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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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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ㄱㅅㄷ


"아가야... 너 여우야?"

반려견이 사람과 말이 통할 리 없지만 개를 가족으로 맞아 본 사람은 알 거다. 가끔 정말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닐까 싶은 반응을 할 때가 있었다. 산책가자고 하면 신나서 목줄을 물고 오고, 밥 먹자고 하면 후다닥 밥그릇 앞으로 뛰어온다. 하지만 그건 가족과 애착이 쌓이고 가족에게 익숙해진 다음이고. 게다가 너 여우야? 같은 말은 반려견이, 아니 동물이 알아듣기에 좀 난이도가 있는 말일 거다. 덕분에 강아지, 아니 수의사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여우라는 이 아기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부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그 커다란 눈과 순진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잠시 아기여우의 작은 얼굴에 제 얼굴을 대고 마구 부비던 노부는 아기여우와 눈을 마주치고 빙긋 웃었다. 

"오늘 오리고기 먹을까? 오리고기도 맛있어. 먹어볼래?"

노부는 여전히 노부의 손가락을 핥으면서 노부를 바라보고 있는 아기여우를 소파에 앉혀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느새 소파에는 강아지들이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다치지 않도록 반려견용 계단도 준비돼 있었다. 노부가 몇 주 전에 사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우면 계단은 필요가 없었나. 노부는 예전에 동물 다큐에서 여우들이 눈바닥 속으로 머리부터 점프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땅속에 사는 설치류를 사냥하기 위해서라든가. 청각인가 후각인가가 아주 발달해서 눈이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도 사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뒷다리 힘이 좋고 꼬리로 균형을 잡을 수... 아니지. 집 안에는 땅 속에 사냥감도 없는데 집 안에서 사냥을 하면 안 되잖아. 아무래도 여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여러 가지 걱정도 들어서 노부는 아기여우에게 오리고기를 삶아주고 노부도 오리로 저녁을 먹은 다음 욕실에 들어갈 때 핸드폰을 챙겼다. 반려동물은 은근히 자기 이야기를 알아들으니까, 아기여우를 안고서 아기여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노부는 욕조에 물을 받으며 욕조에 걸터앉아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츠지무라."
[어이, 바보 씨.]
"진짜 여우야?"
[그래, 인마. 그걸 못 알아보고 개 취급하고 있냐.]
"그럼 밥은 어떻게 줘야 돼? 소고기랑 닭고기랑 오리고기랑 계란, 연어, 채소 같은 거 삶아서 줬는데, 괜찮나?"
[괜찮아. 여우는 잡식성이니까. 그냥 반려견처럼 생각하고 줘도 아무 문제 없어. 근데 키울 거야?]
"어, 요즘 날도 추운데 데리고 있어야지. 나가면 얼어죽어."
[요즘 여우 불법으로 키우는 사람들 많아. 누가 불법으로 반려동물로 키우려다가 힘들어서 버린 걸 수도 있어. 괜찮겠어?]
"밥도 그냥 강아지처럼 주면 된다며. 한 달 정도 됐는데 사고도 안 치고 잘 지내는데 힘들 게 뭐 있겠어? 진짜 버려진 거면 왜 버려졌는지 모를 정도로 얌전하고 깨끗해."
[일단 병원에 데려와 봐. 도시에서 발견됐으면 버려진 불법 반려동물일 수도 있지만, 날이 추워서 도시로 나온 야생동물일 수도 있어.]
"추운데 왜 도시로 와. 숲에서 어디 동굴 같은 데 들어가거나 땅굴파겠지."
[추우니까 먹이가 없잖아. 바보야. 자꾸 멍청한 거 드러낼래?]
"여우는 겨울잠 안 자?"
[안 잡니다.]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자꾸 멍청한 질문을 해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자기도 전쟁이나 분쟁, 자연재해 등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시장이 요동치는 걸 어떻게 분석하고 예측하는지 전혀 모르면서, 시장동향 분석이나 그외 경제지표나 신제품 관련 신기술 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동물에 대해서 좀 잘 안다고 되게 바보 취급하네. 기분은 상했지만 이 새끼여우가 정말 불법으로 길러지다가 버려진 거라면 합법적으로 데리고 살기 위해 여러 가지 도움도 받아야 할 녀석이라 노부는 말을 아꼈다. 게다가 당장 부탁할 것도 있었고.

