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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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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눈을 떴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워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한참 동안 헤엄치다가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꿈속에서 지나온 시간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 같았고, 어떤 순간들은 너무 생생해서 진짜처럼 느껴졌지만, 깨어난 지금은 그것이 실재였는지 허상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오래된 책장에서 발견한 낡은 편지 같기도 했다. 잊힌 추억의 한 조각이 떠오른 듯한 기시감에 사로잡혀 그는 한동안 현실과 꿈 사이를 떠돌았다.
꿈속에서의 모든 장면은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듯 선명했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끝에 닿을 듯 아득하게 남아 있는 잔상은 그것을 떠올리려 할수록 희미해졌다.
흐릿한 시야가 선명해지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방이 다시 낯설게 느껴졌다. 깊은 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니 꿈과 현실이 겹쳐 보였다. 로건은 이쪽의 자신과 저쪽의 자신을 떠올렸다. 어쩌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언가를 느꼈다는 사실이고, 그 느낌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끊겨버린 꿈이 준 여운 속에 스며들어 있는 알 수 없는 감각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로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남아있는 여운을 뱉어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의 주인을 향해 날카롭게 돌아본 것도 잠시, 로건은 낯익은 얼굴에 금방 경계를 풀었다.

“로그.”
“로건… 정신이 드셨군요.”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제가 알고 나서는 꼬박 이틀을 주무셨어요.”
“그랬군….”
“그동안 스콧 선생님께서……”

로그는 로건을 조심스럽게 보며 말을 이었다.

“많이 우셨어요.”

그녀는 그 한 마디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데면데면한 정적이 이어졌다.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로건은 겨우 그래, 라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 깨어났다고 전해주러 갈게요. 그래도 되나요?”
“…내 허락은 구하지 않아도 돼.”

로그는 뒷걸음질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문틈 사이로 사라지고 나서, 로건은 허공에 떠도는 먼지를 보며 그가 기절하기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저께의 일인데도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선명한 것은 스콧과 맨살을 부딪쳤던 감각이었다. 닿아오는 체온이 익숙했다. 잠결에서도 익숙한 듯 다리를 벌리고 그를 맞이하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그에게 매달리며 조르던 자신은, 분명 낯선 이의 모습이었다. 숨이 섞이는 소리,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감촉, 그 모든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현실의 시공간에 오래된 필름이 투사되듯 강렬한 플래시백이 일어날 때, 고통과 함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그때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흐려진 틈을 타 드러난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감은 눈 속에서 스콧은 로건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입술을 귀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 말의 의미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뒤엉키는 감각과 기억들 사이에서, 로건은 단지 그의 존재와 함께 녹아들고 있었다.

로건은 순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는 나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낯섦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익숙한 체온 속에서 자신을 잃는 감각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뺨으로 뻗어오던 손길을 떠올리며 손바닥을 왼뺨에 대어 보았다. 갈 곳 잃었던 스콧의 손끝을 다시 이끌어 당기고 싶었다. 돌아온 것이냐는 질문에, 답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뒤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건.”
“……”
“로건.”
“…아.”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었나?”
“……그냥.”

로건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짙은 눈썹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드는 것을 행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는 모르던 과거의 기억들. 사실 잘 모르겠어.”
“나와 공유하는 기억이라면 기꺼이 증인이 되어줄 수 있는데.”

비스트는 그의 손에 비해 너무나도 자그마한 잔을 들어 홍차를 홀짝였다.

“기억의 증인?”
“그래.”

로건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는 행크의 이미 사라진 과거를 생각했다. 그는 2015년, 휴먼 메이저리티들의 손에 처형당했다. 인간과의 소통을 시도한 뮤턴트의 대표로서 인간들의 눈에 가장 ‘뮤턴트 같은’ 뮤턴트였다. 그의 죽음은 뮤턴트와 인간 사이의 마지막 교량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 상황을 급속도로 나빠졌다.
로건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행크는 딴 곳을 보고 있는 그의 눈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허공에 휘휘 흔들던 두꺼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고 나서야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행크는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뭐가 널 그렇게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하는 거지, 로건.”
“글쎄, 네 죽음?”

