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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6 19:32



사랑의 본질은 추모와도 같다. 모든 사랑은 이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넌 내 인생에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과도 같았다. 갑작스럽게 내 앞에 바람처럼 나타나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

 

“로버트 플로이드,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는데 우리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따뜻한 봄의 어느 날,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고백한 네가 귀여워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응, 좋아.'라는 말과 함께 너의 손을 붙잡았다.

 

“제이크, 그거 알아? 너의 손은 정말 따뜻하고 부드러운걸."

 

내가 그렇게 말하자 너는 햇살처럼 웃어왔지. 너의 웃음은 내가 너를 사랑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그래서 네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어.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가끔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하길 나는 몰래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소원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돼, 제이크, 안돼. 제발...”

 

나는 무너져내려가는 너의 몸을 붙잡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나 대신 총에 맞은 너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하얀 눈밭에 붉은 꽃처럼 피었다.

 

“나랑 같이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정원에 꽃도 심으며 함께 살자고 했잖아.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제이크. 응? 제발.”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너의 손을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너의 숨은 끊어질 것만 같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네 손을 세게 잡는 수밖에 없었다.

 

“베이비, 너는 가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살아.”

 

‘살아’라는 너의 말은 꼭 내게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난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나는 너랑 같이 갈거야.

 

“부탁이야. 어서 가."

 

그 순간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너의 숨이 멎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던 너의 손을 놓았다. 대신 일어나서 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고 뒤를 돌아 하얀 눈밭을 달렸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달렸다.

 

눈물은 계속 흐르고, 매서운 겨울바람은 얼굴살을 에여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지만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까.

 

두껍게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져 몇 번을 넘어져도 나는 차마 뒤 돌아볼수 없었다. 왜냐면 네가 이제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서,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달렸다.

 

 

 

 

 

 

 

 

 

네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후, 나는 담담히 삶을 이어나갔다.

 

르무어로 돌아와서는 근무를 했고, 평소처럼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으며, 너와 같이 가던 서점이나 마트도 자주 들렀었다.

 

이따금씩 주위의 동료들은 내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항상 내 대답은 “괜찮아.”였다.

 

정말 나는 괜찮았다. 네가 없어도 나는 살아갔으니까.

 

아니. 괜찮을 리 없었다. 네가 없어도 너의 흔적은 어딜 가도 있었으니까.

 

몇 번이고 무너져 내리는 나의 마음에 나는 너의 곁으로 가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나는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네가 어떻게 살려낸 나의 목숨인데, 내 목숨을 너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덕분에 나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목숨을, 그의 사랑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살아갔다. 이것이 너에게 돌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이었다.

 

 

 

너의 계급이었던 소령을 끝으로 나는 제대를 하였다. 다치거나 아파서는 아니었다. 어렵게 올라간 자리이지만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일이 생겼으니까. 그리고는 르무어를 떠나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정원에는 계절별로 피는 꽃들을 심었다. 고민이 있거나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정원에 나가 꽃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리고 이제 군인이 아닌 나는 자라나는 미래들을 가르치고 싶어져서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네가 없는 날들은 너무 느리게만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너를 생각하며 살아갔다.

 

어때? 제이크. 이 정도면 나도 꽤 열심히 살아간 거 맞지?

 

 

 

 

*

 

 

 

내 머리카락이 흰머리로 뒤덮여지고 주름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무렵, 나는 홀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지루한 병원생활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병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창문에 비쳤다.

 

그건 바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였다.

 

아,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네가 살린 나의 목숨이 이제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구나.

 

 

“로버트 플로이드.”

 

“안녕, 제이크. 저승사자가 된 모습도 꽤 잘 어울리네.”

 

“로버트 플로이드.”

 

“네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꿈에도 한번 안 나올 수가 있어?”

 

“... 로버트 플로이드.”

 

“나도 울지 않는데 네가 울면 어떡해.”

 

네가 내 이름을 세 번 부르자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의 몸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너에게 다가가 너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데리러 왔어, 베이비.”

 

“응. 어서 가자.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네가 나한테 고백해왔던 어느 봄날처럼 나는 활짝 웃으며 너의 손을 붙잡았다. 기억처럼 너의 손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승사자가 된 거야?”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 덕분이야. 그래서 저승자가 되었어."

 

행맨이던 내가 저승사자가 되다니, 정말 나랑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살린 탓에 그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난 거구나. 그것을 깨닫자 내 눈앞은 눈물로 흐려졌다. 얼마나 네가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저승사자가 된 덕분에 너의 마지막을 내가 함께 할 수 있어 기뻐.”

 

내가 왜 우는지 알아차렸는지 너는 알아차렸는지 단단한 팔로 안았다.

너는 이런 상황에도 나를 위로하는구나.

나는 너의 품에 파고들었다. 이렇게 영원히 든든한 너의 품속에만 있고 싶어.

 

“나도 사랑해, 제이크.”

 

사랑의 본질은 추모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한 너의 사랑에 추모를 한다.

 



 

전편 : "아저씨, 저승사자 맞죠?"

 



 

참고가 된 짤


IMG_7694.png

 

 

행맨밥 파월풀먼

2024.05.26 20:55
ㅇㅇ
모바일
개같이 오열한다 ㅠㅠㅠㅠㅠㅠ 밥은 남은 시간을 무슨 생각 하면서 보냈을까 ㅠㅠㅠㅠㅠ
[Code: 8f5b]
2024.05.26 21:32
ㅇㅇ
모바일
아악 ༼;´༎ຶ ۝ ༎ຶ༽ 안구건조증 치료됨ㅠㅠㅠㅠ이게 사랑이다ㅠㅠㅠ모든 삶을 서로를 위해 살았네 둘다ㅠㅠ
[Code: 570d]
2024.05.26 21:54
ㅇㅇ
“그래도 저승사자가 된 덕분에 너의 마지막을 내가 함께 할 수 있어 기뻐.”
너는 이런 상황에도 나를 위로하는구나.


미치겠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로버트가 제이크랑 약속한대로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가서 꽃 심고 사는 모습 보면서 눈물 좔좔했는데 저승사자 제이크 등장하자마자 혹시..? 했는데 맞았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때 그 죽음마저 로버트를 대신해서 자신을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abd]
2024.05.26 21:56
ㅇㅇ
제이크는 로버트를 위해 죽었고 로버트는 제이크를 위해서 살았네... 아 이랬는데 다음 생에서 겨우 고딩인 로버트랑 저승사자 제이크를 다시 만나게하는건 반칙이죠ㅠㅠㅠㅠㅠㅠㅠ 모든 사랑이 이별을 전제로 한다지만 이거는 너무 너무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abd]
2024.05.26 23:13
ㅇㅇ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0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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