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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9 23:30
만원
짐을 거기다 놨다는 충격 때문에 션이가 사흘 동안 짐 풀지도 않고 그냥 둔 거 두청도 그냥 둠
피곤한갑다 할뿐임
피곤한건 사실인데 션이 생각보다 정리벽 심해서 원래 그럴 사람이 아님
설상가상 두청 누나 잠깐 놀러왔다가 아 짐 들였어? 하고 살펴보더니 아청 가구가 있어야 션이가 정리를 하지! 하고 가구까지 들여버림
가구요? 무슨 가구..
두청 누나 원래도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데 션이랑 자주 다니다 보니까 이제 션이 취향 다 알아서 션이 오기 전에 급하게 가구 다 들여놓고 대강 인테리어 해줬음
자 여기서 중요한건 원래 션이가 지내던 방에 침대가 빠졌다는 거임
침대 빠지고 거길 작업 공간으로 쓰라는 듯 그림이랑 회화용품 다 거기 넣어준 거
이쯤 되니 넋이 모두 털린 션이는 어디서 자요.. 하고 맹한 눈으로 두청에게 묻고 말았음
두청 원래도 본인이 커서 혼자 퀸사이즈 침대 썼는데 이번에 슈퍼킹으로 바꿨단 말임 (누나가)
자기방 침대 가리키는데 그게 끝임 뭐 설명 다 안함
원래 여기서 잤잖아요
너 그림그려야지
그건 그렇지.. 그림은 그려야함
션이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드디어 현실 감각을 잃고 말았음 이 상황에 수긍하고 두청이랑 같은 침대 쓰는 것에 동의해버렸음
슈퍼킹 침대는 정말 크구나 라고 생각함
두청은 이제 고민을 시작함. 뭐냐면 침대를 같이 쓰는 사이면 션이도 이제 알아야지... 애초에 그게 계획이긴 했지만 어어 하는 사이에 눌러 앉히긴 했는데 중요한 건 아직 연애를 안함 말도 안되는거지
저녁에 차 대놓고 같이 올라오는 데 집에 먹을 거 떨어져서 둘이 같이 편의점 가다가 비오겠지
션이 가방에 우산 들어서 같이 쓰고 가는데 션이가 우산 펼치니까 두청이 덤덤하게 뒤에서 받아 감
그리고 션이 쪽으로 기울여서 들어주다가 어깨 감싸고 자기 쪽으로 당김
먹을 거 사서 션이한테 니가 들어 이러더니 우산 들고 또 션이 붙잡고 가는 거임
두청 은근히 군것질 좋아함
션이가 안고 있는 봉투 안에서 과자 뜯어서 하나씩 집어 먹는 거. 그러더니 션이 입에도 하나 넣어줌
션이가 어깨에 과자 가루 다 떨어진다니까 세탁하면 되지 하면서 입에 또 하나 넣어줌 션
집 들어가서 보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두청은 다 젖었음 션이는 바지 밑단 조금 젖었을 뿐이고
씻고 나온다고 씻으러 가길래 사온 거 렌지에 넣어서 데우고 그러겠지
부엌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또 멍해짐 부엌이 익숙해졌다는 건 진짜 사는 곳이 됐다는 의미니까
션이 고민하느라 진짜 별로 못 먹었음 나중엔 보다 못한 두청이 입에 넣어주겠지
션이가 그 멍한 상태로 천천히 말 꺼내겠지 정말 풍랑과 급류에 휩쓸린 듯 여기까지 오게 됐으니까
팀장님 근데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면요
그말 밖에 안했는데 두청이 일어나서 션이 앞에 무릎 굽히고 앉음
길쭉한 사람이 몸 숙여서 그러니까 처음으로 두청이 올려다보는 그림이 됨. 션이 손 잡고 가만히 그러고 있다가 손 잡아서 손등에 자기 입술 꾹 눌러보는 거 입술.. 되게 뜨겁다.. 라고 생각함
씻고 올래?
그때는 민망해서 ㅇㅇ 하고 씻으러 들어갔는데 씻고 나서야 두청이 뭔 뜻으로 한 말인줄 알겠지...
션이 너무 말려서 요즘 정신 없음ㅋㅋㅋ
못 나가고 거의 십몇분을 그러고 있다가 주춤주춤 나가니까 두청 설거지 하고 있음
아 그냥 씻으라는 말이었구나 싶어서 그림 그리러 감 그냥 그림 그리고 싶었음
션이는 보통 유화그리던데 그날은 그냥 고양이 크로키만 함 고양이가 눈앞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님
두청이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션이 잠깐 이리와보라고 함
가니까 물어볼거 있다고 식탁 쪽으로 가는 거. 마주보고 앉을 의자가 거기 밖에 없긴한데
갔더니 앉기전에 끌어 당겨서 자기 무릎에 앉혀버림. 허리 감싸고 이러면 싫나? 하는거지 근데 그게 무릎에 앉힌 걸 묻는게 아니라 뺨 감싸고 뽀뽀하더니 가만히 쳐다봄 그러니까 뽀뽀하는 거 싫냐고 물어본거지 놀라긴 엄청 놀랐지만 싫은가? 싫나..? 이게 싫은 기분인가.. 하고 진짜 고민함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자기 입술 더듬더듬 만져보다가 기분 나쁘진 않은 거 같아서 아니라고 함
잘됐네 하더니 앞으로 안아들고 자러가자 하고 데려감 션이의 반응은 션이치고 좀 격렬했음
팀장님 저도 걸을 줄 아는데요
몹시 억울해보이는 션이의 얼굴을 보면서 두청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임
근데 두청이 션이의 진지한 불만에는 신경을 안쓰고 진지한척 고개만 끄덕이더니, 션이 손 잡으면서 사귀자고 함
이 사람이
나이 서른줄에
사람을 침대에 앉혀놓고
십대 애들마냥 한손 잡고 슬쩍 허공으로 눈 피하면서 사귀자고 함
만나보자 이런 말도 아니고 사귀자고
션이 이때 생각이 필터 안거치고 그냥 나옴
이미 사귀는 거 아니에요?
그래놓고 본인도 언제부터 아니 뭔소리야 이게.. 언제부터...? 하고 말해놓고 본인도 어이가 없음
두청이 다행이네 하고 껴안고 잤는데 뭐가 다행인지도 모르겠고 뭐야 무슨 일이지 2
하고 션이도 그냥 잠 뭔가 이미 되게 늦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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