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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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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케니는 초조할 땐 다리를 떠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하루 동안 들어가지 않은 집 생각도 났고, 이따가 보고해야 할 서류 작성도 골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케니가 다릴 떨게 하는 주범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테리였다. 탕비실에 누가 내려놓은 커피를 마시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다리를 떨었다. 주말의 당직 근무라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정오까지만 시간을 채우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오류가 있었다. 테리는 케니의 근무가 6시에 끝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에게 혼이 팔려서 오전만 근무하고 끝난다는 말을 깜빡하고 말았다. 케니가 더 거세게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파트너가 되고 제일 먼저 한 게 전화번호 교환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케니는 테리의 번호를 알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12시에 끝난다고 말할 담대함이 케니에겐 없었다. 그런 걸 할 줄 알았다면 진작 연애의 왕이겠지. 으아.... 데스크 위로 휴대폰을 빙빙 돌리다가 힘 조절 실패로 저 멀리 휘익 날아가고 말았다. 놀란 케니가 날아간 휴대폰을 주우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의자는 뒤로 우당탕 나가떨어졌다.

 

주말에 일한다고 시위냐, 맥클레런.”

 

저 뒤에 앉아 몽타주 작성을 검토하던 선배가 혼자 야단법석인 케니를 향해 기어코 한마디 했다. 케니가 멋쩍게 씨익 웃고는 휴대폰을 주워 액정을 확인했다.

 

너 배고프지, 이리 와봐.”

 

선배가 부르는 쪽으로 가니 종이봉투를 건넸다. 안에 슈가파우더가 잔뜩 묻은 도넛이 두어 개 있었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들여다본 케니가 입맛을 다시다가 내려놓았다. 도넛은 웬만하면 자제하려고 노력중이었다. 경찰하고 도넛 농담이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케니는 부임하고 단 석 달 만에 도넛 때문에 체중이 조금 늘었다.

 

안 먹을래요. 두 시간만 참으면...”

 

끝내주는 팬케이크를 먹을 건데. 케니의 거절에 선배가 놀란 얼굴을 했지만 케니는 다시 테리한테 어떻게 퇴근 시간을 알려야 할까 고민하느라 바빴다. 흐아아아아. 괴상한 소릴 내며 다시 자리에 앉아 일단 급한 보고서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케니는 몰입이 빠른 편이었고 금세 일에 빠져 테리 생각을 잠시 저 멀리 밀어둘 수 있었다. 보고서 작성을 거의 끝낼 즈음 주머니에 넣어놨던 휴대폰이 진동을 했다. 깜짝 놀란 케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또다시 망할 의자가 뒤로 나뒹굴었다. 선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케니가 먼저 눈웃음치며 사과를 했다. 그때까지도 지잉거리는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문자도 아니고 전화였다. 모르는 번호에 의아하던 것도 잠시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경찰관에게 휴대폰 번호란 것은 공공재나 다름없었다.

 

맥클레-”

토끼, 안녕.”

 

..... 눈을 동그랗게 뜬 케니가 선배를 피해 탕비실로 뒷걸음질 쳤다. 내가 번호를 잘못 저장했던가! 테리의 번호를 저장했지만 그에게 전화할 일도, 전화 받을 일도 없었다. 놀란 케니가 다시 휴대폰 화면의 번호를 확인했다.

 

여보? 듣고 있어?”

 

아니 이 무슨....

 

형사님, 이 번호 뭐예요.”

뭐긴~ 이 테리 먼로님의 개인 번호지. 토끼 너는 영광인 줄 알면 돼.”

....”

보고서는 다 썼어? 짧고 간결하게, 육하원칙에 따라-”

다 썼고요. 6시 아니라 12시에 끝나요.”

.”

그렇다고요...”

 

전자레인지에 비친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간 것이 맘에 안 들어 케니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낮게 웃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데 그게 그렇게 듣기 좋을 줄이야. 큰일이다 큰일이야.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케니가 소리 없는 괴성을 질렀다.

