요.”

 

빠르게 의견일치를 본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테리한테 버거를 얻어먹었으니 이번 점심은 케니가 계산하려 했지만 지갑을 꺼내기도 전에 테리가 먼저 일어나 케니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이미 정갈하게 펼쳐놓은 지폐가 물컵 아래 있었다.

 

... 아닌데, 제가 계산할 건데요.”

귀엽네, 그런 생각도 하고.”

 

가볍게 무시당한 채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 오후가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여전히 알딸딸한 기분이었다. 연애 고자답게 케니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걷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건 테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테리 먼로가 저런 길 잃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또 처음 본 케니가 신기해하다가, 설마....

 

형사님 지금 어색하죠.”

? 뭐가?”

 

말귀도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 보니 더 이상했다. 나란히, 어색하게 둘 사이 요상한 거리를 두고 걷는데 볕도 좋고 적당한 바람도 좋았다. 둘은 말없이 화창한 날씨를 음미하는 척 걸었다. 그러다가 케니가 우뚝 멈춰 서자 곧 테리도 같이 멈췄다. 케니에게 또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그건 인내심이 없다는 거였다. 케니는 참지 않았다.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궁금한 것도 못 참았다. 좀 참고 기다리면 좋으련만, 특히나 이런 어색한 순간을 더욱 못 견뎠다.

 

이제 가셔도 돼요. 점심 사주셨으니까.”

?”

 

일순간 테리가 멍한 얼굴로 미간을 구겼다. 그러다가 케니가 운동화 끝을 보도블럭 위로 툭툭 치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걸 보고 나서야 뭔가를 알아챈 듯 한숨을 쉬었다.

 

자기야, 내가 좀 서툴러, 이런 거에.”

이런...?”

데이트를 거의 안 해봤거든.”

형사님이요??”

 

놀란 케니가 눈을 깜빡이며 되묻다가 곧 테리의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닫고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케니가 눈을 굴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그냥 형사님 집 가도. 괜히 이런 거 하면서 공 안 들여도 돼요.”

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

 

이번엔 테리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케니가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는데 테리의 표정이 묘했다.

 

가자. 내가 또 한 요리 하거든. 토끼밥 해줄게.”

진짜요?”

 

방금 식사한 사람답지 않게 그 말에 케니가 힘차게 고개를 들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테리가 케니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둘러 안았다. 테리의 차를 타고 이번엔 케니도 모를 지역으로 갔다. 허드슨강을 끼고 드라이브를 하나 싶더니 어느새 다시 테리가 사는 블록이 나타났다. 큰 마트 앞에 차를 댄 테리가 정말로 요리할 생각인지 카트를 잡았다. 집에서 요리는커녕 전자레인지도 거의 안 돌리는 케니로서는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커다란 키의 덩치 큰 사내가 정장 차림으로 익숙하게 식재료들을 골라 카트에 담고 있었고 케니는 그 뒤를 어정쩡한 걸음으로 따랐다.

 

토끼 너 그 복숭아 로션 갖고 왔어?”

 

가방을 들고 나오긴 했는데 출근용 가방이 아니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케니의 뺨이 새빨갛게 익었다. 요리해준다고 부른 테리였지만 사실 그의 집으로 가는 목적은 이미 그 전에 정해져 있던 거나 다름없었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또다시 불안감이 케니를 짓눌렀다. 아랫입술을 꾹꾹 씹으며 양옆으로 줄지은 물건들을 감흥 없이 바라봤다. 마트 안의 모든 사람들이 왠지 둘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테리가 뭘 샀는지도 모른 채 카운터를 통과하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케니가 다시 어두워진 얼굴로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는지 테리가 피식 웃었다.

 

잡아먹힐까 봐 덜덜 떠는 거야? 토끼는 안 잡아먹어. 나 채식주의자거든.”

 

이상한 드립에 케니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테리를 쏘아봤다. 그래도 어이없는 농담과 그의 미소에 긴장이 좀 풀렸다. 대체 뭘 걱정하는 건지 자기도 몰랐다. 맨날 몸 사리다가 뭘 해보겠다고. 케니가 뒤늦게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빨리 가요. 배고프니까.”

너 팬케이크 클리어한 게 한 시간도 안 됐-”

분위기 깨지 마요.”

아니 뭔 분위기-”

아 진짜.”

 

케니가 짜증을 내며 팔짱을 끼자 테리가 항복의 제스쳐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어제에 이어 두 번째 와보는 그의 집이라고 또 그새 익숙해졌다. 휑하기까지 한 커다란 거실, 침실로 이어진 긴 복도, 그 코너에 화장실까지. 묘한 감상에 빠져 있던 케니가 테리가 쇼핑해온 것들을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두자 그 옆으로 가 섰다. 테리가 봉투에서 물건들을 꺼내는데 그 안에서 정말로 케니가 쓰는 로션이 나왔다. 브랜드는 물론이고 아예 같은 상품으로. 한번 본 걸로 눈썰미 좋게 찾아낸 게 용했다. 이 사람 진짜 형사구나...... 내가 도망가면 지구 끝까지 따라오겠지. 달라기 무섭게 잘하던데...

 

옷 편한 걸로 갈아입게 줄까?”

지금 이거 편한데.”

 

케니가 청바지와 후드티 차림의 제 옷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테리가 혀로 입안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는 걸 깨달은 케니가 괜히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나는 좀 갈아입어야겠다.”

 

하긴, 테리는 수트 차림이었다. 그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며 케니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정말로 강렬할 정도로 따가웠다. 옷을 벗는 건 테리인데 왜 부끄러운 건 자신인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설마 여기서 벗을 건가. 왜 저래. 몸 자랑이야 뭐야. 온몸이 근육이면 다냐고-

 

너 지금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거 알아?”

....”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케니가 등을 돌려 소파로 가 앉았다. 테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복도로 사라졌다. 눈만 꿈뻑대던 케니가 결심한 듯 일어나 테리의 뒤를 따랐다.



테리케니 슼탘

2023.03.20 17: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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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이야ㅠㅠㅠㅠㅠㅠㅠ센세 이제 지하실로 가자 괜찮아 편하게 해줄게
[Code: 16b2]
2023.03.23 09:54
ㅇㅇ
모바일
케니 쓰는 로션도 집에 두고 데이트는 뚝딱 거려도 할건 다 하는 테리케니 ㅜㅜㅜㅜㅜ
[Code: 0b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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