"너 우리집 한 번 안 와 줄래? 너무 추워서 데리고 나가기 좀 걱정되는데. 겁도 많은 것 같고. 애 아픈 데는 없는지 와서 좀 봐 줘. 털도 깨끗하고 입이나 눈도 깨끗하고 아픈 데는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만약에 불법으로 키우다 버려진 거고 이 여우를 합법적으로 키우기가 쉽지 않다면 데리고 나가기 꺼려져서 조심스럽게 묻자, 츠지무라는 흔쾌히 대답했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다.]
"고마워."

노부를 바보 취급하며 투덜투덜하긴 했지만 츠지무라는 동물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하고 예뻐했던 노부와는 사이가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고, 노부가 여우에 관해서 잘 모르니까 동물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 화가 난 모양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츠지무라가 병원에 상태를 계속 봐야 할 환견이 있어서 한동안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환견이 퇴원하면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다. 노부는 그제야 전화를 끊고 빠르게 목욕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갔다. 아기여우는 노부가 사용하는 바디클렌저나 샴푸의 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따뜻한 기운을 폴폴 풍기면서 나오는 노부가 좋은 건지 노부가 목욕을 마치고 나면 늘 주위를 맴돌았는데 이젠 노부가 한결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인지 아예 노부의 품 안에 들어와 골골거리고 있었다. 노부가 귀 뒤나 머리를 긁어주고 있었더니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가늘게 뜨고 골골거리는 얼굴이 정말 만족스러워 보였다. 

여우라고... 그러고보니 진짜 여우처럼 생겼네. 예쁘기도 하지, 내 여우. 

여우를 길러도 되는 건가 싶기는 했다. 츠지무라가 여우를 '불법으로' 기르다가 버린 걸 수도 있다고 말한 걸 보면 여우를 반려동물로 기르려면 허가 절차가 복잡한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 노부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이 어린 아기를 다른 데로 보낼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에 반려동물로 기를 수 없는 녀석이라 경찰이나 관려기관에서 동물원 같은 데로 보내면 어떡해? 얼마 전에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끔찍한 동물원 시설 관련 소식이 떠올라서 소름이 끼쳤다. 모든 동물원이 그따위로 엉망진창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역시 보낼 수 없었다. 





아기여우는 완전히 마음을 열었는지 다음 날도 노부가 퇴근해서 와 보니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와서 노부의 다리에 조막만한 머리를 비비며 어서 오란 인사를 했다. 

"아가."

노부가 작은 여우의 머리를 살살 긁어주며 부르자, 눈을 감고 노부의 손길을 즐기고 있던 아기여우가 고개를 들어서 노부를 바라봤다. 

아가, 너 형아랑 살래?

노부가 말없이 보고 있기만 하자 커다랗고 까만 눈에 다시 불안과 경계가 차오르는 걸 보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노부는 작은 머리통에 살짝 입술을 부딪치며 여우의 머리에 제 뺨을 부볐다. 

"오늘 연어 구워줄까? 전에 연어 맛있었지? 어때?"

어린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연어든 뭐든 지금은 노부가 놀아주는 게 좋은 것처럼 노부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조그만 이빨로 오물오물하는 수준이라 아프지도 않았지만. 이 어린 여우는 노부에게 정말로 마음을 열었는지 연어를 구워서 작게 잘라서 주자 찹찹 먹는 동안 예전처럼 계속 고개를 들어서 노부를 경계하는 일도 없어졌다. 잘라준 연어를 다 먹고 물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집 안을 뽈뽈 돌아다니고 있는 어린 여우를 잡아서 양치를 시켜줄 때도 얌전히 입을 벌려주고 있었고. 그리고는 양치를 다 해주고 나자 상큼한 향이 나는 혓바닥으로 노부의 입술을 찹찹 핥아 주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아가, 형아랑 같이 살자."

여우는 여전히 조그만 혓바닥으로 노부의 입술을 찹찹 핥고 있었지만 진짜로 이제 우리 둘이 같이 살자는 말에 어쩐지 활짝 웃느라 눈이 조금 더 작아진 기분이었다. 같이 살자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그래서 너무 기쁜 것처럼. 커다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접고 웃는 게 너무 귀여워서 노부는 조그만 혀를 내밀고 있는 입에 쪽쪽 입을 맞췄다. 

"형아가 아가 잘 돌봐줄게. 우리 아가도 형아 잘 돌봐 줘. 알았지?"