행크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너는 궁금하지 않아, 행크?“
“…….”

행크는 실소를 흘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모든 것을 잊었을지이라도 로건은 여전히 ‘로건’임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는 오랜 친구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로 마음 먹으며 도발과 같은 그의 질문에 응하였다.

“궁금해. 나는 어떻게 죽었지?”
“…….”

그러나 막상 질문을 받아치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까지 너무 그다워서 행크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초조해지는 마음을 달랬다.

“내 질문에 대답해주면 알려주지.“
”하하,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어도 알려줄 텐데.“

행크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로건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매 순간 이러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할 스콧을 떠올리며 속으로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그래, 궁금한 게 뭐지?”
“스콧이 언제부터 나를…….”

로건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아직 스콧은 진의 연인이자 약혼자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손에 죽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는 생각같은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스콧이 자신의 연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자식이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지? 사실 아직도 믿을 수 없어. 그 녀석과의 관계는.”
“그런가.”

행크는 로건에게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스콧의 향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일반 뮤턴트들은 알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향이었지만, 로건만큼 오감이 발달한 행크에게는 느껴졌다. 알파가 오메가에게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한 가지로 수렴했다. 명백한 점유 표시를 당하고도 믿지 못하는 로건을 보며 행크는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조금 망설였다. 곧 그는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 편 후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나도 모르네. 다만 학교 복도 한복판에서 고백을 했다는 것은 예전의 자네에게 들었었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군.”
”네가 학교를 떠나겠다고 했었을 때일 거야. 진짜 떠나려 했던 건 아니었고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뭔가가 있었던 것 같지만. 네가 떠나려 했던 날 스콧이 그걸 알게 됐거든.”
“…그랬군. 나는 뭐라고 했지?”
“그건 자네가 기억해내야지.”

로건은 행크의 눈을 바라보며 식은 차를 단숨에 마셨다. 달그락,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네 차례야, 로건.”
“음? 아.”

로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안 해줬잖아?”
“뭐?”
“어차피 안 궁금했던 것 같으니 몰라도 괜찮을 것 같은데.”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빨리 내 사무실에서 꺼지라고 했다. 역정보다는 짖궂음에 가까웠다. 로건은 마지못한 척 행크의 방에서 나온 후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조금 전까지 가볍게 떠올랐던 마음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정신을 다른 곳에 빼놓지 않으면 가슴은 추가 얹어진 것처럼 내려앉았다. 로건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로건이 기억해낸 자신은 스콧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교사로서 엄격한 편에 가까웠고, 개인적으로는 상성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끝도 없고 답이 없는 사념에 스스로가 잠식되어가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자비에 교수가 알았다면 그를 건져내 줄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은 버틸 만 하였다. 무엇보다 자비에는 로건이 자력으로 찾아내기를 바랐다. 그는 그 기대에 응하고 싶었다.


로건은 어느새 중앙 계단에 도착해 있었다. 계단 위를 바라보니 큰 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창밖으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가, 반대로 몸을 돌려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로건]

낯익은 목소리가 그를 붙들었다. 계단 아래에 스콧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내려온 해가 창문 너머로 스며들어 복도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몸이 그림자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현실이 아님을 직감했다.

[로건, 나는 당신에게 늘 만족스럽지 못한 학생이었죠.]
그런 적 없어.
[로건…떠난다는 게 사실인가요?]
아아. 난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지.
[…….]
이제 이곳을 지켜줄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내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로건.]
곧 작별인사를 해야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어.

뎅-
뎅-
뎅-

종소리와 함께 복도에 발소리가 울렸다. 느긋한 종소리와 대비되는 다급한 소리였다.
눈앞에 스콧의 붉은 눈동자가 들어찼다.

[가지 마세요.]

[좋아합니다.]

[사랑해요.]