 

알았어. 그럼 끝나고 집에 가 있어. 1시까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

 

온몸을 베베 꼬며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케니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번엔 케니가 먼저 테리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기도 전에 테리가 받았다.

 

벌써 보고 싶어서?”

그건 아니고요. 저희 집이 어딘지는 아세요?”

.... 나 형사잖아.”

... .”

 

전화를 끊고 케니는 이 새로운 번호를 테리 먼로(개인)이라고 저장했다. 자리로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하고 시계를 쳐다보며 다리를 떨고 있는 케니를 딱하게 여긴 선배가 무려 25분이나 먼저 퇴근할 수 있게 허락했다. 케니는 탈의실로 가 세탁소에 맡길 유니폼들과 옷들을 챙기고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집은 멀지 않았지만 어젯밤 가본 테리의 집하고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햇볕에 선글라스를 쓰려다가 테리가 비웃던 게 생각나서 도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덕분에 오만상을 쓰고 운전을 해야 했다.

 

집에 도착해 머리까지 감고 옷도 갈아입으려고 봤는데 갑자기 옷들이 죄다 학생 같다고 느껴졌다. 설마 테리가 주말에도 그런 정장을 입고 다니진 않겠지 싶어 제일 좋아하는 주황색 무늬가 들어간 후드티를 입었다. 거울 앞에서 그새 자라난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잠재우려고 용쓰는데 문자가 왔다.

 

준비되면 나와

 

빗을 내려놓은 케니가 창가 쪽으로 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 정말로 테리가 입구에 서 있었다. 창틀을 꾹 쥐고 케니는 고민을 했다. 들어오게 해서 차를 대접하는 게 예의인 걸까. 그래도 대선배님이고 어제 그의 집에서 신세 진 것도 있는데. 그러다가도 너무 앞서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다. 내가 막 자기 꼬시는 줄 알면 어떡해. 근데 케니 맥클레런, 너는 진짜 무슨 생각인 거냐. 네가 꼬실 수나 있고? 조그마한 머리통에 그 세 배는 될 넓은 어깨를 내려다보며 케니가 내적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걸 알기라도 하듯 그 순간 테리가 올려다 봤고 케니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으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다가 다시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창가로 다가서니 테리가 환하게 웃으며 긴 팔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고민한 순간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케니가 가방을 들고 후다닥 내려갔다.

 

내려가니 테리는 오늘도 정장 차림이었다. 평소 서에 출근하는 착장처럼 쓰리피스는 아니었지만. 단추 두어 개 푼 셔츠차림이지만 수트인 건 여전했다. 오늘은 그의 눈동자 색과 잘 어울리는 네이비색 핀스트라이프 수트였다. 뭐야.... 케니는 컨버스에 청바지, 그리고 후디를 입은 제 차림을 내려다보며 입꾹꾹이를 했다.

 

형사님은 옷이 다 그래요?”

, 억울한 건 나야. 이건 뭐.... 남들이 보면 내가 너 용돈 주는 사이인 줄 알겠네.”

남들 신경 쓰는 분이었어요?”

얘는 잘 나가다 저렇게 독을 쏘네.”

 

진심인지 테리가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근데 그와 맞춰주려도 케니야말로 옷장에 죄다 이런 옷들뿐이었다. 테리가 고개를 저으며 기대서 있던 차에서 몸을 떼어내며 차 문을 열어주는데, 어라, 평소 타고 다니는 그 차가 아니었다. 케니가 의심스레 팔짱을 끼며 차를 훑어봤다.

 

이거 누구 찬데요.”

누구 차긴, 내 차지. 어제 그 차는 타기 싫다며. 어차피 그 차 가다가 퍼진 적도 있고 정리할 때가 됐긴 했어.”

 

차에 올라타며 케니가 안전 벨트를 당겼다. 차에서 새 가죽 시트 냄새가 났다.

 

번호도, 차도, 다 직장용이 따로 있어요?”

