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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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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온다면 저런 눈일까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요? 네. 죽일 수 있어요. 양호열은 가능해요. 제가 지금 눈으로 공격당해서 죽었거든요.

정대만은 눈을 뜬 채로 반쯤 기절해 있었음
이건 정말로 정대만의 선에서는 수습이 불가했음..

그러니까 지금 얼마나 우스운 꼴을 하고 있냐면..

일단 정대만은 오른손에는 우산을 들고 왼팔로는 양호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양호열은 눈빛으로 정대만의 얼굴을 뚫으려고 하고 있기는 한데..
음. 아마 정대만의 '난 진짜 널 좋아한단 말이야' 발언 후에는 남들이 보면 그냥 열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열 명 가까이 되는 북산고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가는 길을 멈추고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 보고 있었음
약간의 웅성거림은 덤이었고.

하지만 말줄임표의 화신답게도 양호열은 눈으로 말하는 남자라서 호러 영화마냥 고개만 스르르 돌려 모두를 아래위로 한 번 훑어주니 다들 혼비백산해서 사라졌고 또 다시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단 둘만 남게 되었음

아. 이거 왠지 데자뷰 같은데..

아까 미처 지갑에 넣지 못한 주머니 속 오만원의 존재가 갑자기 미친듯이 신경 쓰이기 시작함

양호열은 자기 어깨 위에 있는 정대만의 팔을 치웠음
그리고...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음

흐에엑.
맞는다맞는다이번엔진짜맞는다진짜진짜로맞는다고!!!!!
빌어? 말아? 지갑 채로 꺼내? 말아? 꿇어? 말아? 
아 꿇는 건 무릎 때문에 안 되는데..ㅠㅠ


"대만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그거 실행에 옮기면 좋은 꼴은 못 볼 거예요."

"으응.. 아, 알지, 알지. 나 아무 생각 안했어.. 진짜루.."


귀신 같은 놈..

정대만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음
정대만은 감히, 가암히! 양호열과 눈을 맞출 생각을 못했음
눈을 아래로 깔아야 쫄보의 정석인데 아쉽게도 양호열의 키가 작아서 정대만은 옆으로 눈을 피할 수 밖에 없었음

씨발.. 이러다 눈깔 사시되겠네...ㅠ


"날 좋아한다?"

"으응.. 그, 그렇지.. 근데 너도 알다시피 그런 뜻은 진짜 아니다!! 진짜로!!"

"아~ 누구누구의 공개고백 때문에 난 당분간 연애도 못할텐데 당사자는 모르는 척 발 빼시겠다?"

"뭣?!?! 누, 누, 누가 언제 발을 빼?!?!?!"

"대만군이. 지금."

"내가 언제!!!!!! 난 혹시나 니가 오해할까봐 그런 거지!!"

"오해는 내가 한 게 아니라 대만군이 북산고 애들을 오해하도록 만들어 놨잖아. ^^"

"그.. 그건 그렇지.."


양호열이 팔짱을 끼고 살벌하게 웃자 잠시 살아났던 정대만이 다시 풀이 죽음

어쩌지.. 진짜 나 때문에 동네방네 소문나면 양호열이 칼 들고 쫓아올텐데 ㅠㅠ

하지만 정대만이 누구냐!!! 눈치는 갖다 팔아 먹었어도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남자다, 이거야!!
정대만은 옆으로 완전히 돌아갈 뻔한 눈깔을 원위치로 돌려서 양호열을 찬찬히 살펴봄

자, 객관적으로 양호열을 판단해보자.

이름. 양호열. 나이. 16세로 2살 연하. 
성격? 의리 있다? 정색하면 무섭다? 하지만 나쁜 애가 아니라는 건 안다. 오늘도 몇 번이나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화 안내고 봐줬으니까.. 착하다고 볼 수 있나...
같이 있으면? 무섭다. 그런데 싫진 않다. 
얼굴은? 음.. 일단 피부가 하얗고.. 작고.. 음.. 아까 풀 죽(은 척 했)었을 때 좀 귀여운 것 같았다...? 
어라..? 비 때문에 앞머리가 좀 내려왔네.. 어라라..? 자세히 보니까 좀 귀여운 것 같기도..?
귀, 귀엽..? 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대만군. 또 이상한 생각하나봐?"


정대만이 멍하니 양호열의 눈을 바라봄
까만 눈동자, 동그란 코, 연분홍빛 입술...

이거다, 이거야!!!!!

참고로 정대만이 제일 살아날 때는 농구를 할 때이지만, 두 번째로 살아날 때는 제 정신이 아닐 때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번에는 나쁜 의미로 살아남


"야!!!!!! 그 뭐냐, 그거 뭐지? 그거 있잖아!!! 뭐 발견했을 때 목욕탕에서 소리 지르는 거!! 그거 있잖아!! 너 알지, 알지!!"

"뭐? 유레카?"

"그래!!!! 유레카!! 유레카야!!!!!!"


정대만이 양호열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어 댔음

혼자 쫄았다가, 상납했다가, 동정했다가, 고백했다가, 사과했다가, 신났다가.. 같이 있으면 아주 지루할 틈이 없는 사람이구만. 쯧쯧


"내가 진짜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요."

"오해를 풀 방법이 생겼어!!!!"


여기서 양호열은 좀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들어는 보자 싶었음


"오해를 없애면 되는 거야!!!!"

"이미 한 오해를 어떻게 없애요. 뭐 일일이 찾아가서 해명해요? 바보같이?"

"아니! 참나. 넌 어린애가 왜 이렇게 꽉 막혔냐!!!!"

