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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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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 날조, 노잼ㅈㅇ 문제시 칼삭

 

이곳에서의 이연화는 한량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해가 뜨면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었고, 깨어있는 동안에는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정원에서 화초를 가꾸곤 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연화를 관찰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자신도 한량과 다름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틈틈이 운기조식하며 내력을 단련하는 자신과 달리 내력을 회복하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연화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허구한 날 연화와 시간을 보내는 사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각주라고 불리는 사내는 이곳의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경박해 보였다. 무공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았고,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약초를 캐거나 화초를 가꾸고 약을 달이거나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그는 큰 쟁반을 들고 연화의 처소를 찾았다.

 

연화야, 바쁘지 않으면 이것 좀 먹어봐라.”

오늘은 또 뭘 만드신 겁니까?”

고구마로 경단을 만들어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잘하는지 너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의부님도 참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신 것으로는 부족하셨습니까?”

 

제가 충분히 맛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연화가 고개를 내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린신이 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자네도 거기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이리 오게.”

필요 없소.”

그러면 우리가 먹는 걸 구경만 하고 있을 텐가? 거 참, 희한한 청년일세. 연화 너는 도대체 저 청년이 뭐가 좋아서 집에 들인 게냐?”

저 인간이 좋다고 따라온 거지 제가 집에 들인 게 아닙니다.”

거 참, 처음으로 랑야산을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꼬드겨 오다니이래서야 내가 널 어떻게 양나라로 보내겠니.”

 

린신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비성이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이연화를 양나라에 보낸다는 게 무슨 뜻이오?”

특별히 의미라고 할 것이 있나? 말 그대로 연화가 양나라에 간다는 것이지.”

양나라에는 무슨 일로 가지? 혹시 저번에 배웅한 그 자 때문인가.”

장소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맞소. 그에게 전해줄 것도 있고, 그 자도 연화를 보고 싶어 하고.”

그 자는 이연화와 무슨 관계지?”

자네, 지금 나를 심문이라도 하는 건가?”

 

린신의 눈매가 일순간 매서워졌다. 비성의 얼굴에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눈에 린신은 그저 그런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산에서 은둔하며 살아가는 시골 의원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가 매서운 표정을 지은들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말이야이곳의 주인은 나이고 자네는 손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

 

린신이 부채 끝으로 비성의 이마와 가슴 부근의 혈을 압박하였다. 방심하던 찰나에 기습을 당한 비성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정신을 잃었다. 연화 역시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부님!”

말이 너무 많기에 잠시 기절시킨 것뿐이니 걱정 마라. 한 식경 정도 지나면 정신을 차리겠지. 이 무례한 이가 네 손님이기 때문에 내가 이 정도 수준으로 끝내는 줄 알고 있거라.”

 

이만 쉬어라, 린신이 언짢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한 식경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거라던 비성은 반 시진 뒤에야 의식이 돌아왔다. 서탁 앞에 앉아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연화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어? 생각보다 늦게 정신을 차린 걸 보니 그동안 많이 피곤했나 보네.”

내가 잠이 들었던가?”

그런 셈이지.”

하지만 나는 잠든 기억이 없는데. 혹시 한량 같은 사내가 나를 기절시킨 건가?”

그것도 맞는 말이야.”

너는 그 자랑 무슨 관계이지? 네가 저번에 배웅한 그 자와는 무슨 관계고? 각주라는 자가 너에게 사족을 못 쓰는 걸 보니 혹시 남총(男寵)인가

 

제법 진지하고 어이없는 질문에 연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 맹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얌전히 집에 갇혀 화초나 가꾸고 책이나 읽으며 살진 않겠지. 너는 강호를 누비고 사는 게 가장 어울리니까.”

 

네가 그 자에게 약점이라도 잡혀서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선심 쓰듯 덧붙인 말에 연화는 제 의부가 비성을 기절시킬 때 혈을 잘못 짚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제발 조용히 좀 있어.”

설마 온종일 방에서 수나 놓으면서 부군을 기다리는 게 네가 바라는 삶은 아니겠지?”

그런 게 아니래도.”

 

계속되는 이죽거림에 연화는 속이 꽉 막혀오는 느낌을 받았다. 연신 차를 들이켜자 비성이 가까이 다가와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게 아니라면 나와 같이 가자. 너는 예전처럼 세상을 떠돌며 자유롭게 살고, 네 내력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다시 겨루자.”

적 맹주 자네 참

도대체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 거지?”

 

연화가 손을 휘휘 젓자 비성이 덜컥 손목을 잡아챘다. 이내 비성이 미간을 좁히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력이 돌아왔군. 각주가 해독한 건가?”

그래.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 그분이 거두어 돌봐주셨다. 의술에 조예가 깊은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독까지 하셨더군.”

그래서 그에게 충성하기로 했나.”

나는 그저 그분을 의부로 모시는 것뿐이야.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족의 정을 느껴보고 싶더라고.”

나와 방다병으로는 부족했나?”

물론 자네들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행복했네. 벽차지독이 발작해 바보가 되었다 해도 그 기억마저 지우진 못했을 정도야. 하지만 자네는 자네의 삶이 있고, 다병에게도 그만의 삶이 있지.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무의미한 입씨름은 그만하자고, 연화가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일어난 비성이 연화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연화 너는, 네 길이 그렇게 쉽게 찾아지던가? 과거에 대한 미련이 쉽게 놓아지고 한 치의 회한도 남지 않던가?”

어려울 게 뭐 있겠어. 매 순간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고 내가 편안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지.”

쉬워서 좋겠군.”

그러니 적 맹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 이제는 구태여 강호 제일이 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연화의 말에 적비성이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연화는 그에게 붙잡혔던 손목을 슬쩍 빼냈다. 예나 지금이나 힘센 건 변함이 없군, 이따가 린 의부에게 가서 연고라도 얻어와야겠어, 오랜 시간을 붙들려 있던 것도 아닌데 손목이 꽤 얼얼했다.

 

그래, 적 맹주도 의무나 부담 같은 거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하게 살 때가 됐지. , 방에 가서 천천히 고민해보라고.”

아니, 오래 고민할 필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나야. 이연화 너와 있는 거.”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 정왕종주 비성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