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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18:52
전편: https://hygall.com/611747037
몇 시간이 지나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로건은 뒷머리를 창문에 기댄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진 듯, 그는 미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웨이드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으스스한 침묵을 깨려는 듯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곤 곁눈질로 로건을 흘끔거렸다.
“죽은 듯 자네.” 웨이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길게 뻗은 도로는 점차 비어 갔고, 비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차창 너머로 회색빛 하늘이 맑아지며 찬란한 석양빛이 비쳐들었다. 그러나 날씨가 맑아져도 여전히 차 안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웨이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히터를 켰다.
“오늘은 일찍 쉬자.” 웨이드는 작게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그도 지쳤다. 로건이 잠에서 깨기 전에 방을 구해 편히 눕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차는 서서히 도시로 접어들었고, 웨이드는 주변에 모텔을 찾으며 속도를 줄였다.
잠든 로건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모텔 방으로 옮기겠다는 웨이드의 결심은 이내 차가 멈추자마자 깨졌다. 로건이 부스스 눈을 뜨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도착했어?”
웨이드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깼네. 도착은 무슨, 캐나다가 그렇게 가까운 줄 알아?”
“그럼 왜 멈춰.”
“좀 쉬자고. 쫓는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웨이드는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에 순간 말끝을 흐렸다. 로건이 또다시 찰스를 떠올릴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로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로건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나와.”
걱정과는 달리 그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고, 웨이드는 그 모습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로건은 비가 머금었던 공기가 아직 축축한 땅 위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주변은 고요했고, 맑아진 하늘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웨이드는 로건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며 그를 바라봤다.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도 어쨌든 앞으로 가는거니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방 안은 바깥과는 달리 온기가 가득했다. 작은 히터가 구석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로건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몇 가지 없는 짐을 풀었다. 겉옷을 벗어 침대 위로 휙 던지고, 천천히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웨이드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들어가도 돼?”
로건이 피곤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거 허락받고 들어왔다고.”
웨이드는 피식 웃으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침대 옆 작은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며 앉았다. 로건은 그런 웨이드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침대에 털썩 몸을 눕히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웨이드는 로건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며칠 전보다 더 야위어 보였다. 마치 몸에 걸린 옷마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빠진 것 같았다.
“…괜찮아?”
웨이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한 마디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단순히 몸 상태를 묻는 게 아니었다.
“응.”
로건이 팔 아래에서 짧게 대답했다.
웨이드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의자에 기대어 로건의 고요한 숨소리를 들으며 방 안에 맴도는 무거운 기운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 그럼. 나 갈게. 옆 방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웨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로건을 보았다.
“…그래.”
항상 로건이 하던 말을 자신이 하고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웨이드는 로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힐끔거리고 나서 조용히 방 밖으로 나섰다. 바로 연결된 옆방으로 들어가 벽에 귀를 대고 로건의 기척을 다시 한번 느껴보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벽에서 귀를 떼며 웨이드는 문득 투덜거렸다.
“싸구려 방 주제에 방음은 더럽게 잘 되는군.”
이내 홀로 쓰기엔 조금 큰 것 같은 방에 적막이 찾아왔고, 웨이드에게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여기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웨이드는 침대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은 흐린 구름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찰스. 그렇지 않아요?
머릿속으로 찰스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로건은 잘 이겨내고 있나 봐요.
그래도…
보고 싶네요.
창밖으로 비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웨이드의 얼굴에 드리운 생각의 그늘을 비추었다.
방에 불을 켠 채 잠들었던 웨이드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퍼뜩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을 때, 노크 소리는 이미 더 급해져 있었고 간간히 들리는 로건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웨이드!”
한참 잠들어 있던 탓에 로건이 부르는 소리를 처음엔 듣지 못했나 보다. 웨이드는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어, 가… 가고 있어.”
몸을 가누기 어려운 채 우당탕거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로건이 벌컥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눈빛은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너!”