[떠나지 마세요.]

뎅-
뎅-
뎅-




마지막 종소리가 희미해질 때 즈음 아이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로건은 그 자리에 서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받아도 되는 마음인가?


처음으로 고통 없이 떠오른 기억이었다.






* * *






로건은 스콧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 노력은 만 24시간을 못 채웠다. 학교에서 그를 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로건은 아예 자신의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바보같은 선택이었다. 스콧에게는 로건의 방 열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악몽을 꾼 후 찾아와 키스를 한 것도, 자고 있던 자신을 몰래… 온몸으로 깨운 것도 그 자식이었지.

“허락도 받지 않고 불쑥 들어와도 되는 거야?”
“허락은 예전에 받아뒀어.”
“들어와도 된다고 한 적 없어.”
“네가 기억을 못 할 뿐이야.”

스콧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열쇠를 보였다. 로건은 스콧의 손에 들린 열쇠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스콧은 비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억울하면 기억해 내.”
“조금은 떠올랐어.”

로건이 무심하게 던진 말에 스콧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뭐, 뭐가?”

그는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꼭 예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의 어린 스콧이 말이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어.”
“말해 봐.”

스콧은 진지하게 경청하기 위해 팔짱을 꼈다.

“너는 대체 내 어디가 좋다고…….”

그 팔짱은 로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풀렸다.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스콧…. 너 내 나이가 몇인지 알아?”
“모를 것 같아?”
“내가 처음 참전한 전쟁이 남북전쟁이더라. 몰랐는데 그렇더라고. 제기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딴 거 말고 다른 건 기억 안 났어?”
“났지, 네가 아기(baby)일 때 내가 데워준 우유를 마셨던 거.”
“그때 벌써 10대였거든, 아기가 아니라.”
“그래, 아이(kid)라고 해 두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대체 뭘 기억해낸 거야?”
“네가 나한테 다른 알파의 냄새가 난다고 화를 낸 것까지?”
“…….”

스콧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 다부진 턱 아래가 당겼다. 그는 손을 들어 바이저를 다시 고정했다.

“나는 너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문을 닫아버렸고.”
“…….”

스콧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닫아버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건은 그런 스콧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스콧,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땐, 그러니까 여기로 오기 전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여서 그저 너를 내 또래의 알파로, 그저 성가신 녀석으로 여겼지만……. 여기에서는 달라. 내가 다시 알게 된 너는…….”

로건은 뜸을 들였다. 그는 인상을 쓴 채 눈을 감았다. 그 잠시간의 침묵 동안 스콧은 눈꺼풀 안으로 숨어든 로건의 눈을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바이저 안에 비치는 눈동자가 매서웠다. 로건이 그의 눈을 한 번이라도 보려 했다면 뒷말을 내뱉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는… 너무 어려.”

파삭,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로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네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고 착각한 거야. 호기심과 흥미이거나, 그저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무슨 마음으로 널 받아줬는지 모르겠지만….”

스콧은 다시 한 번 바이저를 고쳐 썼다. 그의 관자놀이 위로 시퍼런 핏줄이 돋았다.

“네 또래에 좋은 애들 많잖아. 진이 있는데 왜….”

로건은 기어코 스콧의 인내심을 산산조각내고야 말았다. 무너져버린 기대가 송곳이 되어 박혔다. 로건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는 그저 종족 간의 갈등이 만들어낸 피해자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과 마음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이 기억하는 시간들이 소용돌이치며 전신을 태우는 듯하였다. 불길은 눈가를 뜨겁게 달구며 기어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터진 눈물이 턱밑으로 뚝 뚝 흘렀다.

“스콧, 너…….”
“거기까지 해요, 더 말하면 바이저를 던져버릴지도 모르니까.”
“대체 왜….”
“입 좀 닥쳐 줄래요?”

