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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23:36
주인님이 바로 드실 수 있게 식탁을 차릴 시간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그렇다고 청소가 쉽거나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주인님은 바닥에 머리카락이 돌아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셔서 항상 신경을 써야했다. 게다가 가구를 공유하는 둘 중 한 명이 거의 항상 무릎을 꿇고 사는 만큼 바닥이 더러우면 곤란했다.
늘 그렇듯 열심히 쓸고 닦으며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게임도 하고 영상도 보라고 마련해주신 것이었지만 주인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용도 외에는 쓰고 있지 않은 물건이었다. 화들짝 놀라 얼른 꿇어앉아 두 손으로 받았다.
“비니.”
애칭으로 부르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음성에 웃음기가 있었다. 기분이 무척 좋으시다는 뜻이었다.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뱅상이 “네, 주인님.”이라고 착실하게 대답했다.
“저녁 메뉴 벌써 정했어? 피자 사가도 돼?”
식사에 대해서 소유물의 의견을 묻는 주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님은 이런 분이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했는데도 아직도 이런 점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가슴께에 간질간질하니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뱅상이 미소를 지었다.
“벌써 수프 끓였는데요.”
“정말?”
“아니요, 농담이에요. 사오세요.”
“혼나아.”
뱅상이 작게 웃었다. 뭐라고 조금 더 투덜거리더니 허니가 물었다.
“스파게티랑 핫윙 중에 어떤 거 할까? 사이드.”
보통의 주인이었다면 이렇게 묻지도 않으셨겠고, 만약 물으셨어도 주인님 뜻대로 하시라고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이 정석이었으리라. 하지만 뱅상의 주인님은 그랬다가는 “내가 마음을 정했으면 물어봤겠냐고.”라며 짜증을 내셨다. 뭔가를 골라서 진지하게 대답해야 했다.
“핫윙 좋아요.”
“치즈 스틱은?”
뱅상이 순간적으로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번 것은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을 알아서였다. 주인님 본인은 자각이 없으신 것 같았지만.
“네, 사오세요.”
상자를 열자마자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피자를 나눠먹었다. 식을까봐 뛰어오셨다고 했다. 웃었다.
다 먹고 주인님이 씻으시는 동안 피자 상자며 쓰레기를 정리했다. 착실하게 받아오신 쿠폰을 냉장고에 붙였다. 오늘 기분이 진짜 각별히 좋으신 게 맞는지 욕실에서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살찔 것 같아. 내일 나랑 강가 좀 걷자.”
수건만 두르고 나오신 주인님이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디카페인 커피를 끓이려고 물을 올린 뱅상이 찬장을 부스럭거리며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살이 찔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아니 그래서 가기 싫어?”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산책은 좋아요.” 라고 덧붙이며 머그잔을 꺼내는 뱅상의 뒷모습에다가 대고 허니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안 봐도 보이는 것 같아서 뱅상이 미소를 눌렀다.
“일 가져오신 건 아니죠? 영화 보시겠어요?”
“요새 뭐 재밌대?”
“즐겨찾기 해놓은 게 좀 있어요.”
“무서운 것도 있어?”
소파 밑에 이불을 깔아놓고 둘이 꼭 붙어서 담요를 덮었다. 잘 보지도 못하면서 무서운 장르를 좋아하는 주인님은 엑소시즘 영화를 고르시고서 놀랄 만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움찔거렸다. 저러다 커피를 기어이 쏟으실 기세라 뱅상이 말없이 머그를 부드럽게 빼앗아 커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래도 모르시는 게 완전히 몰입 중이신 것 같았다.
몸을 바짝 붙이시길래 조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안았다. 혼내시기는커녕 주인님이 허리를 감은 손 위에 조그만 손을 얹고 꾹 잡으셨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샴푸의 복숭아 향기가 났다. 영화가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고, 뱅상이 간절하게 생각했다.
뱅상너붕붕 스완아를로너붕붕 스완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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