로건이 웨이드의 어깨를 거칠게 붙들었다.
“왜, 뭐야. 뭐.”
당황한 웨이드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하지만 로건은 대답 대신 웨이드의 모습을 눈으로 이리저리 훑으며 웨이드를 꽉 잡고 성큼성큼 다가올 뿐이었다.
웨이드는 로건의 힘에 못 이겨 뒷걸음질치다 벽에 쿵 부딪혔다. 벽에 기대 선 채 약간의 통증에 눈썹을 들썩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 뭔데. 왜 그래.”
“여기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해. 전화도 안 받고!”
로건이 웨이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의 손은 웨이드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힘이 점점 더 세져 웨이드는 어깨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깜빡 졸았어… 걱정했어? 미안해.”
웨이드가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힐끗거리며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로건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웨이드는 로건이 자신의 어깨에 이마를 묻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로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웨이드는 놀라 멈칫했지만, 곧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 긴장을 풀었다. 로건의 웃음은 힘이 빠져 어깨를 들썩이는 듯했고, 웨이드를 움켜쥐던 손에도 서서히 힘이 풀렸다.
“어디 가지 마.”
로건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확실했다.
“그냥 여기 있어. 나도 여기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웨이드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조용히 로건의 손을 가볍게 붙잡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웨이드는 테이블 위에 어제 사놓은 술병 몇 개를 올려놓으며 한 병을 들어 로건에게 건넸다.
“…나 술 사놨는데. 마실래?”
로건은 한숨을 길게 쉬며 술병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술은 독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웨이드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로건은 달랐다. 그의 힐링팩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금, 술은 그의 몸과 정신을 흐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게 로건에게 좋을지 나쁠지는 웨이드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로건이 필요로 한다면 굳이 막지는 않으려 했다.
로건은 잔을 비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병이 한두 개 비워질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점점 열기가 돌았다. 웨이드는 그를 지켜보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연달아 세 병째를 채워 넣는 로건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참지 못했다.
“적당히 마셔, 아저씨.”
웨이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힐링팩터도 지멋대로 작동한다며. 여기서 모양 빠지게 술 마시다가 죽고 싶어? 하다못해 비장미라도 있어야지.”
로건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느릿하게 웨이드를 쳐다봤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도 무거웠다.
“죽는 건, 뭐.” 로건이 잠시 말을 끊더니 웨이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도 여러 번 죽다 살아나니까 대단한 일 같지도 않더라.”
“그건… 진짜 우울하다.”
웨이드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이런 걸 걱정할 줄은 몰랐네.”
로건이 피식 웃었다.
“어이없게 죽는 건 내 관할이거든.” 웨이드가 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 털어넣으며 대꾸했다. “내 허락 없이 그런 짓 하지 마.”
로건이 잔을 다시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네 허락받고 죽지 뭐.”
그는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지만, 그 웃음 너머의 쓸쓸함을 웨이드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나한테 통보하는 것보다는 낫네.
웨이드가 생각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귀뚜라미 소리가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웨이드는 로건이 마지막 병을 탈탈 털어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병 안에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로건이 빈 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끝내 다 마셨네. 축하해.” 웨이드가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로건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동작은 둔했고, 휘청이는 모습은 위험해 보였다.
“워워. 어디 가려고?” 웨이드는 재빠르게 일어나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로건은 아무 대답 없이 발을 떼었고, 이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어어!”
순간적으로 웨이드는 그를 붙잡아 가까스로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온몸에 금속이 박힌 로건을 지탱하기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진짜… 더럽게 무거운 거 알아? 겉으로 보면 그냥 멀쩡한데 꼭 들면 무겁더라.” 웨이드는 로건을 부축하며 불평했다.
로건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그 개같은 금속 덩어리 때문이지.”