스콧의 떨리는 손끝이 바이저에 닿는 것을 본 로건은 그의 말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콧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그는 거센 파도 속에서 흔들리는 쪽배처럼 외롭고 위태로워보였다. 로건은 섣불렀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변명을 하려 했으나 그조차 부끄러워 입만 벙긋거렸다. 사과를 해야 할까 머뭇거리다, 어떻게 꺼내야할지 몰랐다. 로건은 나이를 내세운 것이 부끄러워 바닥만 쳐다보았다. 연륜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구식이 되고, 쌓인 것도 침식된다. 눈앞의 상대가 흘리는 눈물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로건은 그저 스콧이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한 걸음 다가가려 발을 뗐을 때, 그가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스콧은 마르지 않은 눈물자욱을 손등으로 훔쳐 없앴다. 그는 말없이 뒤돌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인사는 없었다.




그 일 후 로건은 스콧을 피할 수 있었다. 스콧은 로건을 찾지 않았고, 로건 역시 그를 찾아가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서로가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어색한 기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 정도였다. 이래서 사내연애는 하면 안 된다니까. 스톰은 가볍게 불평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두 사람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로건은 제가 이방인임을 실감했다. 스콧이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애를 썼다는 것도, 절실히 통감할 수 있었다. 그가 느끼는 이질감은 다른 시간선에서 온 직후 느낀 것과는 달랐다. 그때의 자신과 지금은 자신은 이미 다른 존재였다. 그러니 지금 느끼는 이것은 존재론적 부조화였다. 그는 태생적으로 누군가와 깊이 어울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다치거나, 죽거나, 떠났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늘 감정은 이성을 따르지 않으니 아는 것은 소용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있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로건.”

나지막히 부르는 목소리는 로그의 것이었다.

“그래, 로그.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학교 전체가 좀 바빴죠.”
“난 그저 지켜보는 게 다였지만.”

로건은 예전처럼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로그는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고 있는 아이로 느껴졌다. 그녀 앞에서 편해지는 것은 어쩌면 그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뮤턴트들 사이에서도 불편함을 친숙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동질성을 공유했다.

“로건, 요즘 왜 이렇게 뚝딱거려요?”

그녀는 로건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뭐가.”
“스콧 선생님 앞에선 자꾸 뚝딱거리잖아요.”
“뚝딱거리는 게 뭔데?”
“…됐어요. 싸웠어요?”
“남의 일에 너무 관심 가지지 마.”
“싸웠구나.”

로그는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두 사람 너무 붙어다니더라구요. 너무 붙어있으면 안 돼.”
“뭘 안다고, 꼬맹이가.”
“언제까지 저를 10대 가출청소년으로 대할 건데요. 알 건 다 아는데요.”
“평생. 그래, 그러시겠지.”
“로건.”
“왜.”
“그냥 불러봤어요.”

로건은 시덥잖은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운동장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농구에 끼워 달라 그래, 시가 피우고 싶으니까.”
“피우세요.”

로건은 대꾸하지 않고 로그를 쳐다봤다. 쉽게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입가에 가져가던 시가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볼일인데.”
“그냥… 곁에 있기?”
“나 좋아하니?”
“좋아하죠.”
“포기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나에겐 이미 알파가 있어.”
“…….”

로건은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 말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로건이 대꾸하지 않자 로그는 괜히 발 뒤꿈치로 흙에 대문자 X를 그렸다.

“사실 처음에 로건이 수업 못한다는 공지 봤을 때,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는데요.”
“뭐가 오는데.”
“어디 가시는 줄 알았어요.”
“어디로?”
“어디로든요.”

로그는 로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늘 어디론가 떠날 것 같았거든요.”
“…….”

로건은 말없이 로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침묵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뭐…이제는…….”

로그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사실 가셔도 상관없긴 해요.”
“뭐야.”
“돌아오실 거잖아요.”


로그의 말에 로건은 더욱 시가를 피우고 싶어졌다. 그는 또다시 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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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다..


오지콤버튼.jpg

이거 참고했다..
버튼 존나 누르는 로건


엑스맨 로건텀 맨중맨텀 스콧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