사실 정말로 조막만한 강아지, 아니 아기여우가 사람을 돌봐주기는 힘들겠지만 반려동물은 그런 게 있었다. 힘들고 지친 날 그저 뽀뽀 한 번만 해 줘도, 그냥 품에 안고만 있어도, 아니 그냥 평화롭게 자는 걸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생기게 하는 힘.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알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따뜻하고 까칠한 뭔가가 노부의 입술에 닿아오는 느낌에 눈을 떠 보자 조막만한 아기 여우가 노부의 가슴에 올라와서 뒷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짧은 앞다리를 한껏 뻗어 앞발을 노부의 뺨에 올리고 입술을 열심히 핥아서 깨워주고 있었다. 

"아가, 형아 깨워준 거야?"

아기여우는 노부가 따끈따끈한 아기여우를 품에 안고 머리에 마구 입을 맞추자 얌전히 치댐을 참아주다가 노부가 일어나자 가볍게 통통 침대를 내려갔다. 그리고는 뭐가 그리 바쁜지 총총 거실로 나가 버렸다. 

"진짜 돌봐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조막만한 아기가 깨워주겠다고 열심히 뽀뽀를 해 준 게 귀엽지 않을 리가 없어서 노부는 서둘러 씻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아기여우가 리모컨을 눌러서 TV를 켜 놨는지 노부가 매일 아침 보는 아침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한 달 넘게 열심히 노부를 관찰하기만 하더니 노부가 아침마다 TV를 켜는 것도 봐 둔 모양이었다. 노부를 깨우고 TV를 켜놓은 아기여우는 열심히 노부를 돌보느라 힘들었는지 자동급수기로 가서 찹찹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가가 아침부터 열심히 형아 돌봐줬으니까 오늘 맛있는 거 줘야겠네. 뭐 먹고 싶어, 아가?"

노부가 물을 마시고 사뿐사뿐 다가오는 아기여우 앞에 앉아서 물어보자 아기여우는 뭐라도 상관없다는 듯 노부의 앞으로 와서 노부의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방금 물을 마시고 와서 혀가 시원했다. 

"뭐 줄까? 소고기는 저녁에 주고 아침엔 달걀 먹을까?"

노부는 아기여우를 방석 위에 올려놓고 돌아가서 달걀과 단호박, 당근을 삶았다. 달걀 노른자를 으깨서 담고 삶은 단호박과 당근도 작게 잘라서 아기여우의 밥그릇에 담아서 내려주자 아기여우는 이젠 머뭇거리지도 않고 다가와서 찹찹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노부는 그제야 샐러드를 만들고 아기여우에게 주고 남은 달걀 흰자와 단호박, 당근을 먹었다. 

아기여우와의 삶은 단조로웠지만 포근했다. 노부가 집에 돌아오면 아기여우가 현관까지 마중나와서 노부를 맞아주고 노부가 TV를 보거나 책을 볼 때는 옆에서 같이 TV를 보거나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이면 매일 노부의 침대에 올라와서 노부를 깨우고 TV를 틀어주었다. 여우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서 조금 찾아봤을 때는 여우가 털이 아주 많이 빠진다고 해서 온 집 안이 털범벅이 되는 것도 각오했는데 놀랍게도 퇴근해서 돌아오면 집이 항상 깨끗했다.  

내 아기여우는 아주 특별한 여우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나서 드디어 츠지무라의 보살핌이 많이 필요하던 환견이 무사히 퇴원해서 츠지무라가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츠지무라는 들어오자마자 아기여우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실제로 보니까..."
"더 예쁘지?"

노부는 싱글싱글 웃으며 품에 안겨 있는 아기여우를 내보였다. 그러나 츠지무라는 계속 미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아기여우도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불안한지 노부의 품에서 내려가지 않으려고 해서 노부는 계속 아기여우를 품에 안은 채 머리를 살살 긁어주고 있었다. 아기여우를 한참 관찰하던 츠지무라는 귀로 체온을 재는 체온계를 꺼내서 아기여우의 체온을 재고 뒷다리에 손을 올리더니 심박수를 재고 호흡수도 확인했다. 그리고 스캐너를 꺼내서 작은 아기여우의 몸을 꼼꼼하게 한 번 훑은 뒤 노부의 품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아기여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아기여우에게 이렇게 물었다. 

"수인이죠?"

어....?

놀란 노부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노부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여우가 '캥!'하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풀쩍 뛰어내려서 소파 뒤로 숨어 버렸다. 노부의 집에 온 지 두 달이나 됐지만 한 번도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캥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소파 뒤로 숨어 버린 아기여우는 지난 두 달간 노부와 보낸 포근한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사시나무 떨듯 덜덜덜 떨고 있었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