웨이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웨이드는 힘겹게 로건을 침대로 옮겨 눕혔다. 로건은 아까까지 웨이드가 졸던 침대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하, 이 아저씨 진짜… 고생시키네.” 웨이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했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로건의 시야에 웨이드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게 무슨 표정이야.” 로건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웨이드는 로건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저 로건의 깊은 숨소리와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만이 귀를 간질였다.
로건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웨이드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고, 술기운이 그의 눈동자를 희미하게 흐리게 했다. 그런 로건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웨이드의 눈을 천천히 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왜, 또 키스하게?”
웨이드는 잠시 얼어붙은 채 머뭇거리며 되물었다.
“뭐?”
로건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웨이드를 똑바로 바라봤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하고 싶어? 해줄게.”
"로건."
“대신… 그때처럼 세게…하자.”
웨이드는 로건이 뻗어오는 손을 단숨에 잡아챘다.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웨이드는 그 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 잠시 가만히 멈췄다. 차가운 손끝이 그의 뺨을 스치자 웨이드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괜찮긴 개뿔이 괜찮아.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로건의 손을 꼭 쥐었다.
“난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것 같은 사람 따먹는 취미는 없어.” 웨이드는 담담한 듯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건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표정에는 묘한 공허함과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로건.” 웨이드는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당신이 충분히 슬퍼하고, 그 슬픔에 익숙해져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해줄게. 그때는 뭐든.”
"..."
웨이드가 로건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고 고개를 기울였다. “대신,” 그는 미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이건 해줄 수 있어.”
웨이드는 조용히 로건의 옆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두 팔로 그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로건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굳었다.
그는 잠시 천장을 응시하다가 웨이드의 팔 안에서 천천히 등을 돌렸다. 웨이드는 그러한 반응에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히 그의 등을 감쌌다. 마치 자신이 그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로건의 표정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고,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을 웨이드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숨소리도 점점 고르고 안정되어 갔다.
웨이드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괜찮을거야. 괜찮아질거야.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자.”
두 사람의 작은 숨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알렸다.
웨이드로건 덷풀로건
몇 시간이 지나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로건은 뒷머리를 창문에 기댄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진 듯, 그는 미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웨이드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으스스한 침묵을 깨려는 듯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곤 곁눈질로 로건을 흘끔거렸다.
“죽은 듯 자네.” 웨이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길게 뻗은 도로는 점차 비어 갔고, 비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차창 너머로 회색빛 하늘이 맑아지며 찬란한 석양빛이 비쳐들었다. 그러나 날씨가 맑아져도 여전히 차 안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웨이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히터를 켰다.
“오늘은 일찍 쉬자.” 웨이드는 작게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그도 지쳤다. 로건이 잠에서 깨기 전에 방을 구해 편히 눕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차는 서서히 도시로 접어들었고, 웨이드는 주변에 모텔을 찾으며 속도를 줄였다.
잠든 로건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모텔 방으로 옮기겠다는 웨이드의 결심은 이내 차가 멈추자마자 깨졌다. 로건이 부스스 눈을 뜨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도착했어?”
웨이드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깼네. 도착은 무슨, 캐나다가 그렇게 가까운 줄 알아?”
“그럼 왜 멈춰.”
“좀 쉬자고. 쫓는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웨이드는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에 순간 말끝을 흐렸다. 로건이 또다시 찰스를 떠올릴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로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로건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나와.”
걱정과는 달리 그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고, 웨이드는 그 모습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로건은 비가 머금었던 공기가 아직 축축한 땅 위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주변은 고요했고, 맑아진 하늘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웨이드는 로건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며 그를 바라봤다.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도 어쨌든 앞으로 가는거니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방 안은 바깥과는 달리 온기가 가득했다. 작은 히터가 구석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로건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몇 가지 없는 짐을 풀었다. 겉옷을 벗어 침대 위로 휙 던지고, 천천히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웨이드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들어가도 돼?”
로건이 피곤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거 허락받고 들어왔다고.”
