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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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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가 영국으로 돌아가고 프랑스에 뱅상 혼자만이 남았을 때 그는 숫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로를 싫어해 헤어진 게 아니어서 그런지 후폭풍은 더 거셌다. 엉망진창인 그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연애에 말을 않던 주변인들까지 한두마디씩 다 얹을 정도였다. 그를 아끼던 몇 어른들은 이 기회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넌지시 권하기도 했다. 
 
"...좋은 집안의 아가씨지. 결혼하면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게야. 나이 차이가 좀 난다는 게 흠이지만, 요즘 뭐 나이 차가 대수인가!" 
"......네."
 
어르신이 무작정 주선한 만남에 나간 것은, 상대방의 집안이 마음에 들어서도 무엇도 아니라,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외롭고, 때로는 긿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그 모습에 속절없이 빠져든 사랑이었다. 쉽게 잊힐 사랑이 아니었고,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영국으로 넘어간 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욱하는 심정에 만남을 수락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작고 수줍어 보이는 소녀였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아직 어른 태가 덜 나는. 그녀는 첫만남부터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떤 일을 하는지, 요즘에는 무슨 사건을 맡았는지. 시시콜콜 물어오는 것에 대충 넘기듯 대답했음에도 그녀의 질문은 그칠 줄 몰랐다. 약간은 귀찮은 마음에,
 
"-그래서 여긴 어릴 때부터,"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아. 허니. 허니 비에요. 하하, 웃기죠?"
"...이름 예쁘네요."
 
질문을 넘기려고 기억나지 않는 이름을 다시 묻고, 으레 하는 인사치레로 이름이 예쁘다고 하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갛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조금, 아주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을지도.
 
만나는 내내 살갑게 굴지 않았기에 저쪽에서 먼저 거절하지 않을까 했지만, 날을 잡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고민하다 결혼을 수락했다. 결혼하고 나면 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아주 멍청한.
상대방 쪽에서 결혼을 서둘렀기에 하루하루가 정신 없었다. 기존에 하던 업무도 다시 분담하고 잠깐 짬이 날때면 예식장이며 옷이며 정해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신혼여행 일정까지 빼려고 하니 몸이 열두개가 뭔가, 백개여도 모자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일을 쳐내듯 겨우 보내고 나니 어느새 결혼식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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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눈이 부시도록 환한 날이 그들의 결혼식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적당히 부는. 날씨마저 그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준다고 할 수 있을 완벽한 날. 
신부 입장 때 처음 본 아내의 드레스 차림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앳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화려한 드레스에도 기죽지 않은 아름다운 새신부가 그 자리에 있었다. 부케를 들고 입장하는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기뻐보이는 얼굴로 행복하게, 누가 봐도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그에게 환하게 미소지었다. 예의상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지만, 역으로 그제야 실감이 났다. 자신이 산드라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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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이어진 피로연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피로연을 위해 맞춘 옷으로 갈아입고 아내와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와중에도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눈치챈 것인지 허니는 아까와는 달리 예의상의 미소만 띠며 파티장을 돌아다녔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각자 신랑의, 신부의 무엇이 좋아서 결혼까지 하는지 짓궂게 물어볼 때면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멋있잖아요."하고 답했고, 그는 답변을 피했다. 그 때 그녀의 얼굴이 어땠는지...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의 내막을 아는 극소수는 무언가 수근거리는 것 같았지만 저렇게 떠드는 것도 잠시겠거니 무시하고 지나갔다.
 
 
신혼여행지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오는 휴양지라고 들었지만 신혼여행을 즐길 시간따위 없었다. 결혼식을 아무리 빠르게 올린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일들을 처리하며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신혼여행도 사실 취소하려다 겨우 온 것이기에 여유롭게 즐길 정신 따위 없었다. 심지어 오는 중에 피고인이 말하지 않았던 증거가 튀어나오면서 일이 더 복잡해졌지만 이미 이륙한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신혼여행지에서 머리 싸매며 고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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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소송이 있어서 좀 바쁠 것 같군요. 굳이 같이 다닐 필요는 없겠죠? 필요한 게 있으면 프론트에 말하도록 해요. 방은 저쪽 방을 쓰면 되겠네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게 말을 쏟아붓듯 하고 바로 숙소를 나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전화통화하고 자료를 확인하고 인쇄할 것도 많아 사실상 여행기간 내내 숙소 밖에서 지냈다. 마지막 날쯤 되어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는데 여기서 혼자 다니는 건 그 뿐인듯 했고, 하나같이 다 제 짝의 손을 잡고 허리를 껴안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혼자 다녔을 아내가 떠오른 것도 잠시, 산드라와 함께 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다 그녀 역시 이미 결혼했기에 부질없는 생각을 그만둔다. 
떠나기 전에야 다시 본 아내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 있는 슬픈 미소를.
 