우리 자기가 의심이 많네.”

 

식당으로 가면서 테리가 음악을 트는데 그가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부드러운 재즈여서 의외였다. 케니는 음악에 집중했다. 테리가 방금 태연하게 내뱉은 자기라는 호칭을 못 들은 척 안간힘을 쓰며. 식당에 도착해서도 테리는 제법 보통 사람처럼 굴었다. 이게 마치 아주 평범한 두 동료의 점심 식사인 것처럼. 어제 저녁 버거 이후로 뭘 제대로 못 먹은 케니가 팬케이크가 나오기가 무섭게 메이플 시럽을 크게 두 바퀴 둘렀다. 그걸 쳐다보는 테리의 눈이 커다래져 있었다. 놀란 얼굴은 저렇구나. 사실 테리가 놀라는 걸 처음 봤다. 사건 현장에서 별 흉흉한 꼴을 보고도 태연하던 그였다. 조금 머쓱해진 케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단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산처럼 쌓인 팬케이크를 나이프로 댕강 잘라 입에 넣으니 눈이 절로 스르륵 감겼다. 테리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와 너 진짜 잘 먹는다.”

원래 이렇게 잘 안 먹는데...”

 

요즘 들어 상체에 붙은 살이 은근 콤플렉스인 케니가 괜히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살이 좀 붙으면 요상스럽게도 가슴하고 팔뚝에 들러붙는 게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아냐 아냐. 탐스럽게 먹어서 나도 군침이 싸악 도네.”

근데 왜 안 드세요.”

팬케이크에 군침 도는 게 아니라.”

형사님 저 손에 나이프 든 거 보여요 안 보여요.”

 

케니의 나이프가 그 순간 타이밍 좋게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그걸 본 테리가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케니는 되려 테리의 웃는 모습에 새삼 반했다. 진짜, 맹세컨대, 살면서 가까이서 본 사람들 중 제일 잘생긴 인간이었다.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려니 테리가 자기 몫의 팬케이크를 잘라 헤에 벌어져 있는 케니 입에 넣어줬다. 케니가 입안 가득 달콤하고 말캉한 것을 우물대며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망했다. 이번엔 진짜 사랑이었다.




테리케니 슼탘
2023.03.14 15: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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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졸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케니가 바라보는 테리 텍스트만으로도 나도 사랑에 빠지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5ae]
2023.03.14 16:48
ㅇㅇ
모바일
케니 귀엽고 테리 설레고 아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073]
2023.03.14 20:14
ㅇㅇ
모바일
내센세 ㅠㅠㅠㅠㅠㅠㅠㅠ 안그런척 하려고 노력하지만 자기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는 케니 진짜 너무 커여워 ㅠㅠㅠㅠ 테리가 툭툭 던지는 토끼 여보 자기에 심장 덜컹이면서도 못들은척 말돌리는것도.. 테리가 한 말 은근 신경쓰여서 테리가 보지도 않는데 선글라스 안쓰는 것도 깜찍해 미쳐 ㅠㅠㅠ 토끼케니 한입에 와구와구 하고 싶다 ㅠㅠㅠㅠㅠ
[Code: 52ed]
2023.03.14 20: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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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시선에서 바라보는 테리 진짜 너무 설레자너 ㅠㅠㅠㅠ 테리 유죄 먼로 ㅠㅠㅠㅠㅠㅠ 집으로 데리러오고 차도 바꾸고 핫케이크도 잘라서 먹여줬으면 책임져야 되는거 아니냐 ㅠㅠㅠㅠ 토끼 책임져라 ㅠㅠㅠㅠ
[Code: 52ed]
2023.03.17 01: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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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이번엔 진짜 사랑이었다.

ㅠㅠㅜㅜㅜ구ㅏ여워ㅠㅠ
[Code: c512]
2023.03.22 19: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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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최소 슼탘대 테리케니과 학과장ㅠㅠㅠㅠ
[Code: 84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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