웨이드는 피식 웃으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침대 옆 작은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며 앉았다. 로건은 그런 웨이드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침대에 털썩 몸을 눕히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웨이드는 로건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며칠 전보다 더 야위어 보였다. 마치 몸에 걸린 옷마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빠진 것 같았다.
“…괜찮아?”
웨이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한 마디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단순히 몸 상태를 묻는 게 아니었다.
“응.”
로건이 팔 아래에서 짧게 대답했다.
웨이드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의자에 기대어 로건의 고요한 숨소리를 들으며 방 안에 맴도는 무거운 기운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 그럼. 나 갈게. 옆 방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웨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로건을 보았다.
“…그래.”
항상 로건이 하던 말을 자신이 하고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웨이드는 로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힐끔거리고 나서 조용히 방 밖으로 나섰다. 바로 연결된 옆방으로 들어가 벽에 귀를 대고 로건의 기척을 다시 한번 느껴보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벽에서 귀를 떼며 웨이드는 문득 투덜거렸다.
“싸구려 방 주제에 방음은 더럽게 잘 되는군.”
이내 홀로 쓰기엔 조금 큰 것 같은 방에 적막이 찾아왔고, 웨이드에게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여기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웨이드는 침대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은 흐린 구름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찰스. 그렇지 않아요?
머릿속으로 찰스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로건은 잘 이겨내고 있나 봐요.
그래도…
보고 싶네요.
창밖으로 비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웨이드의 얼굴에 드리운 생각의 그늘을 비추었다.
방에 불을 켠 채 잠들었던 웨이드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퍼뜩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을 때, 노크 소리는 이미 더 급해져 있었고 간간히 들리는 로건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웨이드!”
한참 잠들어 있던 탓에 로건이 부르는 소리를 처음엔 듣지 못했나 보다. 웨이드는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어, 가… 가고 있어.”
몸을 가누기 어려운 채 우당탕거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로건이 벌컥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눈빛은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너!”
로건이 웨이드의 어깨를 거칠게 붙들었다.
“왜, 뭐야. 뭐.”
당황한 웨이드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하지만 로건은 대답 대신 웨이드의 모습을 눈으로 이리저리 훑으며 웨이드를 꽉 잡고 성큼성큼 다가올 뿐이었다.
웨이드는 로건의 힘에 못 이겨 뒷걸음질치다 벽에 쿵 부딪혔다. 벽에 기대 선 채 약간의 통증에 눈썹을 들썩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 뭔데. 왜 그래.”
“여기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해. 전화도 안 받고!”
로건이 웨이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의 손은 웨이드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힘이 점점 더 세져 웨이드는 어깨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깜빡 졸았어… 걱정했어? 미안해.”
웨이드가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힐끗거리며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로건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웨이드는 로건이 자신의 어깨에 이마를 묻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로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웨이드는 놀라 멈칫했지만, 곧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 긴장을 풀었다. 로건의 웃음은 힘이 빠져 어깨를 들썩이는 듯했고, 웨이드를 움켜쥐던 손에도 서서히 힘이 풀렸다.
“어디 가지 마.”
로건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확실했다.
“그냥 여기 있어. 나도 여기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웨이드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조용히 로건의 손을 가볍게 붙잡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웨이드는 테이블 위에 어제 사놓은 술병 몇 개를 올려놓으며 한 병을 들어 로건에게 건넸다.
“…나 술 사놨는데. 마실래?”
로건은 한숨을 길게 쉬며 술병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술은 독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웨이드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로건은 달랐다. 그의 힐링팩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금, 술은 그의 몸과 정신을 흐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게 로건에게 좋을지 나쁠지는 웨이드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로건이 필요로 한다면 굳이 막지는 않으려 했다.
로건은 잔을 비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병이 한두 개 비워질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점점 열기가 돌았다. 웨이드는 그를 지켜보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연달아 세 병째를 채워 넣는 로건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참지 못했다.