"그럼요?"

"너랑!! 내가!! 진짜 사귀면 되잖아!!!!!! 어때!!! 끝내주지!!!!!"


역시나 개소리였음

양호열은 무표정으로 정대만의 손에 있는 우산을 뺏어들고 성큼성큼 앞질러 감
그러자 정대만이 호다닥 달라붙어서 이제 두 번째랍시고 거리감도 잊어 먹었는지 또 어깨동무를 하고는


"왜!! 완전 괜찮은 생각 아니야?!"


하며 양호열을 설득함


"완전 미친 생각 같은데요."

"왜!!!!!! 생각의 전환 아니냐, 이거?! 나 존나 똑똑해 진짜!!!"

"..."


양호열은 잠시 차라리 쫄보 정대만이 낫지 않나 하며 정대만을 한심하다는 눈길로 쳐다봄
하지만 정대만은 여전히 본인의 생각에 심취한 상태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거의 양호열을 안다시피 걸으며 자기 생각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일장연설을 했음

물론 다 개소리였겠지만.


"하.. 대만군. 나랑 사귀고 싶어요?"

"뭐, 뭣..?! 아니.. 뭐.. 또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거봐요. 난 나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기 싫어요."

"어..? 근데 안 좋아하냐고 물으면 또 그건 아닌데.. 내가 아까 너 좋다고 했잖아."

"대만군 나랑 키스할 수 있어요?"

"뭐어?!?!?!!??!!!!?!?!?!?!?!?!?!!"

"...대만군.. 제발... 대만군 때문에 나 조만간 왼쪽 귀가 멀겠어요."

"아, 미안 미안. 근데 키스는 무슨 키스?!"

"사귀는데 키스 안 해요? 잠은 안 자요?"

"야! 넌 무슨 애가 그런.. 그런... 발랑 까진...."


정대만의 얼굴이 새빨개짐


"그치만 지금도 거의 너랑 안고 있고.. 음.. 음... 그렇게 바로는 안 되지만.. 손부터 잡으면 되잖아.."


점점 작아지는 정대만의 목소리에 양호열은 이마를 짚었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무슨 사고가 이렇게 튀지?
정대만은 슈퍼 N인걸까?? 아까 우산 아래에서의 거리감이 기억나지 않는 걸까? 아직도 어깨가 젖어 있으면서?


"대만군. 후회할 짓 하지 마요."

"후회 안 해!!! 후회는 그... 농구로 족하다, 난? 그, 그리고.. 보니까 너도 나 싫다는 말은 안 했으면서..."


한 달에 한 번 발휘되는 정대만의 눈치가 죽을 힘을 다 해 양호열의 시그널을 분석함

양호열은 자기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기 싫다고 했잖아?
이 말은 무엇이냐!! 내가 싫어서 안 사귄다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나한테 키스할 수 있냐고 묻는 건? 그럼 자기는 나랑 키스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이것도! 자기는 나만 후회 안 하면 지도 안 한다는 말이잖아!!


"야. 솔직히 너 나 좋아하지?"


정대만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었음

내가? 정대만을?
흠..

양호열은 기억을 되짚어봄
생각해보니 마음이 가지 않으면 절대로 억지로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괜히 백호군단의 핑계를 대며 정대만과의 사이를 완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함

흠.. 좋아하나.. 저 눈치 없는 화상을..


"흠."


지금도 고작 눈썹 한 번 치켜 올렸다고 그새 눈을 피하는 저 쫄보를?


"좋아요. 인정. 사실 좋아하는 것까지는 모르겠고 호감이 있는 건 인정할게요. 아마 대만군보다는 내가 더 호감도가 높겠지."

"그치? 맞지?"


얼씨구.
방금 전에는 눈 피하다가 이제는 또 실실 웃으며 엉겨붙네


"그럼 뭐. 그래요. 대만군 말대로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그래!! 내가 뭐랬어!!! 오해를 풀려면 아예 그 오해를 없애버리는 게 해결법이라니까?!"

"그건 모르겠고.. 대신!! 대만군이 지켜줄 게 있어요."

"뭐, 뭔데.."


아, 이번엔 긴장하네.
누가 잡아먹는대? 웃겨 진짜.


"나 무서워하지 말기. 난 내 애인이 날 무서워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해요. 이건 꼭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그래도 약속해요."

"그럼 너도 약속해!!!"

"뭔데요."

"내가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너한테 쫄았으면 정색하지 말고 손 잡아주기!!!"

"...안 쫀다는 건 선택지에 없어요?"

"넌 총이 니 눈 앞에 있어도 안 무서워 할 자신 있어?!"

"하.. 내가 총이에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손 잡아 줄거야, 말 거야!!!"

"알겠어요... ....응? 지금은 왜 잡아요? 쫄았어요? 내가 뭘 했는데?"

"에이. 이건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잡는 거지! 그것도 모르냐!"


정대만이 해맑게 웃으며 잡은 손을 흔들었음
양호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짓고는 같이 손을 맞잡았음


"이제 밥 먹으러 가요."

"우와. 첫 데이트인거네!"

"음. 그러네요."

"나 주머니에 아직도 5만원 그대로 있다? 지갑에 못 넣었잖아."

"나 그거 때문에 5만원 트라우마 생겼잖아요."

"헉. 그럼 다음엔 10만원 줄까?!"

"...하..."

"...(정대만, 이 병신...)"

"...대만군. 그만."

"...으응..."

"손은 이미 잡고 있는 거 알죠?"

"응..."



호댐 호열대만