 
그의 작고 어린 아내는 지치지도 않는지 데이트를 신청하고는 했다. 그의 사무실로 찾아올 때도 있었고, 학교 수업이 있을 때면 함께 식사를 하자며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아내가 지극정성이라며 아내를 치켜세웠지만, 한켠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녀와 결혼할 때 산드라를 잊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살다보면 그 마음이 잊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오판이었지만. 허니와 함께하는 생활이, 가끔 무작정 들이닥치는 그녀와의 일상이 익숙해지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항상 산드라가 있었다.
 
배터리가 닳지 않는 것처럼 그의 무신경함에도 직진하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말없이 그를 보러 오는 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들러야 할 때면 이유가 있었고 그 마저도 가능하면 그와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고 볼일을 봤다. 그녀가 뜸해진 원인을 몰랐기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때때로 산드라의 소식을 찾았고 그의 서재 한켠에는 그녀의 책이 꽂혀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아내에게도 산드라에게도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래서 조금씩 줄여나갔다. 구태여 먼저 산드라의 소식을 찾지 않았고 책장에 꽂힌 그녀의 책을 펼쳐보지 않았다. 아내가 식사를 제안하면 함께했고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도 늘렸다. 몸이 멀어져도 멀어지지 않던 마음을 일상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그렇게 살다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속부터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혼해요, 우리. 나... 더는 못 견디겠어요."
 
 
"무슨 노력이요? 가끔 시간이 맞으면 같이 아침 먹고, 저녁 먹고, 함께 사는 거요? 아직 우리가 각방을 쓰고 첫날밤도 보내지 않았다는 걸 당신 가족들이 알고는 있나요?"
 
 
"...괜찮은 척 하는 건 이제 그만 할래요, 그만하고 싶어요."
 
 
 
몰랐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거다. 그게 편하니까. 그렇게 미뤄두고 그녀에게 떠맡게 한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은 이야기하곤 했다. 몇 년 전, 산드라와 헤어졌을 때 모습이 이제는 안보여서 다행이라고. 결혼하고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그때는 그냥 '그런가?' 답하고 말았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엉망진창이던 그를, 진창에 빠져 빠져나올 생각도 않던 그를 구해낸 것이 허니, 그녀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그녀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녀는 그에게 지쳐버렸다.
결국 그가 모든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그르쳐버린 거다.
과거에 연연하며 현재의, 일상의 소중함을 놓쳐버린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꼭 첫만남때처럼 작고 어려보이는 그녀가 한번도 그의 앞에서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보이며 소리내어 울었다. 그에게서 떠나가려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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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미안,해요. 내가,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학교 수업은 각본집 보니까 뱅상이 대학에서 법학 수업하더라고 그 얘기임!
짤은 구글줍

스완너붕붕
뱅상너붕붕
추락의 해부

https://hygall.com/593881006
2024.05.12 14:25
ㅇㅇ
모바일
나쁘다 ㅠㅠ 이걸 어케해감하지 ㅠ
[Code: 94d1]
2024.05.12 15:27
ㅇㅇ
모바일
왜그랬어 뱅상 ㅠㅠㅠㅠㅠㅠ
[Code: ecec]
2024.05.12 17:34
ㅇㅇ
센세 필력이 너무 좋아요 가여운 허니... 뱅상은 죽어라 구르시오
[Code: fd9c]
2024.05.12 19:53
ㅇㅇ
모바일
ㅠㅠㅠ왜그랬어 진짜
[Code: 7b2f]
2024.05.12 21:38
ㅇㅇ
모바일
ㅁㅊ 이거 어떻게 해결할거야 뱅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얼른 어나더 숨참고 있을게요
[Code: f6dc]
2024.05.13 11:26
ㅇㅇ
모바일
뱅상 이제 어쩔거야ㅠㅠㅠㅠ
[Code: 2abf]
2024.05.15 06:45
ㅇㅇ
모바일
존잼탱 ㅠㅠㅜㅠ
[Code: b3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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