“적당히 마셔, 아저씨.”
웨이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힐링팩터도 지멋대로 작동한다며. 여기서 모양 빠지게 술 마시다가 죽고 싶어? 하다못해 비장미라도 있어야지.”
로건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느릿하게 웨이드를 쳐다봤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도 무거웠다.
“죽는 건, 뭐.” 로건이 잠시 말을 끊더니 웨이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도 여러 번 죽다 살아나니까 대단한 일 같지도 않더라.”
“그건… 진짜 우울하다.”
웨이드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이런 걸 걱정할 줄은 몰랐네.”
로건이 피식 웃었다.
“어이없게 죽는 건 내 관할이거든.” 웨이드가 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 털어넣으며 대꾸했다. “내 허락 없이 그런 짓 하지 마.”
로건이 잔을 다시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네 허락받고 죽지 뭐.”
그는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지만, 그 웃음 너머의 쓸쓸함을 웨이드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나한테 통보하는 것보다는 낫네.
웨이드가 생각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귀뚜라미 소리가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웨이드는 로건이 마지막 병을 탈탈 털어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병 안에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로건이 빈 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끝내 다 마셨네. 축하해.” 웨이드가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로건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동작은 둔했고, 휘청이는 모습은 위험해 보였다.
“워워. 어디 가려고?” 웨이드는 재빠르게 일어나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로건은 아무 대답 없이 발을 떼었고, 이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어어!”
순간적으로 웨이드는 그를 붙잡아 가까스로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온몸에 금속이 박힌 로건을 지탱하기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진짜… 더럽게 무거운 거 알아? 겉으로 보면 그냥 멀쩡한데 꼭 들면 무겁더라.” 웨이드는 로건을 부축하며 불평했다.
로건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그 개같은 금속 덩어리 때문이지.”
웨이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웨이드는 힘겹게 로건을 침대로 옮겨 눕혔다. 로건은 아까까지 웨이드가 졸던 침대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하, 이 아저씨 진짜… 고생시키네.” 웨이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했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로건의 시야에 웨이드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게 무슨 표정이야.” 로건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웨이드는 로건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저 로건의 깊은 숨소리와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만이 귀를 간질였다.
로건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웨이드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고, 술기운이 그의 눈동자를 희미하게 흐리게 했다. 그런 로건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웨이드의 눈을 천천히 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왜, 또 키스하게?”
웨이드는 잠시 얼어붙은 채 머뭇거리며 되물었다.
“뭐?”
로건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웨이드를 똑바로 바라봤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하고 싶어? 해줄게.”
"로건."
“대신… 그때처럼 세게…하자.”
웨이드는 로건이 뻗어오는 손을 단숨에 잡아챘다.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웨이드는 그 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 잠시 가만히 멈췄다. 차가운 손끝이 그의 뺨을 스치자 웨이드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괜찮긴 개뿔이 괜찮아.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로건의 손을 꼭 쥐었다.
“난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것 같은 사람 따먹는 취미는 없어.” 웨이드는 담담한 듯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건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표정에는 묘한 공허함과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로건.” 웨이드는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당신이 충분히 슬퍼하고, 그 슬픔에 익숙해져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해줄게. 그때는 뭐든.”
"..."
웨이드가 로건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고 고개를 기울였다. “대신,” 그는 미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이건 해줄 수 있어.”
웨이드는 조용히 로건의 옆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두 팔로 그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로건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굳었다.
그는 잠시 천장을 응시하다가 웨이드의 팔 안에서 천천히 등을 돌렸다. 웨이드는 그러한 반응에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히 그의 등을 감쌌다. 마치 자신이 그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로건의 표정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고,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을 웨이드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숨소리도 점점 고르고 안정되어 갔다.
웨이드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괜찮을거야. 괜찮아질거야.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자.”
두 사람의 작은 숨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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